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재즈
모든 정통적인 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형태로, 조성이나 박자, 형식 같은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연주자의 느낌이나 감정에만 충실하여 즉흥적으로 표현해낸 재즈이다. 1950년대 후반에 생겨났으며, 미국 내의 인종적ㆍ정치적 상황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성행하였다. 특히 뉴욕의 어느 흑인계 고등학교에서 음악 수업이 유럽인들만의 협소한 역사에 근거할 뿐 흑인들의 삶이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음악수업 거부'라는 극한 조치를 취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프리 재즈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1. 프리 재즈 : 무한 확장된 즉흥 연주
지금까지의 재즈 역사를 살펴보면 즉흥 연주의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경향과, 반면에 확대되는 즉흥 연주가 가져오는 난해함을 줄이기 위해 곡의 구조적인 특성을 보다 더 중시하는 경향 간의 반복적인 대립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와 그 구조를 벗어나려는 즉흥 연주 간의 긴장이 재즈를 계속 앞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
물론 재즈의 역사가 즉흥 연주와 구조 간의 긴장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이 둘의 긴장은 결코 동등한 위치에서의 긴장은 아니었다. 즉, 견고한 구조에 대하여 즉흥 연주가 벗어나려고 하는, 그러니까 즉흥 연주가 구조에 종속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긴장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어떤 즉흥 연주도 구조 그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코드체계 중심의 즉흥 연주는 그 코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음들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려 했지만 결코 코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연주자들은 그러한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즉흥 연주를 말할 때 '즉흥'이 의미하는 바는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는 새로운 느낌의 사운드를 순간적으로 창출한다는 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구조가 허용하는 한계까지 밀고 나갔다가 스스로 안정된 위치로 돌아오는 식의 즉흥 연주를 펼쳤다.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를 통하여 긴장 자체를 즐겼을 뿐 결코 구조로부터 해방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조 자체가 개방적으로 변화하면서 즉흥 연주에 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 왔을 뿐이다. 그러므로 '재즈는 자유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유효적절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자유를 향한 제한적 몸부림이라는 표현이 더 좋지 않을까?
1.1. 등장 배경
그렇다면 왜 프리 재즈가 등장했을까? 이는 1960년대 당시의 정치적인 영향도 한몫을 하고 있다. 즉, 흑인들의 인권 차별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프리 재즈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 사회학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프리 재즈는 음악적으로 이 시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매번 새로운 연주를 추구하는 재즈 연주자들에게는 새로운 상상의 출발점이 필요했다. 그것은 구조와 즉흥 연주 모두의 차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존 콜트레인이 1959년 아틀란틱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앨범 『Giant Steps』의 타이틀곡에서 보여주었던 변화무쌍한 코드의 분절은 더 이상의 코드 놀음은 없다는 일종의 종결 선언이었다. 한편 즉흥 연주의 차원에서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 같았던 모달 재즈는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드는 위험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재즈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생각이 등장했다. 그것은 기존의 음악적인 요소들, 즉 조성(調性), 리듬, 형식(Form)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연주에 있어 코드체계와 즉흥 연주 간의 긴장에서 자유를 찾지 말고 보다 더 근본적인 자유, 모든 면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이 연주자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는 새로운 재즈를 연주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사고를 기반으로 프리 재즈는 하나씩 하나씩 기존의 형식을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1.2. 형태
프리 재즈 이전까지 많은 연주자들이 즉흥 연주를 보다 더 자유롭게 해주는 새로운 연주방식을 고안해 왔지만, 음악의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형식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여기서 음악형식이란 곡의 특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곡 자체의 대략적인 이야기 진행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형식에 의해 코드의 연결은 되는대로 무한정 진행하지 않고, 곡의 호흡에 따라 몇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정리된다. 이러한 형식들은 [A+B+C] [A+A'+B+B'] [A+B+A'+C]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서 A, B, C는 각각 악보상에서 4소절이나 8소절 단위의 단락을 의미하는 것이고 A, A' 같은 경우는 전체적인 구성은 같으나 곡의 다음 진행이나 종결을 위해서 일부분만 다른 경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즈에서 곡을 구성하는 이러한 형식들은 모두 같은 단위의 소절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A, B, C 모두 4소절이던가 아니면 모두 8소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단단함으로 인해 감상자들은 처음 듣는 곡이라도 대략적인 곡의 진행을 파악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형식이 무너진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A+B+C+D+E……+A] 식으로 곡이 무한정 확장하다가 갑자기 처음으로 돌아와 끝이 나버린다거나, 같은 [A+A'+B+B'] 형식이라도 [A(8소절)+A'(6소절)+B(9소절)+B'(8소절)] 등으로 그 단락을 구성하는 소절의 단위가 다르다면 어떨까?
이것은 코드의 자연스러운 진행과 상관없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프리 재즈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거침없이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다. 나아가 리듬의 진행마저도 4/4박자로 진행되던 곡이 중간에 잠깐 5/4박자나 3/4박자로 변했다가 다시 4/4박자로 돌아오는 식으로 자유로이 변용했으며, 곡의 조성에도 뜻밖의 순간에 변화를 주었다. 이처럼 프리 재즈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