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후한)

 


牟子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이름은 명확하지 않아 일설에 따르면 모자박(牟子博)이라고도 한다.
창오군 광신현 사람으로 한나라가 혼란하자 교지로 피난했으며, 벼슬을 권유받았지만 사양하고 불도에 심취해서 이혹론을 저술해 도가와 승려의 타락을 비판하고 불교의 올바름에 대한 것을 드러냈다.
그가 저술했다고 하는 이혹론은 홍명집은 후한의 태위인 모융이 저술했다고 하는데, 모융은 한명제 시기의 사람이지만 이혹론은 영제와 헌제 사이의 일이라 했기에 시대가 맞지 않는다. 모융이 저술했다고 말하는 것은 후대 사람의 위작일 것으로 보이며, 송나라 때 혜통, 동진 시기와 송나라 사이의 인물이 저자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선원집영에 따르면 쩐 왕조 시기의 통 비엔이 황태후인 푸 깜 린 년에게 불교에 대한 질문을 답하면서 종파 둘이 들어온 지 매우 오래라면서 교종은 모박(모자), 강승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모자가 처음으로 베트남에 불교를 전한 것은 아니며, 인도와 동남아시아 출신의 승려가 모자 이전부터 베트남에서 활동하거나 한문 불교가 그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