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드레드/배경

 


1. 기본 배경
2. 장문 배경
3. 피할 수 없는 죽음
4. 좋은 죽음[1]


1. 기본 배경


다시 말해봐, 양아, 뭐가 우리 거라고?"
"전부, 전부 다야, 늑대야."

둘로 분리되어 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 킨드레드는 죽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존재다. 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화살로 빠른 해방을 선사한다. 늑대는 막다른 길까지 달아나는 자들을 가차 없이 물어뜯어 처참한 죽음을 선고한다. 룬테라 여러 지방마다 킨드레드를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이라면 누구나 둘 중 한 형태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 장문 배경


킨드레드는 따로지만 언제나 함께인 죽음의 양면을 지닌 존재다. 운명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양의 화살로 빠른 죽음을 선사하고, 운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자에게는 늑대가 달려드는 잔혹한 최후를 안겨준다. 룬테라에서는 지역마다 킨드레드의 본성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지만, 필멸의 존재라면 결국 진정한 죽음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은 같았다.
킨드레드는 공허를 하얀빛으로 포용하는 존재이자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이를 악문 존재이기도 했다. 목동이자 도살자, 시인이자 야수. 킨드레드는 하나이면서 둘이었다. 삶의 마지막에 이른 누군가의 목에서 맥박 소리가 뿔피리보다 더 요란하게 울릴 때 그들의 사냥은 시작된다. 양의 은빛 활시위가 당겨지는 것을 보며 고요히 죽음을 맞이한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화살이 단번에 목숨을 앗아갈 테지만, 양의 화살을 거부한다면 늑대에게 추격당해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 한다.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래로, 킨드레드는 발로란 어디에나 존재했다. 데마시아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운명의 뜻에 따라 양의 화살을 받아들이지만 녹서스의 어두운 뒷골목에서는 늑대가 도망자를 쫓는 일이 더 많았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프렐요드 산기슭의 어느 전사들은 전투에 임하기 전 늑대에게 입을 맞췄다. 늑대가 적을 추격해 물어뜯어 주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빌지워터에서는 매년 해로윙 다음날 모두가 모여 살아남은 것을 자축하고 양과 늑대에게 진정한 죽음을 선사받은 자들을 기렸다.
킨드레드를 거부하는 것은 곧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킨드레드를 피해 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이들에게는 남은 생을 악몽 속에서 보내는 가혹한 운명이 뒤따랐다. 그림자 군도에서 언데드의 육신에 갇힌 자들을 킨드레드는 무던히 기다리고 있다. 양의 화살로든 늑대의 송곳니로든, 결국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영겁의 사냥꾼 킨드레드의 존재를 형상화한 최초의 물건은 한 쌍의 고대 가면이다. 이름 모를 이들이 조각한 그 가면이 걸려 있던 묘지의 주인은 잊힌 지 오래이나, 양과 늑대는 오늘날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킨드레드로 남을 것이다.

3. 피할 수 없는 죽음


참혹한 전쟁터가 둘의 눈에는 축제처럼 비쳤다. 삶은 얼마나 달콤한가. 단번에 끝장을 내버릴 삶도, 추격해서 물어뜯어 버릴 삶도 너무나 많았다. 늑대는 푹신하게 덮인 눈밭 위를 이리저리 오갔다. 양은 날카로운 칼날과 뾰족한 창 위로 춤추듯 뛰어다녔다. 하지만 새빨간 살육의 흔적도 양의 새하얀 털에 얼룩 하나 남기지 못했다.
"용기와 고통이 동시에 느껴지네, 늑대. 많은 이들이 기꺼이 삶의 마지막을 마주할 거야." 양이 자세를 잡고 빠른 죽음의 활시위를 튕겼다.
그러자 무거운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병사 하나가 쓰러졌다. 방패가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병사의 가슴에는 신비로운 빛으로 반짝이는 하얀 화살이 꽂혀 있었다.
"용기 있는 놈들은 짜증 나."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뒤쫓던 거대한 늑대가 투덜댔다. "배고파. 사냥하고 싶어."
"조금만 참아." 양이 늑대의 북슬북슬한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늑대가 바짝 긴장하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공포의 냄새가 나는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녹아 내린 눈과 진흙으로 엉망이 된 전장 저 멀리 소년 하나가 서있었다. 한 손에 검을 쥐긴 했지만, 전투에 나서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다. 아마 어느 기사의 시중을 들러 따라온 종자이리라. 소년은 킨드레드가 전장의 모든 이에게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았다.
"난 살이 연한 게 좋더라. 쟤 우리가 보이는 거지, 양아?"
"응. 저 아이는 이제 선택해야만 해. 네 먹잇감이 되든가, 나를 받아들이든가."
전투의 불길이 소년을 향하기 시작했다. 용맹한 자와 절박한 자가 한데 뒤섞여 몰려왔고, 소년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생애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새벽이 되리라. 그 순간 소년은 결정을 내렸다. 그냥 포기하지는 않기로. 마지막까지 도망치기로.
기쁨에 겨운 늑대는 새끼 늑대라도 된 듯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래, 늑대야." 양의 목소리가 마치 진주 구슬을 매단 종소리처럼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사냥을 시작해."
늑대는 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올라 소년을 향해 내달렸다. 계곡 전체에 늑대 울음소리가 우레처럼 울렸다. 어두운 그림자 같은 형체가 방금 쓰러진 시신과 산산조각이 난 채 나뒹구는 무기를 재빠르게 지나쳤다.
소년은 당장 돌아서서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뛰는 소년의 시야에 시꺼먼 고목들이 흐릿하게 휙휙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쉬지 않고 뛰었다. 시리디 시린 공기에 허파가 찢어질 듯 타 들어 갔다. 추격자를 확인하려 한 번 더 돌아봤지만, 시야에 들어온 건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나무들뿐이었다. 시커먼 그림자가 쇠사슬처럼 몸을 칭칭 휘감아오자, 소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달아날 곳은 없다는 것을. 그러자 갑자기 사방에 검은 늑대의 형상이 나타났다. 사냥이 끝난 것이었다. 늑대는 소년의 목에 날카로운 이빨을 꽂아 넣으며 삶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늑대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만끽했다.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이 평온하게 웃었다. 그러자 늑대가 돌아서서 으르렁대며 물었다. "이 소리가 듣기 좋나, 양?"
"너한텐 그렇지." 양이 대답했다.
"또 하고 싶은데." 늑대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을 핥아 올리며 말했다. "또 사냥하고 싶어, 양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거야." 양이 속삭였다. "우리 킨드레드만 남는 그날까지."
"그땐 너도 내게서 달아날 거야?"
양이 다시 전쟁터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네게서 달아나지 않아. 절대로."

4. 좋은 죽음[2]


매가는 열네 번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또다시 상한 사과를 물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썩은 사과를 문 매가의 낯빛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그녀는 죽음의 춤사위를 시작하며 모든 관객에게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가? 너무 늦어버렸구나! 이제야 겨우 삶의 무수한 진풍경을 보기 시작했건만!”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반짝이는 가루가 날리는 가운데 킨드레드가 무대 위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킨드레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이 가면 두 개를 쓰고 나와 연기했다. 하얀 양의 탈 쪽을 매가에게 보이며 킨드레드로 분장한 배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들어라! 내 날카로운 화살을 부르는 소리인가? 꼬마야 이리 온. 심장의 온기가 망각의 차가운 품으로 사라지게 두려무나.”
열세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매가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연기도 전과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매가의 비명에 묻혀 버렸다. 이를 신호로 양은 바로 뒤돌아 늑대 가면을 드러냈다.
늑대가 으르렁댔다.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저는 불쌍하고 어린 처녀일 뿐이에요. 제발, 당신의 네 귀에 제 간절한 외침이 닿도록 해 주세요.”
관객은 오펠럼 메커니컬 극단의 연극에 완전히 사로잡힌 듯했다. 이웃 나라들로부터 재앙과 전쟁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사람들은 죽음이 나오는 비극에 열광했다.
양과 늑대를 연기하는 덴지가 어린 처녀로 분한 매가 위에 올라타 나무 이빨을 어색하게 드러냈다. 매가가 목을 드러냈다. 늑대가 물려는 찰나, 매가가 블라우스 옷깃에 꿰매놓은 장치를 작동시켰다. 빨간 천으로 만든 리본이 피처럼 흐르는 가운데 관객들은 환호와 함성을 보냈다.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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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커니컬 극단이 마차를 이끌고 니들브룩을 향하여 출발했을 때, 밤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다. 별 대신 구름 떼가 끝없이 이어졌다.
니들브룩에는 언제나 열성적인 관객이 많다고 극단장이자 유일한 극작가인 일루시안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그는 파르가 지역 주민들한테서 훔쳐온 술과 자화자찬에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렸다.
밤이 깊어갔다. 단원들은 말다툼을 시작했다. 트리아와 덴지는 줄거리가 시시하다며 일루시안에게 혹평을 늘어놓았다. 비극이 처녀를 덮치고, 죽음이 처녀를 찾아오고, 죽음이 처녀를 데려가는 구조가 너무 뻔하다는 것이었다. 일루시안은 복잡한 줄거리는 좋은 죽음 장면의 힘을 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단원 중에서도 가장 어린 매가는 트리아와 덴지의 말에 동의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이 유랑극단의 마차에 몸을 싣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하게 살고 있었으리라. 메커니컬 극단은 최근 여러 배우를 잃었다. 예술의 전권을 고집했던 일루시안 때문이었다. 그의 고압적인 태도와 변변찮은 능력 때문에 신인들의 씨가 말라 버렸다. 오펠럼 메커니컬 극단원들은 앞으로의 모든 연극에서 죽는 역할을 도맡아 할 배우로 매가를 기용하는 데 동의했다. 매가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덴지와 트리아의 말을 곱씹던 일루시안이 마차꾼 파르에게 손짓을 하더니 그만 멈추고 야영을 하자고 했다. 술에 취한 위대한 작가 일루시안은 의기양양하게 마차 옆에 자신의 이부자리를 펼쳤다. 그러더니 나머지 이부자리를 근처 무성히 자란 풀밭에 던지고는 내뱉었다.
“배은망덕한 연기자들은 거친 들판에서 자도록 해. 그곳에서 예의범절을 좀 찾으면 좋겠군.”
나머지 단원들이 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덴지와 트리아는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뭐로 지을까, 서로의 귀에 속삭이다 꼭 껴안은 채 잠들었다. 그들은 언젠가 극단이 잔델이라는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에 멈추면 유랑을 멈추고 정착해 아이를 키우겠다는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매가는 불꽃이 이는 불 앞으로 더 다가갔다. 탁탁 튀는 불꽃의 소리로 성가신 다른 단원들의 애정행각을 묻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매가는 계속 뒤척이며 자신의 목에서 피가 흘렀을 때 관객들이 짓던 표정을 떠올렸다. 예쁘장한 처녀가 순수함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일루시안이 짜낼 수 있는 유일한 극적 장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소름 끼치는 장면을 갈망했다.
매가는 한참을 뒤척이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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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가가 도달한 곳은 비석 몇 개가 세워진 나지막한 풀 무덤이었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는 읽을 수 없었으나 낯익은 그림을 손가락으로 식별해냈다. 킨드레드의 쌍둥이 탈이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땅, 아주 오래된 묘지였다.
뒷목에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매가는 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즉시 알아챘다. 밤마다 무대에서 만나는 존재이니만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여운 덴지의 조잡한 탈은 이렇게 매가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무덤의 아치길 위에 웅크리고 앉아 매가를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양이었다. 양의 옆에는 그녀의 충직한 동반자 늑대가 있었다.
“심장 소리가 들려!” 늑대가 검은 눈을 기쁨으로 반짝이며 말했다. “저거 내가 가져도 돼?”
양이 대답했다. “글쎄. 무서워하는 거 같군. 아름다운 아이야, 말을 하렴. 우리에게 네 이름을 말해줘. ”
“머… 먼저 그쪽 이름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공포에 질린 매가가 슬그머니 뒷걸음쳤다. 그러나 이를 놓칠 늑대가 아니었다. 늑대는 번개 같은 속도로 매가 뒤에 불쑥 나타나 그녀를 멈춰 세웠다. 늑대의 숨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가깝게 느껴졌다.
늑대가 매가의 귀에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이름이 많아.”
양이 말했다. “서쪽에서 늑대는 아니, 나는 이나라고 해. 동쪽에서 늑대는 울료, 나는 파랴라고 해. 그러나 우리는 어디서나 킨드레드라고 불리지. 나는 언제나 늑대의 양이고, 늑대는 언제나 양의 늑대야.”
늑대가 뒷발로 서더니 킁킁댔다.
“쟤 지루한 놀이를 하고 있네. 이런 지루한 거 말고 쫓고 달리고 물면서 신나게 놀아 보자.”
양이 대답했다. “늑대야, 쟤 지금 노는 거 아니야. 자기 이름도 잊어버릴 만큼 무서운 거지. 아니면 이름이 나오기 무서워 입안에 숨고 있는 건가? 아이야, 걱정하지 마. 네 이름은 내가 알고 있단다. 네가 우리를 아는 것처럼, 우리도 너를 알아, 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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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부탁이에요. 오늘 밤은 별로 좋지 않은 것…” 매가가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커다란 붉은 혀를 주둥이 한쪽으로 길게 늘어트린 늑대가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두들겨 패기에 안 좋은 밤이란 없어.”
양도 거들었다. “물론 낮도 다 좋아. 빛이 있어 표적을 제대로 맞힐 수 있으니까.”
“오늘 밤엔 달이 없잖아요!” 매가가 외쳤다. 그녀는 일루시안이 가르쳐준 대로 뒤에서까지 자신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동작을 크게 했다. “달이 구름 이불 뒤에 숨어 우리 눈을 피하잖아요. 달 없이 제가 마지막으로 뭘 볼 수 있겠어요?”
“우린 달 보이는데?” 양이 전설이 돼버린 자신의 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달은 언제나 저기 있어.”
“별이 없잖아요!” 매가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동작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쇼가 안 보이잖아요. 늑대와 양을 만나는 때라면 이런 아름다운 경치는 한 번 봐야지요!”
“요 매가 녀석이 새로운 놀이를 하고 있네. 질질 끌기 놀이 말이야.”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움직임을 멈춘 늑대가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옆으로 뻗은 주둥이를 매가 쪽으로 돌리더니 말했다.
“매가 녀석 쫓다가 물어뜯기’ 놀이를 하면 안 돼?” 늑대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양이 대답했다. “매가에게 한 번 물어보자. 매가, 늑대가 너를 쫓는 게 낫겠니, 내 화살이 낫겠니?”
매가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주변의 사소한 부분까지 잘 보고 기억하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생을 마감하기에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었다. 풀밭과 나무가 우거졌고, 오래된 오솔길도 있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거친 껍질로 둘러싸인 나무들을 바라보며 매가가 대답했다. “양의 화살이 낫겠어요. 어렸을 때처럼 가장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간다고 상상하겠어요. 이번에는 오르는 걸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야겠지만요. 당신들과 가는 건 이런 느낌인가요?”
양이 말했다. “아니, 오늘은 아냐. 네 생각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무서워하지 마, 어린 아가씨. 우린 그냥 널 조금 놀렸을 뿐이야. 오늘 밤엔 우리가 너한테 온 게 아니라 네가 우리한테 온 거니까.”
“매가 녀석을 쫓을 수 없다니.” 목소리에 실망한 기색을 띤 채 늑대가 말했다. “그렇지만 근처에 다른 것들도 있겠지. 쫓고 물어뜯기 알맞은 것들 말이야. 양, 서두르자. 나 배고파.”
“오늘은 우리가 네 연기에 만족했다는 것만 알아둬.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 지켜볼 거야.”
늑대가 매가를 지나 무성한 잔디밭에 구불구불한 모양을 그리더니 이내 숲 속으로 사라졌다. 매가가 오래된 무덤 쪽을 돌아보았다. 양도 온데간데없었다.
매가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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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지로 돌아간 매가 앞에 폐허가 펼쳐졌다. 이제 겨우 집이라고 부르게 된 마차는 누군가 샅샅이 뒤지고 난 후 까맣게 타버리고 연기 나는 껍질만 남아 있었다. 찢어진 옷가지와 망가진 소도구 몇 개가 야영장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매가는 덴지가 자던 곳 근처에서 덴지의 시체를 발견했다. 트리아의 시체는 그의 시체 뒤에 있었다. 덴지는 트리아를 보호하다 죽은 것 같았다. 핏방울 자국으로 추측하건대 둘 다 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했다. 서로를 끌어안으려고 했는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서로의 손길을 느끼고자 했는지, 그들의 손가락은 얽혀 있었다.
바짝 탄 일루시안과 파르의 시체가 마차 안에 있었다. 일루시안이 죽인 듯한 도적 두 명의 시체도 근처에 있었다.
손댄 흔적 없이 멀쩡한 것이라곤 덴지가 쓰던 늑대와 양 가면뿐이었다. 매가는 그 가면들을 집어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양의 탈 쪽이 앞으로 보이게 가면을 썼다. 늑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가 녀석 쫓아가자.”
매가는 니들브룩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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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원형극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흥분에 가득 차 벨벳커튼만 쳐다보고 있었다. 왕도 왕비와 신하들과 함께 극장에 앉아 연극이 시작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검은 커튼이 열리고 배우들이 등장하자 장내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매가는 무대 밑 분장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객석에 침묵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젊음의 눈부신 빛이 눈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고, 머리에는 백발이 넘실거렸다.
“선생님!” 무대 담당자가 말했다. “옷 아직 안 갈아입으셨네요?”
“그래, 얘야. 나는 등장 바로 직전에 갈아입는단다.”
오펠럼 메커니컬 극단 시절부터 매가와 함께했던 늑대와 양 가면을 든 채 어린 무대 담당자가 말했다.
“이제 진짜 갈아입으셔야 해요. 오늘 밤 공연도 잘 되시기를 빌어요.”
매가가 무대에 나갈 준비를 했다. 가면들을 머리 위에 썼다. 오래전 음침한 무덤가에서 느꼈던 음산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무대 위로 미끄러지듯 등장한 매가는 양의 우아한 몸짓을 재현하며 관객을 사로잡았고, 늑대의 장난기 섞인 난폭함을 연기하며 관객에게 스릴을 선사했다. 그녀는 이 쌍둥이 죽음의 화신이 되어 동료 연기자들의 고통을 달래주거나 그들의 목덜미에서 고통을 물어뜯어 버렸다. 연극이 끝나자 관객은 모두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정말 그랬다. 관객들은 좋은 죽음 장면에서 만족을 느꼈고, 그중에서도 매가의 죽음은 최고였다.
왕과 왕비까지 일어나 그녀의 연기에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매가는 박수 소리를 듣지도, 일어난 관객들을 보지도 못했다. 발밑의 무대도 온데간데없었다. 함께 손잡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료 연기자들의 손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느끼는 것이라곤 가슴의 날카로운 고통뿐이었다.
매가가 객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객석에는 양과 늑대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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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은 자르반 3세의 치세 이전의 데마시아로, 소환사들이 전쟁학회를 만들기 전이라 데마시아녹서스 사이에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던 때라고 한다.[2] 배경은 자르반 3세의 치세 이전의 데마시아로, 소환사들이 전쟁학회를 만들기 전이라 데마시아녹서스 사이에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던 때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