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곤

 



1. 개요
2. 상세


1. 개요


馮緄
(? ~ 168)
후한 말의 인물. 자는 홍경(鴻卿). 풍환[1]의 아들.

2. 상세


파군 탕거현 사람으로 젊어서 춘추, 사마병법 등을 익혔으며, 아버지 풍환이 자주 범죄를 적발했다가 121년에 원한을 품은 자가 가짜 국새가 찍힌 문서를 보내 풍환과 현도태수 요광을 함께 꾸짖어 죄인의 목을 자르는 칼을 보내도록 하면서 요동도위 방분을 시켜 처형하게 했다. 요광이 처형되고 풍환이 체포되면서 자살하려 하자 풍곤은 조서의 글이 이상하다면서 악인을 제거한 것 뿐이라 잘못이 없으니, 흉악한 자의 거짓된 흉계라서 사실을 보고한 뒤에 형을 받아도 늦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렸다.
억울함을 글로 올리면서 사기꾼의 거짓이 판명되어 방분이 소환당해 벌을 받았는데, 풍환이 옥중에서 병사하자 안제가 풍환, 요광에게 10만 전을 하사하면서 아들을 낭중에 임명했다. 이로 인해 낭중이 되어 이름이 알려졌으며, 집이 부자라서 베풀기를 잘해 가난하거나 위급한 사람을 구제해 향리에서 존경받았다.
처음에는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7번을 승진해 광한 속국도위가 되었으며, 어사중승이 되었다가 순제 말년에 부절을 가지고 양주자사부의 관 내 여러 군의 군사를 감독했다. 등무와 함께 도적 무리를 격파해 농서태수로 승진했다.
농서태수가 되었을 때 인끈 상자에서 두 마리 붉은 뱀이 나와 각기 방향을 나눠 도망쳤는데, 허헌이 시초점을 치면서 3년 뒤에는 변방의 장수가 되어 동쪽을 평정해서 명성을 얻을 것이고, 5년 후에는 대장군과 요동태수를 맡을 것이라 했다. 이후 선비족이 변경을 침범하자 요동태수가 되어 선비족을 위로하고 선비족이 투항하면서 노략질을 중지했다.
조정의 부름을 받아 경조윤이 되었다가 사례교위로 옮겼으며, 사례교위 재임 중에 형벌의 위엄을 확립했다. 나중에 정위, 태상 등을 지냈고 장사만, 영릉만, 무릉만 등이 세력을 형성해 노략질하면서 관리를 살해해 형주자사 유도, 남군태수 이숙 등을 죽이자 거기장군에 임명되어 출정하게 되었는데, 풍곤은 성격이 강렬하고 정직해 환관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군대 비용을 착복한다는 모함을 우려해 중상시 한 명을 데리고 군사비용 지출을 감시하게 한다고 상소했다.
풍곤의 군사가 이르자 장사군에 이르자 도적들은 영도현으로 와서 투항했으며, 풍곤은 무릉만을 공격해 4천여 명을 죽이고 10여만 명의 투항을 받아 형주 일대를 평정했다. 풍곤은 1억 전을 하사받았지만 굳이 사양해 받지 않았으며, 낙양으로 돌아가 응봉에게 공을 돌려 응봉을 사례교위로 천거하면서 사직할 것을 청했지만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장사만이 다시 봉기해 계양군과 마릉군을 공격했는데, 회군해서 도적떼가 다시 일어났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 얼마 후에 장작대장이 되었다가 하남윤, 정위 등으로 옮겼으며, 산양태수 선천이 죄를 지어 옥에 갇히자 조사하다가 사망하게 했다. 선천이 환관 선초의 동생이라 풍곤은 환관들의 모함과 비방을 받아 이응, 유우 등의 죄에 연루되어 좌교령 휘하의 작업 대부로 보내졌다가 응봉이 상소를 올려 변호하자 풀려날 수 있었으며, 후에 둔기교위가 되었다가 다시 정위가 되어 관직에 있는 채로 사망했다.
[1] 유주자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