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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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iel Hawthorne'''
1804년 7월 4일 - 1864년 5월 19일
1. 개요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는 '주홍 글자'가 있다.
2. 생애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손의 아버지가 그가 7살일 때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외삼촌에게 맡겨졌고 보든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보든 대학교에서 후에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이 되는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구가 된다.
1825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호손은 어머니 집에서 살며 문학 활동을 했다. 1828년에 익명으로 첫 작품인 '팬쇼'를 출판했지만 자신은 이 작품을 부끄럽게 여겼는지 출판본들을 모두 회수해서 폐기했다.
1842년 소피아 파바디와 결혼했다. 가정이 생긴 호손은 펜을 내려놓고 세무서 직원으로 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호손은 세무서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동안 가정을 위해 힘썼으니 이 기회에 쓰고 싶어하던 글을 써보라며 호손을 격려했다. 감동받은 호손은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1850년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모습과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을 묘사한 '주홍 글자'를 발표했다.
당시 청교도들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가 고문하거나 처형하곤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인 세일럼 마녀 재판의 판사였던 John Hathorne[1] 이 바로 호손의 고조부였다. 자신의 조상이 탄압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낀 호손은 이러한 배경을 '주홍 글자', '일곱 박공의 집'[2] 등 자신의 작품에 투영시켜 청교도 정신의 위선적이고 편협한 면모를 비판했고[3] , 더 나아가 인간의 죄를 탐구하였다.
185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친구 피어스에 의해 영국 리버풀의 영사로 임명되어 영국에서 1857년까지 영사직을 맡았다. 영사직을 그만둔 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쌓았다. 그러다 1860년에 귀국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바탕으로 쓴 '대리석 목양신'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186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3. 소설
'''장편소설'''
- 펜쇼 (Fanshawe, 1828)
- 주홍 글자 (The Scarlet Letter, 1850)
- 일곱 박공의 집 (The House of the Seven Gables, 1851)
-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The Blithedale Romance, 1852)
- 대리석 목양신 (The Marble Faun: Or, The Romance of Monte Beni, 1860)
- Short story collections
- Twice-Told Tales (1837)
- Grandfather's Chair (1840)
- Mosses from an Old Manse (1846)
- A Wonder-Book for Girls and Boys (1851)
- The Snow-Image, and Other Twice-Told Tales (1852)
- Tanglewood Tales (1853)
- The Dolliver Romance and Other Pieces (1876)
- The Great Stone Face and Other Tales of the White Mountains (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