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태양을 신성시하는 타곤 산의 라코어 부족 중에서도 솔라리는 가장 신앙심이 깊다. 솔라리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태양을 숭배하도록 교육받으며, 심지어는 태양의 성위가 돌아와 모두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경고할 때까지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레오나는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솔라리 신앙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겼고, 그 엄격한 신앙 체계 안에서 위안과 온기를 느꼈다. 이는 그녀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또래들은 그녀의 능력, 의지력, 신앙심을 부러워했다. 그녀가 훗날 솔라리의 신성한 전사 라호락이 되리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레오나는 뛰어난 성과를 보였지만, 스승들이 가장 까다로운 고아 출신 수련생인 다이애나를 상대하며 힘들어하는 것이 자꾸 눈에 밟혔다. 다이애나의 호기심을 처음에는 달갑게 여기던 스승들은 곧 그녀가 던지는 질문을 솔라리 신앙에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레오나는 다이애나가 처벌받고 고립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다이애나에게서 불손함을 느낄 때, 레오나의 눈에는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는 길 잃은 영혼이 보였다. 솔라리 교리에서 자신의 목적을 찾은 레오나는 가장 인내심 있는 스승들조차 포기한 다이애나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하고자 했다. 레오나는 다이애나가 원하는 모든 것이 솔라리 교리에 담겨 있음을 설득하려 했고, 그녀가 교리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며 밤새 토론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비록 다이애나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다이애나는 레오나에게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타곤 산 어딘가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숨겨진 장소를 발견했는데, 벽면에 기묘한 문양과 잊혀진 문명에 대한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것을 조사하려면 타곤 산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다이애나의 말에 레오나는 그만하라고 종용했다. 다이애나가 다른 솔라리 부족원들의 화를 살까 두려웠던 레오나는 이 조사를 그만둘 것을 부탁했다. 다이애나는 친구의 부탁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자 둘의 입에 비밀 장소에 대한 얘기가 다시 오르는 일은 없었다. 레오나는 다이애나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늦은 밤, 다이애나가 사원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장로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이애나의 뒤를 쫓아갔다. 타곤 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타곤 산을 오르는 것은 레오나가 경험해 본 그 어떤 일보다도 힘겨운 일이었다. 이는 그녀의 존재 구석구석을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받은 훈련, 의지력, 그리고 친구 다이애나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등반에 실패하여 타곤 산에 묻힌 주검들의 눈동자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검들도 레오나를 막을 순 없었다. 마침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시간이 지나고, 레오나는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에 자신도 놀라워했다. 탈진한 레오나의 눈앞에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때 다이애나가 반짝이는 은빛 기둥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레오나가 친구를 도우러 달려가자 하늘에서 황금 빛줄기가 내려와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일었다. 그러나 빛은 레오나를 태우는 대신 몸속에 스며들어 엄청난 힘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빛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타 버리지 않도록 의식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마침내 불굴의 의지로 승리하여 통제력을 갖게 된 레오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녀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녀에게 태양의 성위가 강림한 것이었다. 운명은 그녀를 택했고, 그녀의 임무는 솔라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때 레오나는 다이애나가 빛나는 은빛 전투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는 자신이 입고 있던 금빛 갑옷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다이애나는 솔라리에서 얻을 수 없는 답을 같이 찾자고 레오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레오나는 집으로 돌아가 성직자들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던 둘은 결국 각자의 무기를 손에 들고 말았다. 둘 사이의 전투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태양과 달이 충돌하며 눈부신 빛을 내었고, 다이애나가 초승달 검을 레오나의 목에 겨누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레오나를 쓰러뜨리지 않고 달아났다. 큰 충격을 받은 레오나는 서둘러 타곤 산을 내려가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레오나가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앞에는 참혹한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솔라리의 많은 성직자들과 라호락 수호자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이는 다이애나의 소행으로 보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두 성위의 존재에 경외심을 느꼈다. 레오나는 태양이 항상 솔라리를 인도해 온 것처럼 자신이 새로운 빛이 되어 솔라리를 이끄는 데 전념했다. 그녀는 다이애나를 찾기로 맹세했다. 솔라리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오랜 친구 다이애나가 달의 성위의 힘에 삼켜지기 전에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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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빛의 인도자
습격은 동 트기 전에 개시됐다. 그들은 재빨리 걸음을 옮겨 산기슭의 촌락에 들어섰다. 인원은 총 50명이었다. 늑대처럼 늘씬한 몸에는 저마다 털가죽으로 덮인 쇠사슬 갑옷을 입었고, 빛이 반사되지 않게끔 재를 발라놓은 도끼를 들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생과 사를 함께하며 싸워온 동지들이었다.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의 선두에서는 우그러진 미늘 갑옷을 입고 어깨에 묵직한 대검을 걸멘 남자가 앞장서고 있었다. 용머리 모양의 투구를 쓴 그의 거친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고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평생 전장에서 뙤약볕을 견뎌온 자의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촌락들은 쉽게 정복했다. 전투에 이골이 난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약탈할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이런 이상한 땅에서는 그나마도 가질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이번 마을에서도 전투 자체는 걱정하지 않았다. 뭐라도 건질 게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저 앞에서 눈부신 햇빛이 비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남았는데. 대장은 거친 손을 들어올려 부하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길 저편에 누군가가 혼자 서 있었다. 여자였다. 대장은 드디어 약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구나 싶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웬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보고 그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이제 보니 여자는 화려한 판금갑옷을 차려입었고, 적갈색 머리에 금빛 관을 썼고, 햇살 같은 빛이 번뜩이는 육중한 방패와 장검을 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금색 갑옷과 긴 창으로 무장한 전사들이 나타나더니 여자의 양편에 나란히 늘어섰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이 땅은 내가 보호하는 곳이다.” 레오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라호락의 열두 전사들이 그녀를 중심에 두고 쐐기 형태로 정렬했다. 왼편의 여섯 명, 오른편의 여섯 명이 일제히 방패를 들어올려 동시에 땅을 내리찍었고, 레오나도 몸을 약간 틀면서 그들의 대형에서 정확히 꼭짓점 부분에 방패를 내리꽂았다. 그리고 방패의 원형 부분 밑에 새겨진 홈에 검날을 밀어넣었다. 칼자루를 움켜쥐자, 막강한 힘이 그녀에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꿈틀거리는 불길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레오나는 불길이 자신의 몸을 타고 편안하게 흐르도록 조절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불씨가 깜빡이고, 가슴 속에서 심장이 고동쳤다. 산꼭대기에서 그녀와 조우했던 신령한 존재가 저 남자들을 정화의 불길로 태우려 벼르고 있었다. 용머리 투구를 쓴 남자가 대장이다. 저자만 쓰러뜨리면 나머지는 모두 쭉정이가 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불의 힘을 자유자재로 풀어놓고 싶었다. 저 남자들이 뼈와 재만 남도록 활활 태워버리고 싶었다. 저자들은 타곤 산의 거주민들을 무더기로 학살했다. 뿐만 아니라 신성한 태양석을 넘어뜨리고, 아무데나 배설을 하고 샘물을 오염시키면서, 솔라리의 성소들을 멋대로 더럽혔다. 용머리 투구를 쓴 대장이 껄껄 웃더니 어깨에 짊어졌던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부하들이 그에게서 적당히 떨어졌다. 저렇게 커다란 무기를 가지고 제대로 싸우려면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할 터였다. 남자가 짐승이 짖어대는 듯 걸걸한 음성으로 무어라 고함을 치자, 부하들이 함성을 질러 화답했다. 침략자들이 일제히 돌격해왔다. 왁왁대며 소리치는 놈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땋아내린 턱수염에 덕지덕지 묻었다. 레오나는 후끈한 숨결을 내쉬고 불길이 핏줄을 타고 돌도록 순환시켰다. 그녀의 안에 있는 고대의 존재와 더욱 완전히 융합되도록, 인간을 초월한 감각과 통찰력에 눈뜨도록... 시간의 속도가 느려졌다. 레오나는 적의 심장이 뛰면서 발산하는 열기가 눈에 보였고, 그들의 혈관을 울리는 맥박 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전투에 대한 열망이 붉은 화염처럼 그들의 몸을 사로잡고 일렁이는 것까지도 훤히 보였다. 대장이 펄쩍 뛰어올라 레오나의 방패에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돌로 된 거인의 주먹에 강타당한 듯한 충격과 함께 방패 표면이 휘어졌고, 레오나는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라호락 전사들도 방패로 만든 장벽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레오나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한편 레오나의 방패에서 발산된 뜨거운 섬광에 대장의 갑옷을 덮은 털가죽이 타들어갔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도, 거대한 검을 치켜올리고 다시금 공격 태세를 갖췄다. “공격하라!” 나머지 침략자들이 방어선을 덮친 것과 동시에 레오나는 소리쳤고, 그 즉시 라호락 전사들이 금빛 창을 내뻗었다. 강철 창날이 번뜩이자 적들이 그대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뒷줄의 적들은 자기 동료들의 몸뚱이를 밟고 넘으며 돌격해왔다. 적들의 두 번째 공격에 방패의 장벽이 흔들렸다. 하지만 깨어지지는 않았다. 놈들은 도끼로 방패를 힘껏 후려치고 밀어젖히면서 힘줄이 불거지도록 용을 썼다. 그들의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레오나는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있는 적 한 명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널브러진 즉시, 그녀는 방패를 휘둘러 그 옆의 남자를 쓰러뜨렸다. 그런데 라호락 전사들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레오나의 바로 옆에 있던 전사가 용머리 투구를 쓴 대장에게 공격당한 순간이었다. 그 거대한 검에 직격당한 방패가 쪼개져버렸고, 라호락 전사도 숨이 끊어졌다. 레오나는 대장 녀석이 세 번째 공격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대장을 향해 금빛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룬 문자가 새겨진 검날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잔영이 나타나면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삽시간에 불길이 놈의 몸을 감싸 갑옷을 녹여버렸고, 대장은 고통에 휩싸여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한편 레오나의 안에 깃든 우주의 기운은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환희에 찼다. 대장은 화상에도 불구하고 숨이 붙은 채 끝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다가 마침내 주저앉자, 주위에서 멍하니 지켜보던 부하들은 주춤거리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기네 대장이 비참하게 당한 꼴을 보자 그들의 사기는 눈에 띄게 꺾였다. “돌격!” 레오나의 명령에 라호락 전사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강력한 팔로 창을 휘둘러 무자비하고도 효율적으로 적을 해치워나갔다. 찌르기, 비틀기, 빼내기. 세 가지의 동작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탈곡 기계처럼 질서정연하고도 가차없었다. 붉게 물든 창날들 앞에서 침략자들은 이제 완연히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해 뿔뿔이 도망쳤다. 그들이 타곤 산에 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산의 성소에서 증언을 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등반을 하러 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저들은 순례자가 아니라 전사들이었다. 살려서 보내줬다가는 또 한 패로 뭉쳐서 살상을 저지르고 다닐 것이다. 레오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검을 땅에 내리꽂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 산 너머에 존재하는 숭고한 힘을 한 곳으로 끌어모으면서 손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로 해가 떠올랐다. 레오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을 땅에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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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 배경
3.1. 유니버스 이전
'솔라리'라 불리는 고귀한 집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전설에 의하면 솔라리는 태양의 강력한 힘을 빌려 적을 징벌했던 한 정의로운 전사가 그 시초라고 한다. 이 태양 전사는 발로란에서 가장 태양에 가까운 타곤 산의 꼭대기를 차지해 태양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이 전통은 솔라리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타곤 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오직 전쟁만을 위해 살아가는 라코어라는 용감무쌍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라코어 중에서도 오직 '높은 존재'의 부름을 받아 간택된 극소수만이 '솔라리'가 될 수 있었다. 이 고귀한 집단에 속하게 되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을 그만두고 태양을 숭배하기 위해 경건한 자로 거듭나야 했다.
레오나의 부모님은 전쟁만이 삶의 목표였던 전형적인 라코어인이었다. 그녀는 소꿉친구 판테온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라코어인 못지않게 전투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레오나는 라코어인이라면 누구나가 열광하던 살인에 도무지 흥미가 없었다. 그녀는 병사의 진정한 가치는 적을 죽이고 굴종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고귀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런 레오나를 별종이나 골칫덩어리로 취급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레오나는 라코어의 전통에 따라 성인식을 치러야 했다. 무릇 라코어의 소년 소녀들이 어엿한 어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대일의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고 자신만의 무기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레오나는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이 야만적인 의식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녀의 반항에 분개한 지도자들은 그녀에게 즉각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레오나의 사형이 집행되려던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강렬한 태양 빛이 폭발하며 일순 타곤 산을 뒤덮어 버렸다. 얼마 후 이글이글 타오르는 광휘가 걷히고 나자 그녀를 처형하려 했던 집행관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레오나는 무사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서 있었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솔라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솔라리는 그 즉시 집행관들에게 사형을 취소하라 명령했고 레오나를 타곤산의 정상으로 거두어 갔다. 레오나는 솔라리를 상징하는 황금 갑옷 그리고 전설의 태양 전사가 쓰던 검과 방패를 하사받았다. 솔라리는 레오나의 신념과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지도했고, 때가 되자 그녀가 리그 오브 레전드에 참가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태양은 온 룬테라를 차별 없이 밝혀줍니다. 챔피언 역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레오나
3.2. 유니버스 이후
'''“태양처럼 빛나려면, 우선 태양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솔라리 성전사 레오나는 천공의 검과 여명의 방패로 타곤 산을 수호한다. 레오나의 몸은 태양의 불길로 가득하며, 피부는 별의 광채로 빛나고, 눈동자는 천체들의 기운으로 불타오른다. 황금 갑주와 어마어마한 고대의 지식으로 무장한 레오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깨우침을,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한다. 타곤 산의 드높은 산등성이에서 사는 것은 매우 고생스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삶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귀한 이상과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는 인간의 저력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타곤 산은 맨 밑의 기슭조차도 바위투성이라서 오르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런 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고난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단순히 지형 자체가 위험한 것만이 아니다. 타곤 산의 봉우리는 반짝이는 안개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개가 산줄기를 타고 내려올 때마다 온갖 이계의 존재들이 뒤따라온다. 그 종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몸에서 빛을 발하는 괴물이 닥치는 대로 살육을 저지르기도 하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필멸자들의 귀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속삭여 광기로 몰아가기도 한다. 라코어족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매일같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과 귀중한 가축들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전투 기술을 연마한다. 멸망의 날에 일어날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라코어족은 현재의 세계 이전에 여러 문명이 존재했으며 그 모두가 대재앙으로 멸망했다고 믿는데, 예언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번 태양이 파괴되고 나면 더 이상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들이 ‘마지막 태양의 부족’이라는 뜻의 ‘라코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라코어족의 전사들은 태양의 불을 꺼뜨리려 하는 자들과 전투를 치를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라코어족에게 전투란 태양의 불길을 지키기 위한 헌신의 행위이다. 그들은 일말의 자비심도, 망설임도 없이 적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레오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레오나는 걸음마를 떼는 것과 동시에 싸우는 법을 익혔고, 검과 방패의 사용법을 손쉽게 숙달했다. 그녀는 산봉우리를 휘감은 수수께끼의 안개를 타고 내려오는 온갖 흉폭한 괴물들, 인간이 아닌 존재들, 눈이 없는 창백한 이방인들과 숱하게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개의 비밀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린 레오나의 마음 한편에는 그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는 산비탈에서 헤매던 기묘한 소년과 마주쳤다. 소년은 피부가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났고, 머리에는 뿔이 있고, 박쥐 같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소년이 길을 잃고 겁에 질려 있다는 건 분명했다. 레오나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대로라면 즉시 공격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토록 무력한 처지에 놓인 존재를 죽이자니 차마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레오나는 소년을 산꼭대기로 가는 길까지 바래다 주고, 그가 찬란한 햇빛 속으로 걸어들어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레오나가 라코어족 마을로 돌아가보니, 그녀는 태양에 대한 임무를 저버린 죄로 고발당한 상태였다. 아까 그녀가 괴물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모습을 아트레우스라는 이름의 소년이 목격했던 것이다. 아트레우스에게서 그 사실을 전해들은 그의 아버지는 레오나가 부족의 신앙을 거스른 이단자라고 비난했다. 레오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라코어족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내려지는 처분은 딱 하나였다. 고발인과 피고발인 사이의 결투. 정오의 태양 아래, 땅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만든 격투장 안에서, 레오나는 아트레우스와 승부를 겨뤄야 했다. 둘의 기량은 막상막하였다. 레오나의 전투 기술은 막강했지만, 아트레우스 역시 최고의 전사가 되려는 일념으로 훈련에 매진해왔다. 격투장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 쪽이 이길지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레오나는 검과 방패를, 아트레우스는 긴 창을 들고 마주 섰다. 둘은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둘 다 여러 차례 부상을 입고 피를 흘렸지만 어느 쪽도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평선으로 기울어갈 즈음, 솔라리의 원로 한 명이 황금 갑주를 입은 전사 셋을 데리고 나타나 결투 중지를 요청했다. 솔라리는 태양을 숭배하는 교단으로, 그들이 세운 엄격한 교리는 타곤 산 전체의 사상과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원로는 자신이 예지몽과 고대의 예언에 이끌려 라코어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솔라리에 전해지는 예언에 따르면 타곤 산에서 태양보다 밝게 타오르는 딸이 태어나 하늘에 화합을 가져오리라고 했는데, 레오나가 바로 그 딸이라는 것이었다. 레오나가 율법을 위반한 방식까지도 예언에 나온 내용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했다. 라코어족 예언자들은 결투에 간섭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원로는 레오나가 지금 당장 자기와 함께 가야 한다고, 솔라리의 일원이 되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코어족은 독립적인 집단이었기에 외부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라리의 신성한 신탁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라코어족은 레오나를 새로운 삶으로 보내주기로 결정하고, 부상당한 레오나를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서 솔라리 원로의 손에 맡겼다. 솔라리의 사원은 타곤 산의 동쪽 산허리에서 성채처럼 우뚝 치솟아 있었다. 금빛 줄무늬가 아로새겨진 대리석과 화강암 표면으로 지어진 그 첨탑은 햇빛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레오나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솔라리의 교리 일체를 교육받았다. 솔라리는 태양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다른 빛은 모두 거짓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신앙과 율법은 매우 엄격했고 타협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원로가 알려준 예언에 감명 받은 레오나는 엄격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했고 학생으로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녀는 사막을 헤매던 사람이 물을 마시듯 열성적으로 새로운 신앙 체계를 흡수했다. 또한 솔라리의 전사단과 함께 매일 전투 훈련을 받고, 이미 출중했던 검술 실력을 성스러운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그 전사단은 라코어 말로 ‘지평선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의 ‘라호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얼마 뒤 레오나는 라호락 전사단을 통솔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녀는 타곤 산의 주민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헌신적이며 열성적인 태양의 숭배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의 인생이 급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솔라리의 일원인 다이애나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원으로 안내하라는 호출을 받았을 때였다. 다이애나는 솔라리 내에서 악명 높은 문제아로, 그녀가 빚은 말썽 때문에 화가 난 원로들이 종종 한탄하는 것을 레오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다이애나는 몇 달 전 행방불명되었다가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머리카락이 순백색이고 이마에 아른아른 빛나는 룬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몸에는 기묘한 은빛이 흐르는 갑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녀는 솔라리의 근본을 뒤흔들 엄청난 소식을 가져왔다면서, 원로들에게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레오나는 무장한 상태로 다이애나를 안내했다. 그 소녀의 태도가 어쩐지 수상쩍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로들 앞에 선 다이애나는 루나리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건 달을 숭배하는 금단의 고대 종교였다. 다이애나는 솔라리의 교리가 불완전하다며, 자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깨우쳤다고 이야기했다. 이 산꼭대기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에서는 해와 달이 서로 적이 아니고, 그곳에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오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분노가 끓어올랐다. 원로들은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신성모독이라 단언하고 그녀가 이단자라고 선언했다. 그 순간 레오나는 자신의 칼로 저 이단자의 목숨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이애나는 원로들이 자신의 말을 부정하자 기가 막히다는 듯 울분을 터뜨렸다. 그리고 레오나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그 소녀는 앞으로 뛰어오르면서 두 손을 뻗어 눈부신 섬광을 내뿜었다. 활활 타오르는 은빛의 불덩이들이 원로들을 집어삼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싸늘한 번갯불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쳤다. 레오나는 그 충격파를 맞고 방 밖으로 튕겨나가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다이애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솔라리의 원로 역시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도자를 잃은 솔라리의 신도들은 가장 신성한 성소에서 일어난 이 참사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레오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단의 원로들을 살해한 이단자 다이애나를 찾아내서 처단하는 것.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레오나의 눈에는 다이애나가 남긴 발자국이 수은처럼 빛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발자국은 타곤 산의 능선을 따라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레오나는 그걸 뒤쫓아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등반을 시작하고 얼마 뒤부터 주변에 기이하고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이 산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간 감각이 이상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낮과 밤이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 위에서 해와 달이 순식간에 뜨고 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레오나는 한 번도 발을 멈추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녀는 분노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지탱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마침내 레오나는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하고 굶주린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다이애나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산봉우리의 바위 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레오나를 맞이했다. 어렸을 때 레오나가 목숨을 구해주었던, 바로 그 황금빛 피부의 소년이었다. 게다가 산봉우리 너머로 펼쳐진 하늘에는 눈부신 빛과 불가사의한 색채가 퍼져 있었는데, 금과 은으로 된 휘황찬란한 건물들의 윤곽이 언뜻 비쳐 보였다. 홈이 새겨진 탑이며 반짝이는 첨탑과 같은 낯익은 건축물들을 본 순간, 레오나는 솔라리의 사원이 저 웅장한 천상의 도시를 모방하여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때 황금빛 피부의 소년이 옛 라코어 말로 레오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내내 그녀를 기다렸다고,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란다고. 소년은 자신이 신들의 마음과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레오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오나는 평생 그 어떤 상황도 회피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미소 짓는 소년의 손을 잡고서 그를 따라 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에서 뜨거운 빛줄기가 내리쳐 레오나를 집어삼켰다. 무시무시한 힘과 잊혀진 고대의 지식이 그녀의 안에 가득히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고, 레오나의 갑옷과 무기가 우주의 불길에 녹아들더니 화려하게 장식된 전쟁용 판금갑옷, 금으로 세공된 햇살의 방패, 새벽빛이 깃든 검으로 변했다. 마침내 레오나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모습은 예전과 똑같았고, 예전 기억도 온전히 남아 있었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었지만, 무언가 거대한 존재의 일부분이 그녀의 몸을 그릇으로 선택하고 광대한 권능과 지식을 부여한 것이다.[1] 이는 판테온과 대비되는 문장이다. 판테온은 전쟁의 현신이 아트레우스라는 전사를 선택해 그 육신을 통해 강림했고 그와 동시에 아트레우스의 인격은 사라졌지만, 레오나는 인격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 레오나는 그 지식이 자신의 영혼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할 상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레오나는 반드시 다이애나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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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레오나
날짜: CLE 21년, 7월 1일
관찰
레오나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계획적이다. 그녀의 걸음은 우아하기는 하지만 귀족의 훈련받은 걸음걸이는 아니다. 그녀의 걸음은 전쟁을 위한 것이다.
그녀의 갑옷과 겉모습은 그녀에게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주지만, 그녀가 전쟁 기관과 같은 장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성찰의 방의 대리석 문에 새겨진 부드러운 음각들을 손가락으로 훑고, 그 문이 미끄러지듯이 열리자 흠칫한다. 그녀는 꺼려하는 마음을 떨치고 그녀를 껴안기 위해 뻗어나오는 어둠의 덩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성찰
레오나는 반사적으로 방패에 에너지를 모아 태양의 빛이 거기서 뿜어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술에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둠 속에 휩싸여 있었다. 라코어의 후손은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레오나는 이 태양빛 없는 곳에서 그녀답지 않게 취약함을 느꼈다. 태양의 존재에 벌써 그렇게나 의존하게 된 것인가? 태양이 그 뒤로 거의 반 바퀴를 더 돌았지만, 그녀의 각성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거센 바람에 그녀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고, 그녀는 다시 거기에, 타곤 산의 눈덮인 비탈에, 깨달음의 그 날에 서있었다. 타곤 산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코르의 제례에서 목숨을 잃은 "쓸모 없는" 청년들의 자극적인 피 냄새가 번졌다. 그것은 처참하지만, 식량 공급이 제한된 타곤 산에서는 동시에 필수적인 의식이었다. 라코르의 모든 어린이들은 그들이 참가할 중대한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그들이 16세가 되는 해의 동지날까지 훈련과 가르침을 받았다.
레오나는 그 날 쓰러진 모든 소년, 소녀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죽음이 어쩌면 자신의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무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예전에 그녀는 여러 번 그 아이들과 그들보다 공격적인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었었다. 그녀는 골목대장들을 좌절시키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가 이기적이었던 걸까? 그녀의 선생님들은 놓친 전투 하나가 곧 배우지 못한 교훈 하나라고, 그녀가 하는 일은 도리어 나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레오나는 그녀의 친구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죽고 말았다. 어쩌면 선생님들의 말이 옳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부모들이 어떻게 자신의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며 제례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들의 눈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그녀는 코르의 제례가 참가자들에게만큼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에게도 힘든 시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의식은 라코어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깨닫는 의식이었다. 승리는 곧 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고, 조상들이 물려준 무서운 유물 무기를 받을 자격이 있고, 자신에게 기대되는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패배는 곧 자신의 유해와 피로 라코어의 땅을 비옥케 만듬을 의미했다. 죽어서도 부족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녀의 차례였다.
구덩이 주위의 전사들이 방패를 치며 포효하는 바람에 맞서 고함과 환호성을 질렀다. 추위가 뼈를 에었다. 레오나에게 작은 원형 방패와 짧은 검이 주어졌다. 그녀의 상대, 몰릭은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몰릭의 실력은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형편없었다. 그는 굼떴고 발놀림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때맞춰 검을 휩쓸 때마다 항상 거기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는 레오나가 예전에 보호했던 소년들 중 하나였고, 이제 그녀가 그의 처형인이 될 차례였다. 관중 속에서 그의 부모가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레오나의 부모도 기대를 품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이 오늘 마침내 끝이 날 수 있었던 것이다. 관습에 따르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는 이제 사라지거나, 그녀와 함께 죽어 없어질 것이었다. 라코르에게 동정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레오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몰릭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다른 때나 장소였다면 그는 얼빠진 미소를 짓고서 레오나에게 목공예에 대한 그의 열정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조각도를 다루는 그의 재능은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이었지만, 그 재능은 검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는 감정도 자비도 없는 라코르의 전사였다.
부족장의 외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몰릭이 고함을 지르며 그녀의 심장을 향해 창을 겨누고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방패로 그 일격을 쳐내고 그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몰릭은 깩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넘어졌다가 간신히 굴러 일어나 앉았다. 그는 레오나의 빈틈을 노리려 창을 휘둘렀지만 그녀는 너무 빨랐다.
그녀는 다리 하나를 들어 발을 세게 내려찍어 그녀의 맨발 아래에 밟힌 창끝을 부러뜨렸다. 몰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방패를 넓게 휘둘렀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고 뻔했다. 레오나는 그의 방패 아래로 몸을 숙이고 그 일격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의 방어 안쪽에서 그녀는 검의 평평한 면으로 그의 갈비뼈를 때렸다. 그는 몸을 구부리며 방패를 든 쪽의 손으로 옆구리를 붙들었다. 그녀가 검을 그의 얼굴에 겨누었다.
그의 패배는 예측할 수 있던 것이었지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몰릭의 아버지의 시선과 마주쳤고,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수치심뿐이었다. 몰릭 자신도 울기 직전인 듯했다. 이 날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보다 품위있게 죽기를 바랬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님이 그의 마지막 싸움을 응원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레오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검과 방패를 땅에 던지고 코르의 지도자, 쟈겐을 바라보았다.
"끝내."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싫어요."
관중은 조용해졌다. 어머니가 충격에 빠져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의 일생일대의 날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한 수치심은 몰릭의 형편없는 실력보다 훨씬 더 컸다. 쟈겐이 코르의 제례를 거친 뒤 피로 뒤덮인 채로 그의 옆에 서있던 판테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그녀 옆에 착지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갔다.
"해야 돼, 레오나."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경고였다.
그녀는 여전히 쟈겐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 하겠어요."
쟈겐이 구덩이 안으로 걸어내려갔다. "부족에 대항한 죄에는 단 하나의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창을 든 전사들이 레오나를 둘러쌌다. "잘 알고 있겠지."
레오나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해봤지만,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온기가 타곤 산의 얼음장 같은 바람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세계가 눈부신 빛으로 가득찼다.
그녀는 그 날처럼 쟈겐과 다른 이들이 땅에 쓰러져 있을거라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녀는 라코어의 전사들이 경외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그녀를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 날 이전까지 장로들의 얼굴에서 공포란 감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쟈겐은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기억대로라면 이렇게 될 리가 없었다. 그의 오른손이 창의 밑동을 잡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것을 따라가 자신의 배에 이르렀다. 창끝은 거기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는 붉은 원 속에 파묻혀 있었다.
갑자기 레오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렇게 끝났어야 했다, 레오나." 쟈겐의 목소리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는, 거의 안심이 될 정도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콜록거렸다. 그녀의 상처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앞이 흐릿했다.
"태양 없이 너는 이것밖에 안 되나?" 그가 창을 더 깊이 찔러넣었다.
그 순간까지 그녀의 의식에는 충격만이 가득했다. 이제 극도의 고통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의 눈이 갑자기 초점을 되찾았다. 각성 이후 수 년 동안 그녀는 항상 태양이 자신을 돕도록 만든 것을 후회해왔다. 그녀는 찬란한 여명 레오나였고, 룬테라에 선 태양의 화신이었다. 그녀는 태양을 섬길 자였지, 태양에게 섬김받을 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빠르게 내리쳐 창자루를 부러뜨렸다. 쟈겐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주먹을 쥐었고, 그녀의 손등이 그의 관자놀이를 세게 쳤다. 그가 비틀거렸다.
"난 언제나 태양과 함께이다." 그녀가 앞차기로 그의 가슴을 정면으로 걷어찼고, 그는 땅 위로 쓰러졌다. 그녀는 그를 내려다본 채로 그의 얼굴 위로 피를 떨어뜨리며 서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리그에 참가하려 하지, 레오나?"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질문은 완전히 기습적이었던 것이다.
"자 어서 말해봐, 왜 리그에 참가하려 하냐구?" 그의 목소리는 쾌활하고 의기양양했다.
그녀가 길게 숨을 쉬었다. "나는 태양에게 선택받은 자이다. 리그는 내가 참가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네 자신이야 그렇게 납득시켰겠지." 그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가 있잖아."
레오나는 머뭇거렸다. 그의 말 속에 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구나." 그가 말했다. "네가 보호하지 못했던 라코어의 아이들 말이야."
레오나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기분이 어떤가?"
쟈겐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사라졌고, 레오나는 다시 기관에 돌아와 있었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몇 시간은 걸린 것 같았던 이 시험에 지쳐 맥이 빠진 채로 서있었다. 그녀의 곁에 그녀의 방패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갑자기 거기서 미약한 빛이 빛났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남았던 것은 그가 말했던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녀의 어깨가 펴졌고 방패에서 태양이 밝게 타올랐다. 전설의 리그에 태양의 영웅이 참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