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도시
1. 개요
라틴어 : urbs'''Stadtluft macht Frei'''[영문표기]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만든다.'''
독일어 : Stadtluft
영어 : city
중세 유럽사에서 도시란 중세에 군주 혹은 영주로부터 헌장을 수여받아 코뮌에 의한 자치권을 보장 받은 행정구역을 말한다.
본 문서의 표제인 자유도시는 중세적 도시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인구의 대규모 밀집 정착지'와 구분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의 imperial Free city 개념에서 따와 임의로 붙인 명칭이다. 중세 당시 및 중세를 다루는 일반적인 서적에서는 그냥 '도시'라고 부르며, 본 문서에서도 그냥 도시라는 단어를 사용한 서술이 혼재되어 있다.
2. 상세
중세 시대에는 인구의 과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농노, 10% 내외로 존재하는 귀족과 성직자들 외에도 40~50% 가량의 자유민이 존재했다. 이들은 농노와 달리 영지에 예속되지 않았고, 신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봉건제로 얽히고 섥혀있던 중세 유럽의 특성상, 자유민들도 결국 근방에 사는 영주에게 충성 서약을 해서 봉신으로 존재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영주의 소유물로 여겨지고 영주를 위해 노역을 해야하는 농노들과 달리, 영주의 봉신이 된 자유민들은 영주를 위해 일반적으로는 보병으로 군복무를 했고, 드물게는 기사 훈련을 받아 기사로 복무하기도 했다. 또 평소에는 군역 대신 세금을 납부해서 영주에 대한 의무를 다했고, 그 대신 영주 소유의 공유지를 사용할 수 있고 영주에게 법적인 보호를 받는 등의 대가를 받았다. 영주를 대신해서 장원을 경영하는 관료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영주의 장원에 소유된 농노를 부려서 잡일을 한다던가, 자유민의 경작이 급할 때 영주 소유의 농노에게 대신 경작을 받는다던가, 대토지를 가진 자유민이면 아예 농노를 하사받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민들이 농노들보다야 훨씬 큰 권리를 가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주군을 모시고 영주를 위해 군복무를 한다던가 세금을 납부한다던가 하는 의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자유민들도 있었다. 자유민들이 모여 사는 읍락(burgo)들 중 일부가 '영주를 아예 안 모시고 우리끼리 알아서 살자!'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중세에 출현하기 시작한 자유도시들의 유래다. 특히 유럽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이어진 자치조직 전통과 게르만족의 의회 전통이 존재했으며, 코뮌을 통해서 그러한 전통이 중세 성기에 구체화 되어서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한 유럽에 도시가 대거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물론 자유민들이라고 해도, 그들의 주군이었던 영주가 갑자기 세금도 안내고 군복무도 안하겠다고 하는 놈들을 달가워할리는 없었고, 도시들은 자치권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과정이 필요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냥 자유민들이 무력을 행사해서 영주나 주교를 쫓아내버리고 자치를 행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경우로, 시민들이 주교를 조지고 자치를 획득한 리에주,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플랑드르 지역들의 도시 자치가 있으며, 또 스위스 동맹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제가 되고 오스트리아로 본거지를 옮기자 본래 영지인 합스부르크 백작령에는 신경을 못 쓰는 사이, 합스부르크 가문이 잠깐 제위를 잃자 그 틈을 타 무력으로 독립선언을 한 것이었다.
때문에 귀족들은 머리가 커진 자유민들을 별로 달가워하진 않았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카페 왕조 이래로 파리가 공식적인 수도였으나, 프랑스 왕들은 성질 더러운 파리 시민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고 파리에 직접 입성해서 살기보단 파리 근교에 궁궐을 짓고 지내는게 보통이었으며, 영국의 수도 런던도 왕조차 런던 시민들의 자치에 간섭하는 것이 매우 제한되었다.
한편 자유도시들을 역으로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한 영주들도 있었다. 왕이나 황제의 입장에선, 지방 영주들에게서 그런 강력한 자유민 집단이 독립해나간다는 것은 곧 제후들의 힘이 약해진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도시들에게 자치권을 수여한다는 것은 귀족을 견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수단이었다. 이에 군주들은 직접 칙령, 특허장을 도시들에게 줘서 지위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도시는 영주에게 예속되지 않고 군주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고 군주 직속 군복무 의무를 지니며, 군주는 자치적인 입법권과 사법권을 행할 수 있게 인정해주는 교환이 이뤄졌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제국시(Freien Reichsstadt)와, 프랑스 필리프 2세가 시작한 모범 자유도시(ville de franchise)다.
12세기에 들어서면 경제와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자유도시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자유도시가 설치되면 시장이 설치되어 상인들을 유입시킬 수 있어서 인구가 자연히 증가하고 수공업자들도 정착해서 미개발된 지역의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독일 지역은 도시 자치법의 발전 및 대장장이, 탐광꾼, 광부 등 금속 공업자들이 도시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동방식민운동도 그런 자유 도시 설치를 통해서 독일 상인들이 동유럽으로 유입된 것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제국시(Freien Reichsstadt)들은 다른 연방 국가 제후에 비해 정치적 권력은 미약했지만 제국의회의 참석권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프랑스에서는 지방별로 세 유형이 있었는데 북부의 코뮌 도시(ville de commune)와 중부의 모범 자유 도시(ville de franchise), 남부의 집정관 도시(ville de counsulat)로, 이중 북부의 코뮌 도시와 남부의 집정관 도시가 중부의 자유 도시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누렸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모범자유시는 국왕에게 직접 특허를 딴 대신 꽤 많은 의무를 졌다.
영국의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1] 도 일종의 자유시였으며, 지금도 그 독특한 전통을 변형해서 운용하여 조세피난처로 활용되고 있다.
농노가 도시로 도망쳐서 1년+1 일동안 잡히지 않으면 자유민이 되었는데, 이것은 도시가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에 기인한다.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으니 영주의 사법권 같은 권한도 적용되지 않았고, 따라서 도시에 거주하는 농노도 영주의 사법권을 적용받지 않았던 것. 문서 상단에 언급된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이 도망농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3. 자유도시의 환상과 실상
일단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가장 편한 위치인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민들이 모두 자유민이라는 점에서 영주의 지배를 받는 도시 내지는 장원보다 더 살기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상은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가 왕이 된다고 도시 내의 유력자가 사실상의 영주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수도와 인접한 지역이 아니라면 국왕이나 황제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도시 내 유력 가문의 수장이 시장이 되어 봉건 영주와 다를 바 없는 권한을 행사했다.
게다가 이쯤 되면 속된 말로 거주자들의 대가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지라 봉건 영지에 비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상당히 심했다. 즉 여러 유력 가문들이 시장 자리를 두고 정치적인 암투를 벌이기도 했다. 중세말~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역사는 이런 면이 특히 두드러진다. 게다가 여전히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자유도시에서 성장한 신흥 세력 간의 갈등도 이어졌다. 이 신흥 세력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봉건 영주나 교회 세력에 비하면 세가 미약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국왕 혹은 황제와 결탁하게 되고, 이는 절대왕정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신롬 같은 경우는 황제-영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곳들이 대부분이라 어차피 누군가의 말이나 편을 들어야 하는, 이름만 자유도시인 곳들이 일반적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은 황제-교황-영주들 간의 힘겨루기에 대부분의 도시들은 열심히 줄을 갈아타야했다. 특히 북이탈리아는 줄 잘못 섰다가 도시가 쑥대밭이 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요즘의 비슷한 예를 들자면, 홍콩 같은 도시는 드물었고 언제든지 간섭이 가능한 하이난 같은 곳들이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실권이 적었던 교황까지 당시에도 꽤 강한 도시인 피렌체 대표였던 단테가 말을 잘 듣지 않자 그냥(...) 호출해서 추방하기도 했다.
또한 부르주아 계층이 사회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자유도시의 위상을 높게 쳐주지만, 사실 자유도시란 자치 특허를 부여받은 행정구역의 이름이었을 뿐 도시라고 할 정도로 큰 곳은 드물었다. 14세기 중반 기준 독일의 자유도시는 3천개에 이르렀지만 고작 인구 1천을 넘는 곳도 불과 200여개였고, 1만을 넘는 곳은 20개에 불과했다. 전근대 시기 최소한의 도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기준 인구가 2천인걸 생각하면, 대다수의 자유도시는 마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유럽 대륙에선 프랑스 혁명 시대 직전까지 이어졌다. 성벽을 두른 도시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성벽이 주거지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고 널찍하게 밭, 목초지를 둘러서 도시라기보다는 그냥 시골(...)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고 성벽은 그냥 울타리 정도로만 보이는 케이스가 상당수였다.
또 이런 도시민들은 자신들이 촌락의 사람들과 구분되는 특권 계층이라는 의식이 무척 강했고, 배타성도 강하고 주변 농민들을 착취하는 경향도 있었다. 빌런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촌락민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을 정도니 도시민들의 촌락 멸시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하다.
4. 창작물에서의 자유도시
- 자유도시(얼음과 불의 노래)
- 자유도시(란스 시리즈)
- 자유도시 타라 - 파이어 엠블렘 트라키아776
- 자유 동맹 -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 독립교역도시 하우스먼 - 성검의 블랙스미스
- 자유도시 노비그라드 - 위쳐 시리즈
- 마리엔부르그 - 워해머 판타지
- 늑대와 향신료 - 뤼빈하이겐, 크멜슨등 비롯한 주인공들이 들린 도시들. 배경이 12세기~14세기 중세 유럽이라 묘사등을 보면 실제 역사속 자유도시의 모습과 거의 같다. 15권에서는 상업이 발달한 자유도시 레노스를 바라보며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만든다."를 모티브로 한 "모든 시민에게 자유 있으라."라는 크래프트 로렌스의 독백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