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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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지금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북서부 일대의 스텝 지역에 존속했던 유목민족.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키타이 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로도토스 역사 6권 46p
스키타이족들이 쓰던 스키타이어는 인도유럽어족 인도이란어파에 속했다.
2. 기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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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목민족이다.
'''스키타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기원되었으며, 그리스어의 뜻은 '궁수'(Skuthēs)란 뜻이었다.
페르시아에선 '''샤카족'''이라고 불렀는데 뜻은 동일했다. 둘 다 원시 인도-유럽어에서 '쏘다(Shoot)'를 뜻하는 어근 '''(s)kewd-'''[1] 와 연관있었다.
아시리아에선 '''아스쿠자이'''(Askuzai)라고 불렀는데, 이건 유목민이란 뜻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스스로는 '''스콜로트'''라고 불렀다.
본디 이들은 그저 이란계 유목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쯤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며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마 민족으로 채리엇이 아닌 직접 말을 타고 이동하며 싸웠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기원전 9세기 즈음에 '''키메르인'''이라 불리는 다른 유목 민족이 있었는데, 스키타이인들과 경쟁을 반복하던 중 스키타이의 기술이 좋아지고 수가 많아지자 기원전 7~6세기에 걸쳐 키메르인들을 캅카스 지역 너머로 몰아내고, 텅빈 캅카스, 카르파티아 산맥도 넘으며 동서남북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시켰다.[2] 그러나 그 이후로 세력이 점점 줄어들더니 기원전 4세기에는 서방에서 몰려온 이민족들에게 서방 영토 일부를 빼앗기고, 기원전 3세기에는 켈트 왕국의 압박으로 서방의 영토를 영구히 상실했다.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당시 동쪽에 있던 스키타이 또는 '''샤카'''들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동쪽에서 흉노와 오손, 월지가 공격하여 남쪽인 그리스-박트리아와 파르티아로 옮겨가 두 국가를 침략했고 파르티아는 스키타이인들을 방어했으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또한 스키타이들은 인도 북부에 있던 인도-그리스 왕국도 쳐들어가 인도-스키타이가 되었으나 세력이 약해져 페르시아화되었는지 멸망하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사라지게 되었다. 소그드인, 타지크인이 이들의 직계 후손이고, 카자흐인이나 우즈베크인들의 조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서쪽에 있던 스키타이인들은 크림 반도와 그 근역에서 살아가다가 기원전 2세기에 세력이 약해지면서 사르마티아인과 알란인에 의해 흡수되었다. 그 후손이 오세트인이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슬라브인과 스키타이인 혼혈의 후손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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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활상
그리스의 역사가에 따르면 이들은 4가지로 구별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대로 남아 농사하며 먹고 살자던 농경 스키타이[3] , 그에 찬동하는 상공 스키타이, 그 외의 기타 유목 스키타이, 그리고 이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로열 스키타이. 결국 로열 스키타이를 위주로 한 집단이 승리를 거두고 스키타이는 유목제국으로서 발돋음하게 된다.
또한 이들이 남긴 자료나 물건 외부의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노란 머리에 튀어나온 광대와 장신에 큰 체구를 지니고 털이 많은 편이다고 추정한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국가들과 인접하여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무역을 하며 동쪽 알타이 지방의 황금이나 모피들을 헬레니즘 국가의 금 세공 물건들과 교환하였다. 그래서 스키타이의 황금 문화는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황금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었다. 유럽 흑해 지방 드네르프강 유역과 중앙아시아 유역에서 이들이 남긴 황금 유물이 출토된다. 사카와 오르도스로 이어지는 황금문화의 원류 격. 출토되는 황금 유물들의 수준이 무척 높은데, 아마도 이들은 흑해에 기원전 7세기부터 정착한 그리스인들로부터 조형기술을 전수받은 듯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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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내몽고 일대 오르도스 고원에서 출토된 장신구. 기원전 3세기-기원전 1세기 사이에 제작했다고 추정함. 흉노 연맹은 초창기에는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고대 중국어로 기록된 흉노 인명을 분석해본 결과 기원전 2세기까지는 흉노에서 인도-유럽어에서 기원한 이름을 즐겨 썼다.[image]
스키타이 유물 중 신라 금관이나 가야 왕관, 고구려 불꽃무늬금관, 백제 왕관 장식과 유사한 양식의 것들이 있어 관심을 받았으며, 삼국유사에 기록된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설화는 인도-유럽어족 유목민의 전통적인 시조 설화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들의 형태가 비슷한 것만으로 신라인이 저 먼 스텝지대의 스키타이인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2017년에에는 신라인 유골들의 부계 DNA에서 아리안 계통의 스키타이인 유전자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칼럼의 작성자는 한국인 인도유럽민족설, 페르시아 한민족설, 신라 사카족 설 등을 주장하하는데, 'DNA 조사결과'도 이 사람의 주장 말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도 2006년 FamilytreeDNA 포럼에서 어떤 유저가 '유물이 비슷한데 한국인의 조상이 백인인 것 같다, DNA 조사를 해달라' 라는 식의 글을 올린 것이 와전된 것 같다. 또는 위의 표(KBS 역사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中)처럼 모계 DNA가 유사하다는 주장 등 오락가락하여 여기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다소 잔인한 문화가 있었다. 전쟁에서 잡은 포로의 가죽으로 망토 등을 만들었다. 승리자가 부자라면 포로의 두개골을 눈썹 윗쪽을 잘라내고 가공해 도금해서 술잔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헤로도토스가 여기에도 방문했었는데 이 물건들을 체험하였고 평도 남겼다. 만져보면 매끈거리고 광택이 나더라고...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여서 우정의 맹세를 할 때는 커다란 질그릇에 자신이 가진 무기를 집어넣고 술을 부어서 거기에 서로의 피를 흘려 넣어 주문을 외우고, 그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자가 그것을 마시는 것이 의식의 절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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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전쟁사박물관> 저자 존워리에 의하면, 스키타이인들은 활시위를 당길 때 다른 유목민족들과 달리 중지와 검지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양궁식 사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리어 당시 그리스인들이 엄지와 검지로 활을 당겼다고 한다. 이는 양궁의 역사를 알고보면 신기한데, 현대 기준으로 활시위 당기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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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세 손가락을 줄에 걸고 당기는 지중해 방식(Mediterranean draw), 위력이 약한 활을 쓰는 남미 원주민들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활줄을 꼬집듯이 당기는 핀치 방식(Pinch draw), 그리고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쓰는 방식인 엄지에 깍지를 끼고 줄을 잡은 뒤 나머지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고 당기는 일명 썸 링(Thumb ring) 방식 세 가지로 정립되기 때문[5] . 특히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방식이 현대 올림픽 양궁으로까지 발전하였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도자기 그림이나 벽화를 보면 그리스 활쏘기 방식은 정말로 핀치 내지는 썸 링 방식인 듯하다. 정작 고대 유목민인 스키타이인들은 썸 링을 안 썼다. 사족으로 이 차이점은 활의 위력과 관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활이 튼튼하지 않거나 줄 힘이 강하지 않으면 핀치 방식으로, 활을 무조건 강하게 멀리 쏴야 할 때에는 썸 링으로 당긴다. 대표적으로 몽골 활은 활줄에 걸리는 무게가 무려 40킬로대에 달하기 때문에, 썸 링 이외 다른 방법으로는 당기기도 힘들다.
4. 역대 통치자
중간에 계보가 끊겼기 때문에 기록상 알려진 순서로 적었다.
5. 기타
큰 낫을 영어로 Scythe라고 한다. 스키타이는 Scythia, 그 민족 및 언어는 Scythian이라 한다. 어원적 유사성이 있는 게 아닐까? 허나 별개의 어원이다. 각각 scythia는 위에서 언급한 인도 유럽 조어 어근 (s)kewd-에서 왔고, scythe는 인도 유럽 조어 어근 sek-(자르다)에서 온 고대 영어 sīþe에서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에키드나와 헤라클레스의 자식인 스키테스의 후손들이라 한다.
만화 히스토리에에서는 주인공인 에우메네스의 출신으로 나오고 스키타이의 왕인 아테아스가 잠깐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미션에서 스키타이 여전사(Scythian Wild Woman)들이 등장. 무슨 짓을 한 건지 길마다 시체들이 널려있으며, 만나면 일꾼을 달라고 한다. 일꾼을 일정수 갖다주면 일꾼은 나무하러 보내고 보수로 늑대와 자폭병을 준다. 결정판에서는 늑대와 자폭병 대신 만구다이 9개, 보강된 공성추 3개, 아나저 투석기 3개를 준다.
토탈 워: 로마 2 유목민 문화팩 DLC에서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로마2/로얄 스키타이 항목 참조,
문명 6에서 토미리스 여왕을 지도자로 하는 스키타이 문명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에서 주인공 "앤디"는 스키타이 출신으로 나온다.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신화는 '혁거세로 대표되는 북방 기마 세력이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있던 경주 분지로 들어와, 기마술과 철기를 바탕으로 토착 6부족의 지지를 얻어 나라를 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 북방의 기마민족이 스키타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스키타이 문화에 영향만 받은 고조선 출신인 확률도 높다.
'스키타이' 표기에 관한 글.
6. 관련 문서
[1] 이 어근에서 영어 shoot도 유래하였다.[2] 기원전 8세기에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에 겁을 먹은 메디아 왕조의 왕이 대규모 침공을 단행했으나 격퇴당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명군인 다리우스 1세도 스키타이 정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목 민족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청야 전술을 펼치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행하자, 페르시아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해야했다.[3] 일설에 의하면 이 농경 스키타이 주민들은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선조인 슬라브족이라고 한다.[4] 보스포루스 왕국 문서 참조[5] 국궁의 활쏘기 방식도 Thumb r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