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스즈키
[image]
일본의 前 여성 프로레슬러. 아이돌 레슬러로 뿐 아니라 실력파 선수로도 유명했다.
1. 소개
귀엽고 아름다운 외모로 아이돌 프로 레슬러로 인기를 끌자 프로레슬링계에만 머물지 않고 노래, 드라마, 영화, 광고, 버라이어티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토크 쇼나 각종 이벤트에도 서로 섭외하려고 난리가 났을 정도로 절대적인 지명도를 자랑했다.
선수 시절 키 155cm, B86cm, W66cm, H90cm, 체중 55kg. 혈액형은 AB형.
오오모리 유카리를 자신의 목표로 했으며 라이벌은 아직도 현역[1] 으로 활동중인 오자키 마유미. 레슬러임에도 일반 잡지에 자주 언급이 되었는데 기술을 받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던 사진이 많이 사용되어 그 쪽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남성 팬들도 "그 괴로워하는 표정이 왠지 매력적이다. "는 지지를 받아 선수 경력내내 약하다는 인상도 받지만 상대의 기술을 접수하는데에 아주 뛰어나며 부상 내구력도 강했다. 오자키 마유미도 "부상을 당하지 않는 건 타고난 것 같다." 이라고 밝힐 정도로 은퇴까지 큰 부상은 없었다.
프로레슬러일때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것과 패미컴 게임에 몰입해서 『 여자 프로 레슬링 그랑프리 』잡지에서는 게임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었으며 게임 소프트의 신작이 나오자 동생이 기숙사까지 전해 주기도 했다.
은퇴 후도 포함하면 14권의 사진집을 냈고 여자 프로 레슬러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오자키와 레즈비언풍의 사진집도 찍은 적이 있는데 카메라 맨이 "둘이 포옹한번 해 볼까?" 라고 하자 두 사람다 "뭐야, 장난치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싫어했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했으며 일본 다이어트 아카데미 협회 주최의 다이어트 마스터의 자격을 소득 하고 있다
2. 데뷔 전
1969년 10월 22일 사이타마 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당시 전성기였던 뷰티 페어의 팬이 되고 그 때부터 프로레슬러가 되기를 결심했다. 중학교 3학년때는 크래쉬 걸즈의 등장으로 여자 프로레슬링이 붐을 이루고 처음으로 여자 프로레슬링을 친구들과 직접 관전한 후 프로 레슬러가 되기를 결의하고 주위에도 프로레슬러가 될거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진심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고등 학교 입시 직전 1985년 후지 TV의 스튜디오에서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이하 전녀)의 오디션을 받았는데. 응모 조건이 키 160cm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155cm) 이력서에는 키, 체중 모두 가짜로 쓰고 체격도 크게 보이기 위해서 어깨에 타월을 걸친 사진을 붙였다. 1차 심사는 앞뒤로 구르기와 평균대에 오르는 간단한 것이었는데 탈락하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다음날 학교를 쉬고 분한 나머지 전녀의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걸거나 장난 전화를 한 것을 나중에 고백했다.
그해 4월 가와구치 여자 고등 학교에 입학하여 중학교 때부터 계속 다니던 핸드볼부에 들어갔지만 여름 방학 합숙 후 고문 선생님과 싸우고 탈퇴. 프로레슬러가 될 수 있도록 근처 유도장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프로레슬러가 된 이후 유도는 전혀 프로레슬링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10월달에는 같은 학교에 여자 프로레슬러를 지망하는 사람이 있어 함께 다시 전녀에 응모하는데 이번에는 서류 심사에서 탈락한다.
1986년 3월,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이 새롭게 창단하는 것을 친구로부터 듣고 오디션을 받아 합격. 부모님은 프로레슬러를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하라고 간청했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입문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중퇴에 반대하는 선생님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지 못해서 처음에는 방과 후에만 연습장에 다니다가 그 중에 혼자만 같은 가와구치에서 다니던 연습생이 있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그 사람이 오자키 마유미. 동기로써는 에덴 마부치, 이글 사와이,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등이 있다. 한 학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결국 학교를 중퇴한 후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오자키와 만나 기숙사에 가는데 둘 다 전철 안에서 남들이 보는데도 아랑곳 않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3.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 시절
1986년 4대 천왕으로 불린 재키 사토, 낸시 쿠미, 카자마 루미, 칸도리 시노부 이외엔 전원 신인 선수뿐인 상황에서 재팬 여자 프로 레슬링이 출범한다. 여기에서 큐티는 야마모토 코테츠, 그란 하마다의 가르침을 받았다. FMW가 출범하기전에 오니타 아츠시의 지도도 받았지만 선수들이 오니타를 따르지 않았고 큐티 스즈키도 오랜 후의 인터뷰에서 분명히 "너무 싫었습니다!" 라고 밝혔다.
링 네임은 애플 스즈키나 키위 스즈키를 할까도 했었지만 큐티라는 링 네임으로 결정. 하지만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1986년 8월 17일,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이 고라쿠엔 홀에서 출범하지만 큐티는 데뷔하지 못하고 장내 정리 담당을 한다.
연습도 고되고 기가 센 레슬러들의 인간 관계에 못 해 딱 한번 어머니에게 "이제 그만두고 싶다."라고 통화를 한 적이 있다.
1986년 9월 19일 도쿠시마 시립 체육관에서 대 플럼 마리코전에서 데뷔하지만 패배.
단체에 관객이 많지 않고 반년 정도 월급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플럼 마리코와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방에 가면 관객 수보다 선수의 수가 많은 적도 있을 정도였고 매점에 서서 물건을 팔지 않는다고 밥값도 받지 못하는 상황도 경험한다. 플럼 마리코와 파이팅 돌스라는 태그 팀을 결성하지만 딱히 성적도 남기지 못해 소리 소문없이 소멸.
오자키 마유미와 항쟁이 점차 가열되고 악역 오자키에게 당하는 큐티의 경기가 눈길을 끌어 스포츠면은 물론 연예 매체에도 노출되게 되고 메인이벤트보다 크게 다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는 라이벌 취급을 받던 두 사람이지만 오자키의 말에 따르면 큐티는 약하기 때문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재팬 여자는 대형 연예 사무소와 제휴했으며 전국적으로 인기있는 선수를 기르지 못하면 단체의 미래도 없는 만큼 처음엔 카자마 루미와 에덴 마부치를 연예계에 진출시키려 했으나 에덴이 일찌감치 은퇴해 버렸으니 큐티가 연예계로 데뷔하게 됐다.
1989년 『 주간 영 점프(7월 20일자)』의 표지를 단독으로 장식하며 가수로 데뷔, 링 위에서 노래를 선 보였다. 라디오에 고정프로그램이 생기고 사진집 출간, 드라마 출연에 이어 이미지 비디오도 히트해 인기가 한꺼번에 폭발하지만 본인은 연습할 시간이 줄어 몸의 움직임이 나빠지는것에다가 체육관에 가면 주위로부터 고립된 것 같은 위화감을 느껴 연예 활동이 싫었다고 한다. 또한 아이돌 레슬러로 불리는 것도 고통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노동부의 『 안심 week』라는 유급 휴가를 권장하는 포스터에도 기용되지만 큐티 자신은 "난 365일 중에 364일은 일했다. 수면 시간도 3~4시간 정도. 경기가 없을때는 연예계 일을 해야했다. 순회 공연같은 것도."라며 씁쓸해 했다고 한다. "유명해질수록 주위에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경기장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와서 경기가 끝나면 바로 다음 연예활동을 해야했다."고 했으며 그 와중에 경기에서는 높은 인기에 질투하는 상대의 잔인한 공격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또 『 주간 징 』에서는 잡지가 팔린다는 이유로 매주 기사화되고 있었지만 카자마 루미는 왜 큐티만 나오는 거냐고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은 쉬는데 자신은 쉬지 못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고 한다.
1989년 1월 5일, 고라쿠엔 홀에서 배틀 로얄에서 우승, 100만엔을 획득.
1990년 재팬 여자 프로 레슬링 MVP를 수상한다.
『 주간 현대 1990년 2월 3일자)』 표지모델.
1990년 12월 26일 하마마츠 아레나의 신일본 프로레슬링 경기 TV중계의 게스트 해설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1991년 10월 10일 고라쿠엔 홀에서 더 스콜피온과 마스카라 콘트라 카베지에라(한쪽은 마스크, 한쪽은 머리카락을 건 경기 형식)을 실시한다. 이는 8월 30일 타이틀이 걸린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스스로 머리카락을 건 재대결을 제안한 것으로 회장은 인기 선수가 머리를 자르는 것을 보러온 관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장내에 미용사가 대기하고 있다는 방송도 흘렀지만 결국은 승리해 선수 경력 5년 만에 싱글레슬러로서는 처음으로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큐티의 인기로도 단체의 경영 상황은 개선되지 않아 1992년 1월 26일 재팬 여자는 마지막 경기를 갖고 해산. 자신은 일단 프로 레슬링을 그만두기로하고 또 연예인이 될 생각도 없었는데 사무소에 소속 선수 전원이 집합했을 때 카자마 루미가 창설할 LLPW 로 가는 선수와 잔류하는 선수의 두 파로 나뉘었다가 오자키와 함께 JWP여자 프로 레슬링 출범에 참여한다. 후에 카자마 루미에게 영입되지 않은 것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4. JWP 시절
1992년 4월 3일 JWP 여자 프로레슬링이 소속 선수가 8명만으로 출범. 선수 수가 적어서 하루에 두 시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라쿠엔 홀에서 벌어진 첫 흥행에서 숙적이었던 오자키 마유미와 신인 시절 이후 4년 9개월 만에 팀을 이뤄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후쿠오카 히카리 조에게 승리한다. 새 단체에서 일하게 되자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여 "지금까지는 자기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이 단체는 제가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 말했다.
1993년에는 여자 프로레슬링계에 대항전 붐이 일어났는데 큐티는 처음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노우에 타카코와 경기에 경쟁심을 불태우게 되어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아이돌 레슬러 대결로 벌어졌다. 전녀와의 경기에서는 "같은 프로 레슬링이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법이 전혀 다르다." 라는 위화감을 오히려 즐겼다고 한다. 11월 전 크래쉬 걸즈의 나가요 치구사 복귀전에서 태그 파트너를 맡아 다음 1994년 3월 13일에는 싱글에서 첫 경기를 치르지만 48초만에 패배. 4월 10일, 고라쿠엔 홀에서는 레지·베넷과 팀을 결성 이후 종종 두 사람은 팀을 짠다.
1995년 6월 3~5일 한국에도 원정을 와서 부산,광주에서 경기를 했다.
이 시기 "나의 신인 지도는 상당히 힙듭니다. 친절하게 알려주면 결국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여 무서운 코치 역할도 담당하게된다. 이 때부터 자꾸 인터뷰에서 "데빌 마사미와 간사이 에 싱글로 이기고 싶다" 고 두 사람 을 의식한 발언을하게 된다. 1995 년 6월 16일 양국 국기관에서 벌어진 볼쇼이 키드와의 경기에서 생애 한 번뿐인 마스크 착용 경기를 치른다. 순백의 타이거 마스크 와 비슷한 디자인. 12월 24일에는 고라쿠엔 홀에서 데뷔 10주년 기념 경기를 치른다.
점점 은퇴를 생각하기 시작하던 1997년 8월 동료 플럼 마리코가 경기중의 사고로 숨지는 일이 벌어지자 좀 더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은퇴를 미룬다. 사고 후 "그녀가 하다가 남긴 몫까지 프로 레슬링을 해 나가겠습니다. 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플럼 마리코에게 혼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1998년 10월 15일 은퇴를 공식 표명, 12월 27일 29세로 고라쿠엔 홀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은퇴 경기는 간사이와 싱글 매치 예정이었지만 간사이가 부상으로 결장하여 8인 태그에서 승리하고 링 위에서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은 후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은퇴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는데 "내가 할 일을 다 했고 이제 후배에게 가르칠 것도 없다." 는 막연한 이유였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오자키 마유미와 전적은 10승 1무 25패. 은퇴 후에도 연예계 일은 계속했다.
5. 은퇴후
2005년 결혼 후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오자키 마유미가 대표로 있는 OZ아카데미에 자주 게스트로 불린다.
현역 시절의 오른팔로 휴가 아즈미가 있으며 2009년 휴가 아즈미의 은퇴식에도 참석했다.
2012년 발매된 『 주간 프로레스(4월 4일자)』에서 은퇴후 10년 이상 된 여자 프로 레슬러로서는 이례적인 24쪽 분량의 컬러 특집기사가 났다.
6. 주요 기술
큐티 스페셜 - 변형 블록 버스터 홀드. 상대를 잡는 법이 블록 버스터와 다르다. 달려오는 상대에게 카운터로도 사용된다. JWP 후배인 나카지마 아리사가 피니시 기술로 이어받았다.
다이빙 풋 스톰프 - 코너 포스트에 올라가 다리로 상대의 복부를 밟아버리는 단순 명쾌한 기술. 태그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자 굳히기 - 안토니오 이노키의 특기 기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술. 기술이 걸렸을 때 자신의 포즈가 맘에 든다."고 했다.
7. 기타
인기에 힘입어 큐티 스즈키의 링사이드 엔젤 이라는 게임에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히 출연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image]
또한 여자 프로레슬링 게임 레슬엔젤스의 2편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로 큐티 카나이라는 아이돌 레슬러가 있는데 큐티 스즈키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image]
은퇴후 2004년 여자프로레슬링 영화인 와일드 매치 [2] 에도 상당한 강자 역할로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