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진보의 도시 필트오버의 보안관 케이틀린은 불굴의 의지와 탁월한 수사력을 자랑한다. 정의감과 준법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똑똑하기까지 하다. 멋들어진 마법공학 소총으로 무장한 끈질긴 사냥꾼 케이틀린은 필트오버의 범죄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케이틀린은 마법공학을 연구하는 유복한 명문가 출신으로 일찍부터 품위 교육을 받았지만 남부의 자연 속에서 뛰어놀기를 더 좋아했다. 도심의 부유층과 어울리는 일에도, 숲 속 진흙탕을 밟으며 사슴을 좇는 일에도 능숙했지만 어릴 적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시 밖 야생지대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빌지워터 연사총만 있으면 그곳에선 상공의 새도, 삼백 미터 밖의 토끼도 거뜬히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틀린의 진정한 강점은 타고난 정의감을 북돋워 준 부모님으로부터 지식을 배우려는 의지와 총명함에 있었다. 케이틀린의 어머니는 마법공학으로 가문이 부를 축적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티없는 영혼까지 물들이는, 필트오버에 만연한 돈의 유혹을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필트오버를 아름다운 도시로만 여긴 케이틀린은 어머니의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다. 케이틀린에게 필트오버는 숲을 다녀올 때마다 새삼 감사하게 되는 질서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 년 후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했다. 여느 때처럼 숲 속에서 한참을 놀다 귀가해 보니 집안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바닥엔 하인들의 주검이 너부러져 있었고, 부모님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침입자가 오지 않도록 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케이틀린은 곧장 부모님을 찾아 나섰다. 도심 속에서 사냥감을 좇는 일은 자연 속에서의 사냥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그래도 침입자를 하나 둘 찾아낼 수 있었다. 침입자들은 이니셜 ‘C’로만 알려진 브로커를 통해 사주를 받았다는 사실 외엔 진짜 범인의 정체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추적 끝에 케이틀린은 숨겨진 마법공학 실험실을 발견했고, 그 곳에서 경쟁 가문의 핍박 아래 일하고 있는 부모님을 찾았다. 케이틀린은 부모님을 구출했고, 제보를 받은 경찰은 납치를 사주한 경쟁 가문의 수장을 체포했다. 케이틀린은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와 일상생활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많은 것이 변한 뒤였다. 부모님을 찾으며 그녀는 필트오버가 수세에 몰린 야수처럼 치명적인 야망과 탐욕이 들끓는 위험한 도시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느꼈다. 필트오버가 내세우는 진보와 과학의 이면도 목격했다. 방황하는 외로운 영혼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부모님을 사랑하긴 했지만 연구자가 되어 뒤를 잇고 싶진 않았다. 점점 커져가는 도시 속에서 미래를 모색한 끝에 케이틀린은 뛰어난 사냥술을 이용해 실종된 사람과 약탈된 재산을 찾아 주는 탐정이 되었다. 스물 한 번째 생일날, 케이틀린은 정교하게 제작된 마법공학 소총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다. 그간 써 본 어떤 다른 소총보다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도록 특수 탄약통을 설치한 최고의 총이었다. 개조도 가능하여 탄환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케이틀린은 사건 조사를 나갈 때마다 이 총을 늘 품에 지녔다. 어릴 적 놀던 숲 속 오솔길만큼이나 필트오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케이틀린은 탐정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며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났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무허가 마법공학과 가짜 화약 개발의 위험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케이틀린은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고 어떤 사건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탐정으로 수년 간 명성을 떨쳤다. 마법공학 무기 도난과 유괴가 결합된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케이틀린은 자신처럼 기묘한 사건을 좋아하는 필트오버의 한 경관과 긴밀히 협조하게 되었다. 사건은 날이 갈수록 단서가 희미해졌지만 케이틀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표물을 좇는 견공처럼 쉬지않고 달렸고, 마침내는 범인을 찾았다. 범인은 화약 무기를 만들다가 미쳐버린 업자였고, 케이틀린과 경관은 불법 화약 무기를 장착한 범인의 부하들을 상대로 격투를 벌인 끝에 아이들을 구해냈다. 사건이 종결되고 축하주를 마시며 경관은 케이틀린에게 보안관 직책을 제안했다. 케이틀린은 처음엔 고사했지만 경찰이 보유한 정보를 이용하면 부모님이 습격 당한 사건에서 유일하게 정체가 가려진 C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케이틀린은 이제 필트오버 보안관으로서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진보의 도시의 질서 유지에 힘쓰고 있다. 특히 기술자의 과욕으로 인한 불법 마법공학을 퇴치하는 데에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운에서 새로 영입한 무모한 악동 바이와 한 팀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안 어울리면서도 잘 맞는 콤비가 탄생했는지, 두 사람의 손에 감옥으로 끌려가는 죄수들 사이에도, 같이 일하는 경관들 사이에서도 온갖 소문과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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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적의 스릴
태양 관문이 닫히고 종이 세 번 울려도 필트오버 도심은 인파가 북적여 케이틀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메인스프링 크레센트에서 그녀는 번화가를 거니는 한밤의 유흥객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드로스미스 거리의 극장과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길은 더욱 혼잡해지고 있었다. 데바키를 한시라도 빨리 따라잡지 못하면 놓칠 것이 뻔했다. “놈이 보이나?” 모한이 뒤따라 오며 소리쳤다. “보이면 벌써 쏴 버렸겠죠!” 케이틀린의 어깨엔 장전된 마법공학 소총이 걸려 있었지만 목표물이 보이지 않았다. 데바키는 놀란 사슴처럼 잽싸게 달아났다. 그는 지난 5주 동안 (알려진 것만) 연구소 세 군데를 털었고, 케이틀린은 다른 두 절도 건도 데바키의 짓일 거라 짐작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케이틀린과 모한은 모리치 가문의 작업소 근처에서 잠복을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데바키가 나타났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청 직원이 가로등을 점등하자 맞은 편 카페의 유리창에 데바키가 비쳐 보였다. 데바키도 그 순간 케이틀린을 보았고 놀란 부둣가의 쥐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갈림길이 나타나 케이틀린은 발을 멈췄다. 우아한 가로등에서 따스한 황색 불빛이 내리쬐며 케이틀린을 쳐다보는 놀란 행인들의 얼굴을 비췄다. 케이틀린의 하늘색 눈동자가 데바키의 독특한 실루엣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밤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양 볼이 벌겋게 상기된 젊은 사내가 케이틀린에게 손을 흔들며 길을 건너 왔다. “도망간 남자를 찾고 있나요?” 사내가 물었다. “커다란 모자 쓴 녀석이죠?” “맞아요.” 케이틀린이 대답했다. “보셨어요? 어디로 갔나요?” 사내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저 쪽으로 내빼던데요.” 사내가 가리킨 쪽을 보니 색색의 유리와 철골 기둥으로 장식된 드로스미스 거리에서 관객이 웅성이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 돈 많은 취객을 노리는 호객꾼과 금세 뒤섞여 버렸다. 땀 범벅이 된 모한이 케이틀린의 옆으로 뛰어 와 허리를 숙이며 양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푸른 제복은 비뚤어져 있었고 모자는 뒤로 벗겨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인파에 섞이려는 속셈이지.” 모한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케이틀린은 데바키의 행로를 제보해 준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값비싼 고급 맞춤옷을 입고 있었지만 소매는 헤지고 팔꿈치는 닳아 빠져 있었다. 유행이 1년이나 지난 외투의 색상과 카라를 보며 케이틀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락세에 있는 졸부라...’ “어서, 케이틀린! 까딱하단 놈을 놓치겠어.” 모한이 붐비는 거리를 보며 말했다. 케이틀린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여 길바닥을 살펴보았다. 바닥에 깔린 자갈은 저녁에 내린 비로 젖어 있었고 행인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 뛰어간 듯 자갈 사이에 깊은 홈이 나 있었다. 하지만 홈의 방향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다. “데바키가 얼마 줬어요?” 한물 간 유행의 사내에게 케이틀린이 물었다. “설마 금 부속품 하나도 못 받은 건 아니죠?” “다섯 개 받았어요, 사실은.” 사내는 인정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며 답하더니 바로 등을 돌려 비열하게 웃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뭐 저런…!” 모한은 소리쳤고, 케이틀린은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귀중한 몇 초가 흘러가긴 했지만 데바키의 행방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상관의 아내가 경관들에게 구워 주는 달콤한 페스트리를 끔찍이 좋아하는 파트너 모한은 케이틀린에 금세 뒤처졌다. 케이틀린은 인적이 드문 골목과 높다란 벽돌 창고 사이의 꼬불꼬불한 길을 단숨에 뛰었다. 인파를 헤집고 번화가를 달리다가 사람들에게 부딪쳐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필트오버를 가르는 대협곡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지기만 했지만 데바키보다는 자신이 지름길을 더 잘 알 터였다. 미로 같은 길을 한참동안 달린 끝에 케이틀린은 들쑥날쑥한 절벽을 따라 굽이치며 이어진 자갈길에 다다랐다. 한밤 중에도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마법공학 컨베이어벨트가 있어 ‘터미널 길’이라 알려진 자갈길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철골 구조의 매표소는 아직 열지 않은 듯 마름모 형태의 철창살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열댓 명의 자운인이 매표소 주변에 둘러 앉아 있었는데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였다. 데바키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케이틀린은 몸을 돌려 수그려 앉아 메다르다 가문의 표식이 새겨진 상자에 총대를 올려 놓았다. 상자도 도난품일 것이 뻔했지만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총의 장전 스위치를 올렸다. 탄약통이 낮게 윙 소리를 내며 발사 준비를 했다. 개머리판을 어깨 쪽으로 힘껏 잡아당기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밤색 개머리판에 한 쪽 볼을 갖다 대고, 한 쪽 눈을 감고, 수정 렌즈를 들여다보며 총을 조준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기다란 모자를 쓴 데바키가 기다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경찰을 따돌렸다고 생각하는지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가위손처럼 날카로운 손톱을 장착한 손엔 모서리가 청동으로 장식된 묵직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멍청한 어린 시절에 자운의 불법 장비 제작소에서 받아 장착했다고 바이가 알려준 그 가위손이었다. 케이틀린은 가위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주황빛 불꽃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기 무섭게 가위가 폭발했다. 데바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자 들고 있던 상자와 머리 위의 모자가 연달아 땅으로 떨어졌다. 고통스러워 하며 고개를 든 데바키는 케이틀린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을 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케이틀린은 이미 그의 수를 훤히 읽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 손가락으로 탄약통의 스위치를 올리고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불꽃이 데바키의 등에 닿자 번쩍이는 거미줄 같은 전자기장이 펼쳐졌다. 데바키는 등을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다가 땅에 쓰러졌다. 케이틀린은 총을 끄고 어깨에 둘러맨 뒤 쓰러진 데바키에게로 다가갔다. 감전의 고통은 줄어들고 있겠지만 일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케이틀린은 허리를 숙여 데바키가 떨어뜨린 상자를 줍고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 어떻게…?” 온몸이 발작하는 가운데 데바키가 말했다. “어떻게 이리로 올 줄 알았냐고?” 케이틀린이 물었다. 데바키가 발작하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벌인 절도건은 처음엔 별 거 없어 보였어. 하지만 큰 계략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비시라의 마법공학총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지.” 케이틀린이 답했다. 케이틀린은 데바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뻣뻣해진 그의 몸에 손을 얹었다. “너도 알겠지만 비시라의 총은 너무 위험해서 법으로 금지돼 있어. 필트오버엔 금지된 마법공학에 감히 손을 댈 사람이 없지. 녹서스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아마 돈도 두둑히 챙겨주겠지? 그런 물건을 필트오버 밖에서 구하려면 자운의 무명 밀매상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오밤중에 자운으로 가려면 이곳이 제일 빠르지. 네가 필트오버 내에서 잠적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확실해졌어. 네 놈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거였지. 이제 나랑 긴 대화를 한 번 해 보자구. 누가 사주했는지 안 불고는 못 베길 거야.” 데바키는 말이 없었고, 케이틀린은 축 쳐진 그의 몸 위로 손을 뻗으며 씨익 웃고 말했다. “모자가 참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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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 설정
만약 발로란의 도시 중 한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고려하겠는가? 이것저것 알아볼 것들이 많겠지만, 아무래도 안전이 최우선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필트오버에 들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도시들보다 현저히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는 필트오버에서의 삶은 당신의 생활 수준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뭐? 당신이 알고 있는 얘기랑 다른 것 같다고?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알 것도 같다. 마법공학 연구를 위해 필트오버로 수입되는 값진 자원들이 과거에는 종종 도적과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곤 했으니까. 많은 이들의 의견처럼 보안관 케이틀린이 아니었다면 이 도시도 벌써 오래전에 조직범죄의 소굴로 전락했을 것이다. 부유한 정치가이자 뛰어난 마법공학 연구자 집안의 딸로 태어난 케이틀린은 그녀 나이 14살 때 처음으로 보안관으로서의 자질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귀갓길에 강도를 만나 곤욕을 치른 그날 저녁, 케이틀린은 아버지의 라이플을 들고 집을 뛰쳐나왔고 본능적인 수사 감각과 뛰어난 추적술을 이용해 강도들을 붙잡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딸의 소명을 위험한 취미쯤으로 취급하며 웬만하면 평범한 삶을 살아달라고 설득했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마법 기계공학분야의 전문가였던 케이틀린의 어머니는 보안관의 길을 선택한 딸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에게 맞춤형 장비들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뛰어난 사건 해결 능력과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 덕분에 케이틀린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필트오버 최고의 명사수였던 그녀는 이내 혼자서 도시의 범죄를 해결하고 다녔는데, 어떤 사건이나 도전 앞에서도 절대 굴복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마시아에 세간의 이목을 끄는 범죄자가 나타났다. 이자는 항상 범죄 현장에 카드 한 장을 남겨놓았는데 거기엔 화려한 서체로 'C'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카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증거를 남기지 않는 이 수수께끼의 범죄자는 곧 케이틀린의 숙적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녀는 도둑고양이처럼 교묘한 이 괴도를 잡기 위해 발로란 전역을 누비고 있다. 케이틀린은 자신의 수사망을 빠져나간 유일한 도둑, 오랜 숙적을 잡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감수할 것이다. 그녀는 실력을 더욱 연마하는 동시에 더욱 더 영향력 있는 보안관이 되기 위해 리그에 참전하였다. '''"5분 드리죠. 자, 어서 도망쳐 보세요." ~ 케이틀린의 저서 '자발적인 체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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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후보:
케이틀린'''
날짜: CLE 20년 12월 31일
'''관찰'''
케이틀린이 대전당에 들어서자, 모자에 달린 렌즈들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끔 윙윙 소리를 내며 찰칵찰칵 뻗어 나와 초점을 맞춰준다. 길다란 라이플을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있는 품이 오랫동안 다뤄와서 손에 익은 티가 난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치들과 매력적인 몸매가 돋보이는 의상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붙든다.
케이틀린은 수사관다운 날카로운 눈매로 대전당에 놓인 물건들의 배치를 확인한다. 그리곤 회고실로 이어지는 대리석 문을 단호한 표정으로 면밀히 살핀다. 이제 필요할 경우 이 곳에서 범죄가 발생했는지 판가름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자, 그녀는 문을 밀고서 안으로 들어선다.
'''회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한 어둠이 살갗에 내려앉는 것이 꼭 잠복 근무를 서고 난 새벽, 몸에 내려앉는 이슬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등 뒤에 깔린 돌멩이들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틀린은 휙 몸을 돌리다 뭔가 딱딱한 데에 팔꿈치를 세게 부딪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셔 남작을 닮은 길쭉한 생물이 섬세하면서도 근사한 그래피티 작품으로 그려져 있는 지저분한 벽돌 벽이었다. 머리 속에서 반사적으로 의혹이 고개를 들자, 벽에서부터 옆으로 난 길다란 골목길을 눈으로 쭉 훑었다. 그리곤 흠칫 놀라며 터져 나오려는 가쁜 숨을 가까스로 꿀꺽 삼켰다. 회복의 길. 여기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발을 들일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하는 곳이었다. 시선을 위로 들자 우뚝 솟은 콘스턴스 타워의 첨탑의 익숙한 불빛이 도시를 비추며, 데마시아 사람들에게 도덕성의 끈을 절대 늦춰선 안된다고 타이르는 듯 했다. 이번엔 정말 잡았다 싶었던 의문의 C가 도망가는 데에 바로 이 탑이 톡톡히 한 몫을 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 이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거울에 붙여놓고서, 그 때 내가 이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늘 생각하는 미련 많은 여인인 양 케이틀린의 머리 속에서 한 시도 떠나본 적이 없는 기억이다. 추격전은 데마시아의 북적이는 명예 광장에 있는 기술자 조합 회관의 로비에서부터 시작됐다. 상급 마법 기계공학 박판 제작을 공부하던 학생 하나가 조합에 가입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모라즈 워싯에게 물어보려고 우연히 회관에 들른 것이 발단이었다. 이 학생은 평범한 사무직원 워싯이 목요일 아침마다 상관들 몰래 소위 ‘선택적 스트레스 치료’라는 걸 받느라고 자리를 비운다는 건 당연히 몰랐다. 케이틀린은 이 ‘선택적 스트레스 치료’라는 표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실은 이게 아내와 아이들이 알면 곤란한 모종의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데마시아가 시민들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에 비춰볼 때 어쩌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리그 경기를 보느라 어디 숨어 잠이나 자고 왔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데마시아가 도덕성의 보루라고 우쭐거리기엔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 학생이 워싯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워싯의 책상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지고 창문은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학생이 워싯의 상관을 찾아 이 사실을 알렸고, 덜컥 걱정이 든 그 상관이 관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케이틀린은 마침 시내에서 C가 남긴 수수께끼의 카드를 조사하는 중이었다. 연쇄 강도 행각의 현장에 남겨둔 거의 비슷하게 생긴 카드 중 네 번째 증거물이었다. 네 장 모두 C라는 단 한 글자만 쓰여 있을 뿐이었고, 이번 건 프렐요드의 얼음 무희 수정 회관에 있던 천상의 수정을 탈취한 자리에 대신 놔둔 카드였다. 케이틀린은 이 C라는 자가 미묘하게 색조가 다른 종이를 사용해서 다음 번엔 발로란의 어느 지역을 노리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C가 쓰는 잉크와 글씨체에 분명 각각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데, 아직 그게 뭔지 풀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데마시아 왕궁에서 밀손의 대검을 훔쳤을 때의 사건으로 미루어보면 이 자가 범행 현장에 다시 나타날 것이 틀림 없었고, 조합 회관 사건이 전해졌을 땐 마침 그 곳의 경찰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직감이 발동한 케이틀린은 경찰관과 함께 움직였고, 현장에 도착했을 땐 로비에 덩치 큰 경비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워싯의 상관은 최소한 워싯이 특별 출입 허가를 가지고 있던 선임 기술자 사무실을 확인해 볼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사무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금고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수년 전 리그 챔피언 뽀삐가 데마시아로 배달했던 보물, 수호자의 투구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 투구는 마력 튜닝을 위해 기술자 조합에 맡겨졌던 것인데, 조합의 멍청한 관리들은 이 작업을 수주한 것조차 비밀리에 부치고 있다고 케이틀린을 거듭 안심시켰었다. 금고에는 케이틀린이 해독할 수 없으리라 비웃는 듯한 카드 한 장이 보란 듯 남겨져 있었다.
보안 팀은 즉시 건물의 출입을 봉쇄했다. 사건 경위에 대한 보안 팀장의 설명을 듣던 케이틀린의눈에 아까부터 이상한 표정으로 자길 뜯어보는 보안 담당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다지 의심을 살만한 행동까지는 아니었지만 5분여 동안이나 그 쪽으로 자꾸 신경이 분산돼서, 케이틀린은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쪽으로 네 걸음을 채 떼기 전에 남자가 계단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케이틀린은 계단 열 개를 단숨에 뛰어올라 남자를 쫓아갔다. 마침내 옥상에 다다랐을 땐 남자가 콘스턴스 타워 꼭대기에 매단 줄을 잡고서 훌쩍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길슨의 견습 회관 옥상까지의 거리를 미리 계산하고 탈출로를 마련해 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남자를 놓쳐버릴 순 없기에 케이틀린은 라이플을 겨눠 들고 남자의 다리를 조준했다. 줄을 타고 날아가는 지금으로선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고, 타이밍 역시 더할 나위 없어서 절대로 놓칠 턱이 없었다.
그리곤 방아쇠를 당겼다.
번쩍하고 섬광이 일면서 침입자가 줄에서 떨어졌다. 총알이 이렇게 빨리 남자를 맞췄을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했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남자를 보면서, 시간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흐르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남자가 건물들 틈으로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한 케이틀린은 황급히 다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바로 그 곳에 지금 다시 서 있는 것이다. 남자가 떨어져 내린 회복의 뒷골목에. 남자가 여기 뒷골목으로 떨어진 걸 본 목격자들도 사방에 깔려 있지만, 정작 골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시신도, 핏자국 하나도, 아니면 남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도. 심지어 그가 이 골목을 벗어나는 걸 본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 날 밤, 억수같이 퍼붓는 비 속에 케이틀린은 몇 시간이나 버티고서 해답을 찾으려 이 곳을 샅샅이 뒤졌었다.
그 기억에 화답이라도 하듯, 비에 흠뻑 젖은 자갈길에서 사각 판 하나가 스르륵 미끄러지며 열렸다.
케이틀린이 놀라서 뒤로 펄쩍 뛰며, 익숙한 동작으로 어깨에 매고 있던 라이플을 바닥에 열린 구멍을 향해 겨눴다. 낄낄대는 저음의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나 참 교묘하지 않아?"
웃던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케이틀린은 잠깐 동안 얼떨떨해 있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천천히 거기서 나와!"
“에이, 그렇겐 못하지.”
목소리는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셋을 세겠다. 잘 보이게 두 손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이 총구가 뿜어내는 불로 그 안을 밝힐 수밖에 없어.”
케이틀린은 이런 일쯤 하도 많이 겪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
“그렇겐 못할 걸. 네가 그럴 배…”
“둘…”
“지금 날 쏘면 내가 그 때 어떻게 빠져나갔던 건지 절대 알 수가…”
“셋.”
이 말과 함께 케이틀린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빈 탄실을 공이가 때리는 소리만 허공에 울릴 뿐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케이틀린?"
목소리가 갑자기 엄숙하게 변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누구…”
케이틀린은 심문 당하는 건 질색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케이틀린?"
목소리가 담고 있는 통제력을 알아채자, 케이틀린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그 해답은 이미 알고 있잖아, 아니라면 날 여기 들여놓지도 않았을 테지.”
이 말을 하고 기다렸지만, 상대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놈은 유일하게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야. 난 더 능력 있는 수사관이 되고 싶어. 놈을 기필코 잡을 거야. 그러기 위해선 리그가 필요하고.”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며, 뒷골목에 나 있던 비밀 문이 탁 닫혔다. 홱 몸을 돌려봤지만, 눈에 들어온 거라곤 학회의 아름답게 장식된 대리석 문 뿐이었다. 등 뒤로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 걸어갈 길이 펼쳐져 있었다.
“내 속마음이 궁금하거든, 다음 번엔 그냥 물어보도록 하세요. 번잡하게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감시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케이틀린이 오만하게 대답하고는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서, 리그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