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논쟁

 



1. 가장 우수한 문자인가
1.1. 긍정론
1.2. 부정론
2.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가
3. 특별히 배우기 쉬운가
4. 한국의 문해율이 높은 것은 한글 덕인가
5. 한국어 발음과 표기가 완전히 일치하는가


1. 가장 우수한 문자인가



1.1. 긍정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과학 잡지 디스커버리 1994년 6월호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the world's most rational alphabet)'라고 칭송하기도 했다.[1]

단, 다이아몬드가 언어학을 취미로만 공부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할 부분. 시카고 대학교의 제임스 맥컬리 교수도 한글을 찬양하고, 한글날을 매년 학생들과 기렸다고 한다.

특정한 문자 체계에 대한 일부 언어학자들의 긍정적인 관심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자신이 쓴 'Alpha Beta'(번역서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남경태 옮김)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영국의 언어학자인 제프리 샘슨도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

1.2. 부정론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Institute of Polynesian Language and Literature) 소장 스티브 로저 피셔는 자신의 저서인 'A History of Writing'(번역서 <문자의 역사>(박수철 역)에서 한글을 여러 방면(자질 문자인 점, 조음기관을 모방한 점 등)에서 칭찬하기도 하는 등, 한글의 우수한 점이나 과학적인 점을 칭찬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한글이 가장 우수하거나 과학적이다", 혹은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장 <한글의 탄생>을 집필한 노마 히데키 교수부터가 문자체계에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한 바 있다. 또한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표현도 애매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2]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이나 훈민정음 기록 문화유산 등재 등의 사례로 인하여 마치 유네스코가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유네스코의 세종대왕상의 정식 명칭은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으로 문맹 퇴치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비용 부담과 전제 왕권의 군주가 직접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창제했다는 점에서 정해진 이름이다.
또한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지 훈민정음 자체가 아니다. 문자를 만든 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만들어 문자의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일이었고 그 이론의 논리 정연함도 세계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에 기록 자체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다. 만약 로마자나 가나도 해례본이 존재했다면 같이 등재되었을 것이고 아니면 그렇게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유네스코는 모든 말과 글이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소중한 인류 유산이라 여기고 특정 문자나 언어 자체를 세계유산, 기록유산, 공용어, 무형유산으로 지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유네스코가 공식적으로 '한글은 이제부터 우리가 인정하는 세계 공용문자다.'라고 공표한 것은 아니니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사실 한글이 가장 우수한 문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어디까지나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것에 가까우며 딱히 한글이 열등하다고 까는 것은 아니다. 그냥 몇 가지 장단점이 있긴 하나 가장 우수하다는 주관적인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뿐이다.
혹은, 언어와 같이 문자도 애초부터 아예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본래 문자라는 것은 '''그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를 표기하는 것에 하자가 없다면 그걸로 된 것'''이기 때문. 예시로 철자법과 발음법이 완전 따로 노는 영어라틴 문자의 경우를 들더라도 일단 영어를 표기한다는 그 목적 자체를 이루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다.
이 밖에도 한글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 알게 모르게 상당히 퍼져 있으니 판별하며 수용하자. 심지어 교과서에도 있다고 한다.
한글날을 맞아 국립국어원에서 한글에 대한 여러 오해들에 대해 다루었다.[3][4] 역시나 국립국어원에서도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모든 문자는 장단점이 있으며, 어떤 문자는 과학적이고 어떤 문자는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할 객관적인 기준이란 애초에 없다.[5] 한글이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이라는 것이 마치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이지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학문적 진리가 아니며 대한민국의 국립국어원도 인정한 바 없는 명제이다.''' 문자는 해당 문자를 사용하는 곳의 문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글이 우수하고 다른 문자는 열등하다는 주장은 문화 절대주의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2.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가


음성을 연구하기 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국제음성기호조차 모든 음성을 모두 표기할 수는 없으며, 여러 발음을 꽤 표기할 수 있는 지금도 너무 세세한 차이를 다 표기해야 돼서 연구 목적이 아닌 실용으로 쓰기엔 너무 번거롭다.
한글을 대하는 자부심이 과도한 나머지 국내에서는 간혹 '한글로 이 세상의 모든 발음(혹은 거의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중국어 음역자와 일본어 가나보다 영어 발음을 비교적 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장된 것이다. 이걸 지나치게 맹신하는 건 자문화중심주의에 가깝다.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에는 대해서 위의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다른 언어의 비슷해 보이는 발음이 실제로는 미세하게 차이가 나나 한글로는 표기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6]
이건 애초에 전제가 잘못된 건데, 발음을 많이 표기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문자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문자는 '''해당 언어권에서 쓰이는 발음만 전부 기록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사실 어떤 문자는 모음은 안 표기하기도 하는 등 차이는 좀 있지만 대체로는 이런다는 뜻이며, 이런 점에서 한글은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문자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물론 한 문자가 다른 문자보다 더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으면 특정한 상황에서는 더 유리하긴 하다. 하지만 그 문자를 쓰는 곳의 일상생활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는다. 즉, 설령 한글이 더 다양한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우위에 있다고는 할 수 없다.[7] 반대로 한글로 표기하지 못하는 발음이 있다고 이게 한글의 단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글의 발전 과정을 보면, 초기의 옛한글에는 있던 몇 가지 문자와 발음기호가 한국어 발음에 없다 보니 결국 도태된 경우도 있다. '옛한글을 쓰면 이 세상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주장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옛한글을 쓰면 확실히 훨씬 더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긴 하나 실생활에서 쓸 일이 적고, 그래도 아직 표기하지 못하는 발음은 많다. 애초에 옛한글의 반시옷, 반탁음 같은 것들을 제주도의 70대 이상 노인분들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분들의 발음 자체가 연구대상이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옛기호의 발음을 정확히 들을 수도 없다. '''옛한글의 일부 문자가 도태된 이유는 사람들이 점점 그 소리를 못 구별해서, 음가가 사라져서이다. 'ㅡ'의 대응 음가 ''(아래아)가 그런 사례이고, 현대에는 'ㅐ'와 'ㅔ'의 구별 문제가 있다. 외국어를 정확하게 듣고 말하는 것부터 힘든데 표기를 어찌하겠는가.

3. 특별히 배우기 쉬운가


한글은 다른 문자에 비해 배우기가 쉬우며 외국인들도 단시간 안에 간단한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요지의 생각 역시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2~3시간만에 마스터하는 외국인이 있으며, 엄마가 아이에게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동화책만 읽어주어도 아이가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동화책에 적힌 형상을 연결시켜 저절로 한글을 깨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걸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니다.[8][9]
하지만, 원래 표음문자 자체가 그렇게 배우기가 어려운 경우는 드물다. 키릴 문자그리스 문자, 아랍 문자 같은 경우도 집중해서 배우면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깨칠 수도 있다. 태국문자, 크메르 문자(캄보디아)처럼 배우기 어려운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표음 문자의 난이도는 상당히 낮다.
먼저, 글자간의 관계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 음성학적으로 비슷한 소리끼리 비슷한 형상으로 묶여있기에(양순음 ㅁ, ㅂ, ㅍ, ㅃ 등) 학습의 용이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유사한 소리들이 유사한 형태를 띠는 것은 태국 문자나 Visible Speech도 마찬가지다.[10] 또한 이것은 한국어 음성/음운에 익숙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장점이다. 일단 ㅁ은 비음이라는 면에서 특정 외국어 화자에게는 ㅂ, ㅍ과 유사하지 않게 느낄 수도 있다. 음성학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와 닿지 않는다면 '''비슷한 글자가 많은 게 오히려 처음에는 더 헷갈릴 수도 있다'''.[11]
외국인이 한글을 새로 배울 때의 난이도가 어떨지 생각해 보면, visible speech를 배우는 과정에 비교할 수도 있다. Visible Speech는 한글과 가장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질 문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Visible speech의 난이도 + 모아쓰기로 인한 난이도 상향 =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글의 난이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모아쓰기로 인한 난이도 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 당장 로마자는 낱자 'g', 'u', 'm'을 익히면 'gum'이라는 단어를 비슷하게나마 적을 수 있는 반면 한글은 'ㄲ', 'ㅓ', 'ㅁ'을 익히고도 '껌'이라는 단어를 바로 적을 수가 없다. 낱자 하나하나를 다 익힌 후에도 그 낱자들을 조립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며, 이는 당연히 문자를 익히는 데 있어 난이도 상향으로 이어진다.
다만 글자 모양 자체가 간단하고 디자인에 군더더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노마 히데키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구성은 한글을 실제로 읽고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위에도 나왔듯이 그러한 단순성은 모아쓰기를 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된다.
일반적인 다른 문자들이 상형 문자가 단순화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각의 발음과 모양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닥치고 그냥 외워야 하는 것과는 달리 혀와 이, 입술 등의 조음 기관을 본 따서 만든 한글이 분명 외국인이 보아도 납득하기 쉬워 배울 때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다.[12] 하지만 조음 기관이 눈에 바로 보이는 건 아니다. 즉, 직관적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Visible speech가 조음기관을 본따 만들어졌지만,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 마디로 납득하기 쉬운 것이 배우기 쉬운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래에 제시되는 것들처럼 한글 시스템을 배우는 것 자체와는 관련없이, 한국어와 관련되어 한글에 대한 습득성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으로서는 한국어의 한글 표기에서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은 한글 자체의 습득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한글이 배우기 쉽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혼동이 올 수 있다. 이것은 '한글화 vs. 한국어 번역' 처럼 한글과 한국어를 동일시하는 데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결론을 말하면, 한글의 창제원리가 체계적이라고 해서 그 점이 다른 표음문자에 비해 배우는 데 큰 메리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아쓰기라는 한글 고유의 특성 때문에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다. 물론 풀어쓰기 한글을 쓴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한글은 창제 당시부터 지금까지 모아쓰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글 배움의 난이도를 봤을때 다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태국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글을 비교적 쉽게 배울수도 있다. 왜냐하면 태국 문자 역시 한글의 ㅂ,ㅍ에 해당하는 บ,ป과 ㄷ,ㄸ에 해당하는 ด,ต그리고 ㅇ,ㅎ에 해당하는 อ,ฮ등과 같이 비슷한 발음일 경우 문자가 미세한 변화만 있을뿐 이라는 점이 한글과 비슷하고 한글 초성의 ㅇ과 같은 역할을 하는 อ이 있으며, 태국 문자 역시 종성의 개념과 비슷한 종자음 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보다 종성의 개념을 쉽게 이해 시킬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3]

4. 한국의 문해율이 높은 것은 한글 덕인가


현대 한국의 문해율은 99%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문해율과 문자체계 간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문해율이 높은 것은 문자보다는 의무 교육 제도에 있다.
문해율이 높은 것은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이것 역시 의무 교육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문자를 사용하는 체계굉장히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문해율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문해율은 국민의 의무교육 접근율로 결정되는 것이지 문자 그 자체의 속성 때문은 아니다. 1945년 광복 당시 한국의 문맹률은 77.8%에 달했다. 문'''해'''율이 아니다. 문'''맹'''률이다. 그러던 것이 1940년대 후반-50년대의 대대적인 문맹퇴치 작업과 초등교육 의무화를 거쳐서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그러한데도 70대의 비문해율은 20.2%에 달한다.#
교육과정을 볼 때 한국은 유치원생 때 한글 기본을 깨치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건 다른 나라에서도 얼추 비슷하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대략 3학년까지만 병음과 한자를 혼용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한자를 직접 읽는다.
일본에서 초등학교 내내 한자를 배워야 하긴 하지만 이건 일본의 다양한 한자 읽기와 비교적 느린 진도가 원인이다. 일본 초등학교 6년간 교육한자 1006자를, 나머지 1130자는 중학교 이후에 배운다. 반면 중국은 초등학교에서 3000여자를 끝낸다. 앞서 말한 다양한 한자 읽기가 있는 걸 감안해도 일본 쪽이 널널한 건 사실이다.
다만 위의 비교는 정규 교육과정에 따른 것일 뿐, 실제 현실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한글 습득 연령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빠른 편이다. 물론 이것은 조기교육으로 인한 것으로, 한국의 학부모들은 유아단계에서부터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통례다. 엄마들이 이용하는 유아교육 관련 카페나 상담사례 등을 보면 약 24개월 정도면 대부분 부모들이 한글 읽기를 가르치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5살이 되면 약 80%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한국아동학회가 펴낸 <2001년 아동발달백서>를 보면, 만 1살 때 글 읽기를 가르치는 비율이 27.3%고, 쓰기는 11.4%로 나타났다. 글 읽기는 5살 정도가 되면 84.0%가, 글쓰기는 3살이 되면 52.7%가 각각 가르쳤다. 이렇게 한글 깨치기 조기교육을 하다 보니 3살 아이의 24.3%, 4살은 44.0%, 5살은 76.0%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조기 글자교육도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3살쯤부터 문자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부모가 많다. 애초에 아이들이 잘만 배우면 그만이고, 갓 문자를 떼기 시작한 아이 시점에선 자질문자든 음절문자든 다 거기서 거기다.

5. 한국어 발음과 표기가 완전히 일치하는가


표기로부터 발음을 일관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은 문자의 특징이 아니고 언어 정서법의 특징일 뿐이다.[14] 즉, 'ㅏ'는 언제나 /a/로 읽는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읽는 것이지, 'ㅏ'라는 글자 자체의 특징이 아닌 것이다. 정서법별로 같은 알파벳을 써도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처럼 글자와 발음이 일정한 규칙 아래에 정확하게 대응되는 언어도 있으며, 영어프랑스어처럼 거의 랜덤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자와 발음이 따로 노는 언어도 있다.[15] 이는 라틴 문자한글과 달리, 아랍 문자처럼 국제 문자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20세기에 표기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그런 문제가 적어야 함에도, 음운 변동이 심한 한국어의 특성상 형태소 위주의 표기를 쓰기에 한국어는 전세계적으로 표음성이 낮은 언어에 속한다. 또한 현재는 'ㅢ'의 발음이나 'ㅐ'와 'ㅔ'의 구별, 그리고 'ㅚ/ㅞ/ㅙ'의 조음위치 등에 차이가 있었고 표기는 아직도 다르나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거의 같아진 것 등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것은 한글을 읽을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들은 것을 한글로 쓸 때문제이다. 아이들이 '왜?'를 '외?'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쓰인 것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까 말했듯 한국어는 음운 변동이 심한 언어이기 때문이다.[16] 당장 '깻잎'이란 단어를 읽어 보자. 발음과 표기가 일치하는가? 종성 ''으로 예를 들면, '넓고'는 [널꼬]로 읽어야 하지만, '밟고'는 예외로서 [밥꼬]로 읽어야 한다. 또, '맑고'를 \[말꼬]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많은 외국인들이 '많다'나 '얻다' 등을 처음 보는 때에는 바로 읽지 못한다. 한국어의 표기법은 '소리대로 적되 형태를 살려서 적는다'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발음과 표기가 일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17] 더구나 '닿다' 같은 건 [다:타] 식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닫따]로 발음하고, '낫다'와 '낳다'는 그다지 구별하지 못하며, '싫증'의 발음은 [실층]이 아닌 [실쯩]이다.
게다가 한국어에는 동철이음이의어라는 것이 존재한다. 동철이음이의어는 스페인어와 같이 표음성이 좋은 언어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영어처럼 심층 표기를 쓰는 언어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국어의 동철이음이의어는 주로 된소리되기 현상에 의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대가'라는 철자는 어떤 의미로 쓰이냐에 따라 [대ː가]로 읽힐 수도 있고 [대ː까]로 읽힐 수도 있다. 이러한 동철이음이의어는 대개의 경우 확실한 규칙이 없거나, 규칙이 있더라도 형태소 정보에 기반하고 있어 철자만 보고 발음을 유추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른 동철이음이의어로는 '시가', '성적', '영장', '외과', '잠자리', '볼거리', '송장', '물질', '안다' 등이 있다.
또한 음성학에서 다른 발음으로 분류하는 발음이 한국어에서 같은 음소에 해당할 경우, 한국어의 음소를 표기하는 것이 목적인 한글에서는 같은 기호로 표기한다.[18] 이는 한국어음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국어모국어인 사람들은 쉽게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령 '가지'의 'ㄱ'과 '안경'의 'ㄱ'은 각각 무성음유성음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의 'ㅅ'은 구개음화되어 ''의 'ㅅ'과는 다른 발음이 된다. 극단적인 예시로는 'ㅎ'이 존재하는데, '화해', '하다', '희망', ''의 각 'ㅎ'은 '''전부 다른 발음이다.'''
이처럼 한글도 다른 문자만큼이나 글자와 발음이 일대일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 한국어는 말하는 대로 쓰이지도, 쓰인 대로 읽히지도 않는다. 이는 한글 맞춤법 규정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적는다는 것은 소리를 바탕으로 어법에 맞도록 바꾸어서 적으라는 말이다.[19] 당장 국어사전에서(구거사저네서 글자와(글짜와 발음기호가(바름기호가 완전히(완저니 일치하는(일치하는 단어가(다너가 얼마나 있나(인나 살펴보자. 우리야 원어민이고 익숙하니 저렇게 읽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모든 언어들도 마찬가지이고, 제3자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원어민인 한국인도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비쌈을 의미하는 말 '고가(高價)'는 [고까]라고 읽는다. 반면 '기둥 따위를 세워 땅 위로 높이 설치한 도로'를 이르는 말 '고가(高架)'[20]는 [고가]라고 읽는다. 한국인 중에도 운전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자의 고가[고까]의 발음에 이끌려 후자를 고가[고까]라고 읽는 경우가 있다.
또한 수학 시간에 배우는 소수를 생각해 보자. 초등학교 때 배우는 소수, 즉 0.1, 1.5 등의 소수(小數)의 발음은 [소:수]이다. 반면 약수가 1과 자기 자신뿐인 자연수인 2, 3, 5, 7 등을 이르는 소수(素數)(중학교 1학년 때 배운다.)의 발음은 [소'''쑤''']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라디오의 '주파수'에서는 [수]로 읽지만, 사과의 '개수', 술의 '도수' 등에서는 [쑤]로 읽는 것과 같다. 그러나 두 '소수'의 발음이 다르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며, 개중에는 수학 교사도 꽤 있다.[21]
물론 발음과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언어가 일치하는 언어보다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한국어의 한글 표기가 발음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어 표기를 영어랑 비교하면서 한글의 과학성을 주장하는데, 한국어 표기가 꼭 발음과 일치하지 않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발음과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일치하는 것보다 꼭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해독자 입장에서는 현대 한국어의 분철 표기 방식이 단어의 원형을 파악하기 훨씬 쉽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도 뒤에 오는 글자에 따라서 어형을 두 가지 이상 외우지 않아도 돼 오히려 편리하다(예: 꽃이[꼬치], 꽃집[꼳찝], 꽃잎[꼰닙]...). 물론 이것은 영어도 마찬가지여서, 영어를 배우는 사람도 뒤(또는 앞)에 오는 글자에 따라서 어형을 두 가지 이상 외우지 않아도 돼 오히려 편리하다(예: serve[sɜːrv], preserve[prɪzɜːrv], preservation[prezərveɪʃn], preservative[prɪzɜːrvətɪv]).[22]


[1] "The king's 28 letters have been described by scholars as "the world's best alphabet" and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They are an ultrarational system devised from scratch to incorporate three unique features."[2] "'세계 최고' 같은 수식어에 집착하면 사고(思考) 정지 상태에 빠지기 쉽다. 문자체계는 스포츠도 아니고 상품도 아니다.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어떤 문자든 그걸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귀한 문자가 될 수 있다. '한글은 과학적'이라는 표현도 좀 애매하다. 널리 쓰이고 있는 문자치고 '비과학적인 문자'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자라고 자부할 만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5/2017030501703.html[3] 다만 국립국어원의 사실 확인에도 오류는 있다. 대표적으로 "한글은 창제자뿐만 아니라 창제 시기, 창제 목적, 창제 원리가 모두 밝혀진 유일한 문자"라는 부분은 Visible Speech의 존재로 반박된다. Visible Speech는 또한 한글의 과학성으로서 열거되는 "말소리가 나오는 발음 기관 또는 발음하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기본자를 바탕으로 나머지 글자를 만드는 과정이 체계적이다."와 같은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문자이다. 흔히들 하는 "한글은 소리나는 모양을 형상화한 유일한 문자이다."과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례도 되는 셈.[4] 또한 ‘몸’의 첫소리와 끝소리를 똑같은 글자로 쓰는 것은 영어 어휘 'mom'만 봐도 알 수 있듯 과학적이라고 할 정도로 희귀한 사례는 아니고, "한 글자는 하나의 소리로, 한 소리는 하나의 글자로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은 애초에 문자의 특징이 아닌 언어 정서법의 특징이며, 본 문서 하단의 문단이나 깨십, 표기 심도 문서에서 알 수 있듯 한국어가 그닥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언어가 아님은 물론이고, 애초에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게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이 논리대로라면, 같은 로마자인데도 '''영어 로마자는 한글보다 비과학적이고, 스페인어 로마자는 한글보다 과학적이라는 해괴한 결론이 나와 버린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등 로마자를 쓰는 많은 언어가 한국어보다 글자와 소리가 일치한다. 또한 한자의 표기 심도가 깊어서 그렇지 일본어의 가나 표기도 그 자체로는 한국어의 한글 표기보다 글자와 소리가 일치한다. 이처럼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게 과학적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한국어와 한글이 역풍을 맞을 주장인 것이다.''').[5] 애초에 '문자가 과학적'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게 와 닿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기가 어렵다.[6]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로 마르크스는 80년대 책에는 '막스', '맑스'로 표기했지만 지금은 '마르크스'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이유도 있지만 '마르크스'인지 '맑스'인지부터 정확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7] 애초에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많은 발음을 표기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한글만능론 문서 참고.[8] 5분만에 한글 읽기 이라는 동영상도 있는 걸 보면 같은 표음문자인 로마자 사용자에겐 쉬운 편이긴 한 모양이다.[9] 다만 문자를 다 익힌 것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은 다르니 오해하지 말자. 사람이 글을 읽을 때는 글귀를 단순히 문자로 쓰인 글이 아닌, '언어'로서 인식한다. 즉 문자를 깨쳐도 자연스럽게 읽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는 것.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러시아어를 소리나는 대로 비슷하게 한글로 음차하고 그걸 읽어보자. 분명히 모르는 언어인데도 더듬더듬 읽을 수는 있다.[10] 예를 들면 ㅁ, ㅂ, ㅍ. ㅃ에 해당되는 태국 문자 자음은 각각 ม บ พ ป로, 그 형태가 비슷하다.[11] 그나마 한글은 가나나 태국 문자처럼 필기본을 보고 헷갈릴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낱자만이라면 몰라도 모아쓰기를 한 음절 블록은 낱자가 압축되어 인지 혼란이 상당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틑/릍/를/틀', '삶/삷', '렵/럽' '홋/훗/흣', '훨/휠' 등의 글자는 작은 글씨로 쓰여 있을 때 구분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오타를 내고도 바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12] 한글의 상형성에 관해서는 앞서 파스파 문자 영향 론에서 소개했듯이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당대 출간된 공식 설명서인 해례본은 조음 기관을 상징화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언어학자 알렉산더 멜빌 벨이 발음을 직접 들으면서 문자를 배울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고안한 Visible Speech(보이는 음성)라는 문자도 한글처럼 조음 기관의 모양을 본 따 만들어진 문자였다.[13] 태국 문자는 종자음의 유무에 따라 모음의 모양이 바뀌거나 아예 모음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그중 단모음 '아'를 예로 들어보자면 종자음이 없을땐 อะ(아)의 모양이지만 종자음이 있을경우 อัร(안) 과같이 모양이 바뀐다.[14] 영어프랑스어 등의 언어는 로마자를 사용하는 표준 정서법이 비교적 일찍 정립되었다. 나중에 산업혁명제국주의의 확산 같은 사회가 큰 변혁을 겪게 됨과 동시에 인쇄술이 발달했기에, 구어 내지 언어는 큰 변화를 거친 반면, 표준 정서법은 신문 등의 매체로써 대중 속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별다른 정서법 개정을 시행하지 않은 탓에 옛 문서를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반면 표기와 발음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 것이다. 반면, 조선에서는 공식적인 위치에서의 한글의 역할은 한문의 역할에 비하면 매우 적었기에 한글을 사용하는 표준 정서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450년이 넘은 뒤에 세워진 대한제국의 공식 문서 가운데에도 한문으로 작성된 것이 더 많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 중에 한글학자 분들의 노력으로 초기의 한글 정서법이 정립되고 1900년대 종반까지 크고 작은 개정이 겪어지며 지금의 정서법이 정립된 것이다.[15] 다음의 영어 단어들의 'ma'의 발음을 표기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machine, maple, mache, mall, matter, image. 각각 /머/, /메이/, /마/, /모/, /매/, /미/에 해당.[16] 한국어는 특히 자음 발음에 있어 변동이 심한 언어인데, 당장 한국어에서 초성과 종성에 다 올 수 있는 자음 중 항상 표기대로 읽히는 자음은 ''''ㅁ' 하나밖에 없을 정도이다'''.[17] 종성법이 사라져 받침의 제약이 없어지면서 심해진 경향이 있다.[18] 따라서 엄밀히 말해 한글은 한국어의 모든 발음을 적는다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려면 표준 한국어의 모든 '음소'를 적는다고 해야 한다. 국제음성기호가 이 때문에 따로 있는 것이다.[19] '''맞춤법'''의 개념이 있는 이상 한국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소리 나는 대로 대충 적어도 되면 맞춤법이 따로 있지 않아도 되니... 다만, 순수하게 발음 표기만을 위하거든 한글은 '표준 한국어 음소'만 정확하게 적을 수 있다. 왜 표준 한국어만으로 단정하느냐면 한글이 모든 언어권의 소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거니와, 서울 방언을 포함한 한국어 방언 가운데 표기할 수 없는 단어들도 있기 때문이다.[20] 또는 '고가도로[21] 과거에는 발음을 구분하고자 후자에 사이시옷을 넣어 '솟수'라고 표기했으나, 사이시옷 표기 규정이 바뀌며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두 '소수'의 발음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생겼다.[22] 한글(정확히는 한국어)은 소리나는 대로 적어서 좋다고 잘못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영어는 발음대로 적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 네 단어들을 발음대로 적는답시고 'serv', 'prizerv', 'prezərveishn', 'prizervətiv'라고 표기한다면 '''그게 좋은 표기일까?''' 'serve', 'preserve', 'preservation', 'preservative'라는 표기야말로 단어의 원형을 살리는 훌륭한 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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