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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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무기 일람

핵 무기
원자폭탄 · 수소폭탄 · 중성자탄

생물학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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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무기
겨자 가스 · 질소 머스터드 · 루이사이트 · 사린 · 소만#s-2 · 청산 · 치클론 B · 타분#s-2 · 트리코테신(황우) · CG · VX


언어별 명칭
한자 / 중국어
黑死病
일본어
ペスト
태국어
ความตายสีดำ
독일어
Schwarzer Tod
Pest[1]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Peste negra[2]
세르비아어
마케도니아어

Црна смрт
네덜란드어
Zwarte Dood
영어
Black Plague
루마니아어
Moartea neagră
노르웨이어
Svartedauden
러시아어
Чёрная смерть
아랍어
الموت الأسود
베트남어
Dịch hạch
핀란드어
Rutto
터키어
Veba
Kara ölüm
그리스어
Μαύρος Θάνατος
힌두어
प्लेग
1. 개요
2. 본문
3. 증상
4. 원인
5. 피해
6. 치료법
7. 역사상의 발병 사례
7.1. 1차 대 역병 -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7.2. 2차 대 역병 - 14세기 대역병(大疫病)
7.2.1. 대역병의 원인
7.2.2. 대역병의 전파
7.2.3. 유럽에서의 피해
7.2.4. 유럽 이외 지역의 피해
7.3. 중세 이후
7.4. 3차 대 역병 - 19세기 아시아
7.5. 20세기 이후
8. 미디어
8.1. 게임
8.2. 소설
8.3. 영화
9. 여담
10. 관련 문서


1. 개요


페스트 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2. 본문


천연두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질병이다.[3][4]
페스트 균은 현재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다. 페스트 균은 숙주 동물인 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흑사병의 주요 형태는 가래톳 흑사병(bubonic plague), 패혈증형 흑사병(septicemic plague), 폐렴형 흑사병(pneumonic plague) 등이다. 중세유럽에서 크게 유행하여 인구 7500만~2억 명[5] 남짓이 사망했다. 국내에서는 근래에 발병이 보고된 바가 없다.
페스트의 어원은 라틴어 단어 'Pestis'. 이 단어는 원래 특정 질병이 아니라 전염병, 돌림병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다. 그런데 14세기에 유행한 전염병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만 특정 질병의 고유명사가 됐다. 또한 라틴어 문헌에서도 전염병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와 특정 질병을 가리키는 고유명사, 2가지 역할을 모두 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병의 증상을 지칭하는 명칭은 블랙 플래이그(Black Plague) 혹은 흑사병(黑死病)이다. 병이 진행되면서 전신에 파종성 응고[6]를 유발하여 광범위한 반상 출혈 및 사지와 코 등의 신체부위에 검은 색의 괴사를 일으켜, 살이 검은 빛으로 썩는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7]

3. 증상


갑작스런 발열 및 전신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크게 세 가지의 증상이 있다.
  • 가래톳 흑사병
일반적으로 2~6일의 잠복기 이후 오한, 38도 이상의 발열·근육통·관절통·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대개 이러한 증상이 발생한 후 24시간 이내에 페스트균이 들어간 신체 부위의 국소 림프절 부위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벼룩이 주로 다리를 물기 때문에 허벅지나 서혜부의 림프절에 페스트균이 들어가므로 수 시간 내에 가래톳[8]이 커지고 통증을 느끼게 된다. 겨드랑이나 서혜부의 통증 때문에 만지거나 걷는 등의 동작을 잘 하지 못하고, 주변 피부가 붉게 부어오를 수 있다. 치료할 경우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는데, 2~5일 정도면 발열 등의 이상 증상이 사라진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병이 치명적인 상태로 급속히 진행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 패혈증성 흑사병
20% 정도의 환자에서는 일차성 패혈증이 발생하는데, 그 증상이 일반적인 패혈증의 증상[9]과 같으므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그 외에 출혈성 반점, 상처 부위의 출혈, 범발성 혈관 내 응고증(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 DIC)에 의한 말단부의 괴사,[10]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저혈압, 신장 기능의 저하, 쇼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급성 호흡 부전 증후군이 동반되기도 한다.
  • 폐렴성 흑사병
폐렴성 흑사병은 흑사병의 주요 형태 중 가장 생명에 위독하며, 약 5% 정도의 환자에서 발생한다. 잠복기는 대개 3~5일이고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오한·발열·두통·전신 무력감의 증상을 동반한다. 빠른 호흡·호흡 곤란·기침·가래·흉통 등의 호흡기 증상이 발생하고 질병 이틀째부터는 각혈 증상·호흡 부전·심혈관계 부전·허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24시간 이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회복이 어렵다.

4. 원인


발병 자체는 페스트균에 의한 것이지만, 주요한 두 유형인 가래톳 페스트(일명 선페스트 혹은 림프절 페스트)와 폐렴형 페스트는 감염 경로가 다르다. 림프절 페스트의 감염 경로는 페스트균을 보균하고 있는 와 그 쥐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에게 물려 감염되고, 폐렴성 흑사병은 감염 환자의 기침이나 체액 혹은 감염 동물(쥐 같은)의 분뇨나 진애(가래) 등이 공기 중에 퍼져 감염되는 특성이 있다.
원래는 야생의 설치류(齧齒類: 다람쥐··비버 등)의 돌림병이며 벼룩에 의하여 동물 간에 유행하는데, 사람에 대한 감염원이 되는 것은 보통 밭 다람쥐·스텝마못 등으로부터 벼룩이 감염된 시궁쥐(집쥐)·곰쥐 등이다. 설치류가 구제되지 않고 페스트균을 보균한 채로 대량 번식하면 그때부터는 인간에게도 위협이 되는 병이다.
이러한 보균동물이 있는 지방에는 풍토병(風土病)으로 존재하고 있고, 중국 동북부·중국 대륙의 오지, 몽골·중앙아시아(주로 러시아) 등은 그 전에 유행하여 보균동물이 잔류되어 있으므로 기근 등이 닥치면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남아메리카 중부에서 북부, 아프리카 중부, 미얀마·이란·인도·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에서 2000년 이후 10년 사이에 유행한 기록이 있다.
정확한 기록을 덧붙이면, 2009년 8월에 중국 청해성 장족자치주에서 12명이 폐 페스트에 감염되고 이 중 3명이 사망했으며, 직간접적 접촉자 300여명을 전부 격리 조치한 바 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수단 공화국 서부에서는 6년째 흑사병이 창궐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감염된 설치류를 사냥한 고양이가 설치류 자체보다 더욱 위협적인 페스트의 매개체로 꼽히고 있다.[11]
중세 유럽 흑사병의 강력한 후보인 페스트 균 감염은 증세가 격심하고 사망률도 높으며,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법정 제1종 전염병인 동시에 검역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환자로부터의 비말감염(飛沫感染)[12] 또는 환자의 분비·배설물이 부착된 물품으로부터 기도 감염(氣道感染)도 있으나, 보통은 보균동물을 흡혈한 벼룩에 물려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병에 걸리면 장기간의 면역을 얻는데 드물게 다시 걸리는 경우도 있다.
페스트 균 감염의 일반적인 증세는 갑자기 오한전율(惡寒戰慄)과 더불어 40℃ 전후의 고열을 내고 현기증·구토 등이 있으며 의식이 혼탁해진다. 잠복기는 2~5일이고, 순환기계(循環器系)가 강하게 침해받는다. 몇 가지 병 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주된 것은 선(腺)페스트와 폐(肺)페스트의 2가지 병 형이다.
또 페스트균(Yersinia pestis)는 그람 음성균인 단간균(短桿菌)으로 조건에 따라 변형하기 쉽다. 운동성은 없고 아포(芽胞)도 없다.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 예르생이 홍콩에서 발견하여 분리하였다.

5. 피해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전염병 중 사람을 가장 단시간에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병이기도 하다. 급성 페스트로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약 6시간. 한창 기세를 떨칠 때는 엽기적이게도 어떤 사람이 밤중에 죽어서 장례식을 하러 온 친구 2명, 임종을 지켜보러 온 신부, 시체 나른 사람까지 4명 모두 그 다음날 저승으로 간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푸른곰팡이에서 전설의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후 항생제와 백신이 발달하고 독시사이클린 등의 치료제가 갖춰진 요즘 세상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초기대응에 늦어 상당한 사망자가 발생한 인플루엔자 A를 생각해보면 그 엄청난 전염성과 발병 후 사망까지의 시간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6. 치료법


항생제를 투여하여 치료하는데, 병 자체는 의외로 단순한 만큼 여러 항생제를 한꺼번에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까지는 필요 없다. 하지만 발병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적이므로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에 접어들어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페스트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 접어들었지만, 일단 발생하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질병이다. 치료가 늦어지면 초기보다 사망률이 높아진다. 발병시 짧으면 하루, 늦어도 5일 안에 죽기 때문이다. 즉, 증상 발현 즉시 이송, 격리 후 적절한 항생제 투여가 가능한 국가라면 최초 감염자 치료와 대규모 전염, 사망사태는 막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국가라면 대부분 쥐와 벼룩은 진작에 땅 밑 하수구로 몰아낸지 오래인 위생상태가 좋은 지역이라 애초에 발병할 일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다.

7. 역사상의 발병 사례


우리가 흔히 아는 흑사병은 14세기 중엽 유럽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던 2차 대 역병(Second Plague Pandemic)으로 2차 페스트 범 유행이라고도 불린다.
비슷한 페스트 계열의 전염병은 14세기 이외에도 전후로 2차례 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도 불리는 6세기 중엽부터 중동 및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과 1850년대에 발생한 중국 윈난성을 필두로 한 아시아남미 지역에서의 대 역병을 말한다. 각각 1차 대 역병, 3차 대 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1. 1차 대 역병 -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중앙아시아가 병의 기원으로 추측되며 병에 희생당한 게르만인 유골을 분석한 결과 당시 톈산 산맥에서 발견된 유골에도 역병의 조상격 되는 DNA가 검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쪽으로 유목민들이 대거 이동한 것으로 병이 유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서기 541년 경 발생해서 200여년 간 유행했던 범유행전염병으로,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봄에 콘스탄티노플까지 전염되었다.이는 이집트에서 출항한 곡물선에 타고 있던 쥐들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당시 가장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동로마 제국에서는 동시기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이름을 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악일 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1일에 5,000명씩 사망해서 도시 인구가 40%까지 떨어졌다. 그 근방의 사람들의 절반이 이 병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이 병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흑사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았다. 이 역병만 없었다면 동로마 제국이 다시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동로마는 고트 전쟁(서기 534~554년)으로 동고트 왕국을 없애고 이탈리아 재정복에 성공했지만, 흑사병 때문에 경제적인 피해를 입어서 6세기 중반에 침입한 랑고바르드족에게 이탈리아 대부분을 잃었다.
당시 호스로 1세와 전쟁중이였던 동로마는 라지카(조지아)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역병으로 인해 사산 제국군이 철수하자 동로마 제국군이 기회를 노려 쳐들어갔으나 이들 또한 역병으로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류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흑사병의 전조격인 질병으로, 현대 의학자 들은 이 질병을 14세기의 흑사병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페스트균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질병의 유행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던 동로마 제국의 기세가 완벽히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덤으로 브리튼 섬의 로만 브리튼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혀 웨일스로 밀려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몇 세대 후에 이루어질 아랍 세력의 연합에 공헌을 했다고도 한다.

7.2. 2차 대 역병 - 14세기 대역병(大疫病)


[image]
1346년에 유럽 동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353년까지 유럽 전역에 급격하게 확산되었던 대규모 감염 사태로, 대역병, 즉 그레이트 플레이그(Great Plague)라고 불린다. 이때 창궐한 질병 역시 DNA 추적 결과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페스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학계에서 에볼라 출혈열 등의 이견이 있으나 주류는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만약 14세기 직전의 소창궐과 15세기 이후 3차 대역병의 유행이 모두 같은 페스트의 창궐이었다면,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혔던 범유행전염병이 된다.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 명에 달했으나, 대역병의 풍파가 지나간 후 15세기에는 3억 5천만으로 줄었다. 최소 1억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외에 정확하지는 않으나 전세계적으로 2억 명이 넘는 사람이 같은 시기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역사상의 한 기간에 발생한 사망자 통계 가운데 가장 급격한 증가이다. 특히 그 기세는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의 3년간 최고조에 달하여, 유럽 인구의 1/3에서 절반에 이르는 사람이 사망했다. 지역에 따라 발병률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벨기에폴란드의 경우 사망률이 20%에 그쳤던 곳도 있으나, 보다 극심한 지역은 사망률이 80-90%까지도 집계되었다.

7.2.1. 대역병의 원인


중세 유럽을 휩쓴 이 역병의 원인균은 주로 페스트균(Yersinia pestis)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세 당시에는 현대와 같이 체계적인 의학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몇 가지 소수 가설도 있다. 치사율이 높은 여러 세균성 감염의 증후군이었다는 설, 에볼라 바이러스의 조상격 되는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는 설,[13] 탄저병이 원인이었다는 설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이론은 역시 페스트균에 의한 감염이며, 특히 쥐가 옮기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 균(Yersinia pestis)이 전파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14] 최근에는 북유럽·남유럽의 희생자들의 사체에서 추출한 죽은 세포의 DNA를 분석하여, 이들이 페스트균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있었던 모든 역병의 창궐이 페스트균의 단일적 소행임은 확실하지 않으나 페스트가 주축이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대역병이 짧은 기간 내에 유럽 전역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중세라는 시대적 한계에 따른 의학 지식의 부족과 그에 따른 행정적·제도적 미비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에는 현미경이 없었으며, 세균의 발견은 1676년 현미경을 처음 고안한 네덜란드안톤 판 레이우엔후크에 의해서야 이루어졌다. 예방 의학의 발달은 더욱 늦어서, 1877년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와 콜레라, 결핵의 원인이 박테리아임을 밝혀내기 전에는 이러한 역병이 미생물에 의해 일어났음을 알 길이 없었다. 중세의 위생관념은 현대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는데, 사체와 분변을 거름으로 사용했으며, 흙으로 신체를 닦기도 했고, 벼룩이나 쥐 등 유해생물에 대한 방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인류가 손 씻기를 생활화한 것은 1870년대에 들어서였는데, 이전에는 의사가 시신을 부검하던 더러운 손으로 산모의 출산을 돕거나 감염된 환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다른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15]
보건 당국 역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역병의 전파가 공기, 특히 더러운 냄새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으며, 거리에 불을 피워 공기를 태우려 하거나, 기독교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상에 맞게 신앙의 힘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감염자와의 접촉이 주된 전염 경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프랑스마르세유 지방의 경우, 감염지로부터 도항한 이주자에 대한 40일간의 구금을 통해 잠복기를 넘기는 방법으로 전염을 방지하려 했다. 영어로 검역을 뜻하는 단어 '쿼런틴(quarantine)'은 바로 이 40일간의 구금 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통제 조치는 신고하지 않은 보균자의 유입을 초래했으며, 감염자가 급증하여 1348년을 전후해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행정력이 마비되었다.
다만, 흑사병 하면 떠오르는 역병 의사의 복장 이미지는 플랫 에러처럼 현대인들이 가진 중세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흑사병이 유행할 당시 중세 유럽에서 까마귀 가면과 장코트를 입는 역병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상술했듯이 불로 공기를 태우는 등의 미신적 행위가 있었던 것은 맞으나, 까마귀 가면 복장은 이로부터 400년은 더 지난 17세기에 들어서 유행하던 미신으로, 대역병 사태와는 관련이 없다.

7.2.2. 대역병의 전파


역병의 전파 경로에는 여러 추측이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설, 혹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몽골의 지배 하에 있던 중앙아시아 평원 지대에서 시작되어 동유럽의 해상 교역로를 따라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전염 루트는 다음과 같다.
  • 몽골의 크림 반도 침공과 생물전
흑사병의 원인인 페스트균은 중앙아시아의 스텝 기후 지대에 서식하는 쥐 등의 설치류에 기생하던 쥐벼룩을 중간 숙주로 하는 박테리아로, 몽골 제국킵차크 칸국 유목민들이 쥐와 접촉하면서 그 감염이 시작되었다. 1347년에 킵차크 칸국의 군대가 크림 반도에 있는 제노바의 식민도시 카파(페오도시아)를 침공하였는데, 제노바 시민과 몽골군 사이에서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몽골군 부대는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성 안으로 쏘아 보내는 일종의 생물학전을 시도하였다.[16] 중세 공성전 전술 가운데는 죽은 적군 시체나 동물 시체를 성 안으로 날려 보내는 전술이 존재했다. 비슷한 전법을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블라드 가시공도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전투의 결과, 카파 시내에서 대역병의 시작을 알리는 감염이 발생하였다.
  • 죽음의 배(Death ships) 사건
1347년 10월 경, 흑해에서 출발한 12척의 제노바 상선이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에 도착했다.[17] 그런데 선단의 선원들은 대부분 사망한 상태였으며, 생존자 역시 전신을 광범위하게 뒤덮은 고름과 검은 부종을 보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곧 주민들은 선원들이 끔찍한 괴질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칠리아 당국은 해당 선단을 즉시 항구에서 떠나도록 명령했으나, 그들이 떠난 직후 항구 주민들 역시 선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 죽어나갔다. 괴질은 삽시간에 시칠리아 전체로까지 퍼졌으며, 주민들이 이탈리아 각지로 이동하면서 제노바, 피사, 그리고 베네치아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다.
  • 유럽 대륙으로의 전파
>[image]
>흑사병이 1348년 본 항구를 통해 영국에 유입되다
>이 병으로 국민 전체의 30%에서 50%가 사망하다
>
>영국 웨이머스 항에 새겨진 흑사병 동판
1347년 연말에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흑사병 감염이 보고되었다. 마르세유에서는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인 1348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 왕국에까지 퍼져나갔다. 1349년에는 영국의 웨이머스(Weymouth) 항에 흑사병이 도착하여, 수 개월 뒤 런던을 거쳐 스코틀랜드까지 전파되었다. 1350년에는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 감염자가 발생했다. 감염은 인구가 밀집해 있던 대도시에서 특히 심했으며, 상대적으로 낙후하여 산촌 형태의 도시 구조가 유지되었던 곳에서는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유동 인구가 적었던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 일대의 마을들, 또 최초 감염지에서 먼 내륙에 위치해 인구 유입을 차단할 시간이 있었던 벨기에폴란드 일부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주민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유행은 1351년 이미 수천만 명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7.2.3. 유럽에서의 피해


행운은 우리에게 거의 미소짓지 않고, 다가오더라도 꽃이 지듯 재빨리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져 자신이 불멸이라 착각하는 것을 방지하고 스스로 자제하며 살게 하려는 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 1348년, 그리스의 한 작가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수 년에 걸쳐 대규모의 피해를 보게 된다. 이 병으로 인해 7,500만명~2억 명의 인구, 즉 당시의 유럽 인구의 최소 30%에서 50%, 지역에 따라서는 70% 이상이 몰살당한다. 사실 아시아에서도 맹위를 떨쳤지만 유럽에선 위기 때마다 터져 나오는 종말론 등으로 '인류 멸망 카운트다운' 정도로 여겨졌다. 거기에 중세 말기에 크게 성장한 도시들[18]은 전염의 폭증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허나 유럽 사회가 비과학적인 방식으로만 흑사병을 다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유럽에서도 많은 수의 의사[19]들이 나름대로 환자를 격리시키고 환자가 사용한 물건을 태우는 등의 방역 조치를 취했고, 시체 운반인처럼 환자와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안면까지 완전히 덮는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역병 의사 참고.
몇몇 자치도시들은 이러한 방역 조치로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특히 밀라노가 성공적이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병자들을 격리하여 15% 이하의 인구만이 사망했다.[20] 이 외에 베네치아나 제노바 등의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질병 발생구역을 격리하고 외부 선박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그렇다 해도 인구가 밀집된 데다가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대부분 시민의 반 내외가 사망했다. 혹은 베네치아의 외딴섬에 강제로 격리되어 버려지기도 했다.[21] 이 외에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피레네 산맥알프스 산맥 등의 험준한 산간지방들이나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아이슬란드 같이 인구가 적었던 곳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편에 속했다.[22]
애초에 치료도 불가능했을 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채찍질 고행단[23] 같은 행위에 합류했기 때문에 전 유럽의 인구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코니 윌리스의 소설 둠즈데이 북에 흑사병으로 한 마을이 전멸하는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중세 흑사병 발병 원인으로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로 여겨 씨가 마르도록 잡아댄 덕분에 고양이의 개체가 급격히 줄고, 상대적으로 가 대량으로 번식해 대대적으로 병이 번졌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고양이를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오류(?)를 터트려서 쥐의 천적이 사라져 결국 쥐가 더 번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주장인데 중세의 광신과 무식함이라는 편견과 연결지어지는 경향이 있다. 유기동물은 방치할 경우 공중위생의 심각한 위협이 되어 근대 의학이 들어선 후에도 구제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당한 폄하이다.
전문가들은 이 의견을 비판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옮겨가는 전염에서 질병 매개체와의 접촉 차단과 환자의 격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도 고양이, 개 구제령을 내리지 않았던 동아시아, 무함마드가 아낀 동물로서 고양이를 즐겨 기르던 이슬람권도 큰 피해를 입었다.

7.2.4. 유럽 이외 지역의 피해


  • 흑사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에까지 퍼졌다. 북송~남송대 당시 중국의 인구는 1억을 돌파했으나 흑사병에 전란과 맬서스 트랩 등의 문제까지 겹쳐 6,000만명대로 감소한다. 이 때문에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원나라가 흑사병과 여러 가지 막장 테크가 겹쳐 결국 급속히 멸망했다.
  •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 건 다름 아닌 중앙아시아-몽골 지역에 있던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었다. 이미 이 지역의 오랜 이슬람화로 크게 세력이 약해져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해 가며 살아왔는데, 난데없이 페스트가 이 교역로를 통해 전파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의 네스토리우스 공동체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만다. 거의 흔적만 남은 수준.[24]
  • 코카서스 지방은 워낙 험준하고 교통이 안좋았기 때문에 확실히 피해가 덜하긴 했지만 참화를 피해가진 못했다. 그래서 흑사병에 걸렸다고 판명되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조금 몰인정한 처사라고 생각 될지 몰라도 위의 네스토리우스 공동체 처럼 마을의 전멸을 피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집들은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고 문과 창문도 없었는데, 일종의 공동 묘지처럼 쓰였다.[25]
  • 중동에서도 마찬가지로 흑사병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중동권이 의학이 비교적 발전한 편이었다고는 하나, 현재도 페스트는 그리 만만하게 볼 질병이 아닌데 14세기 의학 수준으로 페스트에 맞서 효과적인 대처가 얼마나 가능했을지. 환자 격리 및 시체소각 등의 조치로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으나 이 지역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다.
  • 이집트가 그 타격이 심했다. 지중해 지역과 인도 지역에 모두 접한 이집트는 지중해 무역의 주요한 거점이었고, 이렇게 교류가 많다보니 당연히 전염병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의 저자 윌리엄 맥닐은 여기에 이집트를 지배한 맘루크(Mamluk)에 의한 요인도 든다. 즉 이들이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26] 페스트가 처음으로 퍼진 흑해 연안과 지속적인 접촉을 가졌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1347~1349년 동안 이집트 인구의 1/3이 사망했다고 한다. 1340년대 최초 유행 이후 1517년까지 페스트 유행 횟수를 계산해보면 이집트가 3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리고 시리아에 20회, 이라크에 1회로 그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다.
1347년 첫 번째 유행 당시 페스트는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들어와 나일 강을 따라 상 이집트(남부 이집트)로 진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약 50만에 달하던 카이로의 인구 중 20만여 명이 사망했고, 14세기 중반 800만으로 추정되던 이집트 인구는 이때 1/3의 인구를 잃는 충격과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페스트[27]로 인해 인구는 지속적 감소, 1798년 나폴레옹 침공 당시에는 겨우 300만에 달할 정도였다.
페스트가 이집트에 미친 영향은 막심했다. 도시 인구가 반 토막이 났다는 건 도시 상인 계층과 도시 노동자가 반 토막이 났다는 걸 의미했고, 특히 항구 지역을 중심으로 퍼진 페스트의 특성상 상인들이 우수수 죽어나갔다. 농촌 지역 역시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갔다. 이집트 경제의 두 축인 상업과 농업이 이렇게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유럽 패권 이전-13세기 세계 체제'의 저자 자넷 아부 루고드는 이러한 인구 상실로 인해 이집트 경제와 산업이 충분한 잉여를 생산하지 못하고, 이 손실분을 벌충하기 위해 맘루크 왕조가 더더욱 가혹하게 착취하고,[28] 그러다보니 또 경제와 산업 발전이 더뎌지는 저주받은 사이클이 생겨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이후 이집트는 이전에 누렸던 무역의 중심지 위치를 거의 상실하게 된다.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긴 했지만, 오스만 통치에 있어서는 다른 지역에 우선순위가 밀렸고 무역에 있어서도 오만 상인·포르투갈 상인·인도 상인들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흑사병 때문에 인구가 너무 줄어들어서, 유행이 잦아든 후 유럽에는 다중 유산 상속을 받아 부유한 사람이 늘어나고, 인구가 크게 줄어든 탓에 노동자의 임금이 많이 상승하는 등 경제적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일꾼들이 식사 제공에 많은 돈을 요구했으며, 이를 제재하기 위해 이 제한 선을 그었으나 그딴 거 없이 일꾼들이 많은 임금을 받았다.
한반도로도 흑사병이 전파되어 고려에서도 흑사병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특히 충목왕1348년에 전염병으로 사망했는데, 이 전염병이 가리키는 병이 바로 흑사병이라는 것이 유력하다.

7.3. 중세 이후


참고로 유럽에서는 1720년 마르세유, 1770년대 모스크바에서 발병된 이후 한 번도 흑사병이 나타나지 않았다. 위생 상태의 호전이 이유로 거론되지만, 이 무렵 유럽에서 현재 대형 쥐들의 주류를 차지하는 시궁쥐(Brown rat)와 이전까지의 주류였던 곰쥐(Black rat)들 사이의 생존경쟁이 벌어졌고, 그때 승리한 시궁쥐들에 기생하는 벼룩이 전염력도 약하고 인간 를 안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7.4. 3차 대 역병 - 19세기 아시아


19세기 아시아에서 중국과 인도를 기점으로 약 반세기 동안 페스트가 대대적으로 유행하였다. 이를 3차 페스트 범 유행, 3차 대역병 등으로 부르며, 약 1200만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비록 유럽에서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아시아를 일시적으로 방문하였던 유럽인들 중 페스트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례가 상당수 나타났고, 특히 인도홍콩 등 아시아에 대규모의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이 페스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는 대 페스트 방역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으며, 페스트가 유행했던 대만만주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제국에서도 페스트 방역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7.5. 20세기 이후


흑사병은 사라진 역사 속의 질병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흑사병 병원균은 현재까지 여전히 자연에 존재하며 개도국 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계속 사례가 발견되는 질병이다. 야생동물과 접촉 후 발병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서부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1건에서 17건까지(평균 약 7건) 꾸준히 흑사병의 인간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20세기 초 서부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하여 점차 시골로 퍼져나가 최근에는 주로 뉴멕시코 주 북부·아리조나 주 북부·콜로라도 주 남부와 캘리포니아 주·오레곤 주 남부·네바다 주 서부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06년에는 17명이 감염되어 2명이 사망하였고, 2015년에도 16명이 감염되어 4명이 사망하였다.(출처: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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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오레곤주의 폴 게이로드(Paul Gaylord)가 길고양이에게 물려 흑사병에 감염된 소식이 보도되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의 조사 결과 집 주변에서 죽은 쥐들의 시체나 페스트균의 흔적은 없었고#, 사살된 고양이의 사체에서 페스트균이 검출 되었다.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했다.# 그러나 흑색으로 변해버린 양 손의 손가락 전부와 대부분의 발가락은 치료를 받는 도중 모두 잘라내야 했다. 1980년대에도 10살짜리 어린 소녀가 흑사병에 감염된 길고양이에 물려서 전염된 사례가 의학계에 알려져 있다.#
2012년 마다가스카르에서 256명이 발병, 60명이 사망하여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3년 12월 11일 마다가스카르에서 20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영국 가디언, BBC 등이 보도했다.(#) 예전부터 고지대의 마을에서 발병사례가 있었으나, 최근들어 낮은 고도의 마을로 내려오고 있으며, 전염병 시즌인 7월~10월 사이에 발병한 게 아니라 12월 발병에, 특히나 사람이 많고 위생 상황은 열악한 감옥 등에서 발병이 증가하여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을지 우려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10월 WHO자료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에서 194명 발생 30명 사망(치사율 15.5%, 약 2/3가 폐 페스트, 1/3이 림프절 페스트)을 기록하고 있다. 주로 고지대에 발생이 집중되고 있으나 해안 마을에도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흑사병 유행은 무덤에서 조상의 시체를 꺼내어 옷을 갈아입히는 파마디하나라는 특유의 풍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9년에는 사망자가 24명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008년 티베트에서 사망자 2명이 나왔다.
2014년 3명, 2016년 1명, 2017년 1명이 중국에서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 감염 원인이나 감염 경로는 공개되지 않았다.
2019년 5월 1일 몽골 서북부 바얀올기 지역에서 마멋생고기와 생간을 먹은 남녀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이에 따라 이들과 접촉한 118명에 대해 6일간의 격리와 함께 항생제 투여 등 예방적 조치를 취했으며 격리 조치된 118명 중에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격리 인원이 이보다 많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5월 7일 추가 발생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이날부로 격리 조치를 해제했다.(기사)
2019년 11월 12일, 베이징에서 페스트 환자 2명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기사). 환자는 2명 모두 네이멍구 자치구 중부 시린궈러맹 쑤니터좌기(锡林郭勒盟 苏尼特左旗)[29] 출신으로, 현지에서 감염 및 발병하여 베이징으로 이송 후 확진되었다. 현재 베이징시 차오양구 보건당국에 의해 싼리툰 인근의 서우두(首都)의과대학 부속 베이징 차오양병원에서 예방조치가 취해졌으며, 기본적인 보도 이외에 자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총정리) 11월 17일 55세 남성 환자 1명이 추가로 확진되었다. 이 환자는 야생 토끼를 잡아먹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앞서 폐 페스트를 확진받은 2명과 달리 림프절 페스트라고 한다.(기사) 11월 28일 확진 환자가 한 명 더 나왔다. 이로써 중국에서 이달 들어 흑사병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총 4명으로 늘었다.(기사)

8. 미디어



8.1. 게임


  • 사이퍼즈 블루문 - 여기서 흑사병의 원인이 검은 개(다른 세계의 존재)라고 언급하였다.
  •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 - 1편 및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이벤트 및 설정으로 발생한다. 2편은 역사적 설정을 켰다면 1345년 이후 대유행하는 전염병이며, 광견병과 함께 치사율이 가장 높은 병인데다가 순식간에 확산되어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것까지 동일하다.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아이슬란드 정도. Reaper's Due DLC에서 발병 시점을 역사적 설정/게임 시작 후 200년 뒤 대유행/발병하지 않음으로 설정할 수 있다.
  • 토탈 워: 미디블2 - 후반인 1340년대에 발병하는 재앙이다. 전염병 자체는 심심할 때마다 일정 확률로 무작위의 도시에서 발생하지만 이 때에는 이벤트 영상이 뜨면서 몇 턴안으로 온 유럽의 거점들에 흑사병이 창궐한다. 일단 전파된 도시는 모든 무역수입이 0으로 내려가고 인구는 턴마다 쭉쭉 떨어지며 도시나 성 안에 있었던 요인들은 직업 불문하고 매턴마다 사망할 확률이 생긴다. 설령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충 몇 턴간은 이들이 보균자가 되어서 다른 거점에 들어갈 때 반드시 그 거점에도 역병을 전파하는데 스파이 같은 요인은 남의 나라 도시에 들어가서 깽판을 치기도 한다.[30] 이렇게 대충 20-30턴 동안 사람을 뭉텅이로 추수하다가 '흑사병이 사그라듭니다' 라는 이벤트 문구 이후에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사그라든다.
  • 플레이그 테일: 이노센스 - 두 남매의 처절한 여정을 그린 14세기의 중세를 배경으로 했으며, 쥐가 사람을 잡아먹는 등, 상당히 공포스럽게 표현했다.[31]
  • 댄스 마카브르 - 흑사병이 돌던 시기의 중세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프리 호러 게임. 흑사병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주제도 다루고 있다.
  • 겟앰프드 - 흑사병과 비슷한 컨셉인 페스트 닥터가 있다. 고유 상태이상을 지녔으며 걸리게 되면 체력과 기력을 주기적으로 감소시키거나 일정시간이 지난 뒤 수면 상태이상을 건다. 사망으로 몰고가는 현실보단 순화된 편이지만 체력·기력 감소가 걸리면 죽거나 되살아나지 않는한 효과가 절대 풀리지 않으며 피격 여부와 상관없이 전염된다.
  • 디스아너드 - 메인 배경이 되는 던월 시에 흑사병이 모티브인 역병이 퍼진다. 도시 곳곳에서 쥐가 심심찮게 보이고, 쥐떼를 이용한 플레이도 가능.
  • 전염병 주식회사 - 시나리오로 존재. 정상적으로 획득할 수 없으며 프리미엄 버전 구매로 얻을 수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 블라디미르의 궁극기 혈사병은 혈우병과 흑사병을 적절히 합친 단어로 추측된다.

8.2. 소설


  • 알베르 카뮈페스트(1947)
  • 쌀과 소금의 시대: 흑사병으로 중세 유럽인(프랑크인)들이 거의 멸종한 대체역사소설. 살아남은 유럽인 후예들은 외딴섬이나 벽지에서 겨우 명맥만 이으며, 일부는 오스만 제국 궁정에서 동물원 비슷하게 혈통 보존용 노예로 머물렀다.[32]
  • 둠즈데이 북(소설)
  • 더 위쳐 - 호수의 여인: 소설상에서 시리가 엘프들의 세계서 탈출해 본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다양한 세계와 시공간을 워프하다 흑사병에 걸린 세계를 잠시 스쳐지나가는데 그 때 옮아온 벼룩 한마리가 본 세계에서 카트리오나라는 배에 옮겨타고 그 배에서 항구를 통해 병이 퍼지게 되어 엄청난 사상자를 내게 된다.
  • 늑대와 향신료 : 11세기~14세기중세 유럽에 대한 고증으로 유명한 작품이니 만큼 흑사병이 등장한다. 작중에서 인구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든 역병이 등장하는데 모티브가 바로 흑사병이다.
  •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 중세 수도원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작중 여주인공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흑사병이 등장한다.
>『여기에 온 방랑 수도사가 앓던 병이었어.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아파하더니 사흘 만에 죽었지. 그리고 그때부터야. 하나둘 고열로 쓰러진 건. 검게 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죽어갔어.』
>『그건….』
>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나, 흑사병이겠지.
>발병하면 열 명에 아홉은 죽었다는 절망적인 병.
>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들다》 中
  • 문제아 시리즈 2권에서 등장하는 마왕의 이름이 페스트이다. 자세한 사항은 추가바람.
  • 던전 디펜스: 작중에 흑사병이 퍼지며 그걸 미리 알고 있었던 단탈리안[33]이 흑사병 치료제인 흑색허브를 전국에 모든곳에서 미리 사들이고 그 덕에 부자가 된다.

8.3. 영화



9. 여담


  • 에이즈가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연관 관계가 있다고 하니 흠좀무.(#) 다만 지금 에이즈는 약만 잘 먹으면 거의 완치된다고 봐도 된다.
  • pest on(upon) him은 우리말로 염병할 놈이란 뜻. 요즘은 cancerAIDS를 많이 쓰고 있다.
  • 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으로 만든 십자가를 같이 묻어주곤 했다. 고해나 보속을 못 이루고 죽은 사람은 이렇게 해줘야 편하게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뱀파이어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직 안 죽은 환자들을 무작정 생매장했는데 그들이 다시 걸어나와 쉽게 죽일 수 없는 뱀파이어의 특징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 영어 철자의 표음성을 망가뜨린 만악의 근원대모음추이가 일어난 원인이 흑사병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사람들이 흑사병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됐고 그 결과 다양한 방언 사용자들이 접촉하게 된 것이 급격한 발음 변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 물론 확실한 건 아니며 어디까지나 추정 중 하나일 뿐이다.
  •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뱀파이어의 수장 앙드레 대교주(신해철 扮)가 뱀파이어들에게 사람을 물지 말라는 경고를 한 이유가 바로 이 병 때문으로,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에 뱀파이어 사회는 인간계의 흑사병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피를 마실 수 없게 되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같은 동족이나 짐승의 피로 연명했지만 그것마저도 한계가 있어 결국 금단의 수로 흑사병 환자들의 피를 먹게 되었는데, 여기서 동족 뱀파이어들의 피를 먹게되며 일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뱀파이어들의 유전자에 흑사병으로 인한 변이가 서서히 이루어져 원래는 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되는 뱀파이어들이 사람을 물면 그 사람은 1년 이내에 죽는 시한부성의 유전자를 지니게 된 것이다.
  • 2019년에는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돼지들에게서 흑사병과 거의 양상이 흡사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유행하고 있다. 거의 돼지들에게는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처럼 병에 걸리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죽으며 엄청난 전염력을 보인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로 인해 경기도 북부 지역 농가들은 비상에 걸렸고 김포시의 양돈농가들은 싹다 전멸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 해외에서는 흑사병에 좋다는 약초와 제조법, 그것으로 만든 물약을 인터넷 통신으로 판다고 한다.
  • IL-2의 별명 중 하나가 흑사병(Schwarzer Tod)이다.

10. 관련 문서



[1] 프랑스어로 Peste라는 변형도 있다.[2] 이탈리아어로 Peste nera라는 변형도 있다.[3] 물론 천연두는 과거에 박멸된 지 오래다. 하지만 흑사병은 중세시대 당시의 악명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음에도 걸핏하면 보이는 현재진행형 병이다.[4] '가장 많은'이라는 부분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만명, 심한 경우 백만 명 단위의 사람을 죽이는 인플루엔자는 결코 만만한 병이 아니다.[5] 학자들마다 추정하는 규모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최소가 7500만명인 것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6] 혈액 내에서 혈전이 생성되고 지혈 작용이 적절히 일어나지 않아 출혈이 발생함.[7] 사실 Black Plague(흑사병)는 14세기 중기에 퍼진 버전을 후대에 지칭한 것이고, 14세기 당시에는 Great Pestilence(대 페스트), Great Plague(대 역병), Great Mortality(대 사멸)이라고도 한다. 최근 연구 결과로는 당시의 페스트의 감염구조가 현재 대부분의 병원균의 선조 뻘이라고 한다. 그 전의 병원균은 절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8] 보통 서혜부의 림프선이 염증으로 인하여 부어오른 것, 또는 체표에 가까운 다른 림프선, 특히 겨드랑이나 가랑이의 림프선이 염증으로 인해 부어오름.[9] 구역질·구토·복통·설사 등.[10] 조직이나 세포의 일부가 죽은 것.[11] 고양이 역시 설치류를 사냥할 때 설치류와 접촉하므로, 벼룩이나 균 등이 사냥한 설치류로부터 옮아서 매개체가 된다.[12] 환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온 병원균에 의하여 감염됨.[13] 일부 연구자들은 흑사병의 전파 범위나 그 속도, 증상이나 유전자 연구 등을 근거로 흑사병의 실체가 페스트가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성 출혈열의 한 종류가 아닌 가하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14] EBS의 한 종교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나왔다. 흑사병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자 이슬람의 학자들과 가톨릭계 국가의 학자들이 모여 서로 교차 연구를 진행하고, 이들은 신성한 을 사용하면 이러한 흑사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교황 주위에 불로 벽을 만들어 교황을 지키자는 결론이 나왔고, 벼룩들이 그 불을 뛰어넘지를 못하므로 교황은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15] 오히려 산파의 경우 아이를 받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한다는 관습이 있었기에 산모의 사망률이 매우 낮았다. 문제는 당시 의사들은 이를 미신으로 치부했던 것. 이러한 문제는 1847년에 와서야 이그나즈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에 의해 개선되었다. 패혈증 항목 참고.[16] Biological Warfare at the 1346 Siege of Caffa.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8 (9), 971-975.[17] Michael Platiensis (1357), quoted in Johannes Nohl (1926). The Black Death, trans. C.H. Clarke.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pp. 18–20.[18] 중세 유럽은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와 세계 전체에서 가장 높은 도시화율 및 1인당 소득을 자랑했다. 이는 상공업의 발달과 고대로부터 계승된 도시 문명의 전통에서 기인하는 특성이다.[19] 대표적으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있다.[20] 이때 밀라노가 사용한 격리 방식은 흑사병에 걸렸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병자의 가족들을 모두 집에 가둬놓고 굶어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는 방법이었다고 한다...감염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당시 기준으로는 좀 급진적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21]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된 일명 포베글리아섬, 16만구의 흑사병 환자 시체가 이 섬에 버려졌으며 정신병원이 한때 들어섰으나 병원장의 끔찍한 만행이 드러나고 나서 몇년후 폐업해버렸다. 귀신의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절대로 제한되어 있다.[22] 이 때문에 현대에 와서도 공중보건 상 교통이 편리해질수록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아 공항이나 항구 등에 질병 여부나 예방접종 여부를 조사하는 직원들이 있다. 만일,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을 경우 그 자리에서 돈을 내서 백신을 맞거나 거부할 경우에는 입국 금지 시켜버린다.[23] 흑사병을 타락한 인류에게 내린 하느님의 징벌로 해석하며 스스로의 몸을 채찍질하면서 순례하는 집단들로, 이들은 흑사병의 전파를 가속화했을 뿐더러 폭도로 돌변해 마을을 약탈하기도 했다.[24] 이는 키르기스스탄의 세계 최대높이 산정호수인 이식쿨 호수 인근에 있는 네스토리우스 공동체의 묘비의 연도를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지는데, 1336년까지만 해도 한 해에 한두 개 정도였던 묘비가 1337~1338년에는 32개, 1338~1339년에는 72개에 달한다. 무슨 이유로 인해 사망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건데, 바로 페스트가 그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식 쿨 호수 인근의 네스토리우스 교단 공동체의 묘비는 1345년을 끝으로 사라진다. 14세기 페스트를 전후로 이 공동체가 거의 궤멸해 버린 것이다.[25] 이렇게 죽은 자들은 따로 매장 하지도 않고 그냥 백골 상태로 그 안에 방치한다. 따라서 아직까지 현존하는 이런 무덤들에는 지금도 수많은 백골이 그 안에 쌓여 있다.[26] 맘루크는 원래 노예 군인을 의미하는 말로, 군인으로 시작했다가 힘을 잡아 14세기부터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14세기 이집트는 오직 맘루크 출신만이 요직에 올랐고 주요한 업무를 담당했기에, 지속적인 노예 군인의 공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27] 위에서 언급한 맘루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지도? 다른 어느 중동 지역보다 심한 결과를 보여줬다.[28] 얘네는 원래 지들끼리도 싸우기 바빴던 애들이라, 이런 상황에서 남들이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만한 경제 발전 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듯.[29] 맹(盟, 멍)과 기(旗, 치)는 네이멍구 자치구의 행정구역으로 각각 지급, 현급이다. 좌기라는 건 충청좌도, 충청우도처럼 쑤니터 좌기, 쑤니터 우기 둘이 있는 것이다.[30] 왕이건 교황이건 짜르건 황제건 추기경이건 유능한 장군이건 짤 없이 다 죽는다. 확실하게 병으로 부터 차단하려면 배에 태워서 바다 한 가운데에 띄워놓는 방법도 있지만 이러다가 풍랑이라도 만나면 전부 익사할 가능성도 있다.[31] 다만 역사적 고증에 따른 흑사병의 이야기가 아니라 판타지가 가미된 이야기이며,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비슷한 어드벤처 게임이다.[32] 이 장면이 나온 직후에 인도군이 페르시아에서 캅카스를 거쳐 세운 기지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을 직접 공격해서 오스만 황실이 이탈리아 반도로 피신하는데, 오스만 궁정에 있던 프랑크인 노예들의 행방은 따로 언급이 없다.[33] 정확히는 단탈리안에게 빙의된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