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삼국지 가후전)
1. 개요
삼국지 가후전의 등장인물로 조정에서 파견한 기도위.
2. 상세
황건적의 난에서 하후돈과 함께 등장. 같이 나온 하후돈은 비교적 준수한 외모인 반면, 조조는 상당히 뱀처럼 생긴 기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가후전에서는 조조가 아끼는 모사 희지재가 가후와 동문으로, 앞으로 가후와 어떻게 엮일지가 관심사이다. 죠죠러 마사토끼답게 조조가 나오자마자 죠죠드립을 시전했다.
다른 삼국지 창작물에서 묘사된 조조와 비교되는 점은 조조가 환관의 손자라는 것이 조조의 컴플렉스가 아닌 든든한 빽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1] 희지재는 가만히만 있어도 출세는 보장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큰 꿈을 안고 토벌전에 참여했다고 말하며 황보숭 역시 조조에게 할아버지의 권세만 믿고 함부로 행동한다며 조조를 몰아붙인다.
다른 작품의 조조들과의 가장 큰 특징은 '''아직 완성형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무료 연재된 부분을 보면 황보숭을 음모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궁지에 몰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창천항로나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등 웬만한 2000년대 이후 창작물의 조조가 처음부터 냉철하고 당황하지 않는 완벽한 군략가이자 초월적인 영걸로로 묘사되고 있는데, 가후전의 조조는 당황하거나 공포에 질리는 인간적인 모습이 벌써부터 많이 나와 상당히 약해보인다. 그나마도 희지재 덕분에 황보숭에게 죽임 당하는 것을 면한 정도. 가후도 흥미를 느끼고 희지재의 평도 있지만 아직 '나는놈 밑의 뛰는놈'같은 분위기. 가후가 이후 장수를 거쳐 조조의 책사가 되는 만큼 난세의 효웅으로 성장하는 조조의 모습 또한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듯. 그리고 유난히 인간적인 면모를 자주 보이는 조조가 나중에 벌일 서주 대학살에서 조조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사항이 될 것이다.
3. 작중 행적
황보숭의 활약과 장각의 죽음으로 인해 거의 진압된 상태였던 영천의 황건적들을 몰아붙여서 영천 전체가 움직이도록 만든 장본인. 이렇게 황건적을 몰아세운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합류한 자신이 공을 쌓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염충은 '''조조의''' 그릇이 여러모로 '''기묘한''' 점이 많은 인물이라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추측했고, 염충의 제자인 희지재는 그런 그의 발상과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얼굴이 뱀처럼 생겼는데 눈이랑 눈동자가 따로논다.[2] 평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벙한척 연기하지만 난세의 간웅답게 본래 성격은 냉혹하다. 간교한 꾀로 황보숭을 적진에 고립시킨 뒤 자신은 중앙에 있는 본진을 쳐서 공을 세우려 했으나, 황보숭이 이를 돌파하고 본진에 당도하는 바람에 문책당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희지재의 사전 공작 덕에 '조조는 황보숭을 돕는게 곧 조조 자기자신을 돕는 일인데 일부러 안 도울리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결론이 나서 목숨을 건진다.
십상시의 난 에피소드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하진을 제거하려는 십상시들에 의해 황궁 수비대 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십상시들을 버리고 원소와 함께 하진과 손을 잡는다. 하지만 하진 역시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명분이나 챙기는 우유부단한 인간이었으며, 이 때문에 원소에게 "이딴 놈 섬기자고 날 불렀냐"라며 불평을 듣지만 "곧 '''공석'''이 될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자리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원소가 십상시를 처단하자고 제안을 하는데도 하진이 계속 망설이자 결국 그가 하진에게 계책을 내놓았는데, '''새 황제를 맞이하라는 명목으로 각지의 군웅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라는 기존 삼국지의 내용과 전혀 딴판인 파격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십상시는 옳다구나 하면서 자신들과 결탁한 자에게 손을 뻗을것이니 그걸 명분삼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소는 위험 세력을 조정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냐며 반대하지만, "감히 모든 제후들 다 모인 자리에서 누가 반역의 뜻을 드러내겠냐. 그랬다간 다른 제후들이 오히려 그놈을 때려잡아 충심을 드러낼 것이다."라고 반박한다. 이것이 나름대로 그가 고민한 계책인지 아니면 일부러 하진 망하게 하려고 낸 계책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1] 환관이 권력을 쥐고 있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이쪽이 더 아귀에 들어맞기는 한다. 할아버지인 조등이 십상시를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걸물이었다는 것을 잘 묘사한 사례.[2] 눈을 감으면 눈동자만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