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공주

 


1. 생애
2. 참고문헌

동창공주(同昌公主, 849년 ~ 870년)
의종과 그의 후궁인 숙비(淑妃) 곽씨(郭氏) 사이에서 태어난 당 의종의 장녀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위국문의공주(衛國文懿公主)라고 한다.
위보형(韋保衡)에게 하가하였다.

1. 생애


할아버지인 선종 대중 3년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황제가 되자 공주가 되었다.
그녀가 결혼할 당시 의종은 궁중에 있던 다량의 진귀한 보물을 주어 혼수로 삼게 하고, 수도에 있던 저택을 하사했다.

'''''하사한 저택의 창문들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우물의 난간, 약 짓는 절구 및 술 담그는 궤함 등은 모두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 조리와 광주리 등은 금실로 짜여졌으며 수정, 대모, 유리를 이용해 만든 침대의 다리는 금거북이와 은사슴 모양의 장식이 더해져 있었다. 또한 자고침, 비취갑, 신사수피, 옥여의, 슬슬막, 문포건, 화단면, 구옥채 등 외국에서 들여온 보물들이 가득했다. 이외에 별도로 전 500만 관을 하사했고 함께 보낸 각종 보물들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동창공주의 집에는 '징수백(澄水帛)'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길이가 8~9척 되는 천으로 이것은 사람을 비출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빛을 냈다. 한여름에 이것을 방에 걸어 놓으면 방 전체가 시원해졌다고 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징수백에 있는 용연이라는 물질 때문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고 한다. 동창공주는 붉은 유리로 된 쟁반을 사용했는데, 어두운 밤이면 빛이 나 한밤중에서 낮과 같이 주변을 비추어 부마 집안의 사람들은 조명 없이도 밤에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임사영 <황제들의 당제국사>

공주는 출가한 지 2년 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의종은 의원들이 약을 잘못 썼다고 여겼고 의원들을 처형하고 가족까지 옥에 가두었다. 상황을 수습하려한 재상 유섬도 재상직을 박탈당하고 영남으로 유배를 갔다.
공주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묘원의 건물들을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금전이 소모되었고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을 정도의 많은 생활품을 함께 매장했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이러한 행보를 보인 의종의 태도는 그가 우매한 군주라고 평가받을 만한 한 요소가 되었다.

2. 참고문헌


임사영, 류준형 옮김, 『황제들의 당제국사』, 푸른역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