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체호트 전투

 

[image]
머체호트 전투를 묘사한 그림
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3.1. 어설픈 흉내내기
3.2. 백병전
4. 결과


1. 개요


머체호트 전투(Battle of Mucheh Khort)는 1729년 11월 13일 머체호트에서 일어났으며, 나디르 샤와 아시라프 사이에서 벌어진 세번째 전투이며, 이 전투에서 호타키 왕조의 주력군은 사실상 소멸되고 멸망에 근접하게 되었다. 지난번의 전투와 매복전으로 인해 패퇴한 아시라프에겐 마지막 기회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용병이 참전한 전투이기도 했다.

2. 배경


담간 전투에서의 패전으로 계속 도망치던 호타키 왕조의 군주 아시라프는 오스만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오스만령 바그다드 총독 아흐마드 파샤는 일부 보병대와 포병대를 보내주었는데, 여기에 아시라프가 수습한 아프간 패잔병들까지 합쳐 무려 6만에 달하는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나디르 샤는 한차례 아시라프의 매복공격 시도를 역매복으로 받아친 뒤, 계속해서 남쪽으로 추격해오고 있었다. 병력은 아마도 지난번의 전투에서 이끌던 25000명 정도로 보인다.

3. 전투 경과


[image]
머체호트 전투의 배치도. 파란색이 페르시아군, 붉은색이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이며, 파란/붉은 테두리의 하얀 네모는 해당국들의 기병대.
1729년 10월 31일에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은 머체호르(Murcheh Khort) 지역에 자리잡았으며,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군은 11월 13일에 도착하여 북쪽에 자리잡았다.

3.1. 어설픈 흉내내기


아시라프는 지난번의 뼈아픈 패전의 교훈을 받아 이번에는 참호를 파고 병력을 수비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참호속의 주력군이 버티는 동안 양익 기병대로 측면공격을 하여 끝장내고자 하였다. 이는 나디르 샤가 담간 전투에서 썼던 방법으로[1] 여겨진다.
나디르 샤는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을 참호에서 개활지로 유인하려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연합군은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버티고 있었다.

3.2. 백병전


그러나, 아시라프의 아프간군, 그리고 오스만 제국군 용병들이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 정예군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화약무기를 다루는 솜씨, 그 실력을 베이스로 한 조직력과 훈련도의 차이는 참호파서 버티는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이 며칠만에 따라잡을 수 있는 요소가 결코 아니었다.
나디르 샤는 자신의 양익 기병대에게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말에서 내리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적군의 양익 기병대를 저지하게 하였으며, 페르시아군 기병대가 연합군 기병대의 발목을 묶는데 성공하자, 이제 페르시아군 보병대는 참호를 집중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페르시아 머스킷 보병대는 포격의 엄호를 받은 채 일제사격을 퍼부은 뒤 칼을 뽑아들고 재빨리 돌격하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군은 그야말로 전술의 우위를 보여주었다. 적군이 달려들려고 하면 일제사격으로 꼬꾸라뜨렸으며, 적군이 사격을 준비하면 순식간에 사브르(검)를 뽑아들고 접근하여 도륙하였다.

4. 결과


어찌어찌 구성된 오스만-아프간 연합군은 와해되었으며, 사상자는 8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머체호트 전투로 인해 호타키 왕조는 이후 이스파한을 빼앗기며 사실상 멸망 루트를 타게 되었으며, 서쪽에 있던 오스만 제국은 드디어 나디르 샤와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군 용병대는 본국으로 도망치거나 제 살길 찾아 도망치다가 포로 신세로 전락하였으며, 아시라프는 남쪽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1] 참호는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