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포

 


趙苞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위호(威豪). 조충의 사촌 동생.
감륙 동무성 사람으로 그의 일문에서 환관이 나와 유명해진 것을 부끄러워 해 조충과 교제하지 않았으며, 주군에 출사해 천거되었다가 승진해 광릉의 현령이 되었다. 재난을 마주하면서도 위엄이 있었고 명성은 변경까지 울렸다고 하며, 직무에 임한 지 3년이 되어 정치와 교화가 청렴하고 바르므로 군에서 그 치적을 상표해 요서태수로 승진했다.
부임한 다음 해에 사자를 보내 어머니와 처자를 불러들였지만 모친이 군 경계에 들어오기 위해 유성으로 향할 쯤에 선비족 1만여 기병이 만리장성을 넘어 침입해 약탈을 하면서 조포의 어머니와 처자를 인질로 삼고 군을 공격했으며, 조포는 병력 2만을 이끌고 대치했다가 선비족이 그의 어머니를 조포에게 내보이자 탄식했다.

자식으로서 면목없게도 적은 봉록으로 아침 저녁으로 효도를 다해 살고자 했지만 생각지 못하게 어머니를 재난에 빠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자식이었지만 지금은 군왕의 신하인 처지입니다. 도의를 따진다면 사사로운 은혜를 위해 충절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만번 죽어도 죄를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위호야, 사람에게는 각기 숙명이 있다. 어째서 사사로운 정 때문에 충의를 더럽힐 수 있겠냐! 과거 왕릉의 어미는 한나라 사자와 대면할 때 스스로 검 위에 엎어져 그의 뜻을 굳게 했다. 너도 그와 같이 진력해야 한다.

조포는 즉시 전투를 벌여 눈을 질끈감고 큰북을 두드리면서 군사를 고양시켜 적의 두목을 베어버려 적군을 격파하니 적의 사체가 십리에 걸쳐 늘어섰으며, 그의 어머니와 처는 모두 살해되었다.
조포는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자 표를 올려 귀향해 매장했으며, 영제는 조의를 표하면서 그를 유후(鄃侯)에 봉했으며, 조포는 장례를 마치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봉록을 받아먹는 처지에 난을 피하는 것은 충의가 아니다. 어머니를 죽이고 의를 이루는 것 또한 효행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 천하에 면목이 서겠는가!

결국 조포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풍운을 삼키다에서는 주인공 진현승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구했으며, 진현승이 선비족과의 싸움에 종군했다가 돌아온 후에 뇌물을 요구받아 그만두려 했다. 조포도 요서태수에 물러나려고 하던 차라서 진현승을 효렴으로 추천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