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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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권이원(權貳元)
일본식 성명
永野二元
이명
권이원(權二元)

우범(尤範)
본관
안동 권씨
생몰
1896년 9월 24일 ~ 1942년 9월 7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군 북선면 이하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1]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이원은 1896년 9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 북선면(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의 2차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 및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각각 준비되었다. 3월 18일 안동면 장날에 낮 12시경 기독교인 30여 명이 삼산동 곡물전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기독교인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동문통에서 또 한 무리의 시위대가 들어와 합세하였다. 합세한 시위대는 송기식을 비롯한 유후직·송장식(宋章植)·송홍식·권중호(權中鎬) 등의 유림들이 이끌고 있었다. 1919년 3월 초순 이래로 서울 및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 시위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권이원은 바로 유후직·송기식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그는 장터에 모인 다수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에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고 시위는 중단되었다.
그는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항소하였으나,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상고하였으나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1942년 9월 7일 별세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인근의 중가구리·가야리·서지리·이상리·주하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