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쿠리코 언덕에서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image]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제34회
(2011년)'''

'''제35회
(2012년) '''

''' 제36회
(2013년) '''
마루 밑 아리에티

'''코쿠리코 언덕에서'''

늑대아이

<colbgcolor=#c8e3ea><colcolor=#fd0563>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1)
''コクリコ坂から / From Up On Poppy Hill''
'''장르'''
애니메이션, 로맨스, 멜로
'''감독'''
미야자키 고로
'''각본'''
미야자키 하야오, 니와 케이코
'''원작'''
다카하시 치즈루, 사야마 테츠로
'''캐릭터 디자인
총작화감독
레이아웃'''
콘도 카츠야
'''작화감독'''
야마시타 아키히코, 코사카 키타로
이나무라 타케시, 야마가타 아츠시
히로타 슌스케
'''제작'''
호시노 코우지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출연'''
나가사와 마사미, 오카다 준이치
'''음악'''
타케베 사토시
'''주제가'''
테시마 아오이
'''미술'''
타케시게 요지
'''제작사'''
[image]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image] 도호
[image] CJ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image] 2011년 7월 16일
[image] 2011년 9월 29일
[image] 2011년 11월 16일
'''상영 시간'''
91분
'''일본 흥행 수익'''
44억 6,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수'''
197,564명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홈페이지'''
공식 사이트
1. 소개
2. 평가
3. 줄거리
4. 시대 배경
4.1. 향수
4.2. 학생 운동
4.3. 전쟁의 흔적
4.4. 올림픽과 문화
5. 등장인물
6. 한국어판 성우
7. 기타


1. 소개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고 걷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일본에서는 2011년 7월 16일에 개봉되었으며 한국에선 9월 29일 개봉.
감독은 미야자키 고로, 기획과 각본은 미야자키 하야오.
당초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이 나오기 전에 미야자키 고로가 홋타 요시에 원작의 '테이카와 초메이' 감독을 맡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2008년에 지브리가 '지브리가 그린 난세의 모습' 이란 제목으로 테이카와 초메이의 스케치와 스토리보드를 공개하는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테이카와 초메이'''의 애니메이션화는 당장은 힘들다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개봉하기에 앞서 홍보 차원으로 찍은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어떤 호사가는 말하길 그 다큐멘터리에서 비쳐지는 미야자키 부자간의 갈등과 긴장감이 영화 본편보다도 훨~ 씬 스릴 있고 재미있다는(...)말을 전했다.
원작은 사야마 테츠로 스토리, 타카하시 치즈루 작화의 만화로 1980년 나카요시에 연재된 작품이다. 이로써 지브리가 잡지 연재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것은 리본에 연재되었던 귀를 기울이면 이후로 두번째가 된다.[1]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만화의 팬으로서 스튜디오 지브리 기획으로 2010년 7월 신장판이 발간되기도 했다. 신장판은 대원씨아이에서 한국어판으로 발매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신장판의 추천사를 써줬을 정도라고 하니 애정을 짐작할 만하다. 다만 한국에서 애니를 보고 원작 만화를 구매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악평을 쏟아냈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중 상당수가 그렇지만 분위기가 원작과는 꽤 동떨어져 있기 때문.[2] 원작의 경우 카자마가 좀 날라리처럼 나오기도 하고 메르 또한 약간 보수적 언행을 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지금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고루하다.

2. 평가
















일본의 평론가들은 고로의 이전 작품보다는 발전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감독으로써의 재능에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주는 것은 미뤘다. 애당초 1963년을 무대로 하는 작품에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미야자키 고로(1967년생)에게 감독을 맡긴 것부터 무리수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도 개봉 후 일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영화에 관한 평은 괜찮은 듯하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무난하다는 평이다. 이로 인해 미야자키 고로에 대한 평이 약간 좋은 쪽으로 바뀐 듯하다. 평 자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객관적으로 게드전기보다는 높은 평가를 줄 만하다. 난잡하고 불친절하며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드전기에서의 전개는 확실히 보완되었다. 다만 선뜻 수작이라고 하기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게 문제. 그래도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괜찮은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초호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이 좋은 점도, 전달되지 않는 점도 포함해서, 실로 서투른 작품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런 시대에 이 작품을 이 시기에 내놓기에 지브리로서는 무척 좋았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했고, 시사회장을 나서면서 촬영 스태프의 질문에, "모든 파트에서 어그러져있네요. 촬영만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행운스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기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내용을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3.11 대지진 후)에 부끄럽지 않다.", '잘 했다.' 라고 감상을 말했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라고 물어보자 '''미숙한 녀석'''이라고 평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스즈키 토시오는 그림이 미숙하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이제까지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타일과는 다르기 때문에 미숙하다고 말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스즈키 프로듀서는 미야자키 감독 옆에서 같이 봤는데 영화 속에서 3인이 사진을 함께 찍는 장면에서
'
'''미야상이 바보같이 확 울었다'''
'
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싸움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울렸으니까 이겼다고 편을 들어주었다.
홍보에서 내세우는 이야기는 '첫사랑' 이야기라고 하지만 전체 스토리를 보면 첫사랑 얘기는 그렇게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된 테마는 '첫사랑'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이다. 그리고 그 향수하는 과거는 지금의 각박한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과거의 '낭만'이다. 또한 아래 설명될 사카모토 큐의 노래 등을 보면 이 영화의 주제는 '어렵더라도 돌아보면 낭만적이었던 60년대처럼 지금의 괴로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자.' 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런 점에서 지나치게 일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지브리 애니메이션보다 일본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흥행은 꽤 성공적인데 42억 9천만엔 흥행을 기록했다. 평은 게드전기보다 훨씬 좋지만 감독의 전작이자 졸작 게드전기(63억엔)보다 흥행이 크게 밀렸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3. 줄거리


1963년, 요코하마.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코쿠리코 하숙장.
하숙집을 운영하는 16세의 소녀 우미.
매일 아침 바다를 향해 신호 깃발을 게양한다.
이 깃발의 의미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한다'이다.
예인선으로 통학하는 17세의 소년 슌은,
바다위에서 그 깃발을 늘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듬해 도쿄 올림픽을 맞이하게 되어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물건만을 대단하다고 믿었었다.
그 같은 시대에 요코하마의 한 고등학교에서 자그마한 분쟁이 일어났다.
오래되었지만 역사와 추억으로 가득한 문화부 부실이 모여있는 건물, 일명 '카르티에 라탱'.
이것을 부숴야하는가 보존하는가.
그런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우미와 슌은 만나게 된다.
슌은 이 건물을 지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호소하고,
우미는 옛 건물의 좋은 점을 알리기 위해 대청소를 제안한다.
서서히 서로에게 이끌리는 두 사람에게 어떤 시련이 닥쳐온다.
"싫어졌다면, 분명하게 싫어졌다고 말해."
"우린 남매 관계야."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우리는 남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사람은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전쟁과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
부모님들이 어떻게 만났고, 사랑했고, 살아갔는지 알게된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이 이끌어 내는 미래는...[3]
때는 1963년, 장소는 일본 요코하마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하숙집 코쿠리코장에 일어난 일이다.
코쿠리코장의 주인은 한 할머니이지만 실질적 운영자는 그녀의 큰손녀인 16세 소녀 우미이다.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손녀 우미는 요코하마 내 고등학교인 코난 고등학교 2학년인 여고생으로 매일 아침이 되면 먼저 바다를 향해 안전한 항해기원 깃발을 올리며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이후 하숙집 내의 식사를 만들고 하숙생들과 가족들의 도시락을 만드는 등 살림을 열심히 하는 우미. 우미를 포함한 가족들과 하숙생들은 우미가 만든 각자의 도시락을 받아들고 모두 각자의 일상을 보내러 나선다.
우미에게는 좋아하는 선배가 있다. 바로 예인선으로 통학하는 같은 고등학교 3학년 선배인 17세 소년 카자마 슌이다.
슌은 카자마 부부의 양아들로, 매일 예인선으로 통학하며 우미가 올린 안전기원 깃발을 본다.
1년 뒤에 열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전역이 왁자지껄 시끄러운 때에 우미와 슌이 다니는 코난 고등학교에서도 자그마한 분쟁이 일어났다.
바로 옛것을 모두 부술지 아니면 보존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논쟁의 중심은 바로 학교 내 오래된 문화부 부실 카르티에 라탱이다.
우미와 슌은 카르티에 라탱을 지키고자 하는 학생들과 함께 라탱의 좋은 점을 알리고 라탱을 리모델링 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미는 슌과 연애 감정이 싹트지만 다들 우미의 죽은 아버지가 슌의 아버지라고 믿는 상황이라 내색할수 없는 상황이다.
전쟁 후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성장하는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전쟁과 전후 시대 사이에 있던 부모님들의 진실. 과연 우미와 슌의 사랑과 운명은...?

4. 시대 배경



4.1. 향수


시대 배경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60년대 초반으로 일본이 패전한 지 20년 정도밖에 안되었고 6.25도 10년 정도밖에 안된 시점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으로 대략 일본 패전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즉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해방둥이(?) 정도랄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1963년 당시 22세로 주인공들의 연령대보다 약간 더 많았다. 따라서 일본에서 과거의 향수를 가질 만한 관객이라면 지금 대략 60대 후반일 것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운 점이다. 이들이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관람할지는 조금 의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는 지금의 50대 관객에게 어필할 만 하기에 조금 나은 편이다. 또한 감독인 40대인 아들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각본으로 써준 아버지에게 그 의도가 의아한 점도 있다.

4.2. 학생 운동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등학생이지만 전반적인 행동들은 현대의 대학생에 가깝다. 단카이 세대들 배경으로 그린 탓인지 학생들은 입시에 찌들지 않고 순수과학 탐구와 문학과 철학에 탐닉하고 학생들이 투표로 학교 내 동아리 건물의 존폐문제를 결정하고 그걸 위해 수없이 토론회를 갖고 즉석에서 난상토론도 가진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무슨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강당에 모여 각각의 주장에 대한 싸움도 벌이고 우리가 시위할 때 수없이 봐왔던 시위대 결성과 스크럼 짜기도 나오고 고교 학교신문인 주제에 호외도 만들어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듯이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세계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사회 참여 의식이 높던 시절이고[4] 고등학생의 사회적 위치 또한 지금의 대학생보다 높을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홈페이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스스로 # 80년대 그려진 원작의 학원투쟁을 지금이라면 좀 더 향수 어린 시선으로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영화 내용의 중심이 학생운동 자체보다는 구 동아리 건물인 '카르티에 라탱'[5] 의 철거를 중심 소재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6] 학생 자치에 가까운 편. 1960년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오히려 저런 모습이 더 일상적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4.3. 전쟁의 흔적


우미(메르)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참여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잠시 언급된다. 정확히는 일본 민간해운 회사 scajap의 LST(Landing ship tank)[7] 선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인데 일본에 진주해 있는 점령군을 한반도로 수송하는 데에 동원된 일본 상선 회사들의 LST들이 제법 됐다. 원칙상으로는 민간 상선의 참전은 상선관리위원회의 허가하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우미의 아버지가 전사하는 사건의 모델은 1950년, LST들 중 한 척인 센잔마루가 기뢰 때문에 침몰하여 피해자가 발생한 센잔마루 사건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라든가 6.25의 희생자 얘기 등등도 나오면서 이 애니메이션도 혹시 반딧불의 묘처럼 자기들을 전쟁의 피해자로 그리는[8] 게 아닐까 하는 장면이 스쳐가는 정도로 나오긴 한다. 스쳐지나가기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왠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드는 장면일 수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한국 및 미국을 도우는 도중 사상자가 생겼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며[9] 주인공들의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장치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작품상에서 이에 대한 어떠한 평가나 단죄하는 것이 아닌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관객에게 환기시키는 정도로만 나오기도 한다.
오쓰카 에이지에 따르면[10] LST에 대한 언급은 일본에서 민감한 문제라고 한다. 왜냐면 당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고 평화 헌법이 발효되었던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즉, 우경화된 일본 사회에서는 오히려 금기시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꺼내놓고 공론화시키고 판단을 유보한다는 점을 오쓰카 에이지는 높이 사고 있다. 실제로 개봉 즈음 NHK에서 LST 특집 다큐를 만드려 했으나 자민당의 압력으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4.4. 올림픽과 문화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실제로 등장한 것들이 많다. Tokyo 1964라고 쓰인 포스터는 실제 도쿄 올림픽 홍보에 쓰였던 것으로 디자이너는 가메쿠라 유사쿠. 디자인의 영역에서는 수작으로 인정받는다. 의외로 당시에는 일장기를 모독했다고 비난의 여론이 있었다고 한다.
중간에 TV 등에서 등장하는 60년대의 노래는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上を向いてあるこう)' 으로 60년대를 상징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훗날 미국에 'SUKIYAKI ' 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어 동양곡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입성, 3주동안 1위를 했던 곡이다. 가사의 내용은 괴로운 현실을 견디면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위를 보고 걷자는 내용인데 그 가사 내용대로 전후의 일본은 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하였으니... 해당 곡에 대해서는 스키야키 항목에서 참고.

4.5. 스튜디오 지브리의 과거


우미와 슌 일행이 카르티에 라탱의 보존을 읍소하려고 이사장인 토쿠마루가 도쿄에서 경영하는 출판사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출판사의 모델이 지금의 토쿠마 서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사장 토쿠마루는 토쿠마 서점의 창립자 토쿠마 야스요시라는 설.[11] 토쿠마 서점은 실제 지브리의 원류가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지브리가 자기 원류에 대한 회귀로서 삽입한 장면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5. 등장인물


  • 마츠자키 우미(松崎海)(CV: 나가사와 마사미/김현심) : 여주인공. 코난 고교 2학년. 코쿠리코 언덕 위 하숙집의 주인은 할머니이지만 하숙집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착실한 성격의 여고생. 별명은 메르(바다의 프랑스어 발음이 La mer에서 따왔다. 원작에서 명명자는 호쿠토)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12]를 향해 매일 아침 하숙집 앞 깃대에 국제신호기 UW를 계양한다. UW는 '안전항해를 기원한다' 라는 뜻.
  • 카자마 슌(風間俊)(CV: 오카다 준이치)/엄상현) : 남주인공. 코난 고교 3학년. 학교신문 '주간 카르티에 라탕' 의 발행인. [13]
  • 마츠자키 리쿠(松崎陸) (CV: 고바야시 츠바사/김하영) : 원작에서는 중학교 1학년. 공기 캐릭터지만 주인공 남매의 이름이 육해공(순서대로 해공육)라는 점 때문에.
  • 마츠자키 하나(松崎花)(CV: 타케시타 케이코/손정아) : 할머니. 코쿠리코장의 스폰서. 원작과 캐릭터가 정반대. 딸 료코가 대학 일로 바빠 코쿠리코장을 관리한다.
  • 마츠자키 료코(松崎良子)(CV: 후부키 준/최문자) : 어머니. 대학의 조교수로 미국에 가있다. 원작에선 카메라맨. 남편 유이치로와 사별하고 홀로 3남매를 키웠다. 남편의 친구인 히로시의 아들 슌을 친자식처럼 돌봤다.
  • 사와무라 유이치로(澤村雄一郎) (CV: 오카다 준이치/이재범) : 우미의 아버지[14]. 한국전쟁 당시 물자운반선에 탔다가 기뢰를 맞아 전사했다. 슌의 친부와 친구사이로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슌의 친척들을 수소문하지만 그들 역시 죽었단 사실에 안타까워하다 아내에게 슌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 미즈누마 시로(水沼史郎)(CV: 카자마 슌스케[15]) /남도형): 학생회장. 성실하다.
  • 호쿠토 미사키(北斗美樹)(CV: 이시다 유리코/이미나) : 코쿠리코장의 하숙생인 여의사로 레지던트. 원작에서는 키타미 호쿠토(北見北斗)라는 이름의 수의대학생으로 우미의 첫사랑. 물론 원작에선 성별이 남자. 레지던트이다보니 일이 많은 날에는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우미에게 자신은 따로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 히로코지 사치코(CV: 히이라기 루미) : 코쿠리코장 하숙생인 여성 화가. 안경을 쓰고 다니며 살짝 덜렁이 기질이 있다.
  • 오노데라 요시오(小野寺善雄)(CV: 나이토 타카시/임채헌) : 우미와 슌 아버지의 친구, 큰 배[16]의 선장[17]
  • 타치바나 히로시(立花洋) (CV: 카자마 슌스케/심규혁) : 슌의 진짜 친아버지.[18]
  • 카자마 아키오(CV: 오모리 나오/임채헌) : 슌의 현재 아버지. 예인선 선장. 사와무라 유이치로와 같은 선원이었다.[19]

6. 한국어판 성우


국내 개봉시 우리말 더빙 버전은 개봉되지 않았다. ''' 흔히 알고있는 종이케이스 블루레이에 우리말 더빙이 수록 되어 있다. ''' 또한 2020년 4월 1일부터 넷플릭스에서 정식 서비스되고 있다.

7. 기타


코쿠리코(coquelicot)는 프랑스어로 개양귀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한국 배급사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사랑 이야기'''
'
라는 광고 카피를 포스터에 내세웠지만 남녀간의 애정이 부수적으로 포함된 대다수의 지브리 작품들을 배제한다 해도 바다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등이 있어 절대로 첫 번째는 아니다. 그냥 '첫사랑 이야기' 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아마 일본어 '初恋(はつこい)' 의 번역을 '첫사랑'이 아니라 '첫번째 사랑'의 뜻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더빙판 연출은 '''김정규''', 카자마 슌 성우는 엄상현, 마츠자키 우미 성우는 김현심. 그런데 여자 주인공 성우인 김현심이 원판을 따라하는 연기를 선보이고 말았다. 사실 김현심은 가구라 빼고는 연기가 무난한 편인데 여기에서 원판과 똑같은 발연기를 한 것은 지브리 측에서 성우 같지 않은 연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관객은 그 어떤 나라 관객보다도 공감하기 쉬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흥행은 지브리 최신작에서 가장 참혹한 흥행을 기록하고 말았다. 최종 관객은 전국 19만 7258명. 게드전기보다 못한 흥행으로 소리소문 없이 막을 내리고 만 셈이다. 사실 이 작품의 절반쯤은 상세하게 묘사된 1960년대 일본의 생활상으로 일본인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거나 호기심을 부르는 요소가 많았지만 전혀 생활상이 다른 한국인들에게는 먹혀들 부분이 없었다.[20] 결국 한국 관객에게는 향수 부분 없이 첫사랑 이야기만 남는데 한국 관객에게 어필하기에는 그 첫사랑 부분이 너무 빈약했다. 분위기나 주인공들 비주얼이 괜찮게 뽑힌 편이기에 출생의 비밀을 빼고 사랑 이야기로만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팬들이 꽤 있다.
미야자키 고로의 전작 게드전기의 테루의 노래를 불렀던 테시마 아오이가 주제가 '안녕의 여름(さようならの夏)[21]' 을 불렀다. 한국판에서는 정엽이 '이별의 여름' 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불러 화제가 되었다. 남성 보컬 버전인 덕분에 느낌이 좀 다른 편이며 지브리 스튜디오의 OST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안하여 부르는 것이기에 의미가 큰 편이다. 차기작에서 또 기대할 수 있을지도...?

[1] 물론 미야자키가 연재하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이것은 지브리 이전 작품이었다.[2] 심지어 다카하타 이사오는 그냥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해놓은 수준에서 그친 반딧불의 묘 원작을 다 잡아뜯어고쳐서 반전문학 비슷하게 뽑아내놨다.[3] 오피셜 홈페이지 줄거리 가 번역.[4] 옆나라 한국을 보면 4.19 혁명의 시발이 되는 김주열 열사는 당시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생'이었다. 고등학생조차도 아니었다. 참고로 실제로 시위를 주도했다 사망한 12명 중 김용실 열사가 당시 마산고교 1-C반 급장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회 입신의 시기가 점점 느려지게 된 것도 예전 고교생이 요즘 대학생보다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 활동에 열심일 수 있었던 것의 한가지 원인이다.[5] 파리의 대학지구의 이름을 땄다.[6] 원작에는 이 소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7]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량으로 건조한 전차상륙함들 상당수가 종전 후 잉여 물자가 되어 고철로 팔리거나 멀쩡한 상태로 민간 상선 회사들에 팔렸다. 전후 한국과 일본 등 우방국 해군이나 민간 회사들에도 무상 혹은 유상 공여되었다. 작중에서 직접 배를 타지 않는 마을 주민들도 LST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언급할 정도로 LST라는 배가 흔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적절한, 시대상을 반영해준 장치이기도 하다.[8] 다만 반딧불의 묘가 전쟁을 미화하는 극우 미디어물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영화 평에서도 이 점을 주로 비판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까라면 까는 영화지. 이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시대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내서 생긴 오해이다. 항목 참조.[9] 이 말고도 일본 해상보안청에서도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등에서 소해 임무등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10]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 텔링을 말하다, 북바이북, 2015, 90~91쪽[11] 상술한 LST이야기도 우미와 토쿠마루의 대화 도중에 잠깐 언급된다.[12] 우미의 아버지는 이미 한국전쟁당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13] 본명은 타치바나 슌. 현재 카자마 아키오 부부의 아들로서 살아가지만 그 부부와 슌이 알고 있기론 슌의 친부는 사와무라 유이치로인 우미의 아버지였으나, 실제론 그의 친구인 타치바나의 친아들이었고 가족이 모두 죽어 고아원행일 뻔한걸 사와무라가 데리고 와서 키우려 한다. 우미의 아버지 유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슌이 뱃속에 있을 때 유이치로의 친구인 슌의 아버지는 인양선에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고 과부가 된 그의 아내인 슌의 어머니도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슌을 낳자마자 산후 후유증으로 죽었다. 게다가 남은 슌의 친척들조차도 원폭으로 다들 죽어서 고아가 된 슌을 불쌍히 여긴 유이치로가 아내에게 이대로 두면 고아원행이 될 슌을 돌봐달라고 부탁한 것.[14] 슌의 현재 아버지인 카자마 아키오는 사와무라가 슌을 데리고 왔고 우유값도 계속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와무라가 슌의 친부라고 말했다.[15] 배우 출신이지만, 배역으로 애니메이션쪽에 꽤나 알려져 있다.[16] 화물선 정도로 큰 배[17] 우미의 엄마인 마츠자키 료코가 우미의 슌과 관련된 상담을 듣고 다음날 현 슌의 아버지인 카자마 아키오와 만나 모든 것을 얘기해주고 이 분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말한 듯 하다.[18] 우미가 아직 료코의 뱃속 태아시절에 사와무라가 아기 슌을 데리고 와서 하는 말로는 인양선을 탔다가 사고로 죽었고 그의 아내도 슌을 낳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심지어 친적들은 모두 원폭에 당해 모두 죽어서 그대로 냅두면 고아원 행이라 키우려고 했다.[19] 계속 슌의 친부는 사와무라 유이치로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아내인 마츠자키 료코에게 모든 얘기를 듣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언급에 따르면 슌의 친부는 인양선에 일어난 사고로 사망했고 슌의 친모인 그 친구의 아내도 아들 슌을 낳다가 죽었다. 게다가 친척들까지 원폭으로 인해 모두 숨져 친구 유이치로가 아내에게 슌을 맡겼다고 한다. 직후 남편을 잃은 유이치로의 아내 료코가 남편의 친구인 아키오 부부에게 슌을 맡긴 듯하다.[20] 60년대 한국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후세대로서 밥 먹었냐가 인사치레일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당장에 비슷한 시기를 다룬 검정고무신의 기영이네 가족도 굉장히 잘 사는 축에 속한다는 대다수 어른들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60년대를 보낸 한국인의 입장에선 향수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강하게 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20대 중에서도 60년대 초반 일본이 저 정도로 잘살았냐는 감상평이 많은 판국에 실제로 처참했던 당시 한국을 살아봤던 세대들은 오죽할까?[21] 원곡은 1976년 모리야마 료코씨가 부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