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신베에
田中 新兵衛
1832년 5월 26일 ~ 1863년 7월 11일
일본 막말시대의 사쓰마의 무사. 시호는 유우헤이. 과격파 존왕양이파이자 막부말 4대 히토키리(人斬り)[1] 중 한 사람.
원래는 무사가 아닌 가고시마의 마에노 하마의 동생(또는 아이)이라고 한다. 사료에서는 시마즈 가문의 시마즈 오리베의 가신, 즉 사쓰마 번에서는 저령관이라는 관직의 신분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가고시마 성 굴지의 존황양이 인사이기도 했다. 어릴적 부터 무예와 검술에 뛰어났다고 하며 시현류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료에 의하면은 유파는 엄밀히는 불명이다. 성밖에서 자란 것을 고려하면 일반적으로는 시현식 종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고 있다.
분큐 2년(1862년)5~6월경에 상경. 카이에다 노부요시와 함께 후지이 마코토 (후지이 료조)앞으로 피신한다. 거기에 안세이 대옥에서 나가노 슈젠에게 협력한 시마다 후시미 (일명:시마다 사콘)를 동료 6명을 모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그 후 1개월간 사콘을 쫓아다니고 결국 7월 21일 교토 키야쵸우에서 습격. 달아나는 사콘을 카모 가와 강변까지 집요하게 뒤쫓아 참수하고 본토쵸우에서 시신을 내다버렸다.
8월 오가와의 주선으로 토사 근왕당의 수장이자 양이론자인 다케치 한페이타(일명:다케치 즈이잔)와 대면하여 다케치와 의형제를 맺었다. 이후 그는 오카다 이조 등과 함께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며 암살을 표적으로 한 상대를 차례로 살해하게 됐다. 혼마 세이이치로, 와타나베 킨사부로, 오우 시게조우, 모리 마고로쿠, 우에다 조지 등을 집단으로 덮치고 암살했다고 한다.
그후 분큐 3년 5월 20일(1863년 7월 5일), 사쿠라다 문 밖에서 에도 도쿠가와의 가신중 한 사람인 아네가코지 신토모가 여러명에게 습격되어 암살되었다. 이 사건의 현장에서 남아 있던 칼이 신베에의 애도와 신고있던 사쓰마 나막신도 발견되어 남음으로써 신베에가 범인으로 단정되고 니레이 카케노리 등과 함께 포박된다.[2]
그를 붙잡아서 압송한 에도의 관리 나가이 쥬로는 신베에를 심문하였다. 결국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틈을 노려 와키자시를 붙잡고 목의 경동맥을 찔러서 즉사했다. 향년 31세.
그 때문에 진술은 얻지 못하고, 습격의 솜씨가 나쁘다던가, 절명시키지 못하고 놓쳤다고 하던가, 다케치와 좋은 관계 등 의심스러운 점이 몇가지가 있었다. 이 때문에 신베에의 실행범 여부 진상에 의문이 제기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시체를 검사한 관리도 신베에임이 틀림없다고 증언한 것 등에서 근년의 연구에서는 역시 신베에가 실행범이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1832년 5월 26일 ~ 1863년 7월 11일
일본 막말시대의 사쓰마의 무사. 시호는 유우헤이. 과격파 존왕양이파이자 막부말 4대 히토키리(人斬り)[1] 중 한 사람.
원래는 무사가 아닌 가고시마의 마에노 하마의 동생(또는 아이)이라고 한다. 사료에서는 시마즈 가문의 시마즈 오리베의 가신, 즉 사쓰마 번에서는 저령관이라는 관직의 신분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가고시마 성 굴지의 존황양이 인사이기도 했다. 어릴적 부터 무예와 검술에 뛰어났다고 하며 시현류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료에 의하면은 유파는 엄밀히는 불명이다. 성밖에서 자란 것을 고려하면 일반적으로는 시현식 종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고 있다.
분큐 2년(1862년)5~6월경에 상경. 카이에다 노부요시와 함께 후지이 마코토 (후지이 료조)앞으로 피신한다. 거기에 안세이 대옥에서 나가노 슈젠에게 협력한 시마다 후시미 (일명:시마다 사콘)를 동료 6명을 모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그 후 1개월간 사콘을 쫓아다니고 결국 7월 21일 교토 키야쵸우에서 습격. 달아나는 사콘을 카모 가와 강변까지 집요하게 뒤쫓아 참수하고 본토쵸우에서 시신을 내다버렸다.
8월 오가와의 주선으로 토사 근왕당의 수장이자 양이론자인 다케치 한페이타(일명:다케치 즈이잔)와 대면하여 다케치와 의형제를 맺었다. 이후 그는 오카다 이조 등과 함께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며 암살을 표적으로 한 상대를 차례로 살해하게 됐다. 혼마 세이이치로, 와타나베 킨사부로, 오우 시게조우, 모리 마고로쿠, 우에다 조지 등을 집단으로 덮치고 암살했다고 한다.
그후 분큐 3년 5월 20일(1863년 7월 5일), 사쿠라다 문 밖에서 에도 도쿠가와의 가신중 한 사람인 아네가코지 신토모가 여러명에게 습격되어 암살되었다. 이 사건의 현장에서 남아 있던 칼이 신베에의 애도와 신고있던 사쓰마 나막신도 발견되어 남음으로써 신베에가 범인으로 단정되고 니레이 카케노리 등과 함께 포박된다.[2]
그를 붙잡아서 압송한 에도의 관리 나가이 쥬로는 신베에를 심문하였다. 결국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틈을 노려 와키자시를 붙잡고 목의 경동맥을 찔러서 즉사했다. 향년 31세.
그 때문에 진술은 얻지 못하고, 습격의 솜씨가 나쁘다던가, 절명시키지 못하고 놓쳤다고 하던가, 다케치와 좋은 관계 등 의심스러운 점이 몇가지가 있었다. 이 때문에 신베에의 실행범 여부 진상에 의문이 제기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시체를 검사한 관리도 신베에임이 틀림없다고 증언한 것 등에서 근년의 연구에서는 역시 신베에가 실행범이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1] 나머지 세명은 오카다 이조, 나카무라 한지로, 카와카미 겐사이.[2] 통설에서는 칼은 며칠 전에 도난당한 것이라고 하지만 신빙성은 불명. 신베에가 남긴 상처도 생존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