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
1. 개요
유교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2. 역사
왜 이전부터 존재하던 신의 명칭을 기독교의 신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는가 하는 점은 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자신들의 종교를 새로운 이들에게 전파하고자 할 때 그들이 알고 있는 신과 이름만 다를뿐, 같은 신이라고 하는 것은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가나안의 엘 = 바알, 유대교의 엘 = 야훼, 기독교의 야훼 = 예수, 이슬람교의 야훼 = 알라 등 세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론은 모두 마찬가지이며 천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의 내용은 그런 수법을 정당화 하기 위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참고하는 정도로 생각하는게 좋다.
전지전능하고 하늘 위에 있는 존재, 곧 대한민국과 중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의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Deus)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말이다. 본래 중국 고대 신앙에 등장하는 8신[1] 가운데 한 신으로 하늘을 주재, 관장하는 신의 호칭으로 불경에서는 제석천, 대자재천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는 '전지전능한 절대적 인격신'을 일반적으로 뜻하는 말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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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16세기 말 마테오 리치 신부를 비롯한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유교 문화권의 천주가 그리스도교의 Deus와 일치한다고 보고, 천주를 Deus의 공식 번역으로 택한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고대 중국인들이 순박하게 그저 '천'(天)이라는 한 신을 숭배했다고 보았다. '천'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자연을 뜻했으나 인간의 덕을 기뻐하고 악을 미워하며, 인간의 행위 여하에 따라 상벌을 내리기도 하는 인격신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리치 신부는 이처럼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받들어 온 '천'에 인격신의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강조하기 위한 '주'(主)를 합쳐 놀랍고도 기발한 번역을 했다[2] .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받들어 온, 자연성과 인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천'에 인격신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주'를 합친 것이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천이 천지만물을 주재한다는 인격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동시에 자연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주'를 더하여 인격신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천주는 원래 중국 고대 신앙에서 등장하는 8신 가운데 한 신으로 하늘을 주재, 관장하는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 신부가 말하는 천주는 이런 좁은 뜻이 아니라 하늘과 땅은 물론 인간계와 내세를 두루 통치하는 인격적 주재신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번역을 초기 한국 천주교가 받아들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3]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의 복음화를 원했지만, 정작 그는 한국 천주교의 형성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으니 아이러니.[4]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그가 지은 천주실의 2권은 먼저 천주가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다스리며 잘 보살피는 것을 밝혀 말하였다"고 하여 새로운 우주관과 세계관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유몽인은 어우야담(於于野譚) 에서 리치 신부의 책을 책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천주실의라 했는데, 천주는 상제를 말하며, 실(實)이란 공(空)이 아닌 것을 말하였다. 이것은 노자와 부처의 공과 무를 물리친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익은 직접 천주실의의 발문(꼬리말)을 썼다. 그는 천주교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이단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호의를 보이는 등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발문에서 서학의 천주와 유가의 상제를 동일시하며, 서학의 발생과정을 중국의 시경, 서경에서와 다르지 않다고 하여 양자의 사상적, 종교적 유사성을 밝히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한편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천주'에 비견될 수 있을 동양 고대의 신앙 대상을 찾기 위하여 중국의 고전들을 천착해 들어가던 중 '상제'라는 고대 동양의 보편적인 신앙대상과 마주쳤다. '상제'는 동북아시아에서 약 6천 년 전부터 불려 온 하느님의 본래적인 호칭이다. '상제'(上帝)에서 '상'(上)은 '천상의, 지존무상의, 최고의'를, '제'(帝)는 '임금'을 뜻한다. 따라서 상제란 '하늘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뜻하며, 여기에는 인격적 주재성의 의미가 강하게 깃들어 있다.
중국 고대의 갑골문 유적지인 은허(殷墟)의 복사(卜辭) 가운데는 천, 제(帝), 상제, 조(祖) 등이 동시에 보인다. 반면 상제에 대한 문서상의 기록은 서경의 "상제께 유제를 지냈다"는 문장이 처음이다. 동양 고대인들은 천의 실체를 지고무상의 권위를 가진 존재로 보았는데, 상제는 바로 그러한 실체로서 고대의 종교 의식 가운데서 가장 중시되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물론 해와 달, 별, 구름, 바람, 우뢰 등을 주재하는 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제는 이 모든 신들의 상위에 있는 지존의 인격신이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상제가 차지하는 고대 중국 신앙에서의 위치를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천주는 곧 상제"라는 의미심장할 명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곧 『천주실의』 제2편에서 “우리나라(서양)의 천주는 중국 도교 경전에서 칭하는 상제이다(吾天主乃古經所稱上帝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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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제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우주를 통치하는 신은 한 분이지만 언어와 문화권, 그리고 시대에 따라 표현이 다르고 그에 따라 거기에 내포되는 내용도 달라진다. 동양에서는 상제가, 서양에서는 데우스가 최고의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최고의 신이 둘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제가 서양을 배제한 동양만의 최고신이 아니듯이, 데우스 역시도 동양을 배제한 서양만의 최고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주는 곧 상제"라는 명제는 동서양을 아울러 최고신은 한 분임을 내포함으로써 시대와 지역의 제약을 넘어서는 보편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말하자면 마테오 리치 신부의 천주와 상제 명제는 보편신으로서 동서양의 교류사에서 기념비적 선언을 한 셈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중국인의 마음과 결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진 시대(先秦時代)의 고대 중국 종교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는 주희를 중심으로 한 선진유가 사상에 대한 주석에 의하여 성립된 성리학이 고대 중국인들이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소박한 정열과 경건한 신앙을 잃어버리도록 했다고 진단했다. 인격신의 성격을 배제한, 혹은 현격히 약화시킨 성리학은 심지어 무신론적인 색채를 띠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성리학은 실체와 속성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속성에 지나지 않는 리를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성리학은 종교적으로 보나, 철학적으로 보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리학을 과연 무신론으로까지 몰아부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 신부의 진단은 좀 과격한 면이 있는지는 모르나 거시적 시각에서 성리학의 한계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유학은 강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으나, 성리학에 이르러 이 색채가 매우 옅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리치 신부는 이렇게 인격신의 요소를 상실한 중국인들에게 고대의 소박한 사상을 돌려주어 그들이 참된 신앙을 되찾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그는 사서삼경을 두루 공부하고 그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중국 문화의 정수를 찾아내고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상제'라는 고대 동양의 보편신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하여 상제의 속성을 점점 깊이 천착하고 또 거기에 빠져들면서 자신이 모셔 온 그리스도교의 천주는 동양의 상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신과 깨달음에 도달했다.
이러한 마테오 리치 신부의 태도를 라이프니츠는 보유론 혹은 적응주의라 불렀다. 말하자면 중국인들이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을 잃어버렸으며, 리치는 이것을 회복하여 유교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유론이란 단지 적응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학을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회복된 원시 유가의 정신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천주 신앙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리치 신부는 인격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불교를 배척하고, 인격신의 개념을 흐려 놓은 성리학의 비논리성을 철저히 논박하여 원시의 유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놀랍고도 과감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원시 유가에서 존숭해 온 상제야말로 곧 그리스도교의 천주와 동일한 분이라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리치 신부가 증명한 천주는 서양적 논리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중국의 옛 경전을 통해서도 훌륭히 입증되는 객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단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망각한 나머지 상제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중국인들에게 던지는 "어찌 너희 고전에 나오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는 준엄한 질책이기도 하다. 그는 이에 대한 풍부한 고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천지의 존귀함을 알아서 마치 부모와 같이 존경했고, 그래서 천지에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인 하늘과 땅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는 인격적인 존재, 즉 상제를 염두에 둔 제례였다. 그러기에 중용(中庸)에서는 "교사의 예는 상제를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중용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는 예는 상제를 섬기는 것"(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이라고 했고, 시경(詩經)의 주송(周頌)에서는 "쉬지 않고 노력하는 무왕이여, 쉬지 않고 애쓰셔서 그 공로는 비할 데 없이 크도다. 성왕과 강왕의 덕행이 어찌 빛나지 않으리오. 상제가 어여삐 여기셨네."(執競武王 無競維烈 不顯成康 上帝是皇)라고 했으며, 또 말하기를 "오, 밀과 보리여, 잘도 자랐구나. 장차 잘 익어 풍년이 들리니 상제의 은덕이 밝게 빛나도다."(於皇來牟 將受厥明 明昭上帝)라고 했다.
그리고 시경(詩經) 상송(商頌)에서는 "은나라 탕왕의 성덕과 경건함은 더욱 증가하여 하늘에 다다른지 오래어도 그치지 않으니 일심으로 상제를 공경하네"(聖敬日躋 昭假遲遲 上帝是祗)라고 했으며, 대아에서는 "아, 문왕께서는 오직 마음을 조심하고 행동을 삼가며, 밝은 덕으로 상제를 섬기셨네."(維此文王 小心翼益 昭事上帝)라고 하였다. 예기에서는 "5가지 조건을 잘 갖추면 상제께서 그 제사를 흠향하신다."(五者備當 上帝其饗), "천자께서 친히 농사를 지어 자성과 거창으로 상제를 섬긴다"(天子親耕 粢盛秬鬯 以事上帝)라고 하였다. 서경(書經) 탕고(湯誥)에 말하기를 "위대하신 상제께서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올바른 마음을 내려 주셨고 언제나 변치 않을 사람의 본성을 따르게 하셨다"(惟皇上帝 降衷于下民 若有恒性 克綏厥猷 惟后)고 하였으며, 상서(尙書)에서는 "하나라 걸왕이 죄를 지음에 나는 상제가 두려워 감히 그의 죄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夏氏有罪 子畏上帝 不敢不正)고 하였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천주와 상제는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그리스도교의 천주와 한자문화권에서 말하는 상제는 서로 같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리치의 지인인 이지조는 "동양과 서양은 마음도 같고 이치도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은 다만 언어와 문자 뿐이다."라고 하여 리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결론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동서양의 문화를 관통하는 차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선언된 기념비적인 것이다. 그전까지는 각기 자신들의 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에서 실은 각기 지방신을 내세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리치의 명제는 그 신들이 실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최고신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한 분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동서양을 관통하는 보편 의식이 종교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각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선언은 중국 자체에서 보다도 오히려 서양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극심한 논란에 부쳐졌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천(天)에 대해서 세분하여 만일 만물의 최고 주재자로 이해한다면 Deus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보았으며 또한 주자학에서 말하는 태극과 도교의 옥황상제도 Deus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다만 Deus의 공식 번역은 천주라고 하더라도, 천과 상제 역시 중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도 허용을 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내부에서도 번역에 대한 의견은 갈려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선종한 후 1633년, 중국에 들어 온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에서는 "천주는 허용하되, 천과 상제는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마테오 리치 신학의 영향이 강했던 한국 천주교는 본래 천주, 상제, 천을 모두 허용하였으나[5]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칙서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칙서에 의해 '천주' 이외의 '상제', '천' 등의 용어 사용이 금지되고, '천주'만이 유일한 번역어로 허용되었다. Deus의 번역과 '유교식 제사'의 허용에 관한 논쟁을 '중국 의례논쟁' 또는 '전례문제'라고 한다. 유교식 제사에 있어서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금지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번역과 유교식 제사에 관한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의 관점은 다소 꼰대 같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두 수도회가 예수회보다 반세기가량 후대에 중국 선교를 시작하였고 시골 서민층을 중심으로 선교하였기 때문이다. 지식인을 상대로 주로 선교하였던 예수회는 높은 수준의 유교 문화와 FM에 가까운 유교식 제사를 보게 되지만, 서민들을 주로 상대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가 보기에는 "이거 단순한 예의 문제가 아닌데요? 미신이 넘치는데요?"라고 해석된 것이다. 당시 서민들의 제사와 공자 공경에는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Deus의 번역 논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가톨릭보다 다소 늦게 한반도에 상륙했던 개신교도 초기에는 천주를 유일신의 명칭으로 사용하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느님'의 서북 방언에서 유래된 '하나님'이라는 신조어를 천주의 대체어로 채택함으로써, Deus의 한국어 번역이 천주교에서는 '천주',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한국 천주교는 개신교와 성서를 공동번역하면서 Deus를 일컫는 신구교의 통일 용어로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다. 이때부터 한국 천주교는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기존의 '천주'라는 호칭과 병행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6] 이에 적어도 천주교 성경 안에서는 '하느님'이 '천주'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으나, 한국 천주교가 '천주'라는 호칭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며, 기도문과 전례에서는 광범위하게 '천주'가 쓰이고 있다.[7] 평상시에는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을 한 분으로 고백하는 삼위일체론 신앙을 언급할 때는 특별히 천주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전통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 가톨릭 진영에서는 에큐메니컬의 산물인 '하느님'보다는 '천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참고로 '주님' 역시도 본래는 천주님의 줄임말이었다. 다만 '주님'은 이후 Dominus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천주(Deus)든 주님(Dominus)이든 가리키는 대상(성부, 성자, 성령)은 완전히 동일하다.
한편 일본에서는 선교 초창기에 그리스도교 유일신의 이름으로 다이니치(大日, だい-にち)를 채택하였다. 다이니치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일본식 표기이지만, 일본의 종교사에서는 불교를 넘어서는 독특한 위상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일본 중세에 일어난 신불습합(神佛習合)을 통해서, 다이니치는 일본인들에게 신토의 최고신 아마테라스와 동일시되고 있었다. 초기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도와 번역 작업을 했던 일본인 야지로가 다이니치를 하느님의 번역어로 제안했던 것에는, 당시 일본 종교 체계에서 최고신 다이니치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등치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이 ‘다이니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일본인들은 그것을 불교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하였다. 선교사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용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느님 명칭을 다이니치에서 라틴어인 데우스(Deus, デウス)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바꾸게 된다. 일본 가톨릭교회는 1959년 4월 8일 교구장 회의에서 '천주'를 '신(神; 카미)'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후로는 '신'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산 창작물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유일신을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냥 '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이것 때문.
문제는 일본어 번역체의 영향으로 한국산 창작물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유일신을 그냥 신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예: 신께서 원하신다, 신이시여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지만 한국 그리스도교에서는 천주, 하느님, 하나님으로 유일신을 칭하므로 같은 대상을 '신'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류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이라고 적으면 특정 종교적 느낌이 나서 이렇게 하는 경향도 있으나, 애초에 그리스도교 신자를 묘사해놓고 그들의 신앙의 대상을 지칭하는 데에 굳이 '신'이라는 중립적 어휘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특히 용어에 민감한 가톨릭교회에서는 '천주'나 '하느님'이 아닌 '신'을 Deus의 한국어 번역어로 허용한 경우가 없고[8] , '신'이란 어휘는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다”와 같이 이교의 우상신을 포괄하는 일반명사로서의 의미로만 쓰인다는 점, '신'과 유사한 어휘인 '천신(天神)'이나 '성신(聖神)'이 과거 한국 천주교에서 각각 '천사(angelus, 天使)'와 '성령(Spiritus Sanctus, 聖靈)'을 지칭하던 번역어이므로 혼란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 중국 고대의 팔신은 천주(天主), 지주(地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일주(日主), 월주(月主), 병주(兵主), 사시주(四時主)이다. 이 가운데 천주는 공간적으로 하늘을 다스리는 국부적 신이었다.[2] '천주'라는 역어를 맨처음 고안한 것은 리치 신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를 희망했던 당시 어느 중국인 청년이라고 한다. 리치 신부는 그 역어가 여러 모로 마음에 들어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3] 왜 신(神)으로 번역하지 않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신은 God 뿐만 아니라 Ghost, Spirit 등의 의미도 지닌 글자여서 God의 번역어로 하기엔 부적절했다. 과거에 성령(Holy Spirit)을 성신(聖神)이라고 번역한 게 그 예이다. 당시 한자문화권에서 "천주를 받들자"와 "신을 받들자"는 어감에서부터 넘사벽의 차이가 난다. 후자는 마치 귀신, 정령 같은 것을 받드는 듯한 오컬트스러운 뉘앙스가 된다. 다만 현대에 들어서 신(神)이라는 단어에서 God의 의미가 강해지기는 했다.[4] 마테오 리치 신부의 신학은 한국 천주교의 빠른 성장의 원인 중 하나였다. 천주-천-상제라고 하는 매우 적절한 번역은 조선인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고, 덕분에 조선 천주교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절대자는 '서양에서 온 외래 잡신'이 아니라 '탕왕, 무왕, 공자, 맹자가 섬기던 절대자'로 이해되었다. 그렇기에 당시 한국 천주교에서는 "천주교는 유학에 위배되지 않으며, 오히려 유학의 더욱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후대에 유교식 제사가 허용되고 상제와 천이라는 번역이 허용된 것도 감안하면, 마태오 리치의 혜안이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5] 순교자인 성 정하상 바오로는 호교론 저서인 <상제상서>에서 Deus를 천주 및 상제와 동일시했다.[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 110쪽. 그러나 개신교는 일부 교단에서만 공동번역성서에서 채택한 '하느님'을 받아들였을 뿐 전반적으로는 현재까지 '하나님'을 고수하고 있다.[7] 예를 들자면 사도신경에 '전능하신 천주 성부', 성모송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혹은 죽은 자를 위한 연도에서 '천주 성부, 성자, 성령님' 등.[8] 위에서 본 것과 같이 '神'은 Deus의 일본어 번역어로만 허용되었을 뿐, 한국어 번역어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개신교에서 하느님을 뜻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는 '上帝(상제)' 역시 천주교에서는 허용하지 않으며 Deus의 중국어 번역어로는 '天主(천주)'만을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