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
夏承
(? ~ 170)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중연(仲兗).
조부, 아버지, 형은 모두 현위를 지냈고 문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을 계승했으며, 현의 주부, 독우, 오관연의 공조, 기주종사, 순우장을 지냈다.
그의 사적이 적힌 하승비는 오랫동안 훼실되어 알려지지 않다가 송대에 낙주에서 하천 보수공사 중에 제방 흙 속에서 나왔는데, 문제는 광평부 학교 후당에 방치하는 바람에 손상이 심해 많은 글자들이 결락되었다.
명대에 이를 보존하려고 했지만 이미 여러 사람들로 인해 글자가 깎여졌다고 하며, 지진으로 사라져 다시 발굴했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탁본을 얻으려고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를 번거롭게 여겨 없애버렸다거나 축성공사 때 훼손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이러한 이유는 탁본을 토대로 복각했다고 한다. 그 글씨는 채옹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고, 원나라 때 왕운이 채옹이 한 것이라고 했지만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 ~ 170)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중연(仲兗).
조부, 아버지, 형은 모두 현위를 지냈고 문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을 계승했으며, 현의 주부, 독우, 오관연의 공조, 기주종사, 순우장을 지냈다.
그의 사적이 적힌 하승비는 오랫동안 훼실되어 알려지지 않다가 송대에 낙주에서 하천 보수공사 중에 제방 흙 속에서 나왔는데, 문제는 광평부 학교 후당에 방치하는 바람에 손상이 심해 많은 글자들이 결락되었다.
명대에 이를 보존하려고 했지만 이미 여러 사람들로 인해 글자가 깎여졌다고 하며, 지진으로 사라져 다시 발굴했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탁본을 얻으려고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를 번거롭게 여겨 없애버렸다거나 축성공사 때 훼손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이러한 이유는 탁본을 토대로 복각했다고 한다. 그 글씨는 채옹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고, 원나라 때 왕운이 채옹이 한 것이라고 했지만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