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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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자는 백윤(伯允), 별명 조일운(趙一雲)·조국광(趙國光)이다.
2. 생애
조남승은 1882년 4월 28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5대조 조득영은 조만영·조인영 형제의 8촌 형이었다. 흥선대원군의 외손자였으며 순종의 고종사촌이다. 아버지 조정구 역시 독립운동가로, 일제가 주는 남작 작위를 거부했으며 순종의 유언을 신한민보에 공개한 바 있는 인물이다. 또 다른 독립운동가 조완구는 당숙이다. 동생 조계진은 이회영의 아들인 이규학과 결혼하였다. 벼슬이 주전원경(主殿院卿)에 이르렀는데,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조병세(趙秉世) 등 49인 연명으로 조약의 부당함과 조약 체결에 조인한 박제순(朴齊純) 등 정부대신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일제로부터 '재북경 요시찰인(在北京 要視察人)'으로 시찰 대상이 되었다. 1921년 3월 1일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북경 박정래(朴貞來)의 집에서 열리자 신채호(申彩浩) 등 16명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독립기념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일본의 노예가 되지 말 것, 상해정부(上海政府) 및 선전부(宣傳部)의 명령을 굳게 지킬 것'을 결의하였다.
1923년 6월 상해에 본부를 둔 조선인과 중국인의 결사단체인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에서 활동했으며, 1924년 7월 24일 북경한교동지회(北京韓僑同志會)를 조직할 때 규칙기초위원,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24년 8월 중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반제국주의 단체와 개인이 참가하는 반제국주의운동대연맹회(反帝國主義運動大聯盟會)가 결성될 때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전권대표로 이세영(李世永)과 참여하였다. 1925년 러일협약이 체결되자 북경한교동지회 실행위원에 선임되어 조약 성립에 대한 선후책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6월 북경에서 영일동맹배척운동에 참여해 보도사(導報社) 동인(同人)으로 '중국 국민의 구국국족운동(救國救族運動)에 당(當)하여 우리 2천만 형제자매에게 고함'이란 인쇄물을 제작 배포하였다.
1926년 10월 16일 안창호(安昌浩)가 제안한 '대독립당(大獨立黨) 결성'을 위해 한국유일독립당 북경촉성회(韓國唯一獨立黨 北京促成會)를 창립할 때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2월 중국에서 귀국하던 중 인천경찰서에 체포되어 같은 해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