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한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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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村 半次郞
(1838년(덴포 9년) 12월[1]~1877년(메이지 10년) 9월 24일)

1. 개요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무사. 막부말 4대 히토키리(人斬り)[2] 중 한 사람.
사쓰마 전통 유파인 시현류(示現流)의 달인으로, 사람 베는 한지로(人斬り半次郞, 히토키리 한지로)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별명의 유래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의 친구인 나카이 히로시가 말한것이 와전되어 세간에 퍼진 것이라고 한다.[3]

2. 생애


가고시마군 요시노 마을에서 나카무라 요우에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대대로 죠카시[4] 라고 하며 15살때부터 시현류의 이쥬인[5] 카모이의 도장에서 검술을 배웠다. 또한 17세때에는 노타치 시현류의 에나치 나카에몬에게서도 검을 수련했다.
본래 가난한 무사집안 출신으로 그의 나이 10살에 아버지는 도쿠노시마에 유배당하여 녹봉은 회수되고 집안은 더 가난해졌다. 그뒤 형까지 병사하여 18세의 어린 나이로 가독을 승계받았지만 도장에 다닐 돈도 없이 더욱 가난해졌다. 결국에는 마당에 있는 절굿공이로 목검을 만들어 그 목도로 하루 8000번의 우케츠케루[6]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본 스승인 에나츠 나카에몬은 검기가 천재적인 자로써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집 처마에서 빗물이 한번 떨어질 동안 세번의 발도를 할 수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7] 또한 자신의 검도 화려하게 꾸미고 그 당시의 서양식 군도를 수집했다고 한다.
1862년에 시마즈 히사미쓰를 따라 입경하여 인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수위가 되어 여러 번의 유지들과 교제했으며, 그후 얼마 안 있어 사이고 다카모리 아래에서 존왕양이 운동에 가담했다. 그후 1868년에 벌어진 메이지 유신 때 도바 후시미 전투에 참전하여 도카이도 선봉대를 이끌고 맹활약을 펼쳤으며 이어서 슨푸[8]와 오다와라를 점령하였고 그 다음에는 아이즈, 와카마쓰 공략 때 군감이 되어 쇼텐로쿠[9] 200석을 하사받았다.
1871년에는 기리노 도시아키(桐野利秋)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폐번치현에 대비하여 사이고 다카모리가 병사를 이끌고 상경했을 때 대대를 이끌고 수인 친병에 편입됐다. 1872년에는 육군 장성이 되어 쿠마모토에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1873년에 메이지 6년 정변[10]으로 사이고 다카모리를 따라 하야했다.
1874년 동지들과 가고시마에 사학교를 설립했으며 1877년 서남전쟁에서 사이고 군의 4번대 대장이 되어 전투에 참여했으나 같은 해 9월 24일 가고시마 시로야마에서 최후의 전투를 할 당시 사이고 다카모리가 벳푸 신스케와 함께 자결을 했으며, 사이고의 자결을 지켜본 그와 그의 남은 부하들 30여명은 계속 진격했고 이와사키 골짜기에 임시 성채를 만들고 응전했지만 아군은 잇달아 총탄에 패퇴했고 결국 서로 맞찌르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한지로는 성채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까지 응전했지만 끝내 샤스포 소총에 이마를 꿰뚫리고 전사했다. 향년 40세.
사망한 후에 그의 시체에서 프랑스의 향수냄새가 났다고 하며 사망 후 역적의 장수로 멸시를 받고 남은 자손들은 관직을 삭탈되는 등 더욱 불운한 삶을 살아가다가 1916년(대정 5년)에 정 5품에 추증되고 명예를 회복했다. 묘소는 가고시마에 위치한 죠코묘지데라(정광명사)에 있다.
[1] 몇일에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불분명 하다고 한다.[2] 나머지 세명은 오카다 이조, 다나카 신베에, 카와카미 겐사이.[3] 실제로 한말은 다음과 같다. 베어낸다고 하면 꼭 베어낸다.[4] 성의 가까운곳에 살면서 영주에게 무슨일이 생기거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성과 영주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하급무사의 직책이다.[5] 일본의 성씨중 하나이며 사츠마를 지배하던 시마즈 가문을 모시던 일족이 시초라고 한다.[6] 사츠마 시현류 특유의 내려치기 동작.[7] 그가 얼마나 강적이었는지 토바 후시미 전투 당시 신선조의 국장인 곤도 이사미가 나카무라 한지로와는 절대로 상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라고 한다.[8] 시즈오카현. 에도 막부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시 수도로 삼았던것으로 유명하다.[9] 상으로 주는 녹봉[10] 이른바 정한론 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