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1887)
최명수는 1887년 3월 5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영해 장날에 성내리에서 2,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장을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해산을 요구하는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등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총기, 탄약, 서류를 파기하였다.
이후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급보를 접한 영덕경찰서장 등 4명이 현장에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대는 기와장과 돌을 던지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 서장 등이 본서로 돌아가려 하자 군중들은 서장 일행을 포위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칼과 총기를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버리는 등 격렬한 항쟁을 밤늦게까지 계속하였다.
이후 체포된 최명수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기물손괴·공문서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 1920년 5월 31일 대구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최명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