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원

 

1. 개요
2. 생애
3. 평가


1. 개요



강대원(姜大元, Dawon David Kahng)
(1931년 5월 4일-1992년 5월 13일)
대한민국의 반도체 물리학자

2. 생애


서울에서 출생. 강대원 박사는 한국 전쟁 중에 해병대 통역장교로 복무한 후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해 1년만인 1956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이학석사(M.Sc)를 받았다. 그리고 3년만인 1959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해에 당시 세계 최고의 연구소인 미국 벨 연구소에 입사했고 30년간 근무했다.
1947년 월리엄 쇼클리와 바딘, 브래튼 등 3인이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반도체인 트랜지스터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는 특성상 고집적화하거나 대량 양산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전력소비가 큰 데다 제조가 까다로워 손쉽게 대량 생산할 수 없는 반도체였다.
1950년대 후반 벨 랩스의 마틴 아탈라가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 연구를 통해 표면 패시배이션 공정을 위한 열 산화 공정을 개발해냈고 이것은 훗날 MOSFET발명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1960년 밸 랩스에 근무하던 마틴 아탈라 박사와 강대원 박사[1]가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세계 최초로 제조했고, MOS혁명이라고 불릴정도로 반도체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발명까지의 짧은 시간을 설명하자면 실제적인 FET의 이론적인 구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물리학자 julius edga linfield가 FED에 대한 특허를 냈을때 끝나있었다.[2]
그러나 이를 도저히 구현해낼 기술이 없었고 모하메드 아탈라 박사가 패시배이션을 위한 열산화공정을 개발한 후에 FET을 MOS를 사용해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 일을 팀에 들어왔던 강대원 박사에게 맡겼기때문에 이런 놀라운 발명을 1년이라는 짦은 시기에 해내는 것이 가능했다.
강대원 박사의 공로가 적지는 않지만 거의 잊혀지고 모하메드 아탈라 박사만이 현대전자공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한 백인우월주의사상으로 본 일방적인 피해가 아니라 어느정도 공적의 비율이 달랐던 것이다.
강대원 박사는 이 외에도 1967년 중국계 미국인 연구원 Simon Sze와 함께 비휘발성 메모리의 기본 원리인 플로팅게이트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한국물리학회 종신회원으로 국내 전자공학계에도 학회지를 통해 벨연구소의 선진 기술을 소개하는 등 학문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 때 LG전자의 고문을 맡는 등 국내 전자산업의 태동기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5월 13일 외부 세미나를 끝내고, 뉴저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동맥류 파열이 일어나 뉴저지 뉴브룬스윅의 성베드로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3. 평가


MOSFET을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모하메드 아탈라 박사와 함께 2009년에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올랐다.
오래도록 잊혀졌던 인물이지만 최근 재조명받으면서 한국반도체학술회의가 2017년부터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강대원 상'을 제정했다. 박병국 서울대 교수가 첫 수상자의 영예를 차지했다.

[1] 이 때 입사 1년차였다.[2] 보면 알겠지만 초창기 FET은 MOSFT과 형태가 비슷하고 다른 점은 게이트 부분에 절연체를 사용한 것이 지금의 MOSFE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