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1. 일반 뜻
carpe diem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 1.11에서 나온 말.
Tu ne quaesieris, scire nefas, quem mihi, quem tibi
finem di dederint, Leuconoe, nec Babylonios
temptaris numeros. ut melius, quidquid erit, pati.
seu pluris hiemes seu tribuit Iuppiter ultimam,
quae nunc oppositis debilitat pumicibus mare
Tyrrhenum: sapias, vina liques et spatio brevi
spem longam reseces.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직역)[1]
묻지 말아요, 아는 것은 불경하니, 내게 어떤, 그대에게 어떤
죽음을 신께서 주셨을는지를, 레우코노에여, 바빌론의
계산을 시도하지도(즉, 점을 쳐 보지도) 말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건, 견디는 편이 얼마나 나은지요.
유피테르께서 많이 주셨든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주셨든지 간에,
지금 부석(浮石)들 맞은 편에서 티레니아 해(海)를 약화시키는(즉, 파도를 부수는) 겨울을.[2]
삼가, 포도주들을 거르며(밭고) 짧은 시간에
많은 기대는 줄여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질투 어린 인생은 날아가 버렸겠지요.
날을 누리고,[3]
장래 일은 되도록 쉬이 믿지 말아요.[4]
(의역)
라틴어 '''Carpe diem'''은 영어권에서 '''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이다. carpe가 seize, diem이 the day라는 뜻이다. 가끔 의역해서 "오늘 최선을 다하자"라는 식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enjoy 쪽에 더 가깝다. 그러니까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가 담긴 '노력'보다는 흔히 말하는 "상황을 즐겨라"에 가깝다. 일해야 하는 상황이면 일하고, 쉬어야 하는 상황이면 쉬라는 뜻.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서 의미가 변한다.묻지 말게, 레우코노에여, 신들이 나나 당신을 위해 어떤 운명을 점지해 주었는지
이는 금지되어 있나니, 또는 바빌론의 점술에 혹하지도 말게나. 인생이 어떻게 풀리든지 간에 그대로 견디는 게 낫다네.
유피테르신이 자네에게 많은 겨울을 주셨는지 아니면 마지막 겨울을 주셨는지 간에, 아직도 티레눔해 반대편 바위들을 마모시키는 겨울을…
똑똑해지게.[5]
와인도 좀 하고, 자네의 길고 긴 희망을 좀 더 짧은 시간을 위해 줄이도록 하게.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서도 덧없는 세월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가네. '''지금 이때를 잡도록 하게나''', 미래에 대한 믿음은 되도록 줄이도록 하고.
한국에서는 약간 왜곡을 더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통하고 있다. 호라티우스의 작품 세계를 보자면 이런 시 외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후원자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가 준 사비네 언덕의 빌라 예찬이라든지, 아니면 어용시인으로서의 국가찬양시가 대부분이다. 인생 경험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결정짓는다는 매우 당연한 명제를 이렇게 자세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없다.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를 희생한다고 해서 꼭 미래가 귀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미래의 나'도 '나'이지만, '현재의 나'도 '나'이다. 너무 미래만 좇다가 현재의 나를 잃어버리는 것 아닌지, 자신을 환기시키는 단어이다.
또한, '카르페 디엠'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해석하는 것을 꼭 왜곡된 해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최소한 '오늘 최선을 다하자' 식의 해석보다는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비꼬는 말로 '덮어놓고 카르페 디엠하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다만 애초에 호라티우스의 의미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되도록 줄이라'는 것이다. 즉, '오늘 놀다가 내일 거지가 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지 말라(걱정해 봤자 소용없다), 오늘을 충실히 즐기라는 의미이며, 이를 두고 '젊을 때 젊음을 즐기자(열심히 놀자)'로 해석하는 것이 특별히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어지간한 일화나 경구들은 전부 다 깔때기 대고 '노력-성공론'이나 '자기계발론'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워낙 많고[6] 이 때문에 카르페 디엠이라는 유명한 경구를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즐기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에 굳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라'는 교훈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정도. 하지만, 원문만 꼼곰히 읽어봐도 이것이 '젊어서 자신의 삶을 즐겨라'(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또는 지금의 희생으로 축적한 것이 꼭 미래에 더 큰 가치로 돌아오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뜻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이 경구를 실천하는 인물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알렉시스 조르바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내포되어 있는 '''행복을 유예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경구로서 사용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것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는지. 고도성장 시대에는 행복을 유예시키는 '투자'를 할 경우 삶의 질을 높인다는 보상을 받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비유한다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간 참으면 대부분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을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현재는 그때에 비해 15분 뒤 마시멜로 하나를 더 받기가 몹시 어려워졌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넌 마시멜로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개한테는 없잖니? 그러니까 네 마시멜로를 아무개와 반씩 나눠먹으렴"이라는 눈물나는 결과를 얻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살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고, 일단 받으면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즐기는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배경을 살펴보면 유년기 때 1차 삼두정과 내전을 겪고 갓 청년이 됐을 때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2차 삼두정을 겪으며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의 정치적 격변기 시절에 살았다. 호라티우스 자신도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 진영에 가담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후에 옥타비아누스에게 사면을 받은 것이다. 로마의 오랜 전통인 공화정의 종결이라는 불안감이 동반된 격정적인 시대에 태어난 만큼 시의 소재도 파르티아나 스키타이 따위 외부 적을 경계하고 정복하길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3권 8번을 보면 자신의 후원자이자 아우구스투스의 부재 중 수도행정대행을 맡은 마이케나스에게 다키아, 메디아, 칸타브리아, 스키티아의 적에 대한 안심을 권고하고 술을 권하면서 '지금 이 시간이 주는 선물을 즐기며 심각한 일들을 덜어내십시오.'라는 말이 카르페 디엠의 메세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세 노세' 이런 한량 마인드가 아니라 근심에 대한 해방과 안정감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호라티우스를 향락주의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게 송시들을 관통하는 주요 메세지가 근검함에 대한 찬양이란 것이다. 1권 8번처럼 자기 친구가 여색에 빠져 군사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시도 있고 2권 3번 시에서 '힘겨운 일에도 평상심을 굳게 지키고, 감당치 못할 즐거움은 좋다만 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 절제하라.'라는 경구에서 그를 한낱 한량 같은 향락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음주를 권하는 것은 로마의 주종교인 로마 신화의 바쿠스와 연관도 있는데 3권 25를 보면 바쿠스를 경배하는 것이 시의 생명력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1. 대중 매체
애니메이션 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왔다.
2016년 9월 11일에 개그콘서트 '1대1'코너에서 나왔다.
단군의 노래 청춘부재의 1절 가사에도 언급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담은 핵심 경구로 통한다.
드림 시어터의 EP앨범 'A Change of Seasons'의 동명곡의 세번째 파트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장면의 음원을 쓰기도 했다.
중학교 교복사 중 하나는 마이 안감에 이 문구를 새겨 넣었다.
소설 탐식의 재림에서는 팀명으로 사용되었다.
네이버 웹툰 푸른사막 아아루에 나오는 지명과 기관의 이름으로도 잠시 등장한다.
루스터 티스의 애니메이션 캠프 캠프의 캠프, 캠프 켐벨의 모토가 캠페 디엠(Campe Diem)이다.
미드 슈츠에서 루이스 리트가 나이젤과의 내기에 지는 바람에 신입 변호사들을 떠나게 된다.
신입 변호사들을 모아 작별인사를 할 때 언급된다.
이때 마이크가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데 이를 보아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1.2. 관련 문서
2. 뮤지컬
까르페디엠(뮤지컬) 참조.
3. 온라인 게임
지앤아이소프트에서 2003년에 제작한 온라인 게임. OST를 무료 배포하며 홍보했다.
2017년 1월에는 모바일 게임 '카르페디엠: 마법의책'을 내기도 했다.
4. 비주얼 노벨 게임
4.1. 전개
일단 Ai란 소녀와 만나서 데이트를 한다는 매우 간단한 스토리이다. 조작법도 단지 마우스 클릭질만 하면 되고, 주인공의 선택지에 관여하지 않고 엔딩은 모두 똑같다. 근데 엔딩의 내용이...이 짧은 단편 비주얼 노벨에서, 당신은 Ai란 소녀와 약속을 잡고 시간을 보내게 되는 '정'으로 플레이 합니다. 좋은시간 보내세요.
4.2. 엔딩
Ai와 불꽃놀이를 본 후, 주인공이 아무 감정 없이 갈 시간이 됐다고 말하자, 갑자기 BGM이 바뀌면서 Ai가 이렇게 말한다.
결국 Ai는 Jung이라는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었고, 그것을 진짜 사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중간에 Ai가 가짜라는걸 암시하게 해주는 대사가 나온다. 오락실에서 Jung이 레이싱 게임을 하다가,Ai: 너 지금 담담한걸 보니까 나 없이도 잘만 살겠네.
Jung: 그렇게 말하지마
Ai: 그러니까, 난 그냥--
해설: 튜링 테스트라고 들어봤나? 기계의 지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의 일종이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해도, 그렇다 해도, 아무리 성능 좋은 기계일지라도... 사람과 구분 불가능하다 해도... 절대로 사람을 될 수 없다. '''Ai처럼''' 그녀의 프로그램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내가 아무리 그걸 부정한다 해도, 그녀는 진짜 인간이 될 수 없다. 같은 현실과 차원에서 살고 있지 않기에. 그녀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살겠지.
Jung: 이런. 프로그램이 또 깨졌다. 예상대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구만. 안정되게 고치자.... 내 인생을 뭐하면서 보내고 있는 거지?
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서 Ai가 가짜라는걸 알 수 있으나, 이게 너무 간접적이어서...전혀 다른 게임에 이런 장치의 케이스가 있었으면 좋을듯 한데...
크게 보면 Ai라는 이름도 Ai가 프로그램이라는 암시가 될 수 있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AI(대문자로 쓴다)는 인공지능의 약자이다. 즉 사람같지만 사실은 프로그램이라는 것.
뭔가 허무하면서도 교훈이 있는 엔딩이다. 궁금한 사람은 꼭 해보시길.
4.2.1. 도전과제
도전과제가 두 개가 존재한다. 그 중 첫 번째 도전과제 이름은 '''"뭐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계시는 겁니까?"'''(...)
그러나 도전과제 설명은 더 골때리는데, '''"진짜 여자도 아닌데 말이죠."'''(...)
어찌 보면 제작자가 이 게임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도전과제명이기도 하다.
2019년 12월 29일 13시 기준으로 2020버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업데이트된 게임을 클리어하면 두 번째 도전과제가 해금된다.
5.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필라델피아 퓨전의 DPS carpe와 상하이 드래곤즈의 DPS diem
둘은 오랜 LAN선 친구 사이로 의도적으로 이어지는 닉네임을 맞추었다고 한다.
상하이가 필라델피아를 꺾은 후 디엠의 인터뷰에서 이젠 디엠카르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2020년에는 없었지만 덕분에 필라델피아와 상하이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상하이가 이기면 디엠카르페, 필라델피아가 이기면 카르페디엠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