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게타이

 

Massagetae
1. 개요


1. 개요


카스피해의 동북부와 트란스옥시아나의 서부에 살던 민족. 기원전 7세기부터 기록이 존재하며 기원전 4세기에 사라진다. 여러 스키타이 민족 중 일파이며 헤로도토스의 역사 4권 11장에 따르면 스키타이는 마사게타이족에게 밀려 아락세스 강을 건너 킴메리아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1]
기원전 500여년 경에 이들은 아락세스 강 동쪽, 그리고 이세도네스 맞은 편에 거주하였으며, 인구도 많고 호전적이라고 기록되었다.
이들의 풍습은 요즘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스키타이를 야만인으로 평가한 헤로도토스의 과장일 수 있다. 일처제도를 유지하지만 공처제를 하기도 한다고 헤로도토스는 주장했다.
마사게타이족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혼인을 구하는 경우 여자가 사는 말 수레 앞에 화살 통을 걸어 혼인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부모가 죽은 경우 장례 의식을 위해 부모의 유해를 일부 섭취하는 풍습도 있었다고 하나 이는 스키타이 북부의 타이가 지대의 일부 수렵채집민 이야기가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죽으면 친족들이 모여 양, 염소와 함께 죽은 유해를 삶아 먹었다고 하며, 그들은 이런 풍습을 큰 행복과 효도로 여겼다고 한다. 이런 이유는 조상의 지혜, 혹은 능력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며 죽은 부모가 묻힐 곳은 땅이 아닌 자식의 몸이라는 개념이 현대와 다르게 효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병으로 죽으면 먹지 않고 땅에 묻었는데 자식의 몸에 묻지 못한 것을 불효로 여겼다고 한다.
농사는 짓지않고 가축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또한 가축의 젖도 먹었다. 이런 생활방식은 스키타이와 유사했다고 한다.
무기는 활과 창도 썼지만 주로 양날도끼를 썼고 재질은 구리와 청동을 사용했다고 한다. 말에도 청동 흉갑, 재갈과 고삐 그리고 면갑은 금을 사용했다고 한다. 화살촉은 구리를 사용했는데 활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하였다. 또한 사람의 장신구로는 머리와 허리, 어깨에는 띠를 하고 금 장식을 주로했다. 철과 은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금과 구리 및 주석은 풍부하게 나왔지만 철과 은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는 태양신만 믿었고, 말을 제물로 바쳤다.

[1] 스키타이에는 사카, 다하에, 이세도네스(Issedones) 등 여러 스키타이계 민족들이 존재한다. 헤로도토스도 그의 책 역사에서 마사게타이족을 스키타이의 일파로 본다고 서술한다. 역사 1권 20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