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마에 유키 양 실종사건
加茂前ゆきちゃん行方不明事件
1. 개요
1991년 3월 15일, 일본 미에현에서 일어난 어린이 실종 사건.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2. 사라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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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마에 유키(加茂前ゆき)는 미에현 욧카이치시 토미다구에서 부모님 및 두 언니와 함께 살던 8살의 소녀였다. (1982년 5월 9일생으로, 생존해 있다면 현재 42세이다.)
유키의 아버지인 카모마에 요시유키는 판금 공장에서 야근을 하고 아침에 집에 와서 잤다가 저녁 6시에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했고, 어머니 이치코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1991년 3월 15일 오후 2시 경, 평소처럼 유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퇴근한 아버지 요시유키는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아버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키가 소리를 내지 않았던 탓에 요시유키는 딸이 돌아온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쯤, 어머니 이치코가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유키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오후 3시 30분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유키의 작은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유키는 집에 없었고, 테이블에는 온기가 가시지 않은 코코아[1] 가 담긴 컵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오후 4시 경, 아버지 요시유키가 잠에서 깼다. 유키가 집에 없었지만 가족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유키는 평소에도 집에 왔다가 친구 집에 놀러가는 일이 많았기에, 그날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녁 때가 돼서 어머니 이치코와 유키의 큰언니가 돌아왔을 때도 유키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그때서야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오후 8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친척들과 학교의 교사에게도 연락해서 유키를 찾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2.1. 유키는 어디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그날 유키의 행적이 다른 날과는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평소 유키는 집에 왔다가 다시 친구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유키의 친구들을 조사하니 그날따라 유키는 '''친구들이 놀자고 한 것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게다가 평소 유키가 학교에 가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항상 입고 다니던 핑크색 점퍼와,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또 유키의 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테이블에 남겨져 있던 '''코코아가 담긴 컵의 온기가 가시지 않았고, 코코아는 얼마 마시지도 않은 듯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는 점에서 유키는 코코아를 타 마시려다가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유키의 실종이 알려진 뒤 여러 목격담이 전해졌다. 학교 안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학교 근처의 하천가에서 놀고 있었다, 학교 근처의 전철역 토미다 역에서 봤다는 등의 목격담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제보는 ''''토미다역 근처에서 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건의 실체로 추정되는 또 다른 제보로는 유키가 ''''집에서 1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하얀색 승용차의 운전자와 이야기하는 걸 봤다''''는 것이었다.
유키의 가족들은 유키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키의 행방을 알 만한 제보가 들어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몸값을 노린 유괴 사건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경찰은 녹음 장치와 역탐지 장치를 집 전화에 설치했지만 협박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고, 대신 '''기분 나쁘게 아무 말도 않고 끊어버리는 전화만 걸려왔다'''.[2]
3. 가족들에게 온 괴이한 편지
유키가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1994년, 가족들 앞으로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해괴한 괴문서의 편지가 왔다. 편지의 수신자는 카모마에 '''히데유키'''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마도 카모마에 '''요시유키'''로 쓸 걸 잘못 쓴 걸로 보였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편지의 내용이 심각했다.
괴편지의 원문은 일본어 원어로도 이해가 어려운 문서이지만, 한국어로 그나마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괄호 안은 난해한 원문을 풀이하기 쉽게 번역한 것.
이 외설적이고 괴이한 편지의 내용을 두고 일본 웹에서는 설왕설래가 일었지만 대다수가 지적한 공통점은,ミゆキサンにツイテ(み ゆきさん につ いて)
미유키상에 대해
ミユキ カアイソウ カアイソウ(み ゆき 可哀想 可哀想)
미유키 불쌍해 불쌍해
おっカアモカアイソウ お父もカアイソウ(おっ かあもかあいそう お父も可哀想)
엄마도 불쌍해 아버지도 불쌍해
コンナコとヲシタノハ トミダノ股割レ(こんなことをしたのは 富田の股割れ)
이런 일을 한 것은 토미타의 계집[3]
トオモイマス(と思います.)
이라고 생각합니다.
股ワレハ 富田デ生レテ 学こうヲデテ(股割れは 富田で生れ て 学校を出て)
계집은 토미타에서 태어나 학교를 나와
シュンガノオモテノハンタイノ、パーラポウ(春画のおもての反対の、パーラポウ)
춘화의 겉의 반대의,[4]
"파라포우"[5]ニツトめた(に勤めた)
에 근무했다.[6]
イつノ日か世帯ヲ持チ、ナンネンカシテ(いつの日か世帯を持ち、何年かして)
어느새 가정을 가졌고, 몇 년 지나서
裏口ニ立ツヨウニナッタ(裏口に立つようになった)
뒷문에 서게 되었다[7]
.イまハー ケータショーノチカクデ(今はケータショーの近くで)
지금은 겨차소[8]
근처에서四ツアシヲアヤツツテイルよ(四つ足を操っているよ)
상놈들을[9]
다루고 있어.ツギニ(次に)
다음으로
スズカケのケヲ蹴落シテ、荷の向側のトコロ(スズカケのケを蹴落して、荷の向側のところ)
"스즈카케"에서 "케"를 빼서,[10]
짐의 저편에[11]アヤメ一ッパイノ部ヤデ コーヒーヲ飲ミナ(アヤメいっぱいの部屋で コーヒーを飲みな)
아리따운 여자들이 가득한 방[12]
에서 커피를 마시ガラ、ユキチヲニギラセタ、ニギッタノハ(がら、ユキチを握らせた、握ったのは)
면서, 유키치를[13]
쥐어주었다. 잡은 것은アサヤントオもう。(アサヤンと思う。)
아사얀[14]
이라고 생각한다.ヒル間カラ テルホニハイッテ 股を大きく(昼間から テルホに入って 股を大きく)
낮부터 텔호[15]
에 들어가 가랑이를 크게ワッテ 家ノ裏口ヲ忘レテ シガミツイタ。(割って 家の裏口を忘れて しがみついた。)
벌려 집의 뒷문을 잊어버리고 둘은 서로 엉겨붙었다.
モウ股割レハ人ヲコえて、一匹のメス(もう股割れは人を超えて、一匹のメス)
이제 계집은 사람을 넘어서, 한 마리의 암컷이
にナッテイタ。(になっていた。)
되어 있었다.
感激ノアマリアサヤンノイフトオリニ動い(感激のあまりアサヤンの言うとおりに動い)
감격에 그저 아사얀 말대로 움직였
タ。ソレガ大きな事件トハシラズニ、又カム(た。それガ大きな事件とは知らずに、又カム)
다. 그 일이 큰 사건인 줄은 모르고 또 캄
チャッカノハクセツノ冷タサモシラズニ、ケッカハ(チャッカの白雪の冷たさも知らずに、結果は)
차카[16]
의 백설의 차가움도 모른 채 결과적으로ミユキヲハッカンジゴクニオトシタノデアル(ミユキを八寒地獄に落としたのである)
미유키를 얼음지옥[17]
으로 떨어뜨렸던 것이다.モウ春、三回迎エタコトニナル(もう春、三回迎えたことになる)
벌써 봄, 3번째로 맞는 것이 된다[18]
.サカイノ クスリヤの居たトコロデハナイカ(境の薬屋の居たところではないか)
경계의 약국[19]
이 있던 곳은 아닐까 하고トオモウ(と思う)
생각된다.
ダッタン海キョウヲ、テフがコエタ、コンナ
"나비 한 마리가 타타르 해협을 건너갔다."[20]
이런[21]平和希求トハチガウ(平和希求とは違う)
평화희구[22]
와는 다르다.ミユキノハハガカ弱イハネヲバタバタ(ミユキの母がか弱い羽をバタバタ)
미유키의 어머니가 연약한 날개를 파닥파닥
ヒラヒラ サシテ ワガ子ヲサガシテ、広い(ヒラヒラ 指して 我が子を探して、広い)
팔랑팔랑하면서 우리 아이를 찾으며, 드넓은
ダッタンノ海ヲワタッテイルノデアル(韃靼の海を渡っているのである)
타타르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股割れは平気なそぶり(股割れは平気なそぶり)
계집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지만
時ニハ駅のタテカンバンニ眼ヲナガス(時には駅の立看板に眼を流す)
가끔은 역 근처 간판들을 멍하니 응시한
コトモアル、一片の良心ガアル、罪悪ヲ(こともある、一片の良心がある、罪悪を)
적도 있다. 일말의 양심은 있어, 죄책감을
カンズルニヂカイナイ(感ずるに違いな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
ソレヲ忘レタイタメニ股を割ってクレル(それを忘れたい為に股を割ってくれる)
그것을 잊고 싶기에 사타구니를 벌려줄
オスヲ探しツヅケルマイニチ(オスを探し続ける毎日)
수컷을 계속 찾는 매일
股ワレワ ダレカ、ソレハ富田デ生レタ(股割れは 誰か、それは富田で生れた)
계집은 누군가, 그것은 토미타[23]
에서 태어난コトハマチガイナイ(ことは間違いない)
것은 틀림없다.
確証ヲムマデ捜査機官に言フナ(確証をつかむまで捜査機官に言うな)
확증을 잡을 때까지 수사기관에 말하지 말아라
キナガニ、トオマワシニカンサツスルコト(気長に、遠回しに観察すること)
천천히 멀리서 지켜볼 것.
事件ガ大キイノデ、決シテ(事件が大きので、決して)
큰 사건이기 때문에
イソグテバナイトオモウ。(急ぐではないと思う。)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ヤツザキニモシテヤリタイ(八つ裂きにもしてやりたい)
갈가리 찢어버리기라도 해주고 싶은
股割レ。ダ。ミユキガカアイソウ(股割れ。だ。ミユキがかわいそう)
계집. 이다. 미유키가 불쌍해.
我ガ股ヲ割ルトキハ命ガケ(我が股を割る時は命がけ)
가랑이를 갈라버릴 때는 목숨을 걸 것이다.[24]
コレガ人ダ コノトキガ女ノ一番(これが人だ このことが女の一番)
이것이 인간이다. 이때가 여자[25]
의 제일トホトイトキダ(尊い時だ)
고귀한 시간이다.
- 일부러 밑에 뭔가 울퉁불퉁한 것을 깔아서 서툰 글씨체로 썼다.(왼손으로 쓴 것 같은 글자)
- 한자와 가타가나가 메인으로 히라가나는 가끔 사용.
- 연필로 쓴 뒤 다시 볼펜으로 덧씌웠다.
- 의미는 불명이지만 전부는 아니더라도 40% 정도는 의미를 유추해 낼 수 있는 내용.
- 문장이 매우 정확한 데다[26] 정신 나간 사람이 쓴 문장은 아닐 것이라고 한다. 즉, 고유명사의 경우 일부러 오기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간단한 말로 쓰고 있지만, 2번째 장의 "평화희구(平和希求)"라는 단어만은 약간 어려운 말을 사용하고 있다. "평화희구"는 일반적인 대화에서 그리 쓰이지 않는 말로, 제2차 세계 대전에 관련된 정당이나 종교 단체 혹은 실제 전쟁 체험자가 사용할 것 같은 말이다.
- 맞춤법이 매우 정확하지만, 말하다(言う)를 반드시 言フ로 적고 있다. 이 표기는 패전 이전의 맞춤법에 의한 표기이다.[27]
- 2ch에서는, 문장의 뉘앙스나 분위기로 보아, 이 글을 쓴 사람은 노인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쓰지 않는 단어와 문장인 데다, 안자이 후유에의 시를 인용하는 등 옛 사람의 냄새가 나기 때문인 듯하다.
- 이 편지가 특히 이상한 점은, 특정한 숫자가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이의 이름인 '유키'를 '미유키'[28] 로 쓴다거나, 4다리, 8한지옥, 갈가리 찢기,[29] 3회째 등의 말을 반복하며 3, 4, 8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 타타르 해협, 캄챠카 등 러시아와 관련된 지명들을 반복해서 인용한다.
그런데 한 2ch 유저는 이 괴문서가 1989년에 어린 소녀들을 납치·살해했던 미야자키 츠토무가 아사히신문에 보낸 문서와의 유사점을 지적했다.
- 이 괴문서는 피해자의 아버지 앞으로, 미야자키 츠토무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아사히 신문 앞으로 문서를 보냈다.
- 괴문서의 어조는 늙은 여성이 범행을 자백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미야자키 츠토무도 마치 자신이 여성인 것처럼 묘사하여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 괴문서가 피해자의 이름이 유키인데 미유키로 잘못 적었고, 피해자 아버지의 이름도 잘못 적었다. 그런데 미야자키 츠토무도 피해자의 이름을 잘못 적고 있다.
- 둘 다 글씨체가 바르지 않고 비뚤한 글씨체로 써졌다. 이 괴문서의 경우에는 밑에 뭔가 울퉁불퉁한 것을 깔아서 의도적으로 비뚤게 써지게 했다면, 미야자키 츠토무의 경우는 왼손으로 써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 미야자키 츠토무의 경우는 발신인의 이름을 여성으로 적었는데, 이 이름은 자신의 이름의 애너그램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괴문서의 경우도 내용이 해괴하고 통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라는 점에서 뭔가 아나그램이나 암호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집에 또 다른 편지가 오기도 했다. 후쿠오카에서 온 이 편지의 발신인은 자신을 다우징 전문가라고 소개하면서 "유키 양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유키 양의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편지가 오고 나서 3일 뒤, 같은 사람에게서 온 또 다른 편지에는 "유키 양의 영혼을 방해하는 다른 영혼이 있다. 그래서 수사를 도울 수 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괴이한 편지는 오지 않았다.
3.1. 범인에게서 걸려온 전화?
2003년 10월, 가족들에게 괴이한 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남자로 보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체격과 머리 모양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말한 것 중 머리 모양이 문제가 되었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 모양에 대해 "펀치 파마[30] 를 했다" 라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이 펀치 파마의 남자는 사건 당시 경찰에게 접수된 목격담(유키의 집 근처에서 하얀색 승용차의 운전자와 유키가 이야기하는 걸 봤다는 내용) 속 하얀색 승용차 운전자가 하고 있던 머리 모양과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경찰은, '''이 하얀색 승용차 운전자의 인상착의는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수사 관계자나 그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이 남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연일 가능성도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후 다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으며,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