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저와 춤추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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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휘지 작가가 조아라에서 연재했던 웹소설.[1]
이 책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의 불행했던 삶과 잔혹했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이로 인하여 사랑에 대해 두려워하고 냉소적이었던 에슈티.
천대 받고 업신 여겨지던 어릴적의 기억으로 인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배타적이고 등안시하시던 르아브르. 동병상련의 상처를 가진 그들이 만나 이뤄나가는 정적인 사랑을 집필해낸 작품이다.
긴 서사시 때문인지 전개가 느리다는 평가도 받지만,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이나 세밀한 묘사 등으로 호평. 흐름이 너무 더디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부연설명이 너무 세세하고 장황한 편이기도 하다. 사랑을 확인하는데도 느리고 입맞춤 외에도 사랑표현도 서툰 남녀 주인공이 돋보인다.
잔잔하면서 무덤덤하니 전개가 느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간질함이 느껴지는 책으로 평가 받는다. 사랑에 있어서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이 너무도 잠잠하다 보니 중간에 나온 에슈티와 르아브르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오히려 잔잔한 분위기를 확 살리는 편. 하지만 부모님은 부모님일뿐인지라 부모님보다는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담으면서 보듬어주고 상처를 치료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후평을 받기도 한다.
독자들이나 비평을 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의 평가는 상당히 희비가 엇갈린다. 이 작품은 에슈티와 르아브르, 두 사람이 사랑을 발견하고 이루는 동안에 오해, 질투, 라이벌 등 어떤 외부의 장애도 없다. 그러나, 두 인물들이 지극히도 이성적이며 절대로 삶을 쉽게 살지 않는 인물들인지라 외부보다도 더 강력한 내부의 장애를 받는다. 저자는 그 내부의 장애를 긴 서사시를 통해 풀어낸다. 마치, 탑을 계속해서 쌓아 올라 마침내 공든탑 하나를 완성하듯 말이다.
우선적으로 로맨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내부에 잠재된 트라우마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어떤 망설임을 주는가를 인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로맨스 장르에서 극중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가 가진 트라우마를 살피고 본인에게 직접 듣거나, 타인에게 알아내거나 어느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실토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잠재된 트라우마를 크게 다루되 남녀 주인공들이 그것을 서로 알아내거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감정을 풀어내는 것에 더 집중한 만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어코 입밖으로도 꺼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버리고 만다. 그 과정을 수많은 문장들의 공든탑으로 하여금 세밀하게 그리고 있기에 이 소설은 서술이 더 장황하고 더 화려하다. 마치 BGM에 가까울 정도로 끈임없이 흘러보냄으로써 하나의 영화처럼 필름이 돌아가며 절대로 인물의 생각이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잔잔함이 끈임 없이 이어지는 플롯은 일부 독자 혹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비평의 대상이 된다. 왕인 르아브르는 폭군이라고 칭해지는 자로서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임에도 대립하는 인물도 없고, 남주인공이나 여주인공을 두고 여주랑 싸우는 악녀나 서브 캐릭터도 없고 그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에서 너무 단조롭다는 비평이 그것이다. 장황한 문장과 긴 서사시는 공든 탑처럼 보기 좋게 쌓아 올려져 가치가 있기야 하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아무 사건사고 없이 잘 만들어진 돌탑만 하염 없이 바라보는 느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을 받고서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본 독자들은 남주인공의 매력을 높이 평가한다. 르아브르가 에슈티를 아껴주며 에슈티 또한 르아브르를 아껴주는 모습이 신뢰감이 묻어나면서도 서로를 정중하게 존중하면서 사랑을 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저자가 아무 사건이나 긴박감 없이도 긴 문장으로 하여금 힘겨이 공든 탑을 쌓은 만큼 두 사람의 믿음, 사랑, 신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장황하게 풀어내냈기 때문.
하지만, 오차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 구조나 장황한 설명의 부작용인 건지 여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이 끈임없이 묘사되면서, 그 속에서도 설정오류 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독자는 보통 어렸을 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사랑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신 등 보다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타일렀다는 이유로 그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그라들다니 조금 이해가 안 된다고 설토한다. 아무리 에슈티의 어머니가 그녀의 전부였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이 그 공포가 어디 말 한 마디에 사라질만한 그런 종류의 것이느냐며 말이다. 이 경우 트라우마에 대한 깊이를 따져 묻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허나, 사람마다 생각이나 감정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트라우마도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일단 작중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부모님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들은 작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모든 일'로 하여금 어릴적 트라우마를 모두 극복해 내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하게 된다. 이것으로 볼 때 이 작품이 절대로 트라우마의 깊이를 얕게 평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면 이 소설의 키 포인트는 에슈티의 춤이라고 오해하기 일쑤인데, 책을 끝까지 다 읽어보면 춤은 그냥 주인공 에슈티가 삶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생명력일 뿐 르아브르와 에슈티 사이에 큰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작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어머니 이야기도 나오게 되는데 그녀들이 당한 치욕스러운 일들을 두 주인공들의 부모님이라는 인물들의 삶으로 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런 부모 아래 성장한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장르적으로는 판타지 소설 답게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세계관이 특색있는 편이다. 완벽하고 치밀하게 역사부터 쌓아올렸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각 나라의 색깔이 잘 드러나게, 그리고 그 정보들을 어색하지 않게 잘 풀어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정치적인 배경이나 권력쟁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도입은 적절한 편.
끊어지지 않는 문장의 흐름은 독자를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면서 하나의 세계로서 산소가 공급되며 살아 숨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사 하나, 그리고 혼자서 하는 고민 한 페이지. 그러다보니 스토리 진행은 현저히 느려지고, 보는 사람은 흥미를 잃게 된다. 어느 독자는 에슈티가 가끔은 혼자 고민하다 뜬금없이 대답을 내뱉는데, 그게 무슨 말에 대한 대답인지 까먹기도 한다고 말한다. 문장들이 읽히지 않거나 너무 어렵거나 하진 않은데, 상당히 높이가 길기 때문에 조금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긴 문장들로 하여금 내용이 더 루즈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데에 한 몫한 점은, 내용에 너무 굴곡이 없다는 것. 주로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스토리에 그러다 간간히 주인공들의 과거, 그리고 그 외 주인공의 부모님들에게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 내용은 두 사람의 애정이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그 감정을 너무도 깊이,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이다. 예로 들어 어느 감정을 든다 하면, 그것이 슬픔이라 치면 독자가 글을 읽으며 슬픔을 느끼다 이내 견디고 갈무리 한 다음 다음 감정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전의 감정선이 도저히 끊어지지도 않고 일정선으로 이어지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봤던 것, 느꼈던 것을 다시 한 번 더 하는 것이니 참으로 지겨울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비평과 댓글로 하여금 끈임없이 질타 받았을텐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 붙여 완결을 써낸 작가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무려 3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 2부, 3부의 표현방법이 전부 달라서 읽는 느낌조차도 다르다.
또한 일단 이 작품은 앙코르 내용만 해서 100장이 되고, 외전만 100장에 달한다. 그것도 생각이나 묘사 위주의 서술이 대부분인 흐름으로 말이다.
이를 볼 때, 저자에게서 감정표현의 일환으로 과할 정도로 쉼표를 잔뜩 쓴, 문장이 비문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물론 저자의 그 과감함 때문인지 책을 계속 읽으면서 아쉽다는 평가들이 줄을 잇는다. 지나치게 어려운 발음들인 지명과 이름. 생각에 대한 서술이 너무 길고,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 작중 르아브르가 내뱉는 대부분의 대사가 에슈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독자들도 더러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에슈티는 타인의 물음이나 부탁에 대답을 하는데 너무 뜸들이는 편이라, 그 뜸을 들이는 타이밍 동안에도 끊임없이 에슈티의 생각이 이어진다.
그만큼, 공들인 수많은 문장과 묘사는 대사를 집어 삼키면서까지 사건 사고도 없는, 한없이 잔잔한 '지루의 늪'이라는 악평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이 길고 긴 화려한 문장에도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장르소설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의 저자는 서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건대, 그 모든 것을 돌탑처럼 쌓아 올린듯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서 그 수많은 문장을 집필하였을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되려 악평을 만든다는 점이 못내 서운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평가를 내리는 이들 즉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읽는 비평가의 경우, 이 작품이 오히려 그 많은 문장들의 탑이 엉성하게 쌓아진 것이 아닌 세밀한 탑으로 쌓여있노라 말한다. 이는 작품을 많이 본 이들 앞에서는 작중 쓰여진 문장 하나하나가 그만큼 전개에 의미가 있고,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글자마다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 이 작품은 값어치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작가가 공을 들여 문장을 쌓아 올린 것이지 아무렇게나 써갈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 많은 일반 독자들은 긴 호홉의 문장에 대해 '쓸데없다' '자질구레하다'등의 평가를 내림으로써 재미나 유희, 스토리로서의 감동이나 전개의 흐름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보기 일쑤이다. 하지만 같은 블라클 시리즈의 책의 경우 되려 글의 서술이나 호홉이 빠르다는 비평이 많았던 것을 보면 글의 호홉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면 비판을 많이 받는 듯하다.
그렇다면 딱 중간에 맞춰야 하는데, 작가마다 글의 호홉이나 흐름을 짜는 기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중간 정도를 원하는 독자들의 무리한 요구는 정말 끝도 없다고 볼 수밖에. 이는 문장 하나로 요약할 수도 있다. '독자가 다양하고 작가가 한정적인 것이 아닌, 작가의 질은 다양하지만 독자의 성향은 한정적이다.'
1. 개요
서휘지 작가가 조아라에서 연재했던 웹소설.[1]
이 책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의 불행했던 삶과 잔혹했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이로 인하여 사랑에 대해 두려워하고 냉소적이었던 에슈티.
천대 받고 업신 여겨지던 어릴적의 기억으로 인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배타적이고 등안시하시던 르아브르. 동병상련의 상처를 가진 그들이 만나 이뤄나가는 정적인 사랑을 집필해낸 작품이다.
긴 서사시 때문인지 전개가 느리다는 평가도 받지만,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이나 세밀한 묘사 등으로 호평. 흐름이 너무 더디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부연설명이 너무 세세하고 장황한 편이기도 하다. 사랑을 확인하는데도 느리고 입맞춤 외에도 사랑표현도 서툰 남녀 주인공이 돋보인다.
잔잔하면서 무덤덤하니 전개가 느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간질함이 느껴지는 책으로 평가 받는다. 사랑에 있어서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이 너무도 잠잠하다 보니 중간에 나온 에슈티와 르아브르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오히려 잔잔한 분위기를 확 살리는 편. 하지만 부모님은 부모님일뿐인지라 부모님보다는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에 담으면서 보듬어주고 상처를 치료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후평을 받기도 한다.
2. 줄거리
“내가 너를 사랑함에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전쟁 포로가 된 왕녀와 적국의 폭군이 자아내는 희대의 로맨스! 패전국 스카라의 왕녀 에슈티-플로카.
천한 무희의 피를 이었다고 냉대받아 온 그녀는 적국 몬테로비스에 볼모로 머물게 된다. '전쟁터의 살인귀'라 불리는 몬테로비스의 왕, 냉혹함으로 온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르아브르는 어느 날 혼자 춤추는 에슈티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떤 빼어난 무용수의 춤도 그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에슈티의 춤. 드레스 자락이 휘날리고 보랏빛 머리채가 호를 그린다. 이제 그에게 있어 그녀는 더 이상 전쟁의 부산물일 수가 없다. 찬란한 궁정, 얼어붙은 마음 사랑을 믿지 않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시나브로 서로를 비추기 시작한다―.
패전국 스카라의 3왕녀 에슈티는 집시의 딸이라는 이유로 갖은 천대를 받아 왔다. 천한 무희의 피를 이었다고 냉대받아 온 그녀는 조국이 전쟁에서 대패한 뒤 적국 몬테로비스에 볼모로 머물게 된다.
전쟁터의 살인귀라 불리는 몬테로비스의 왕, 냉혹함으로 온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몬테로비스의 황제는 폭군으로 악명 높았기에 그에게 숙청 당할 것이 뻔함을 알았던 에슈티. 어차피 천대받던 삶 끝에 끝난 인생이었으니 삶은 포기한 에슈티는 황제와 마주한 자리에서 불만을 표한다. 그러나 면전에서 마주친 그는 그저 천하의 폭군이 아닌 소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친절한 사람은 아니어도 적어도 소문 만큼의 폭정을 저지를만한 위인은 아니었던 것.
그렇게 에슈티는 몬테로비스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르아브르는 혼자 춤추는 에슈티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떤 빼어난 무용수의 춤도 그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에슈티의 춤. 드레스 자락이 휘날리고 보랏빛 머리채가 호를 그린다. 이제 그에게 있어 그녀는 더 이상 전쟁의 부산물일 수가 없었다.
3. 등장인물
- 에슈티 플로카
패전국인 스카라에서 포로로 잡혀 온 제 3왕녀. 천한 무희의 딸이라고 천대 받으며 살아왔다. 조국이 전쟁에서 패하고 전쟁의 볼모로 몬테로비스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왕 르아브르를 만나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간다.
- 르아브르(델레몬트3세)
몬테로비스의 왕. 전쟁터에서 큰 악명을 떨쳤으며 형제들을 숙청하고 즉위했기에 그로 인하여 폭군이라 불리운다. 에슈티를 만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점차 변해간다. 본성은 두려움이 많고 선한 편.
4. 평가
4.1. 인물
독자들이나 비평을 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의 평가는 상당히 희비가 엇갈린다. 이 작품은 에슈티와 르아브르, 두 사람이 사랑을 발견하고 이루는 동안에 오해, 질투, 라이벌 등 어떤 외부의 장애도 없다. 그러나, 두 인물들이 지극히도 이성적이며 절대로 삶을 쉽게 살지 않는 인물들인지라 외부보다도 더 강력한 내부의 장애를 받는다. 저자는 그 내부의 장애를 긴 서사시를 통해 풀어낸다. 마치, 탑을 계속해서 쌓아 올라 마침내 공든탑 하나를 완성하듯 말이다.
우선적으로 로맨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내부에 잠재된 트라우마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어떤 망설임을 주는가를 인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로맨스 장르에서 극중 남녀 주인공들은 서로가 가진 트라우마를 살피고 본인에게 직접 듣거나, 타인에게 알아내거나 어느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실토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잠재된 트라우마를 크게 다루되 남녀 주인공들이 그것을 서로 알아내거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감정을 풀어내는 것에 더 집중한 만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어코 입밖으로도 꺼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버리고 만다. 그 과정을 수많은 문장들의 공든탑으로 하여금 세밀하게 그리고 있기에 이 소설은 서술이 더 장황하고 더 화려하다. 마치 BGM에 가까울 정도로 끈임없이 흘러보냄으로써 하나의 영화처럼 필름이 돌아가며 절대로 인물의 생각이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잔잔함이 끈임 없이 이어지는 플롯은 일부 독자 혹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비평의 대상이 된다. 왕인 르아브르는 폭군이라고 칭해지는 자로서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임에도 대립하는 인물도 없고, 남주인공이나 여주인공을 두고 여주랑 싸우는 악녀나 서브 캐릭터도 없고 그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에서 너무 단조롭다는 비평이 그것이다. 장황한 문장과 긴 서사시는 공든 탑처럼 보기 좋게 쌓아 올려져 가치가 있기야 하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아무 사건사고 없이 잘 만들어진 돌탑만 하염 없이 바라보는 느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을 받고서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본 독자들은 남주인공의 매력을 높이 평가한다. 르아브르가 에슈티를 아껴주며 에슈티 또한 르아브르를 아껴주는 모습이 신뢰감이 묻어나면서도 서로를 정중하게 존중하면서 사랑을 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저자가 아무 사건이나 긴박감 없이도 긴 문장으로 하여금 힘겨이 공든 탑을 쌓은 만큼 두 사람의 믿음, 사랑, 신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장황하게 풀어내냈기 때문.
하지만, 오차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 구조나 장황한 설명의 부작용인 건지 여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이 끈임없이 묘사되면서, 그 속에서도 설정오류 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독자는 보통 어렸을 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사랑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신 등 보다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타일렀다는 이유로 그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그라들다니 조금 이해가 안 된다고 설토한다. 아무리 에슈티의 어머니가 그녀의 전부였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이 그 공포가 어디 말 한 마디에 사라질만한 그런 종류의 것이느냐며 말이다. 이 경우 트라우마에 대한 깊이를 따져 묻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허나, 사람마다 생각이나 감정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트라우마도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일단 작중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부모님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들은 작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모든 일'로 하여금 어릴적 트라우마를 모두 극복해 내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하게 된다. 이것으로 볼 때 이 작품이 절대로 트라우마의 깊이를 얕게 평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면 이 소설의 키 포인트는 에슈티의 춤이라고 오해하기 일쑤인데, 책을 끝까지 다 읽어보면 춤은 그냥 주인공 에슈티가 삶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생명력일 뿐 르아브르와 에슈티 사이에 큰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작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어머니 이야기도 나오게 되는데 그녀들이 당한 치욕스러운 일들을 두 주인공들의 부모님이라는 인물들의 삶으로 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런 부모 아래 성장한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4.2. 배경
장르적으로는 판타지 소설 답게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세계관이 특색있는 편이다. 완벽하고 치밀하게 역사부터 쌓아올렸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각 나라의 색깔이 잘 드러나게, 그리고 그 정보들을 어색하지 않게 잘 풀어냈다는 느낌이 더 크다. 정치적인 배경이나 권력쟁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도입은 적절한 편.
끊어지지 않는 문장의 흐름은 독자를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면서 하나의 세계로서 산소가 공급되며 살아 숨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4.3. 문장
대사 하나, 그리고 혼자서 하는 고민 한 페이지. 그러다보니 스토리 진행은 현저히 느려지고, 보는 사람은 흥미를 잃게 된다. 어느 독자는 에슈티가 가끔은 혼자 고민하다 뜬금없이 대답을 내뱉는데, 그게 무슨 말에 대한 대답인지 까먹기도 한다고 말한다. 문장들이 읽히지 않거나 너무 어렵거나 하진 않은데, 상당히 높이가 길기 때문에 조금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긴 문장들로 하여금 내용이 더 루즈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데에 한 몫한 점은, 내용에 너무 굴곡이 없다는 것. 주로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스토리에 그러다 간간히 주인공들의 과거, 그리고 그 외 주인공의 부모님들에게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 내용은 두 사람의 애정이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그 감정을 너무도 깊이,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이다. 예로 들어 어느 감정을 든다 하면, 그것이 슬픔이라 치면 독자가 글을 읽으며 슬픔을 느끼다 이내 견디고 갈무리 한 다음 다음 감정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전의 감정선이 도저히 끊어지지도 않고 일정선으로 이어지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봤던 것, 느꼈던 것을 다시 한 번 더 하는 것이니 참으로 지겨울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비평과 댓글로 하여금 끈임없이 질타 받았을텐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 붙여 완결을 써낸 작가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무려 3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 2부, 3부의 표현방법이 전부 달라서 읽는 느낌조차도 다르다.
또한 일단 이 작품은 앙코르 내용만 해서 100장이 되고, 외전만 100장에 달한다. 그것도 생각이나 묘사 위주의 서술이 대부분인 흐름으로 말이다.
이를 볼 때, 저자에게서 감정표현의 일환으로 과할 정도로 쉼표를 잔뜩 쓴, 문장이 비문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이 두드러진다.
물론 저자의 그 과감함 때문인지 책을 계속 읽으면서 아쉽다는 평가들이 줄을 잇는다. 지나치게 어려운 발음들인 지명과 이름. 생각에 대한 서술이 너무 길고,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 작중 르아브르가 내뱉는 대부분의 대사가 에슈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독자들도 더러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에슈티는 타인의 물음이나 부탁에 대답을 하는데 너무 뜸들이는 편이라, 그 뜸을 들이는 타이밍 동안에도 끊임없이 에슈티의 생각이 이어진다.
그만큼, 공들인 수많은 문장과 묘사는 대사를 집어 삼키면서까지 사건 사고도 없는, 한없이 잔잔한 '지루의 늪'이라는 악평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이 길고 긴 화려한 문장에도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장르소설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의 저자는 서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건대, 그 모든 것을 돌탑처럼 쌓아 올린듯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서 그 수많은 문장을 집필하였을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되려 악평을 만든다는 점이 못내 서운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평가를 내리는 이들 즉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읽는 비평가의 경우, 이 작품이 오히려 그 많은 문장들의 탑이 엉성하게 쌓아진 것이 아닌 세밀한 탑으로 쌓여있노라 말한다. 이는 작품을 많이 본 이들 앞에서는 작중 쓰여진 문장 하나하나가 그만큼 전개에 의미가 있고,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글자마다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 이 작품은 값어치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작가가 공을 들여 문장을 쌓아 올린 것이지 아무렇게나 써갈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 많은 일반 독자들은 긴 호홉의 문장에 대해 '쓸데없다' '자질구레하다'등의 평가를 내림으로써 재미나 유희, 스토리로서의 감동이나 전개의 흐름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보기 일쑤이다. 하지만 같은 블라클 시리즈의 책의 경우 되려 글의 서술이나 호홉이 빠르다는 비평이 많았던 것을 보면 글의 호홉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면 비판을 많이 받는 듯하다.
그렇다면 딱 중간에 맞춰야 하는데, 작가마다 글의 호홉이나 흐름을 짜는 기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중간 정도를 원하는 독자들의 무리한 요구는 정말 끝도 없다고 볼 수밖에. 이는 문장 하나로 요약할 수도 있다. '독자가 다양하고 작가가 한정적인 것이 아닌, 작가의 질은 다양하지만 독자의 성향은 한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