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젠드라(네팔)
Rajendra Bikram Shah
1813년 12월 3일 ~ 1881년 7월 10일
1. 소개
네팔의 5대 국왕. 초대 브리트비 국왕이후 지속되던 왕조의 혼란을 일시 회복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정신적 문제탓에 통치에 있어서 혼란을 가중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2. 허수아비 왕에서 실권자로
1816년, 라젠드라는 불과 세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자연히 불과 세살밖에 안된 그가 직접 통치를 한다는건 불가능했고 실권은 빈센 타파가 수상으로서 권력을 휘둘렀다. 타파 가문은 브리트비 이후 수상직을 독점하면서 사실상의 세도정치를 행했던것.
하지만 1837년, 라젠드라는 24살에 빈센 타파를 수상에서 축출하고 직접 왕의 통치를 실현하게 된다. 거의 수십년동안 권력을 휘둘렀던 타파 가문을 무너뜨린것. 그러나...
3. 조울증에 걸린 왕과 혼란한 정국
직접 통치를 시작한 라젠드라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다름아닌 조울증 환자였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가 살던 당시에는 이것이 조울증인지도 몰랐겠지만, 역사기록에 남은 라젠드라의 행태를 분석해보면 전형적인 조울증 환자의 모습이었다.
우선 그는 매일 매일의 모습이 달랐다. 어느날은 매우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왕의 모습을 보였지만, 또 다른날에는 매우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고 또 다른날에는 갑자기 마구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점은 통치에 있어서 상당히 혼란을 가중시켰다. 어느날은 자못 자비로운 군주의 행태를 보이다가도 다른날에는 상당히 지나친 수준의 잔인한 처사를 보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결정한 명령이나 제정한 법률도 다음날에 바로 뒤집어버리는 일관성없는 모습을 보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라젠드라의 일관성없는 정신상태가 후계자 문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라젠드라는 두명의 왕비에서 각각 한명씩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장남인 수렌드라 왕자가 세자가 되었지만 라젠드라는 수렌드라의 어머니 보다는 젋은 왕비인 락시미 데비를 더 총애했다. 더욱이 1843년에 이르러서 라젠드라는 세자인 수렌드라보다 왕비 락시미의 권위가 더 우월하니 그에게 복종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수렌드라와 락시미 왕비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던 가운데, 락시미 왕비의 강력한 지지세력의 중심인물이었던 가간 싱이라는 대신이 갑자기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간 싱의 죽음에 불안해진 락시미는 장 바하두르라는 장군을 끌어들여 대신들을 모두 모아 가간 싱의 살해범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가간 싱의 살해범을 찾으려고 모인 자리에서 대신들끼리 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거의 모든 고위대신들이 죽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살아남은것은 장 바하두르와 그의 동생뿐이었고 장 바하두르는 이 권력공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네팔을 지배한 라나 가문의 통치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1847년, 장 바하두르는 쿠데타를 일으켜 라젠드라와 락시미 왕비를 퇴위시킨후 유배보내버렸고 수렌드라 왕자를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하지만 수렌드라는 왕이 되자마자 유폐되어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했고 장 바하두르는 영구집권 수상에 오른뒤 라나 가문의 연장자가 영구집권 수상직을 자동 승계하는 법을 만들어 150여년 동안 네팔을 쥐고 흔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