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주

 

성명
고석주(高錫柱)
생몰
1867년 ~ ?
출생지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석주는 1867년생이며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 출신이다. 그는 옥구군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보낸 독립선언서를 접한 뒤 동지들과 의논한 끝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기로 하고, 각 방면에 연락해 군산 장날인 3월 6일에 거사하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거사 전날 이 계획이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체포되었다. 하지만 시위는 3월 5일에 발발했고, 학생과 주민, 예수교 신도 등 500명이 경찰서와 밀려와 고석주 등 구속된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경찰은 소방대와 재향군인을 동원하여 이를 진압했다.
이후 고석주는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상고했지만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고석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