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윌로비

 

Hugh Willoughby
(? ~ 1554)
영국의 탐험가.
1551년에 리처드 챈슬러, 세바스찬 캐벗 등과 함께 상업모험회사를 설립하여 에드워드 6세에게 특허를 얻어 240여명의 투자자에게 25파운드씩 자금을 모아 북동항로 탐사를 준비하였으며, 북동 항로로 중국으로 향할 3척의 배[1] 중에서 보나 에스페란차 호의 선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지만 항해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사람이었다고 하며, 출항하기 전에 하리치에서 물자 대부분이 썩거나 와인통이 새어나와 나무의 틈새로 스며는 등 좋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순풍이 불었기 때문에 리처드 챈설러의 인솔에 따라 1553년 6월 23일에 항해를 시작하였으며, 노르웨이 북쪽의 바위 해안을 돌 무렵에 거센 바람과 회오리 바람으로 항로를 이탈한다.
폭풍 속에서 살아남아 콘피덴시아 호와 만났다가 해안선 쪽으로 향하지만, 경험 미숙으로 해저를 측량하여 해도를 보면서 뭍의 위치가 지도에 나온 것과는 다르다면서 바르도우 섬이나 챈슬러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하자 중심이 되어 이끌 배가 없이 탐험을 계속하였으며, 1553년 8월 14일에 위도 72도에서 무인도로 보이는 땅[2]을 발견하지만, 얼음이 너무 두껍게 얼었기 때문에 뭍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 무인도로 보이는 땅에서 남동쪽, 북서쪽, 남서쪽을 순서로 가다가 북동쪽으로 항로를 정하였으며, 북극을 중심으로 3백 마일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유빙이 떠다니는 얼음 바다를 표류하였다.
9월 14일에 육지를 발견하여 핀란드와 러시아 국경 사이 근처로 추정되는 곶에 들어가 바다표범, 물고기, 북극곰, 순록, 여우,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발견했다고 하며,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만 지내려고 했지만 서리, 눈보라 등 매우 추운 날씨 때문에 겨울을 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얼음이 매우 두꺼워 물고기를 잡을 수 없거나 유빙이 틈 하나 없이 결빙되면서 배는 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으며, 음식을 찾기 위해 수색대를 파견했지만 찾지 못하였다.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배의 통나무에 기록한 것을 그만둔 이후에는 알 수 없지만, 배의 통나무에 새긴 마지막 기록이 1554년 1월인 것을 볼 때 그해의 겨울은 무사히 지낸 것으로 보이며, 배가 만에 갇힌 뒤에 거의 4개월을 버틴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끝내 얼어 죽었다.

[1] 가장 큰 배로 에드워드 보나벤처 호, 두 번째로 큰 배로는 보나 에스페란차, 그 다음으로는 콘치덴시아 호이다.[2]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바렌츠 해의 불모지로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군도인 노바야 젬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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