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핀 2세

 


'''이름'''
에르스탈의 피핀 2세 (영: Pepin of Herstal 불: Pépin II de Herstal 또는 Pépin le Jeune
'''출생'''
645년
'''사망'''
714년 12월 16일, 리에주
1. 개요
2. 생애


1. 개요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가문 출신 궁재이자,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버지, 피핀 3세의 조부.

2. 생애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명문가 귀족인 메츠의 아르눌프의 아들 안세기셀과 선대 궁재 피핀 1세의 딸 성 베가(Sainte Begga)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메로빙거 왕 중 마지막으로 실권을 쥐고 있었던 왕 다고베르투스 1세의 죽음 이후, 피핀 2세는 675년에 프랑크 왕국의 분국 중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군트 분국) 하나인 아우스트라시아 궁재로써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1]. 그는 680년 네우스트리아의 궁재가 되고, 이어 687년에 부르군트 분국을 손에 넣으면서 세 분국의 궁재가 된다. 당시 왕 테오도리쿠스 3세을 폐위하지 않았으나, 그의 사후에는 후계자를 직접 선택해 꼭두각시를 세웠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역량의 소유자로, 프리슬란트 (현 네덜란드)를 압도했고 (689-695년) 알라만니 지방에 또한 프랑크 왕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했다.
[1] 피핀 2세가 궁재로써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은 아니다. 메로빙거 왕은 상징, 정통성, 그리고 이전만은 못하지만 아직 건재한 권력을 아직 쥐고 있었다. 권력의 중심이 완전히 피핀가로 넘어가기까지는 카롤루스 마르텔의 집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