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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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진왜란 초기 벌어졌던 전투다. 대부분 곽재우의 첫 전투이자 첫 승전으로 기록해준다.
2. 배경
전쟁 초기 대승을 거두며 전격전을 펼쳐나가던 일본군의 주력군은 어느새 한성 인근까지 북진했다. 주력군이 북진함에 따라 일본군의 경상도에 남은 병력은 보급과 소규모로 이루어져 약탈에 집중했다. 사실상 조선군의 전력도 경상도에서 대부분 이탈한 상태였고 남아있는 일본군은 전투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은거하며 지내던 곽재우는 4월 22일 평소 알고 지내던 장정 10여명과, 노비를 합쳐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무장상태는 매우 빈곤했고, 당시는 추수기도 아니었기에 군량을 보충할 수단이 부족했고, 결국 초계와, 신반현의 관아를 뒤져, 무기와 군량미를 확보했다. 곽재우는 일본군의 보급로를 노렸다.
이 기강이라는 위치는 낙동강 본류와 남강이 만나는 합류 지점이었다. 따라서 경상도로의 보급에 상당한 이점을 가지는 지점이었다.
3. 전개
기록에 따르면 5월 4일에는 일본군의 수송선 세 척을 부관 네 명을 이끌고 쫒아버렸다고 하며, 5월 6일에 수송선 11척이 등장하자 의병 13명을 이끌고 쫒아버렸다. 곽재우를 다루는 만화나 박물관에서는 이 전투에 대해 강바닥에 말뚝을 박아 일본군의 배가 걸리게 한 이후 기습한 것으로 묘사된다.
4. 결과
곽재우는 의병부대를 모집한 이후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뭐가 어찌되었건 나라의 쌀이나 무기를 허락도 없이 사용한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경상우병사 조대곤이 이에 대해 도적으로 오인하고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곽재우는 목숨은 건져야하니 지리산으로 숨으려 했다.
이 때 김성일이 곽재우를 도와주어 곽재우 의병대의 행동을 승인해주었다. 따라서 이들은 가는 관아나 고을에서 합법적으로 군량이나 무기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후 이런 지원에 힘입어 곽재우는 정암진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