자국어화
+5 [[自]][[國]][[語]][[化]]
Loanword Adaptation
1. 개요
외국어 단어(foreign word)를 들여올 때 단어의 음운이나 표기가 특정 언어식으로 변화하는 음운론적 현상. 의미적 변화와 함께 이 현상이 특정 정도 이상 일어난 외국어 단어를 외래어(loanword)라고 부른다. 엄밀한 번역어로는 아직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나 "차용어 적응"이라고 한다.
2. 종류
외국어 단어의 유입은 기본적으로 음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 완전한 외국어 단어는 원어에 가까운 음차로, 자국어화한 외국어는 원어에서 다소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각 언어마다 음운 체계의 차이로 100% 완전한 음차는 있기 어렵기에 완전한 외국어 단어 역시 자국의 음운 체계에 따라 자국어화의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게 된다. 또한 반대로 음운 체계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 의미상으로 자국어화 과정을 많이 겪었음에도 음운론적으로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다.
2.1. 표기가 같으며 발음법도 같이 유입
경우에 따라서는 표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발음법까지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독일어에서 엔지니어는 'Ingenieur'라고 하는데, 독일어에서 'g'는 오로지 [g]로만 읽지만 이러한 프랑스어 기원 단어에서는 프랑스어에서처럼 [ʒ]로 읽는다.
그러나 이후에 어원 의식이 희미해지면 자국식 발음으로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도 간혹 프랑스어식으로 읽는 단어가 있으나('depot' 등) 프랑스어 유입어가 워낙 많아서 어지간한 건 그냥 영어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restaurant'). 또한 'rendezvous'[ˈrɒndɪvuː]와 같이 전반적인 틀은 프랑스어처럼 읽는 것들도 'r'은 프랑스어식 [ʀ]이 아니라 [ɹ]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의 발음이 혼란스러워진 것은 이러한 외래어의 자국어화가 부분부분만 일어난 영향도 있다.
2.2. 표기가 같되 발음법이 다른 경우
로마자 문화권에서 외래어를 표기 그대로 가져오고 자국식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국호는 프랑스어로 'France'[fʀɑ̃ːs]이고 영어에서도 그 철자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영어에서는 해당 철자를 영어식으로 읽어 [frǽns]로 발음한다. 특히나 고대 로마/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단어의 경우 (그리스어는 그리스 문자를 라틴문자로 치환하는 과정을 거친 후) 해당 표기가 워낙에 고전으로서 굳어있기 때문에 표기는 유럽 대륙 전체에서 그대로이면서 각 나라에서 발음만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Socrates'(<Σωκράτης)라는 표기를 각자 다르게 읽는 식이다.
한자어의 한자 발음 역시 이 경우에 속한다. 한자는 표기적인 특성이 강해 음운 변화를 잘 입지 않는 특성이 있기는 하나[1] 그래도 중국 한자음, 한국 한자음이나 일본 한자음 등등은 각각의 언어에서 변화를 겪었다. 특히나 한자는 한자음이 딱딱 정해져있어서, 한자문화권이 아닌 언어의 단어라 할지라도 한자로 음차(음역)하는 경우 원어를 음차하기보다는 한자를 자국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영어 단어를 받아들일 땐 표기를 라틴어식으로 읽은 '대륙식 발음'(continental pronunciation)#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Croatia'를 분명 영어를 통해서 들여왔겠지만 영어식 [krouéiʃə](크로에이셔)가 아닌 '크로아티아'(크로아치아)로 읽는 것이 그 예. 다만 'ae'는 라틴어식 '아이'보다는 [æ]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a'는 'ㅏ', 'u'는 'ㅜ'에 대응되는 등 다소 전자(轉字)적인 면모도 있다.
2.3. 표기를 바꾼 경우
영어에서는 기본적으로 diacritic을 쓰지 않기 때문에 외래어에 본래 들어있던 diacritic도 빼버리는 경우가 많다(café → cafe). resume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résumé라고도 쓰는 것이 다소 특이한 예.
표기 변화는 자국식으로 달라진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본래 언어에서의 발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독일어 'stumm'은 영어 'schtum'으로 철자가 바뀌었는데, 독일어에서는 'st-'로 쓰면 's'가 저절로 [ʃ]가 되지만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를 'sch'로 표기한 것이다.
한국어에서도 한자어 중 발음이 크게 변하여 표기가 변한 것들이 있다. 일본어에서는 그런 변화를 입어 한자 대 독음의 관계만으로는 음운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에도 관습적으로 한자 표기를 하지만[2]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경우 한자 표기를 하지 않으며 한자어로도 보지 않는다.
라트비아어는 외국어 인명도 적극적으로 자국어화한다. 아래 '양상' 섹션 참고.
2.4. 표기 문자 체계가 달라지는 경우
음차 과정에서 표기 문자가 바뀌는 경우, 문자 체계에 이미 자국어 음운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에 약간의 자국어화 과정이 수반되게 된다. 특히 음소문자/음절문자/아브자드 등 음소의 표현 방식이 다른 경우 자국어화의 과정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가령 로마자 언어를 한글로 적는 경우 한글은 음소문자이기는 하나 모아쓰기로 인해 음절문자의 속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출발 언어를 음절로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한자와 같은 표어문자는 한자음의 분포가 음성적이기는 하나 음소의 결합에 따라 분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소 분포상 우연적 공백이 생기기 쉽다.[3]
개중에서도 '더욱' 자국어화가 된 것이 있고, 좀 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예컨대 '스코필드'는 'Scofield'를 한글로 적어 이미 한국어의 음운을 어느 정도 따르고 있으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석호필'이라고 할 수도 있다.
3. 양상
외래어의 자국어화는 차용 시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처음에 음차를 통해 유입된 단어도 어원 의식이 소멸하면서 고유어의 음운 변화를 따라가는 등의 자국어화가 나타날 수 있다.
고유명사에서도 자국어화가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독일계 성씨의 영어화가 유명하다. 아이젠하워는 'Eisenhauer'였으나 오늘날에는 'Eisenhower'로 수정하였다.
영어의 자국어화는 프랑스어에서 이미 자국어화가 일어난 단어를 표기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다. 'Cologne'(<Köln), Rome(<Roma), Munich(<München), Naples(<Napoli). 그러나 정말 표기만 갖고 온 거여서 'Naples'[napl]는 영어에서 강세형 'a' 이중모음화를 반영해 \néiplz]라고 한다. 간혹 Vienna(佛 Vienne), Venice(佛 Venise), Lisbon(佛 Lisbonne), Seville(佛 Séville), Geneva(佛 Genève)처럼 프랑스어 표기에서도 약간 바꾼 것도 있다.
영어식으로 변화하는 것은 'Anglicisation'이라고 부른다.[4]
간혹 특정 언어화된 단어가 도로 원어로 돌아가기도 한다. 특히 영어화에 대해서 이를 '탈영어화'(de-anglicisation)이라고 한다. 근대에 탈식민주의적 움직임으로서 그런 경우가 많다. 단, 이 경우 음성적인 공통점이 없는 것도 포함된다. 아일랜드 'Kingstown' → 'Dún Laoghaire'(던레러) 등.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자국어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이다. 따라서 새로운 한글 자모를 도입하지 않고, 받침도 한국어에서 음가상으로 변별되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사용하고, ㅈ, ㅉ, ㅊ 다음에 /j/로 시작하는 이중 모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국어화를 적극적으로 하는 언어 중 하나로 라트비아어가 있다. 예를 들어 George W. Bush는 라트비아어에서 Džordžs V. Bušs라고 하고, Hillary Clinton은 라트비아어에서 Hilarija Klintone라고 한다.
헝가리어, 체코어 등에서도 자국어화를 한다. 예를 들어 헝가리어에서는 '괴산'을 Köszan으로 적고(Goesan이 아니라), 체코어에서는 '영천'을 Jongčchon으로 적는다(Yeongcheon이 아니라). 스페인어 또한 '평창'을 Pieonchang으로(Pyeongchang이 아니라) 적는 등 자국어화를 하기도 한다.
4. 유사 개념
4.1. 번역차용
이러한 자국어화는 음성적으로 유사한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형태소의 의미를 고려하게 되면 더 이상 음운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차용에 가깝다. 이를테면 독일어 'München'을 영어 'Munich'이라고 한 것은 음성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변화이므로 자국어화의 일종이지만, 독일어 'Österreich'를 라틴어 'Austria'로 한 것은 'Öster-'와 'Austr-'는 음성적 유사성을 갖고 있을지언정 'Reich' - '-ia'에서는 [땅]이라는 의미에 따라 표현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번역차용이다.
동원어인 어근이나 접사로 번역차용하는 경우는 넓은 의미에서 자국어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동일 기원의 형태소는 비록 역사적이기는 해도 음운론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기 때문이다.
4.2. 의미가 바뀐 외래어
외래어가 본래 언어와 의미를 달리하는 일도 있다. 의미적 자국어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겠다. 콩글리시, 재플리시 등은 주로 이를 다루고 있다. <거짓짝> 문서도 참고.
5. 관련 문서
[1] 한국 한자음의 경우 대체로 당나라 시기의 중고음(中古音)을 기반으로 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2] 예를 들어 合의 한자음은 がぶ(역사적 가나 표기법)였지만 대개의 경우 순음퇴화되어 ごう로 변했다. 그러나 자음이 잇따르는 경우 合衆国(がっしゅうこく)와 같이 'がっ'로 남아있다. 이에 따라 이런 경우의 독음도 がっ로 따로 실어두었다. 단, 이는 모든 한자가 겪은 규칙적 변화이기는 하다.[3] 예컨대 한국어 한글은 /ㅂ/이 있고 /ㅑ/가 있다면 /뱝/과 같은 음절은 한국어에 존재하지는 않으나 표기 체계상 상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자의 중국 한자음이라면 중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음절이 중국 한자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4] 단, 철자가 비슷한 'Anglicism'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단어가 쓰이는 현상을 말하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