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반(아키에이지 연대기)
아키에이지 연대기 중 전나무와 매에 나오는 등장인물.
에페리움 왕국의 귀족. 아들과 함께 왕비의 수하들에게 죽을 뻔한 에렉티나를 도와주면서 처음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에렉티나를 죽이려고 한 사비나 왕비의 막내동생이었다. 에케노스의 세 부인이 낳은 일곱 명[1] 의 자식 중에 막내이자, 몸이 약한 두번째 부인이 낳은 유일한 자식으로 위의 네 명의 이복형들과는 나이차가 20살 가까이 난다고 한다. 라반의 아버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은 라반을 측은하게 여겨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따라서 명문가의 아들이면서도 가문의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으며 평소에는 여행하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에렉티나의 정체를 알고 있고 누이가 에렉티나 모자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사비나 왕비에게 원한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었기 때문에 에렉티나를 도와준 것이었다고 한다.
에렉티나와 함께 도주를 하다가 여행도구와 자본 등의 이유로 그녀와 늪 사이에 있는 물레방앗간 폐허에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만일 무슨 일이 있을 시에는 하얀 돌이 넓게 퍼져있는 곳 근처에 있는 비밀 동굴에서 기다리라고 말해준다.
이어 수도로 돌아가고 준비를 마친 뒤 다시 돌아가려고 했으나 부친이 자신에게 물려준 애마가 신경쓰여 마지막으로 인사만 하기 위해 그 말을 찾아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을 찾는 사비나의 하녀에게 발각되고 만다. 사비나의 하녀를 따라가니 그곳에는 사비나 왕비과 로안드로스 국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로안드로스는 그에게 에렉티나와 왕자를 어디에 숨겼는지 추궁한다. 그러나 그는 능수능란하게 자신은 어느 여관의 주인장의 소유인 하녀와 잠시 밤일을 하기 위해서 성곽을 나갔었고, 하녀가 품던 아이는 왕자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며 추궁을 회피했고 로안드로스는 여기에 속아 그를 보내준다. 그러나 왕비는 자기 동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유곽에 갔다는 건 분명히 거짓말이라고 확신했지만 왕이 믿었으니 일단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 말하는 걸로 보아 에렉티나와 진을 숨겼을 거라고 감을 잡은 모양.
그 후 헤어졌던 에렉티나와 다시 합류, 타국의 농촌에서 즐거운 생활을 한다. 3년 동안 에렉티나는 라반을 남편으로 대하고 의지하는 둘은 깊은 관계가 되었다. 어린 아들 진까지 셋은 화목한 가정으로 지낸다.
그는 일 년에 한 번씩 가문의 의심을 덜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수도에 열리는 자신의 부친의 추모식에만 참석한다. 3년째에도 수도로 갈 때 에렉티나에게 유사시를 위해 독을 묻힌 단검을 맡기고 수도로 갔다. 이 때 이복형들이 이제 너도 30대니까 여행하고 다니는 생활을 접고 가문의 일을 도우라고 하는데, 평소 형들은 자신이 가문의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걸 환영하는 분위기였던지라 라반은 이상하게 생각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넷째 형 두난이 네가 사고라도 칠까봐 걱정하는 거뿐이라며, 진짜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니라 어디서 사생아라도 만든 게 아니냐고 말한다.[2] 라반은 기분이 상했지만, 이 일을 핑계로 일찍 떠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는 일찍 짐을 꾸린다. 사비나 왕비가 올해는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도 오지 않았는데 라반은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수도를 나가기 위해 만월의 문을 건너던 중 어느 병사들이 그를 추격했고 따라잡힌 그에게 사비나 왕비가 부르니 가야 한다면서 협박하는 것에 가까운 말을 한다. 이 병사들 중에는 에렉티나를 추격했던 리볼라 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반은 자신이 어디로 갈지 예상하였고 얌전히 동행에 응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과거 그와 사비나와의 추억이 있던 장소였고, 여기서 사비나와 만나게 된다.
실은 사비나와 라반은 평범한 누나, 동생사이가 아니었다. 어릴적 사비나가 자신이 싫어하는 큰어머니의 장신구를 훔쳐다가 자신의 자택 아래에 묻어두었는데 큰어머니가 눈치를 챘는지 그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명한다. 그녀는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는데 그 때 라반이 우연히 그 공사현장에서 곡괭이에 찍히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막내아들에 대한 애정이 깊던 부친은 크게 분노했고 공사가 멈춘 그 사이 그녀는 장신구들을 연못에 버린다. 라반은 그 장신구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해서 사비나를 돕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것. 몇년 후 남매로서가 아니라 여자와 남자로서 사이가 가까워진 모양인 둘은 검열삭제를 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던 듯하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이 별장은 19, 21살짜리가 불장난을 저지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근친상간이지만 당시에 라반은 사비나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같이 멀리 피로아스같은 곳으로 도망쳐 살기로 계획까지 했었다.[3]
그런데 둘의 아버지 에케노스는 사비나와 로안드로스 왕과의 결혼을 결정했고 사비나는 라반과 만백성의 어머니인 왕비자리에 대한 갈망 중에 후자를 택해버렸다. 본인의 야망 때문에 라반을 배신하고 로안드로스 왕과 결혼해버린 것. 이때 사비나는 24살, 라반은 22살이었다. 같이 도망가기로 수없이 약속했던 여자가 결혼식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라반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 이에 대해 라반은 큰 배신감을 느끼고 사비나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이올레라는 목수의 딸인 착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벨레아스를 낳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사비나는 첫사랑인 라반에 대해서 미련을 갖고 있었다. 자기는 그를 비참하게 배신해서 이미 결혼까지 한 몸이어도, 라반은 변하지 않고 계속 자신만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던 듯.[4] 결혼 뒤 1년이 지나 친정에 방문했을 때 라반으로부터 결혼해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라반의 아내가 '나도 낳지 못했던 라반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에 격분하고 만다.[5]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동생과 천한 신분의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이런 질투심 때문에 라반의 아내와 아들을 제거해버렸다. 작중에 나오기로는, 어느 날 라반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아내와 아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결국 찾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걸로 간주되었다. 라반에게 이 일은 큰 상처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친인 에렉티나가 죽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그는 에렉티나가 자신을 왜 도와주었냐고 물었을 때 '믿기지 않겠지만 난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친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 라고 말한 것이었다.
사비나는 이처럼 이올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라반이 에렉티나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니냐며 추궁한다. 그는 끝까지 발뺌하였으나 주술사인 아유브가 과거 에렉티나에게 걸었던 주술이 라반과 반응을 하고, 반응을 한다는 건 주위에 그 주술의 대상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라반이 에렉티나와 같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는 최후까지 발뺌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아유브가 가져온 어떤 항아리 단지에서 꺼낸 두 물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는데…
'''바로 말라 비틀어진 자신의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었다.''' 충격을 받은 라반은 그에게 저주를 퍼부었으나 아유브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에렉티나와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이들에게 저주를 걸어 영혼을 머리에 깃들게 해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죽지도 못 하는 상태로 영겁의 세월을 보내게 만들겠다고 협박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계속해서 두통과 역겨운 냄새를 느끼게 되고, 그러던 중 진을 데리고 밖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은 진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목을 짚으며 진이 살아있는지 확인을 한 찰나, 그 장면을 본 에렉티나가 라반 본인이 안전을 위해서 준 신경독이 묻은 단검으로 그를 찌른다. 그는 최후에 에렉티나에게 용서를 구하였고 에렉티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집을 불태우고 도피하는 것 까지가 [여신의 어린 딸]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때부터 사비나 왕비에 대한 두려움이 복수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워낙 어릴 때라 진은 라반에 대한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와 만나고 싶어한다.[6] 그리고 그말을 들은 에렉티나는 한번만 더 그런 얘기를 하면 이 어미는 목을 매달아 버리겠다라고 엄포.
여기까지 읽어봤으면 잘 알겠지만 정말 인생사가 안습인 인물(...). 최후에 저렇게 죽었으니 그의 죽음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아내와 아이의 영혼은 말라 비틀어진 그 얼굴에 계속 깃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전민희 작가의 클리셰인 주인공 가족 몰살의 법칙 중 일부를 아주 절묘하게 지켜냈다. 여담으로 실제로는 혈연이 아니지만 진은 라반을 많이 닮았다. 승마 실력이 뛰어나다는 거나, 귀족들보다는 평민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하는 소탈한 성품까지 닯았다. 어릴적 라반이 베푼 애정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듯.
[1] 헤로디온, 클라우디온, 벨리노스, 두난, 사비나, 에메르나, 막내인 라반. 이복누나인 사비나는 세번째 부인의 자식이며 다섯째이다. 가문은 첫번째 부인의 자식이자 맏이인 헤로디온이 물려받았다.[2] 라반은 결혼을 한 적이 있는데 집안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게 아니라서 공식적으로 이 아내는 첩으로 취급받는다. 라반의 아내와 아들은 사비나가 제거했는데 가족들 대부분이 여자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한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쨌든 사비나는 왕비이므로 이 일을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난이 이런 말을 하자 분위기가 변했고 라반의 바로 위의 누나는 말없이 오빠를 질책하기도 했다. 덧붙여서 진이 잔다나족 반란을 진압하려고 출정했을 때, 진에게 시비를 건 사비나의 조카 벨콘은 이 두난의 아들.[3] 하지만 결국 그곳에 간 것은 라반 뿐이었다. 혼자는 아니었지만. 라반과 에렉티나와 진이 행복하게 살았던 그 시골은 바로 라반이 사비나와 함께 도망쳐 지내려고 했던 곳이었다.[4] 사비나는 라반에게는 아버지의 결정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결혼은 사비나 본인의 갈망에 의해 이뤄진 게 맞다. 갈망하던 왕비 자리에 올랐을 때 사비나의 기쁨도 묘사되어 있다. 라반의 말에 의하면 사비나는 '''손에 쥔 것은 밀알 한 톨도 놓치기 싫었던 거라고 한다.'''[5] 작중에서 사비나가 결혼하기 전에 출산한 적이 있었으나 죽은 아이였고 이 비밀은 가족들만 아는 거라는 언급이 있다. 사비나와 라반은 사비나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런 관계였으니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라반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6] 에렉티나는 일부러 이 시기의 일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진은 그 시절 아버지 역할을 해줬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물론 그가 죽었다는 것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