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다 간류사이
武田観柳斎
출생년도 미상 ~ 1867년 6월 22일.
1. 개요
다케다 간류사이는 에도 시대 군학자이다. 병학과 양명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였던 그는 탈번 후, 신센구미 국장인 곤도 이사미에게 중용된다. 곤도 이사미의 총애를 받았던 간류사이는 다양한 활약을 하였으나, 신센구미 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신센구미를 탈퇴한다. 이후 사쓰마 번에 접근하는 등 독자적으로 활동하려 하였으나, 신센구미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살해당한다.
2. 생애
다케다 간류사이는 이즈모 국 모리 번 번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가이의 다케다씨(氏)에서 이름을 따와 스스로를 다케다 간류사이라고 칭하였다. 간류사이는 탈번(脫藩 : 번을 탈출하여 낭인이 되는 것을 말함)을 한 후, 에도에 가서 후쿠시마 덴노스케에게 고슈류 군학(甲州流軍学)을 배운다.
간류사이는 1863년 10월경에 교토에서 반(反)막부 세력을 단속하던 낭인부대인 신센구미에 입대한다. 탈번 후 에도에 있을 무렵부터 이미 곤도 이사미의 총애를 받았던 간류사이는 입대 직후에 곤도에게 중용되어 대원들의 군사훈련을 담당하였고, 1864년 곤도의 에도 출장과 1865년 조슈 탐색에도 동행하는 등 곤도의 참모로도 활동하였다. 그 해 6월, 반막부 세력인 존왕양이론자들을 습격한 ‘이케다야 사건’에서는 무기 조달과 정보활동을 하던 후루다카 슌타로를 포박하는 등 곤도조(시위관파)의 일원으로 활약하여 포상으로 막부에게 금 20냥을 하사받는다.
그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865년 5월에는 오오즈 번 출신 국학자이자 신도학자인 야노 하루미치를 포박하였고, 8월에는 게아게의 찻집에서 금전대책을 세우던 사쓰마 번사 한 명을 살해하고 다른 한 명은 포박하는 등 현장 지휘자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러나 신센구미 내에 이토 가시타로 일파가 대두하고, 대원 훈련에 서양식 훈련법이 도입되자 차츰 그 영향력을 상실한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을 느낀 간류사이는 1865년 말에 신센구미를 정식으로 탈퇴하고 점차적으로 사쓰마 번에 접근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을 신센구미가 알게 되었고, 1867년 6월 22일, 간류사이의 협력자였던 승려 젠오와 함께 가모가와의 제니도리 다리 부근에서 살해당한다. 신센구미 내에는 예전부터 곤도 이사미에게 아부하는 간류사이를 싫어하는 대원들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