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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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 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모어 화자 수는 대략 8,200만 명(2007년 통계)이며 이 밖에도 1천만 명가량의 제2언어 화자가 있어 인도네시아 내 화자 수만 9,500만 명(2011년 통계)에 이른다. 자바를 '자와'라고도 하기 때문에 '자와어'라고도 한다.
2. 사용 지역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자바섬에서 사용하며, 자바섬 외 자바계 이주 인구가 많은 수마트라섬의 람풍[7] , 북수마트라, 남수마트라, 잠비, 리아우, 븡쿨루 6개 주에서 상당한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데, 1980년 통계 기준으로 이 6개 주의 자바어 사용 인구를 모두 합치면 5백만 명을 조금 넘는다. 자바와 활발히 교류했던 팔렘방 등 수마트라 동해안 도시에서는 고전 시대부터 자바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팔렘방에서 자바어는 근세 팔렘방 술탄국(1659–1823) 시대까지도 궁정어로 쓰였다.
이 외에는 같은 1980년 통계 기준으로 보르네오섬 동부, 남부 해안 지대에서 30만 명 안팎, 술라웨시섬 전체에서 10만 명 안팎의 사용자가 있다. 기타 주변 국가(말레이시아 등)의 자바계 이주민 역시 가정에서 자바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3. 방언과 변종
자바 내의 자바어 방언은 중부 자바 방언, 동부 자바 방언, 서부 자바 방언으로 나뉜다.
- 중부 자바 방언: 수라카르타, 욕야카르타 등의 '마타람 방언'이 '표준 자바어'로 불리는 가장 유력한 방언이며, 이 외에도 크두 방언, 스마랑 방언, 무리아(즈파라) 방언, 마디운 방언 등이 있다.
- 동부 자바 방언: 수라바야, 말랑, 그레식, 루마장 등에서 사용되는 아르칸(Arekan) 방언이 대표적으로, 마두라섬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아르칸 방언을 제2언어로 사용한다. 바뉴왕이 등에서 사용되는 오싱(Osing) 방언은 다른 방언들과 방언차가 매우 커서 아예 별도의 '오싱어'(Basa Using)로 분류하기도 한다[10] .
- 동부 자바, 대표적으로 수라바야 방언은 마타람 방언 화자에게는 무례하거나 거칠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의 한 연구[8] 에서는 수라바야 방언은 마타람 방언과 경어법 체계가 달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수라바야 방언에서 사용되는 자바어 경어법은 마타람 방언이나 한국어, 일본어처럼 경어의 등급을 두는 체계가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서의 T-V 구분 체계에 가깝다고 한다.
- 자바 최동단 지역에서 틍그르(Tengger)인[9] 이 사용하는 틍그르 방언도 오싱 방언처럼 마타람 방언이나 기타 다른 자바어 방언과 큰 차이를 보인다. 틍그르 방언은 특히 1인칭 단수 대명사에서 성(남성, 여성)을 구별하는 극히 희귀한 자바어 방언이다.
- 서부 자바 방언: 스랑과 칠르곤에서 사용하는 북부 반튼 방언, 치르본에서 사용하는 치르본 방언, 바뉴마스와 칠라찹에서 사용하는 바뉴마스 방언이 대표적이다.
3.1. 치르본 방언 논쟁
치르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자바어의 방언인 '치르본 방언'으로 간주할지 '치르본어'라는 별개의 언어로 간주할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이 언어는 중부 자바 방언이 상실한 일부 고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외래 영향에도 개방적이어서 순다어와 민남어 등에서 수많은 외래 어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어학자 앙리 기테(Henri Guiter)의 방식으로 실시한 2009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치르본 지역의 언어는 중부 자바 마타람 방언이나 동부 자바 아르칸 방언과 기초 어휘를 비교했을 때 둘 모두 약 75%가 상이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상이한 언어로 분류하는 기테의 기준인 80% 이상에 근소한 차이로 미달하였다. 서부 자바 지역의 공문서 등에서는 행정적, 정치적인 이유로 이 언어를 '치르본 방언'이 아닌 '치르본어'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다.
3.2. 수리남 자바어
수리남 인구의 약 15%(7–8만 명) 정도가 자바계인데, 이에 따라 자바어의 방언 가운데 유일한 아메리카계 방언인 '수리남 자바어'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수리남 자바어는 거의 문어로 쓰이지 않으며, 젊은 세대 자바계 수리남인은 같은 젊은 세대 자바계끼리 서로 소통할 때도 공용어인 네덜란드어와 현지 크리올인 스라난 통고(Sranan Tongo)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1982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9.4%).
수리남 자바어는 네덜란드어와 스라난 통고의 영향을 받아 어휘적, 문법적 변화가 심하게 일어났는데 가령 능력에 따른 가능성의 조동사('할 수 있다')로 표준 자바어에서는 예외 없이 'isa'가 사용되는 반면, 수리남 자바어 화자 가운데 절대 다수(2011–2012년 조사에서 80%)는 수리남 자바어 고유의 'inter'를 사용하며, 예정상의 'arep'은 표준 자바어에서보다 수리남 자바어에서 훨씬 높은 빈도로 사용된다[11] .
3.3. 궁정 자바어
마타람 술탄국의 술탄 아궁 시대인 17세기 전반부터 19세기(일부에 한해 20세기)까지, 마타람의 궁정과 마타람을 계승한 수라카르타와 욕야카르타의 궁정에서는 '궁정 자바어'(자바어: Basa Kadhaton, 인도네시아어: Bahasa Bagongan)라고 불리는 특수한 자바어가 궁정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궁정 자바어는 큰 틀을 유지한 채로 자바어 사용권인 반튼 술탄국의 궁정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자바 문화권에 걸치는 곳으로 자바어가 궁정어로 일부 사용되었던 반자르 술탄국의 궁정에서도 어느 정도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자바어 마타람 방언이 사회적 지위와 나이, 친밀도 등에 따라 엄격하게 등급화된 경어 체계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궁정 자바어는 궁정인들 사이에서라면 비교적 수평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통상적인 마타람 방언에서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 사람들끼리는 젊은 사람이 크라마체 1인칭 대명사 'kula'('저')를 쓰고, 나이 많은 사람이 응오코체 1인칭 대명사 'aku'('나')를 쓰며 2인칭 대명사도 서로 달리하는 반면, 궁정 자바어를 쓰는 궁정인들끼리는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 자신을 궁정 자바어 1인칭 단수 'manira'('소관')로 칭하면 그만이었다. 이는 최초로 궁정 자바어를 사용하게 한 술탄 아궁이 의도한 바로, 술탄 아궁은 최소한 궁정인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한몸처럼 여기기를 원했다.[12]
4. 음운
음운 면에서 특이한 점은 인도네시아어, 순다어, 타갈로그어, 테툼어, 하와이어 등과 달리, 그리고 마두라어[13] 나 말라가시어와 같이, 치음(일부 방언에서 치경음으로 발음. 자바어 화자는 치경음과 치음을 변별하여 듣지 않는다)과 권설음이 둘 다 존재하고 이 둘이 표기상으로도 구별된다는 점이다.
4.1. 자음
자바어에서 권설음은 아주 폭넓게 사용되는데, 권설 파열음 th와 dh 외에도 비음 n, 마찰음 s, 설측 접근음 l, 탄음 r이 권설음으로 실현된다. 한편 개음절로 끝나는 어말에 종종 성문 파열음 /ʔ/이 삽입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괴테 대학교 동남아시아학 교수 베른트 노토퍼(Bernd Nothofer)의 해설에 따르면, 관습적으로 '유성파열음'인 것처럼 표기되는 'b, d, dh, j, g'의 자바어 자음 음운은 사실 유성파열음이 아닌 무성 섭기(murmured)[16] 파열음이라고 한다[17] .
엄밀히 말해, 이상의 섭기음은 조음 위치가 같은 비음과 연쇄(즉 -mb-, -ndh-, -ngg-)되지 않을 때 음절 처음에서 실현된다. 음절 마지막에서 자바어 파열음은 불파음이 되는 경향이 있다.
4.2. 모음
모음 음운은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어와 같은 6개(a, e /ə/, é /e/, i, o, u)가 있다. 다만 경우에 따라 간혹 구별 부호를 붙인 è /ɛ/, ò /ɔ/가 등장하며, 표준 로마자 정서법에서는 7개의 모음자(a, é, è, e, i, o, u)를 인정한다. 표준 자바어(중부 마타람 방언)의 경우 폐음절에서는 'é /e/, i /i/, o /o/, u /u/'의 조음 위치가 조금씩 내려가서 '[ɛ], [ɪ], [ɔ], [ʊ]'로 실현되므로, 표준 자바어에서 쓰이는 모음 음운은 이음(allophone)까지 고려하면 10개로 볼 수 있다. 개음절에서도 'é /e/, o /o/'는 뒤따르는 모음이 개음절의 'i /i/, u /u/'일 경우 폐음절과 마찬가지로 '[ɛ], [ɔ]'로 변화하며, 위에 설명하지 않은 경우만 기본음 '[e], [o]'가 실현된다.
중부 방언의 경우 위에 설명한 것을 포함해 전후 음절 모음에 따라 모음이 변하는 모음조화가 약하게 나타나는데(자세한 설명은 서적을 참고) 이는 중부 방언과 동부 방언에서 역사적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 동부 오싱 방언 등 일부 방언은 모음조화가 없다.
4.3. 방언차
음운론적인 방언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아래와 같다. 어휘 수준에서의 방언차 역시 꽤 크지만, 일부 특이한 방언(동부 오싱 방언 등)을 제외하면 표준 자바어 화자와 의사소통에 큰 지장이 생길 정도까지는 아니다.
- 'a'가 단어 마지막에 오면 중부 방언의 경우 폐음절에서 [a], 개음절에서 [ɔ]로 실현된다. 단어 마지막 개음절의 'a' 앞에 개음절의 'a'가 연이어 오면 이것도 모음조화에 의해 동화되어 [ɔ]로 실현될 수 있다. 'a'는 위치와 무관하게 동부 방언에서는 [ɔ], 서부 방언에서는 [a]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 'i'가 단어 마지막 폐음절에서 중부 방언의 경우 [ɪ], 동부 방언의 경우 [ɛ], 서부 방언의 경우 [i]로 실현된다.
- 'u'가 단어 마지막 폐음절에서 중부 방언의 경우 [ʊ], 동부 방언의 경우 [ɔ], 서부 방언의 경우 [u]로 실현된다.
4.4. 음소 배열론
자바어의 음절 구조는 유럽어계 최신 외래어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n)-(C1)-(l)-V-(C2)' 형식으로 분석 가능하다. 여기서 (n) 자리에는 비음인 자음, (C1) 자리에는 파열음 또는 마찰음, (l) 자리에는 /ɽ/, /ɭ/, /w/, /j/, V 자리에는 모음, (C2) 자리에는 경구개음(/c/, /ɟ/, /j/, /ɲ/)과 권설 파열음(/ʈ/, /ɖ/)을 제외한 자음이 올 수 있다. 모음은 필수 요소이며, 나머지 자음은 모두 선택적이다. 이에 따라 자바어의 어두자음군에는 최대 3개(예로 'mprang', 'ngglam')의 자음까지 속할 수 있다.
5.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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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카위 문자로 표기하였고, 13세기경부터는 자바 문자로 표기되었다. 17세기부터는 아랍 문자에서 파생된 페곤 문자도 사용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자바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위의 도판은 19세기의 《바밧 타나 자위》 사본이며, 본문 표기에 자바 문자가 쓰이고 있다. 자바 문자는 카위 문자에서 파생된 아부기다로, 자바 옆의 발리섬에서 사용된 발리 문자와 유사하다. 자바 문자는 전통 시대에 자바어 표기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마두라어 표기에도 사용되었으며, 자바 문화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순다어, 발리어, 사삭어의 표기에 간혹 쓰이기도 했다.[1] 2007년 통계[2] 카리브 자바어[3] 누벨칼레도니 자바어[4] 오싱(Osing) 방언[5] 텡게르(Tengger) 방언[6] 카위(Kawi)어[7] 수마트라섬에서는 예외적으로 자바–순다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8] Daniel Krauße. "Polite vocabulary in the Javanese language of Surabaya." Wacana 19 no.1 (2018): 58-99.[9] 이들 대부분(약 95%)은 오늘날까지도 마자파힛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힌두교 신앙을 고수하고 있다.[10] 오싱 방언과 중부 마타람 방언은 모두 고대 자바어의 후계어이기는 하지만, 오싱 방언은 중부 자바 방언이 상실한 고대적인 특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사용 지역(옛 블람방안 왕국)이 발리섬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아 발리어 어휘도 많이 도입하였다.[11] Sophie Villerius, "Modality and aspect marking in Surinamese Javanese: Grammaticalization and contact-induced change." in ''The Grammaticalization of Tense, Aspect, Modality and Evidentiality: A Functional Perspective'' (Berlin: De Gruyter Mouton, 2017), 111-132.[12] 물론 이는 궁정인들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궁정인들도 군주를 부를 때는 최고 등급의 존칭인 크라마 잉길 대명사를 사용해야 했다.[13] 마두라어는 심지어 권설음이 있을 뿐 아니라 기식의 유무도 구별한다.[14] 양순 연구개 접근음[15] 권설 설측 접근음[16] 성대가 진동하지만, 동시에 많은 공기가 빠져나감으로써 한숨 쉬는 듯한 소리를 내는 음. 이때의 성대 진동은 원래 자음 자체로 인해 발생한 진동이라기보다는 뒤따르는 모음 음운 앞에 마치 유성 성문 마찰음 /ɦ/을 살짝 걸친 것처럼 발생하는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이 음은 유기음이나 유성음과는 다르다.[17] Bernd Nothofer, "Javanese." in ''Concise Encyclopedia of Languages of the World'' (Kidlington: Elsevier, 2009), 560.
1830년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자바 문자의 금속 활자가 발명되어 자바 문자도 본격적인 인쇄 문화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자바어를 표기하는 데 라틴 문자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식민정부는 지방 문자보다는 라틴 문자 보급을 선호하였으므로 점차로 자바 문자는 사장되어 가고 라틴 문자 사용이 확대되었다. 20세기 중반이 되면 새로 출간되는 서적은 거의 라틴 문자로 표기되게 되었다. 다만 철자법은 인도네시아어의 경우와 유사한 변천을 겪었는데, 식민지 시대에는 네덜란드어 방식대로 /u/를 'oe', /c/를 'tj'로 적는 등 현대 표기법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가 현대에는 인도네시아어 표기법을 준용하되 자바어의 특이성을 살려 'dh', 'th', 'é', 'è'를 추가로 쓰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2019년 현재는 가끔 서예나 전통 공예 등 장식적, 역사적인 사용처 및 일부 전통 의례, 욕야카르타 등에서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공공 기관의 사용례(거리 표지판 등) 등에서를 제외하면 자바어는 로마자로 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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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욕야카르타의 말리오보로 거리를 찍은 사진인데, 우상단의 표지판에서 라틴 문자와 함께 자바 문자 표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5.1. 자바 문자
자바 문자(Aksara Jawa, ꦲꦏ꧀ꦱꦫꦗꦮ)는 아부기다로서 기본 모음 'a'가 붙은 자음자가 뼈대를 이룬다. 자바 문자를 '하나차라카'(Hanacaraka, ꦲꦤꦕꦫꦏ)라고도 하는데, 이는 기본 자음 배열 순서에서 앞에 오는 5개의 자음을 따서 읽은 것으로 한글을 '가나다'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18] . 총 20종의 자음이 표기될 수 있으며 자음자의 기본 배열 순서는 h-n-c-r-k-d-t-s-w-l-p-dh-j-y-ny-m-g-b-th-ng 순(하나차라카 순서)인데, 기본 모음 'a'를 삽입해서 5음보 4행시 'Hana caraka. Data sawala. Padha jayanya. Maga bathanga.'를 만들어 읽으면 '두 전령이 있었다. 적의가 있었다. 힘이 엇비슷했다. 여기 시체들이 있다.'라는 뜻이 된다. 이는 자바섬에 문명을 전했다는 인도에서 온 전설적인 왕 아지 사카(Aji Saka) 설화에서 따온 이야기이다.
산스크리트의 k-kh-g-gh-ṅ-... 순서에서 자바 문자에 없는 것을 빼고 배열하는 '카강아 순서'(kaganga)도 있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다른 인도계 문자와의 일관성을 고려하는 유니코드에서는 자바 문자가 카강아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같은 자음을 표기하는 데 응르게나(Nglegéna), 무르다(Murda), 마하프라나(Mahaprana) 세 가지 종류의 문자가 사용될 수 있다. 응르게나는 라틴 문자나 키릴 문자 등의 소문자, 무르다는 대문자에 대략 대응하는데, 20종의 모든 자음에 대응하는 응르게나는 있지만 무르다는 10종의 자음자만 존재한다. 격을 높여 표기할 필요가 있을 경우, 고유명사의 첫째 음절에 무르다를 사용하며 만약 대응하는 무르다가 없을 경우 첫째 음절을 응르게나로 적고 둘째 음절에 무르다를 사용한다[19] . 아주 격을 높여야 할 경우에는 고유명사의 가능한 모든 음절을 무르다로 적게 된다. 마하프라나는 4종의 자음에 대해서만 사용되며 드물게 쓰인다.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자음자인 응르게나, 무르다, 마하프라나를 골격으로 놓고 이 상하좌우에 덧붙어 쓰이는 부호를 산당안(Sandhangan)이라고 한다. 산당안은 모음 부호[20] , 모음 소거 부호, 데바나가리의 찬드라빈두에 대응하는 비모음화 부호, 그리고 종성의 /ŋ/, /ɽ/, /h/, 초성의 복자음 /-j-/, /-ɽ-/, 복자음 합자 /-ɽə/ 등을 표기하는 자음 삽입 부호로 나뉜다.
자바 문자 방식으로 표기되는 숫자 기호(Angka)도 있는데, 10진법에 따르며 인도 숫자나 아랍 숫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한다. 가령 '1'과 '2'에 해당하는 자바 숫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달아 쓸 경우 '12'를 표기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 문장 내에서 문자 사이의 공간을 두는 방식으로의 띄어쓰기는 하지 않았지만, 마침표, 물음표, 쉼표, 괄호 등에 해당하는 문장 부호인 파다(Pada)가 각각의 기능에 따라 여러 개 존재하였으며 문장의 종결은 표시할 수 있었다.
5.1.1. 아랍어의 자바 문자 표기
전통 시대에는 종교적 목적으로 아랍어를 자바 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랍어에는 자바어에 없는 여러 자음이 있으므로, 이를 적기 위해 유사한 응르게나 또는 무르다 위에 '츠착 틀루'(cecak telu)로 부르는 3개의 점을 덧붙여 만든 새로운 자음자가 사용되었다. 아랍어를 적기 위한 확장된 자음자는 다음과 같다.
5.2. 특이 표기
앞서 설명한 모음 음운의 방언차에 따른 변동 정도(마타람 방언에서 두드러지는 개음절 'a'의 발음 등)만 주의하면, 라틴 문자로 표기된 자바어는 대체로 쓰인 대로 읽히는 편이다. 그러나 일부 단어는 역사적 이유로 자음이 표기되는 것과 다르게 읽히기도 하는데, 가령 'punika' /mənikɔ/, 'punapa' /mənɔpɔ/ 같은 경우가 있다(음소 표기는 마타람 방언).
6. 문법
많은 여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언어들(인도네시아어, 순다어, 타갈로그어, 말라가시어 등)처럼 교착적 특성이 뚜렷하다. 가령 명사의 복수는 인도네시아어처럼 반복으로 표현한다.
- manuk(새) / manuk-manuk(새들)
- buku(책) / buku-buku(책들)
- asu(개) / asu-asu(개들)
현대 자바어의 어순은 주어-동사-목적어(SVO) 순이다. 그러나 고대 자바어의 기본어순은 동사-주어-목적어(VSO) 순이었고 간혹 VOS 어순도 나타났다. 현대 자바어에서도 오래된 경구나 고풍스러운 문체에서는 VSO 어순을 쓰기도 한다.
복문을 만드는 관계대명사로는 kang(또는 덜 격식을 차린 표현으로 'sing')을 사용하며, 마인어의 yang처럼 선행사를 포함하는 의미로도, 포함하지 않는 의미로도 쓰인다. 예문을 보자.
- Uma(집) cilik(작은) kang(관계사) madep(향하다) ngulon(서쪽으로) iku(저것), mbusi(아마도) ya(예)?
- 번역: 저 서쪽을 바라보는 작은 집이 아마도 맞겠죠?
- Nangkae(잭프루트) kang(관계사) dipangan(먹히다) lu(저것) kien(이것).
- 번역: (누군가에게) 먹힌 그 잭프루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 Kita(우리) kang(관계사) nggerus(빻다, 갈다) bumbu(향신료).
- 번역: 우리는 향신료를 빻는 사람입니다.
6.1. 경어법
자바어는 정교한 경어 체계가 발달한 언어이며, 전통 시대 자바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바어 사용권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언어들, 즉 순다어, 발리어, 사삭어, 마두라어 등에서도 정교한 경어법이 발달하였다. 반자르어 등 일부 언어는 전통 시대에는 자바어의 영향을 받은 경어 체계가 있었으나 현대에 상당 부분 퇴화하였다.
- 존댓말
- 크라마체(Krama): 가장 높은 등급의 격식체. 주로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욕야카르타 등 마타람 방언권의 경우 화자가 크라마체로 말할 때는 발화 속도가 느려지고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게 되는데, 이 크라마체의 느린 발화 속도는 마타람 방언권 화자가 인도네시아어(경어법 없음)로 말할 때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 Dalem badhé nedhi.(소인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 Kula badhé nedhi.(저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 마댜체(Madya): 응오코체와 크라마체의 중간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처음 만난 사이에 말을 놓지 않을 때, 또는 상대방과 약간 거리를 두거나 적당히 존중할 필요가 있을 때(가령 집주인이 가정부에게) 주로 사용한다.
- Kula ajeng nedha.(저 밥 먹고 싶어요.)
- 크라마체(Krama): 가장 높은 등급의 격식체. 주로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욕야카르타 등 마타람 방언권의 경우 화자가 크라마체로 말할 때는 발화 속도가 느려지고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게 되는데, 이 크라마체의 느린 발화 속도는 마타람 방언권 화자가 인도네시아어(경어법 없음)로 말할 때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 반말
- 응오코체(Ngoko): 비격식체. 기본적으로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사용하거나 친한 사이끼리 사석에서 사용한다.
- Aku arep mangan.(나 밥 먹고 싶다.)
- 응오코체(Ngoko): 비격식체. 기본적으로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사용하거나 친한 사이끼리 사석에서 사용한다.
복합 패턴
- (손윗사람에게) Bapak kersa dhahar? (아버지 진지 잡수시겠습니까?) - 크라마체
- (손아랫사람에게 화자의 우월감을 표현하며) Iya, aku kersa dhahar. (그래, 밥 먹자꾸나.) - 응오코체
- (손아랫사람에게 편하게 말하며) Iya, aku arep mangan. (응, 밥 먹자.) - 응오코체
- (동등하게 표현할 때) Inggih, kula badhé nedha. (네, 밥 먹고 싶어요.) - 마댜체
여기서 '크라마 잉길'(Krama Inggil)은 겸양어[24] 내지 존경어이다. 응오코체, 마댜체, 크라마체 중 어느 방식으로 말하더라도 크라마 잉길을 사용할 수 있는데, 가령 'bapak'(아버지)은 이 크라마 잉길에 속하는 단어로 응오코체, 마댜체, 크라마체 모두에서 아버지에 대한 화자의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어휘는 수백 개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명사 외에도 기본적인 동사, 형용사 몇 가지는 레지스터에 따라 별개의 형태로 존재한다. 기본적인 동사로 예를 들어 본다[25] .
기본적인 문법요소를 나타내는 부사도 레지스터별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26] .
심지어 수사(1, 2, 3, ...), 수동태[27] 구성 방법, 일부 접사의 형태, 기본적인 접속사(그리고, 때문에, 그러나, 만약, 나중에, 전에, ...)에서도 응오코체와 크라마체가 다르다. 자세한 예는 들지 않는다.
표준 자바어에서 상술한 3개 경어 등급(크라마, 마댜, 응오코)은 실제 담화 상황을 고려하면 각 등급 내 3개씩의 세부 등급으로 아래와 같이 세분할 수도 있다. 표에서 아래로 갈수록 덜 정중한 등급이 된다. 이처럼 레지스터 교체를 통한 복잡한 경어 체계가 발달한 언어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데, 자바어 및 인접 지역의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언어를 제외하면 한국어, 일본어, 디베히어(특히 말레 방언), 티베트어(라싸 방언) 정도가 보고되어 있다.[28][29]
6.2. 형태론적 서법
자바어에는 통상 사용하는 직설법과는 별도의 서법(grammatical mood)인 서상법(敍想法, irrealis mood) 내지 접속법(subjunctive mood)을 나타내는 동사 및 형용사 접미사 '-a'('-i' 접미사는 '-ana'로 교체, '-aké' 접미사(응오코체. 크라마체는 '-aken')는 '-na'로 교체)가 고대 자바어 시대부터 발달하였다. 서상법은 실현되지 않은 가설적 사건 또는 상태를 나타내며 주로 조건, 기원, 양보('-이더라도'), 목적(대표적으로 접속사 'supaya'가 이끄는 경우)의 종속절이나 형태론적 명령법 표현에서 사용되는데, 직설법 동사/형용사 술어에 단순히 '-(an)a'를 접미시키면 서상법 동사/형용사 술어가 된다. 이러한 형태론적 서상법은 인접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마두라어, 사삭어 일부 방언, 발란탁어(Balantak, 술라웨시 동부) 등에서도 나타나지만, 순다어나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언어인 마인어에는 형태론적 서상법 표지가 없다. 이하는 응오코체 예문이다.
- Dhèwèké ora nduwé dhuwit. (그는 돈이 없다.)
- → Yèn dhèwèké nduwéa dhuwit ora bakal aku diwèhi. (설령 그가 돈이 있더라도, 나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 Aku dudu wong sugih. (나는 부유하지 않다.)
- → Senadyan aku sugiha, aku panggah manggon ing désa. (설령 내가 부유하더라도, 나는 마을에 머물 것이다.)
7. 역사 및 문학
7.1. 고대–중세
자바섬에서 문헌 기록의 역사는 적어도 고대 서부 자바의 타루마 왕국 시대(Tarumanagara, Tarumanegara, 358–669)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타루마 왕국은 산스크리트로 기록된 여러 비문들을 남겼으며, 고대 순다어를 사용하는 주민으로 이루어진 인도화된 왕국으로서 여기서는 힌두교, 불교 및 전통 순다 종교체계인 순다 위위탄의 초기 형태 등이 다양하게 믿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거의 구어로만 사용되던 자바어가 문어로서 발달을 시작하게 된 것은 8–9세기로 추정된다. 고대 자바어만으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후 804년 3월 25일에 기록된 수카부미 비문이다.[32] 오늘날 동부자바주 크디리현 지역에서 출토된 이 비문은 사실 약 120년 전의 문헌을 복제한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원본은 발견되지 않는다. 비문은 지역의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관개 수로를 위한 댐 건설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팔라와 문자로 쓰였지만, 이후의 거의 모든 고대 자바어 문헌은 카위 문자 및 그 변형인 자바 문자로 쓰였다. 이를 비롯해 고대 자바어로 된 가장 오래된 문헌들은 불교 문헌과 《카카윈 라마야나》(고대 자바어로 된 《라마야나》 이야기로서 870년 전후에 쓰였음) 등이 있다. 이때 이미 산스크리트 운문을 모방한 자바 운문 서사시 양식으로서 카카윈 양식의 발달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카카윈 양식에 쓰인 고대 자바어의 공식적인 문어체는 카위어(Basa Kawi, 'Kawi'는 산스크리트어로 '시인'이라는 뜻)로 불리기도 한다.
11세기에 지어진 아르주나의 이야기 《카카윈 아르주나위와하》(Kakawin Arjunawiwaha)는 아이를랑가 왕의 후원으로 음푸[33] 칸와(Mpu Kanwa)가 저술하였는데, 이는 저자와 후원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카카윈 중 하나로 꼽힌다. 《마하바라타》는 10세기 무렵부터 여러 차례 고대 자바어로 번역 내지 번안되었는데,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2세기의 《카카윈 바라타유다》(Kakawin Bharatayuddha, 음푸 스다Mpu Sedah와 음푸 파눌루Mpu Panuluh 형제가 1157년 저술)이다. 제목의 '바라타유다'는 《마하바라타》에서 묘사되는 쿠룩셰트라 전투를 가리킨다. 자바어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여러 등장 인물들의 명칭이 자바어로 옮겨지고(두료다나가 '두류다나'Duryudana/Duryudhana가 되고 유디슈티라가 '유디스티라'Yudhisthira가 되는 식) 약간의 내용 수정도 가해졌는데, 가령 쿠룩셰트라(쿠루 평원)는 인도가 아닌 자바 중부의 디엥(Dieng) 고원을 가리키게 되었다. 《카카윈 바라타유다》의 저자 음푸 파눌루는 12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 여러 작품을 남긴 크디리 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크리슈나의 이야기 《카카윈 하리왕사》(Kakawin Hariwangsa)와 가톳카차의 이야기 《카카윈 가톳카차스라야》(Kakawin Gatotkacasraya)도 음푸 파눌루의 작품이다.
중세 자바어는 마자파힛 제국(1293–1527)의 시대에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많은 문헌은 론타르(lontar, 자바어로는 론탈rontal)라고 하는 형식으로, 야자잎을 가공해 종이처럼 만든 것에 기록되었다.[34] 마자파힛 시대에 후기 카카윈 양식은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는데, 마자파힛 라자사 황조의 하얌 우룩 황제를 기리는 서사적 송시 《나가라크르타가마》(Nagarakretagama, 1365년 음푸 프라판차(Mpu Prapanca)가 저술)가 이 시대의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하얌 우룩 시대의 카카윈으로는 음푸 프라판차 외에도 음푸 탄툴라르(Mpu Tantular)의 것이 대표적이다. 음푸 탄툴라르는 불교도였지만 시바파 힌두교에도 개방적이었으며, 이러한 성향은 저술에도 깊이 스며들어 마자파힛의 혼종성과 관용을 상징하는 작품을 남겼다. 음푸 탄툴라르의 작품으로는 《라마야나》의 후반부에 벌어진 전투를 테마로 한 《카카윈 아르주나위자야》(Kakawin Arjunawijaya), 왕자로 환생한 보살의 신화적 여정을 그린 《카카윈 수타소마》(Kakawin Sutasoma) 등이 있다. 현대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표어로 쓰이는 '다양성 속의 통일'(Bhinneka Tunggal Ika)이 바로 《카카윈 수타소마》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해당 부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마자파힛이 분열과 쇠퇴의 과정에 있던 15세기에도 카카윈은 지속적으로 쓰였다. 15세기에 마자파힛 황제 브라위자야 4세가 후원한 시인 음푸 타나쿵(Mpu Tanakung)은 《카카윈 시와라트리칼파》(Kakawin Siwaratrikalpa), 《카카윈 우리타산차야》(Kakawin Writtasancaya) 등을 남겼다. 《카카윈 시와라트리칼파》는 죄를 짓고 죽은 사냥꾼 룹다카(Lubdhaka)의 처우를 두고 시바와 야마가 대립하는 이야기이다.Rwâneka dhâtu winuwus Buddha Wiswa,
Bhinnêki rakwa ring apan kena parwanosen,
Mangka ng Jinatwa kalawan Siwatatwa tunggal,
'''Bhinnêka tunggal ika''' tan hana dharma mangrwa.
그들은 다르지만, 어떻게 그들이 다름을 즉시 분별할 수 있는가,
지나(붓다)의 진리와 시바의 진리가 하나일진대,
그들은 다르지만, 결국 그들은 동류에 속하는도다, 진리는 두 근원을 두지 않는 까닭에.
고대와 중세에 번성한 다른 자바어 문학 양식으로는 산스크리트 운문 양식의 카카윈에 대립하여 자바어 고유의 운율 체계를 가지고 발전한 키둥(kidung)이 있다. 키둥은 인도(라마야나, 마하바라타 등)나 고대 자바(가령 판지 왕자 이야기)의 설화를 테마로 창작되었다. 대표적인 키둥으로 하얌 우룩 시대 순다 왕국과 마자파힛의 대립으로 빚어진 비극을 다루는 《키둥 순다》(Kidung Sunda)가 있다. 이 외에도 왕조의 연대기나 여러 지역으로의 기행문을 쓰는 데 사용한 바밧(babad) 양식이 있는데, 역시 독자적으로 발전한 엄격한 율격을 갖춘 운문 형식이었다. 근대 이전 고전 자바 문학에서 산문(gancaran)은 진지한 문학 양식으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자바섬의 신화적 기원을 다룬 15세기의 마자파힛 시대 산문 《탄투 파글라란》(Tantu Pagelaran) 등 주목할 만한 예외도 있다.
이상에 서술한 고대와 중세 자바어는 현대까지도 자바 문화의 저층을 이루는 여러 의식과 전통 혼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양(와양 쿨릿, 와양 웡, 와양 골렉) 공연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마자파힛 제국의 멸망 전후에 발리섬으로 도피한 마자파힛 귀족들은 다량의 자바어 텍스트를 발리로 가져갔고, 이에 따라 발리섬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자바어 문헌들이 다수 보존과 필사를 거치며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이 가운데는 자바 본토에서 소실된 것들도 다수 있어, 고대 및 중세 자바 문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발리에서는 겔겔 왕국과 이후의 소왕국 시대에 중세 자바 전통을 계승하는 자바어 문학 저술이 융성하여 자바 본토에서 발전한 이슬람적 파시시르 문학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독자적 근세 문학 전통을 발달시켰다. 발리와 롬복에서는 고전적인 카카윈 양식을 따르는 문학 작품이 18세기와 19세기까지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저술되었다[35] . 이와 같은 자바어 문학의 강한 영향력 하에 근세 발리어 문학도 발달하였다. 한편, 해안 지대의 무역상들에게는 당대 파시시르 문학도 전해져 발리의 항구에서 소규모로 발리 파시시르 문학이 저술되기도 했다.
7.2. 근세–현대
신 자바어는 16세기, 마자파힛 제국이 스러지고 드막 술탄국(1475–1554), 반튼 술탄국(1527–1813, 서부 자바), 칼리냐맛 왕국(1527–1599, 북부 자바), 파장 왕국(1568–1586), 마타람 술탄국(1587–1755) 등에 의해 자바의 이슬람화가 한창이던 때 형성되었다. 마타람 술탄국의 서부 원정에 따라 자바어는 자바섬 서부로도 퍼져나갔으며, 문어로는 19세기까지 순다어 사용 지역에서조차 많은 경우 자바어 또는 말레이어를 사용했을 정도로[36] 자바섬에서 압도적인 문화적 권위를 갖추게 된다. 이슬람화를 겪었으므로 많은 아랍어 및 페르시아어 기원 외래어가 자바어로 유입되었고, 이때의 자바어는 현대 자바어와 함께 연속체를 이룬다.
그러나 이슬람화를 겪기는 했어도 천 년 이상 이어진 자바화된 힌두교–불교 전통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자바의 무슬림들은 이를 새로운 외래 종교인 이슬람과 융합하여 독특한 혼성 문화를 형성하였다. 남아 있는 기존 전통의 예로 대표적인 것은 바로 자바 문자인데,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어 사용 지역에서 이슬람화를 거치며 아랍 문자를 거의 차용한 자위 문자를 사용하게 된 것과 달리 자바에서는 팔라와 문자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자바 문자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이슬람 자바 문학은 파시시르(pasisir, 자바어로 '해안') 문학이라고 불린다. 이 시대에는 해안에 위치한 수라바야, 그레식, 드막, 즈파라, 치르본, 반튼 지역이 문학의 중심이 되어 이곳에서 수많은 작품이 저술되었으며, 자바섬 바깥에서도 자바어 문학은 일정한 영향력을 획득하여 롬복섬, 팔렘방 등지에서도 독특한 지방색을 가진 문학 작품이 나왔다. 파시시르 문학의 범위는 매우 다양한 예술로서의 문학을 포괄하는데, 자바 고유의 판지 설화의 여러 변주가 가장 유명하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외에도 아미르 함자(Amir Hamza)의 이야기를 다루는 《함제나메》의 파생 작품들, 아지 다르마(Aji Darma)나, 유숩(Yusup)의 모험 서사를 비롯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유형의 서사와 각종 운문이 서술되고 읽혔다. 파시시르 시대 이래로 종교 문헌, 법률 문헌이나 연대기, 교훈서뿐 아니라 회화, 음악, 건축, 공예 등 예술에 대한 문헌, 전통 의술, 약초학 문헌, 그리고 언어에 대한 다양한(문법, 운율, 방언 등) 문헌이나 백과사전적 저술 등 당대 자바 문명과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저술도 작성되어 근세 자바 사회를 연구하는 풍부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이 시기 자바 고전의 영향력은 전통적인 도서부 동남아시아의 테두리를 넘어서까지 퍼져, 아유타야 왕국 시대와 짜끄리 왕조 시대 태국에서도 판지 설화가 각색된 《이나오》(อิเหนา)가 여러 번 창작과 재창작을 거쳐 태국 고전 문학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이 설화가 태국으로 유입된 정확한 경로와 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대체로 자주 지적되는 바는 아유타야 중기 또는 말기(16–18세기)에 남부 접경 지대 파타니 지역의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자바 설화를 텍스트 또는 구전으로 접하여 이에 익숙해졌고, 이것이 어떤 경로로 태국 내륙으로 전파되었으리라는 것이다[37] .
18세기와 19세기에 자바 문학에서는 고전 자바 문학 전통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문학의 중심은 수라카르타와 욕야카르타를 비롯한 내륙의 궁정으로 다시 이동하였고, 이슬람 이전 고대 자바의 카카윈이 다시 읽히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 '푸장가'(pujangga)라고 불리는 수라카르타 작가들의 명성은 온 자바로 퍼졌으며 이에 가려 상대적으로 파시시르 시대 작가들은 잊히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특히 야사디푸라(Yasadipura)의 가문에서 배출된 세 명의 시인, 야사디푸라 1세(Yasadipura I, 1729–1802), 야사디푸라 2세(Yasadipura II, ?–1844, 야사디푸라 1세의 아들), 롱가와르시타(Raden Ngabehi Ronggawarsita, 1802–1873, 야사디푸라 2세의 손자)가 수라카르타 궁정 시인으로 유명하였다. 롱가와르시타의 활동 시기는 네덜란드가 디파나가라 전쟁을 거쳐 자바의 식민화를 완료한 시기와 겹치며, 롱가와르시타는 시대를 되돌아보며 전통적 질서의 퇴락과 상실에 대한 비가 〈칼라티다〉(Serat Kalatidha, 1860년 전후)를 썼다. 이는 지금까지도 자바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38] .
〈칼라티다〉 외에 주요한 19세기 자바 문학 작품으로는 술탄 아궁 시대의 17세기 자바를 배경으로 한 서사시로서 자바의 《오디세이아》라고도 할 수 있는 《츤티니》(Serat Centhini, 1814, 당시 왕자였던 파쿠부워노 5세의 총괄 하에 파쿠부워노 5세 및 롱가수트라스나Raden Ngabehi Ronggasutrasna, 야사디푸라 2세, 사스트라디푸라Raden Ngabehi Sastradipura 3인의 궁정 시인이 저술), 제3차 자바 왕위 계승 전쟁의 중요 분기점이었던 기얀티 조약 전후 사정을 다룬 《바밧 기얀티》(Babad Giyanti, 1757–1803, 야사디푸라 1세), 마자파힛의 멸망을 다룬 《다르마간둘》(Serat Darmagandhul, 1900, 키 칼람와디Ki Kalamwadi[39] ) 등이 있다. 한편으로 19세기 자바 작가들은 자바어를 학습하고 자바 문학 전통을 연구한 네덜란드 학자들에게 자극받기도 했다.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자바에서 유럽과의 본격적인 문화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에 비로소 성서가 자바어로 번역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인도네시아라는 정치적 단위가 상상되기 시작하여, 공용 구어이자 문어로서 인도네시아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였고 자바어는 상대적으로 자바라는 한 지방의 토착어로 격하되었다. 한편으로 순다어, 마두라어 등 자바어에 밀려 문어로 잘 사용되지 않던 다른 주변 지방의 토착어들도 다시 근대 인쇄술의 힘을 빌려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20세기 인도네시아의 주된 문학적 흐름은 인도네시아어로 이어지게 되었으나, 최근까지도 많은 작가들은 자바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자바 출신이며 자바어 고전 문학의 전통은 널리 계승되고 있다. 또한 자바어로도 많은 문학 작품이 번역 및 저술되고 있다.
8. 한국어에서 자주 쓰이는 외래어 단어
한국어의 외래어/기타 참조.
[18] 인접 지역인 발리의 발리 문자 역시 '하나차라카'로 부를 수 있으며, 발리 문자에서 쓰이는 18개의 자음 배열 순서는 자바 문자의 하나차라카 순서와 동일(없는 2개 제외)하다.[19] 둘째도 대응하는 무르다가 없으면 셋째, 식으로 계속 밀릴 수 있다.[20] 모음 산당안 표기가 없을 경우 자음자는 /a/ 모음을 받는다. 기타 모음 /i/, /u/, /e/, /o/, /ə/은 대응하는 산당안이 있어 모음 산당안은 5종이다.[21] 또는 panjenengané[22] 성 구별이 없다.[23] 또는 드물게 dhèwèké kabèh[24] 겸양어는 따로 '크라마 안답'(Krama Andhap)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25] Stuart Robson, ''Javanese Grammar for Students'' (Melbourne: Aristoc Press, 1992), 49-52.[26] Ibid., 65.[27] 자바어의 수동태 구성 방법은 그 의미에 따라 경어법 레지스터를 고려하지 않으면 4가지 정도로 분류하며, 각기 경어법에 따라 다른 구성을 사용할 수 있다.[28] Daniel Krauße. "Polite vocabulary in the Javanese language of Surabaya." ''Wacana'' 19 no.1 (2018): 58-99.[29] 한국어의 높임법과 대조하여 자바어의 높임법 체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논문으로 다음이 있다. Wulan Nuraini Rahayuning. "한국어와 자바어의 상대높임법 대조 연구." 석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18.[30] 응오코체와 크라마체 어휘 중 대응되는 마댜체 어휘가 없는 경우가 많다.[31] Thomas Conners, "Tengger Javanese," (Ph. D., Yale University, 2008), 201.[32] Andreas Yumarma, ''Unity in Diversity'' (Rome: Gregorian Biblical BookShop, 1996), 29.[33] 고대 자바어 호칭 가운데 '음푸'(mpu)는 브라만이나 귀족 또는 어떤 영역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대가에 대한 존칭으로, 현대 말레이어 'perempuan'과 어원이 말레이폴리네시아 조어 'empu'로 같다.[34] 남인도 지역에서 전파됨.[35] 상세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Helen Creese, "The Balinese Kakawin Tradition: A Preliminary Description and Inventory," ''Bijdragen tot de Taal-, Land- en Volkenkunde'' 155 no.1 (1999): 45-96.; Helen Creese, "Pieces In The Puzzle : The Dating of Several Kakawin from Bali and Lombok," ''Archipel'' 52 (1996): 143-171.[36] 물론 순다어 역시 카위 문자에서 발전한 독자적인 순다 문자 및 문학 전통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바어나 말레이어에 비하면 양적, 질적으로 밀리는 편이다.[37] Stuart Robson. "Panji and Inao: Questions of Cultural and Textual History." ''Journal of The Siam Society'' 84 no.2 (1996): 39-53.[38] 롱가와르시타와 19세기 자바학에 대해 영어로 접할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Shiraishi, Takashi. "Javanology and the Age of Ranggawarsita: An Introduction to Nineteenth-Century Javanese Culture." in ''Reading Southeast Asi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0), 75-108.[39] 필명이며,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추측을 낳았는데, 저자를 특정하는 논쟁은 2019년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발표 후 롱가와르시타가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키 칼람와디가 롱가와르시타와 동일 인물이며, 《다르마간둘》이 롱가와르시타의 미발표 유작이라고 추측하였지만, 특별한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