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윤리학

 

'''Virtue Ethics'''
규범 윤리학의 한 학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하였으며, 현대에에 주목할만한 움직이 있다면 최근 반짝했던[1] 매킨타이어를 필두로 하는 부활 시도가 있다. 덕윤리에 관한 논의는 1950년대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자 영국의 철학자 앤스콤이 쓴 "근대 도덕철학(Modern Moral Philosophy)"라는 논문을 기점으로 활발해졌다. 그는 이 논문에서 두 가지를 주장한다.
(1) 법칙에 의거해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경향은 기독교적 율법주의가 윤리학의 논의에 스며든 결과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율법의 절대성을 신이 보장하는 것과 달리, 세속에서는 어떤 존재도 그 법칙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윤리학을 그만두고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2)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한 개별적인 행위만큼이나 그 사람의 인격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근대 윤리학은 개별적 행위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무게를 둔 나머지 행위자의 인격을 간과했다.
앤스콤은 이런 두 가지 "근대윤리학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윤리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를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즉 행위를 중심으로 보기 보다는 인격을 중심으로 보는 일상적인 의미와 현명함을 요구하는 덕윤리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윤리학적 논의의 주제들을 넓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 및 재해석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경향을 이른바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Neo-Aristotelianism)라고 부르며, 그 대표자가 매킨타이어다.
덕윤리학에서 주로 연구되는 학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흄, 니체 등이 있다. 이들이 윤리학의 역사에서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잘못인데, 이들 모두 윤리학 연구를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권, 시기, 연구자에 따라 연구 성향이 조금씩 다르며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덕윤리학자라고 부르는 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덕(virtue, arete)을 핵심 개념으로 삼기 때문에 덕윤리학자라고 부를만하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덕윤리학이라는 체계 자체의 모범적 모델이다.
  • 아퀴나스는 그의 철학이 전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윤리학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덕윤리학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 흄의 경우 행위보다는 성격에 주목한다는 점을 들어 그를 덕윤리학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흄은 관점에 따라서 공리주의자로도, 사회계약론자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덕윤리학으로 해석하는 것은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다.).
  • 니체의 경우 그 자체로 덕윤리학자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주요 비판대상이 이른바 "근대 도덕철학"이기 때문에 덕윤리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종종 인용한다.
칸트, 밀은 요즘 사람이 아니다(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하면 요즘 사람인 건 맞다). 덕윤리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칸트주의로 대표되는 의무론과 벤담, 밀 등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 모두를 비판하고 새로운 윤리학적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그러므로 덕윤리와 칸트와 밀이 매우 상반되는 견해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덕윤리가 의무론과 공리주의를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는지, 그리고 덕윤리 자체가 하나의 윤리학적 입장으로서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평가가 없다.


[1] 반짝 '했'던 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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