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중선

 


성명
곽중선(郭重善)
이명
곽중선(郭仲善)
본관
선산 곽씨
생몰
1907년 ~ 1935년 9월 20일
출생지
충청북도 옥천군 이내면 백지리
(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사망지
중국 상하이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곽중선은 1907년경 충청북도 옥천군 이내면(현 이원면) 백지리에서 곽준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형 곽중규와 함께 옥천군 이원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으며, 1922년 서울로 상경하여 만국성서연구회에서 성서보급 업무에 종사하며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우며 생활했다. 그러다가 1925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던 형 곽중규의 부름을 받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이후 1926년 1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결사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했다. 병인의용대는 정위단(正衛團) 간부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절대 옹호하는 것을 표방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의용청년을 규합하고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고 친일 부역배를 주살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수행했다.
1926년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학교 내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자진 퇴교한 뒤 1929년 상하이의 영국전차회사에서 근무했다. 또한 형 곽중규의 지시에 따라 윤봉길에게 상하이의 지리와 풍습 등을 안내하며 편의를 제공했다. 그 후 곽중규가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톈진에 은거할 때, 그는 상하이에서 형의 가족을 돌보면서 은밀히 비밀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1935년 9월 20일 상하이 남경로에서 일제의 밀정으로부터 권총으로 저격당해 복부 관통의 총상을 입고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곽중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