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학생 활동

 



1. 개요
2. 학생회
2.1. 남성 중심 총학 첫 탄생
2.2. 25대 총학생회장 후보자 낙선
2.2.1. 반론
2.3. 25대 총학생회장 보궐선거
2.4. 최근의 동향


1. 개요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의 학생회 활동 관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이다. 부족한 점이 많다. 혹시나 가톨릭대 출신 중 나무위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 항목을 보게 된다면 추가했으면 좋겠다.

2. 학생회



2.1. 남성 중심 총학 첫 탄생


1999년 이전 까지는 총학의 구성원이 여성들로만으로 구성되었고[1], 단일의 후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21세기 첫해 15대 때 처음으로 남학생이 부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였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첫 남학생이었던 95, 96학번 예비역들이 학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따라서 15대 총학선거는 그동안 드물었던 복수 후보자로 선거가 치루어졌으며 상당히 과열의 양상을 보였다.[2] 당선된 총학 임원진들은 처음으로 남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그 해 15대에 당선되었던 총학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로 당선되었다.[3] 바뀐 총학의 분위기 때문인지 학기 초부터 이전과 달리 등록금 투쟁을 강력하게 진행하기도 했고[4], 축제나 농활 등의 규모가 커졌다.[5] 하지만 학생회 전반이 임원진들의 개인 역량에 기대어 움직였고, 기존의 학생회와의 연결고리가 약했기 때문에 다른 대학과의 네트워크와 전국적인 학생운동의 흐름과 단절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2. 25대 총학생회장 후보자 낙선


2007년도 이후 가톨릭대학교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6] 그래선지 몰라도 누구도 총학 일에 잘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대로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총학의 학생후보는 전통적으로 단일후보가 나왔다. 다른 학교 총학선거와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이 총학후보들은 대부분이 새로이 나오거나 2~4개의 계보에서 나와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단대 학생회장, 학부 학생회장 등의 기존의 총학과 연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회장후보에 출마했고 회장후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보면 '''공약도 똑같고, 하는 짓들도 똑같고, 사람도 똑같고(...)'''
그런데 2011년 11월, 2012년에 활동할 25대 총학선거에서는 꽤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단일후보로 기존의 총학이나 학생회에 연관된 사람들은 출마하지 않았고, 한대련, 민주노동당 소속 대학생이 선본을 꾸려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쪽에서는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경력으로 인하여 학교가 소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하는 생각들도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일이 대학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교의 중심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 있는 '가톨릭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하, 가좋사)' 사이트에서 총학생회 후보자의 거짓말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총학생회 후보자의 선거 포스터에는 한대련,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 내역이 완전히 누락되었고, 이로 인해 가톨릭대 학생들은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적인 경력을 고의적으로 누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시했다. 후보자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민주노동당 활동은 인정하지만, "제가 한대련 소속이라는 말은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라며 한대련과의 연관성을 끝까지 부인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도 인정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다녔는지[7] 밝히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물의를 빚었다.
후보자가 한대련과의 연관성을 끝까지 부인했으나, 선거의 유권자인 가톨릭대 학생들에 의해 후보자가 활동한 '대학희망'이라는 단체가 한대련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후보자 본인이 대학희망을 한대련에 종속시켰으며, "대학희망은 한대련과 함께합니다" 라는 발언을 하고 한대련에 회비를 납부한 사실까지 가좋사에 낱낱이 폭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후보자와 대학희망에서 함께 활동하던 한 09학번 학우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총학 후보자가 가톨릭대 8000명 학우들을 향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분명해지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투표 거부 운동을 펼쳤다.
일부 학생들을 후보자가 소속된 민주노동당과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한나라당 아르바이트로 몰아갔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05학번의 "(한나라당)알바들 고생 많다.. 이런 글쓰면 얼마주디?" 라는 발언이 있었다. 진실을 요구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한나라당 아르바이트 생으로 몰리자 더욱 격분해 가좋사에 후보자 사퇴 요구글을 실명으로까지 올리고, 후보자가 한대련에서 활동한 증거 자료를 꾸준히 찾아 업로드하였다. 선거 막바지에 후보자는 자신이 소속된 '대학희망'으로부터 자신과 대학희망(즉 한대련)과는 2011년 8월 이후 관련이 없다는 사실확인증명서를 발급받아 해명을 시도하지만, 한대련에서 12월 2일에 활동한 사실기사이 밝혀지며 거짓말로 드러난다. 12월 2일은 심지어 투표 마지막 날이었다.[8] 즉 후보자는 투표 당일까지 학생들에게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한대련에서 활동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총학생회장 후보자의 끝없는 거짓말에 가톨릭대 학생들은 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총학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선거 종료 1~2일전이 되자 급해진 총학생회장 후보자측 선본에서는 자신들의 지인들을 대거 동원하여 지나가던 학생들을 납치하다시피 데려가거나, 쉬는시간 이외에도 강의에 방해가 될 정도로 투표하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거의 강제로 투표율을 끌어올리려는 민폐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9] 후보자의 거짓말과 후보자측 선본의 파렴치한 행위를 본 학생들은 더욱 총학후보와 선거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총학선거의 투표율은 가톨릭대 역사상 최저 수치인 45.7%로 종료되었다.# 가톨릭대학교 총학 회칙에 총학선거의 후보가 단일후보일 경우 투표율 50%가 넘지 않으면 자동 낙선이 된다는 조항[10]이 있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한 총학후보는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낙선하였다.# 결국 2012년 총학은 구성이 되지 못했으며, 단대학생회장+총동아리연합회장으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가 총학을 대신하게 되었다. 투표율 45.7%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였는데, 이를 통해 확실해진 것은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잘못된 현실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동조하는 경향이 갈대밭에 불붙듯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후보자는 선거가 끝난 뒤 낙선사례에서 자신과 선본측의 잘못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채로 자신을 지지해준 학생들(45.7%)에게 감사하고(참고로 45.7%는 찬성 비율이 아닌 투표율일 뿐이다. 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45.7%의 표 가운데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알 수 없다) 더 준비하겠으며 다음에 보자는 식의 발언을 남겨 논란이 됐다.

2.2.1. 반론


2011년 25대 총학선거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존의 총학에서 경험을 쌓던 사람이 아닌, 전대련출신의 학생이 선본을 꾸려서 단일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라고 한켠에서는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경력으로 인하여 또 다시 총학이 운동권에 예속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학교의 중심 커뮤니티라고 말할 수 있는 '가톨릭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하, 가좋사)'에서 누군가들이 출마한 총학의 이력과 학과를 이유로 무차별 흑색 선전을 일삼기 시작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종교학과, 철학과에 에둘러 묶어 '종死철'로 악의적 워딩을, 또 국문과 프랑스어문화학과에 대해서도 흑색 선전을하자 이에 분개한 인예대 학생들이 당시 커뮤니티[11]를 대거 탈퇴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총학 선본에서는 이 발언을 무리들에 대해 회유책을 사용하였고 이에 흑색 비방을 일삼던 무리들은 오히려 승리감에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서 언급했듯 총학생회장의 강력한 리더쉽과 개혁을 바랬던 학우들은 실망을 느낀 학우들이 총학 선거를 보이콧하게되고, 이로 인해 선거 종료 1~2일 직전에도 투표율이 미진하자 급해진 선본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을 동원하여 선거 독려, 종래엔 강권하는 분위기까지 치달아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총학선거의 투표율은 45.7%로 종료되었다.

2.3. 25대 총학생회장 보궐선거


보궐선거마저 단일후보가 출마하거나 후보 자체가 없지 않겠냐는 학생들의 우려와는 달리 , 2012년 3월에 치뤄진 25대 총학생회장 보궐선거는 두 후보가 나왔다. 두 후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약에 있었는데, 기호1번은 현실성에 기반한 공약이 주를 이룬 반면 기호2번은 실현 가능성은 없으나 시도에 의미를 두는 공약이 주를 이뤘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을 남발하자 기호2번 후보자는 정책적으로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공약 이외에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기호1번 후보는 MT자리에서 성희롱 혹은 성추행을 했다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으나 당시 MT에 참가한 학생들의 증언으로 인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비록 사실이 아님에도 불미스러운 소문이 도는 것에 대해 사과이다. 반면 기호2번 후보는 민주노동당 활동은 인정하고 나왔으나 한대련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은 이번 선거에서조차 없었다. 참고로 기호2번 후보는 2011년 25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는 학생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나 현실성을 떠나서 이번 기호2번 후보의 선거운동 중 또 물의를 일으켰다. 첫번째는 학교 선관위에 등록돼있지 않은 학우들을 끌어내어 선거운동을 시켰고, 두번째는 앞에서도 언급되었던 선거운동원을 투표기간에 동원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강제로 선거하게 하는 불법이 자행된 것이다. 첫번째 사유는 선관위에 적발되어 경고를 받았고, 두번째 사유는 선관위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일단 아무도 신고를 안한모양이다.) 이 일로 인하여 저번까지 지지했던 지지자들 조차도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 대놓고 기호2번 후보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투표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기호1번은 60.82%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고, 기호2번은 37.54%의 득표율로 낙선의 아픔을 다시금 겪게 되었다.

2.4. 최근의 동향


2014년 말, 총학생회 선거 때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채 2015년으로 넘어갔다. 2015년도 4월에 보궐선거를 실시했지만 이번에도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은 개봉하지도 못한채 올해 총학생회는 꾸려지지 못했다. 이번 투표 거부현상에 대한 가대학보의 분석글 2014년도가 27대 째 총학생회로, 구성명은 '어깨동무'이다. 2013년도에는 '희망 메아리', 2012년에는 '따뜻한 드림', 2011년에는 '공감나누기', 2010년에는 '당찬우리', 2009년에는 '희망집합체', 2008년엔 '즐겨찾기'였다. 22대 총학생회의 주요 공약은 여러군데 존재하는 옥상을 쉼터로 바꾸고, 먼곳에서도 이용가능한 셔틀버스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전부 실패'''. 다만 등록금은 동결 성공했다. 셔틀버스는 최종적으로 실패로 긑났으나 니콜스 옥상을 쉼터로 만든 공약은 성공했다.
23대 총학의 주요 공약은 22대에서 이어지는 정규노선 통학버스 운영 및 학생휴게시설 확보, 등록금 카드분할납부제[12], 도서관 확충, 군대 내에서 사이버강좌를 통한 학점 취득[13], 생리공결제 등등. 최근 가톨릭대가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에 선정되면서 불거져 나온 학부통폐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14][15]
물론 총학[16]에서는 결사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비교적 입지가 굳건한 상경계열[17]이나 사회과학 계열학과 학생들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상경/사회과학 계열의 교수 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학과 통폐합과 정원 조정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함으로써 결국 이 갈등은 교수진 vs 학교 당국의 구도로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총학생회는 발빠르게 학제 개편과 관련된 의견을 모았고, 교수들의 반대를 포함한 학내 반대 여론이 컸기 때문인지 당시 학교는 학제 개편를 하지 않았다.
당시 학제 개편과 관련한 커뮤니티에서 나타난 일부 여론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학과 통폐합이 처음엔 '컴정프종'이라 불리는 가톨릭대 교내에서 가장 점수가 낮다고 이야기된 4개 학부[18](음악과 제외) 컴퓨터정보공학부, 정보통신전자공학부[19], 프랑스어문화학과, 종교학과와 심리학과 야간, 생명환경공학부(생명공학부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문제이다.)가 없어질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게다가 10년 1학기 전과 학생 통계 결과 국어국문학과[20], 국사학과가 전과 유출학생이 제일 많다는 내용이 나타났고, 해당 학과들도 위기를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는 결국 위에 나온 대로 1차 변경안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학제 개편을 강행하지는 못했다.
결국 학제 개편은 몇년후 몇몇 학과를 일부 학부에 통합하는 수순으로 마무리되었다.[21]
그런데 2018년 학교는 2019년부터 종교학과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22] 사실상의 폐과 조치다. 학교에서 공청회를 실시하고 종교학과 학생회와 졸업생 및 강사와 의견을 들었다고 하지만, 이미 결론이 정해진 일이었다고 전해진다.[23] 만약, 2018년에도 총학생회 혹은 종교학과 학생회의 상위 학생회인 인문과학예능대[24]의 학생회[25]가 구성되어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연대할 수 있었다면, 학교의 결정을 저지하거나 늦출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26]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비단 가톨릭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회로서의 책임은 무거운데 학생회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의 20대가 그렇듯 아르바이트나 취업 준비만 해도 빠듯하다. 학생회 경험을 스펙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으나, 현재 취업준비 양상을 보면 학생회 경험이 이렇다 할 메리트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을 대표하거나 일하는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대학생활에서 몇 안 되는 리더십 함양의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학내 여론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학생들을 대표하여 학교와 소통하는 과정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사회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학생회는 많은 희생이 필요한 활동이다. 일정한 직책에 이르는 경우 소정 금액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을 뺏기는 일이 많다. 학제 개편, 등록금 인상 등의 특정한 이슈나 축제와 같은 행사가 없더라도 정기 회의를 포함한 일상 활동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학교의 학생회가 그렇듯, 학생회비와 관련하여 불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27] 그러니 누가 학생회를 하고 싶어하겠는가.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면 할 유인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다룬 학제 개편 등 학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학생회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앞으로도 학생회에 대한 관심은 적겠지만, 학생회장으로서 책임을 질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해보기 바란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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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동향 [29]

2019년도에는 총/부총학생회장과 생활과학대 학생회장에 각각 한 후보만이 입후보하였으나 총학은 투표율 미달로 낙선, 생과대 단대장만 당선되었다.
2019년 3월 말에 치뤄진 보궐선거에 총학생회, 이공대 학생회장, 총동아리연합회장에 각각 한 후보만 입후보하였다. 지난 선거에서 투표율 미달로 아쉽게 낙선했던 총학 후보측이 선거 홍보에 열을 올렸으며 학교선관위 측에서 과잉투표독려로 경고(…)를 받기까지 했다. 결국 총학선거는 유효 투표율 50%를 간신히 넘긴 50.94%를 달성해 당선, '''몇년만에 총학이 구성되었으며''' 다른 두 후보도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1] 그도 그럴 것이, 1995년 가톨릭대학교 통합 이전에는 성심여대였기 때문이다. 1995년에 입학한 남학생이 군휴학 없이 4학년이 되려면 98년도는 되었어야 한다. 공학으로 전환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이고,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비율이 높을 때였다.[2] 선관위가 양측 후보캠프의 항의에 힘들어하기도[3] 2000년 대학내일 신문 참조[4] 단식투쟁, 등록금 추가기간 내기 운동 등[5] 지금은 상상도 못할일이지만 메인 무대가 성당 잔디밭에 세워졌었다. 물론 축제가 끝난 뒤 잔디가 모두 압사(...)당해 그 해 내내 성당 잔디밭은 출입금지가 되었고, 그 이후로 축제 메인무대는 운동장으로 옮겨졌다. 또한 부천시장 원혜영이 와서 축사를 하기도 함. 재미있는건 당시 부총이 부천시장보다 학교에선 총학생회장이 우선이라며 총학생회장 먼저 우대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6] 운동권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은 특정 학교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한편 2004년 총학생회 당선이 무효되는 사태가 있었다. 해당 사태가 운동권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다.[7] 정확히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중앙당위원회'로 활동했는데, 이조차도 후보자 본인이 공개하지 않고 성심교정 학생들에 의해 밝혀진 내용이다.[8] 25대 총학생회장 투표기간은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부터 12월 2일 금요일까지였다.[9] 그 외에도, 어두컴컴해지는 저녁에 건장한 남학생 3~4명이 학생 하나를 에워싸고 "선거 하셨어요?"를 물어본다거나.. "예쁜 여자랑 못생긴 여자가 같이 지나갈 때는 못생긴 여자를 불러야 해. 예쁜 여자는 평소에도 시선을 많이 받아서 꿈쩍하지 않는데, 못생긴 여자는 평소에 받지 못하던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하거든" 등 이런 식으로 선거 독려하는 행위는 거의 선거회칙 위반에 가깝다라고도 볼 수 있겠다.[10] 가톨릭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중 선거 시행 세칙 제5장 33조~35조[11] 당시 싸이월드 내 커뮤니티인 가좋사[12] 현재 삼성카드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13] 군내 학점 인정제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학교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14] 학교 측에서는 현재 39개인 학과/전공을 30개로 축소할 계획.[15] 결국 몇몇 학과를 학부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학제를 개편한 바 있다.[16] 2010년 당시 23대 총학[17] 경영학과의 경우 경영대학 설립과 관련된 불만이 있었다.[18] 사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 발상이다. 입학 점수는 그저 선호도일뿐이라 매해 변한다. 프랑스학과는 1980년대 학교에서 가장 인기 높은 학과였고 1990년부터 2000년 초반까진 정보통신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는 간호대와 같은 점수대였다. 이걸로 경쟁력을 따지는건 고등학생들과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정말 막 입학한 신입생들 중 일부나 하는 발상이다. 참고로 요즘은 사회복지와 심리가 속한 사회과학부, 이과는 2018년 기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생명 환경학부가 뜬다.[19] 애초에 공학 계열이 적어 공학 계열 신설과 확충이 숙원인 학교에서 전통적인 공학 계열인 두 학부가 통폐합 대상에 올라갈 가능성은 전무하다. 게다가 두 학부는 건겅 보험 기준 취업률이 흔히 알려진 대학들 중 항상 차상위권에서 중상위권 이상에 포진하며 공모전, 알고리즘, 해킹 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오고 있다.[20] 이와 관련하여 커뮤니티에서는 국문학과의 취업률이 가장 높다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21] 종교재단의 학교라는 특성상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학제 개편을 무리하게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22] http://m.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986[23] http://cukkyoji.tistory.com/m/349 가톨릭대 종교학과 폐과를 다룬 성심교지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24] 줄여서 인예대라 불렸다. 사회과학대는 사회대, 이공계열은 이공대, 생활과학대는 생활대로 줄여서 불리곤 했다.[25] 공식적으로 단과대학은 없지만 학생회의 단위로 존재했다.[26] 다음은 어느 학과가 대상이 될지...[27] 학생회장을 하면 차를 한 대 뽑느다 라는 식의 카더라 등등[28] 책임도 학생회장에 나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29] 모두 3학년 이상은 되어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본격적인 사회 진출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맡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