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아테네-이피로스 정복 전쟁

 


1. 개요
2. 정국의 변화 및 정략결혼
3. 주전파의 대두와 주인공의 출정
4. 중부/서부 그리스 정복
5. 전후처리와 세르비아의 패전


1. 개요


소설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의 모레아의 중부 그리스 정복 과정에 대해 다루는 문서. 대략적으로 1420년 말부터 1421년에 해당하는 시기를 담고 있다.

2. 정국의 변화 및 정략결혼


제국의 황제 마누일 2세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블라헤르네 정궁에서 만찬을 마련하고,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1세를 만찬에 초대해 그의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이 만남에 대해 요안니스를 비롯한 주전파 일당은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휴식을 위해 방으로 돌아온 마누일을 요안니스가 힐난하기에 이르렀다. 요안니스가 떠나간 이후, 늙은 황제는 재상 노타라스와 신임 수석비서관 소 스프란체스에게 유일한 희망인 모레아의 상황에 대해서 물어왔고, 이에 주인공이 나쁜 소식 없이 좋은 방향으로 통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마누일은 테오도로스의 야심 많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통치권 이양과 관련해서 무슨 변고가 있진 않았을지는 걱정한다.
1420년이 되어 마침내 결혼 적령기의 초입인 16살이 된 주인공은 수많은 청첩장을 받아들게 되고,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 설득하는 역할로 주교 니키포로스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청혼장을 보내온 사람들 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첫 번째 후보인 베네치아 도제의 딸은 베네치아는 미래의 적국이기 때문에 기각, 콘스탄티노플 시장[1]의 딸 또한 황제를 노릴 경우를 제외하곤 쇠락한 수도에서 얻을 만한 메리트가 없으므로 마찬가지로 기각, 결국 마지막 후보인 대귀족 칸타쿠지노스 가문의 영애 요안니나 칸타쿠지니가 신붓감으로 낙점된다. 유력 귀족들을 회유한다는 큰 그림 하에, 주인공은 맞선을 보러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상경한다.
대략 7년만에 상경하게 된 주인공은 자신에게 계속 집적대는 이바니아를[2] 어떻게든 떼어놓고 가려고 했지만, 데미클레오테스가 모레아의 국력을 수도의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본국의 귀족들에게 제국의 실권이 모레아에 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바니아와 용병대를 데려가라고 권유하여 결국 그녀와 동행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바니아를 데려가기 이전에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데미클레오테스에게 묻고, 그러자 그는 이번 정략결혼이 제위 주장과 관련해서 무슨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이야기를 하며[3] 주인공을 긴장하게 만든다.
베네치아의 배를 빌려타고 수도로 향하던 도중 주인공은 신생 오스만 해군을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맞닥뜨리고, 훈련중이던 오스만 함대는 대놓고 그 힘을 과시하고 제국을 위협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위해를 당하지 않고 수도에 도착한 주인공은 블라헤르네 정궁으로 향하고, 본연의 실용주의적이고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점 때문에 갑옷에 별다른 예장을 사용하지 않아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귀족들에게 안 좋은 쪽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와 대비되게 황제에 걸맞는 품위를 가진 요안니스가 주인공을 맞이하고, 함께 아버지인 마누일 2세를 만나러 회의장으로 향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요안니스와 마누일이 동석한 가운데 주인공의 구상은 요안니스 중심의 주전파와 마누일 중심의 보수파 양쪽에게서 어느 쪽의 동의도 얻지 못했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주전파와 지나치게 소극적인 보수파 양쪽을 어떻게든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주전파를 잠재적인 적으로 돌리며 회의장을 떠나간다. 최악의 결과를 얻은 주인공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어떻게든 혼담을 성사시켜야만 했고, 다행히도 요안니나의 태도가 굉장히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혼담은 순항한다. 과거의 맞선에 대해 가까스로 떠올리기도 하면서 둘은 미연시에 걸맞는 꽁냥꽁냥해대는 모습을 보이지만, 갑자기 이바니아가 난입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결국, 주인공을 '주인님'이라 부르는 이바니아에 경쟁심이 생긴 요안니나가 장난기 많은 본성을 드러내어 혼약을 확정하지도 않았는데 '여보'라는 칭호를 쓰면서 끝내 혼담은 수라장으로 빠져든다.
이바니아와 요안니나 간의 수라장은 끝내 치정극으로서 궁정 전체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스캔들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어머니인 헬레나 드라가슈와 동생 디미트리오스를 차례로 만난다. 그 이튿날, 세르비아가 왕실 결혼의 상대로서 혼담이 오가던 테오도로스 대신 주인공을 지목했다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져온다.
후스 전쟁에서 헝가리를 중심으로 한 십자군은 별 활약도 못하고 죽만 계속 쒔고, 이로 인해 세르비아는 오스만에게서 자국을 지켜줄 세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결국 이 상황에서 세르비아가 선택 가능한 유일한 동맹 상대는 그리스에서 두각을 드러낸 주인공과 모레아뿐이었고, 이것이 바로 세르비아가 주인공을 지목한 이유임이 명시된다. 제국과 결혼동맹을 맺으려던 세르비아의 공주 소피야는 천부적인 권력욕과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제국의 권력 핵심이 주인공에게 있음을 단번에 간파했고, 테오도로스를 손절하고 실세 주인공에게 붙으려 시도한다. 자유와 권리, 군사력, 영토, 혈통, 그리고 제위를 위한 야망까지 자신의 지아비로 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주인공에게 소피야는 청혼해왔고, 이를 통해 주인공은 귀족들의 지지가 동반될 칸타쿠지노스와의 결혼과 오스만에 대항할 동맹을 얻게 될 세르비아와의 왕실결혼 둘 중에서 양자택일을 한다.
세르비아의 혼담 파혼과 새로운 결혼조건 제시는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테오도로스에겐 모욕을, 주인공에겐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제위를 향한 여정과 대오스만 동맹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던 주인공은 끝내 귀족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세르비아 쪽을 택했고, 이에 주인공을 단순히 호시탐탐 제위만을 노리는 인물로 취급했던 요안니스는 내심 놀라게 되지만 결국 수긍한다. 한편, 잘 진행되던 혼담이 세르비아의 난입으로 깨지고 졸지에 버림받은 신세가 된 요안니나는 요안니나대로 실망한다. 반면, 혼담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한 테오도로스는 오히려 주인공이 칸타쿠지노스 가문과 파혼하면서 제위에서 멀어지자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요안니나를 끌어들여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계승권을 더더욱 확고히 하는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선택은 수도의 귀족들을 격분시켰고, 오직 요안니스만이 요안니나에게 테오도로스와의 혼담을 주선한 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요안니나는 혼담의 백지화 이후 자기 방에 틀어박혔지만, 이는 딱히 마음이 꺾이거나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소피야에게서 주인공을 되찾아오기 위한 구상에 골몰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르비아에 비해 주인공에게 도움이 된다면 선택을 번복시킬 만한 요소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녀는 행동에 나서고, 아버지인 안드레아스에게 간청해 요안니스와의 회담 기회를 얻는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던 제국 정부는 피해자인 칸타쿠지노스 가문에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요안니스와의 만남이 성사되자 요안니나는 당돌하게도 테오도로스를 거르고 요안니스를 정략결혼의 상대로 고르겠다고 선언한다. 이를 요안니스가 받아들이고, 주인공에게 바쳐야만 하는 요안니나의 순결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둘 사이의 혼약이 맺어진다.
한편, 오스만에서도 계승권과 관련해 문제가 생긴다. 메흐메트 1세의 아들인 무라트 2세는 아버지가 이교도 마누일 2세와 맺었던 맹세를 취소하고 무슬림으로서 당장에 제국을 공격할 것을 종용하지만, 이를 메흐메트가 거절하고 무라트가 그렇다면 술탄의 자리를 넘길 것을 요구하면서 상황은 파국으로 향한다. 이 시점부터 메흐메트와 무라트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술탄의 자리를 두고 투쟁하는 정적의 관계에 놓인다.
시간은 어느덧 1420년 말에 이르렀고, 비로소 주인공은 소피야와 처음으로 연락한다. 서신을 통해 연락을 받은 이튿날 이바니아, 아드리아노스, 데미클레오테스 3인을 불러모은 주인공은 셋에게 세르비아와의 혼인 동맹에 대해 고지하고, 이에 끝내 이바니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달라붙자 이를 떼어놓으려 다른 신하들이 달라붙으며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수도에서 이바니아와 요안니나가 벌인 수라장이 끝난지도 벌써 약 2달, 세르비아에서 정략결혼에 관련된 인물들이 미스트라에 도착했고 주인공은 이들을 접견하기 위해 오랜만에 예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회담장으로 향한다. 마침내, 주인공은 새로운 동맹에 대한 기대를 안고 세르비아에서 막 도착한 소피야와 처음으로 마주한다. 소피야는 소피야대로 모레아의 번영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20여 년의 세월 동안 복구를 시도했던 세르비아와 현 모레아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궁정에 도착하자 주인공의 검소함으로 인해 별다른 예술품이랄 것도 없이 삭막한 수준인 건물을 목격하고 그가 군주로서의 위신이나 위엄 등을 전혀 중요치 않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회담장에서 세르비아 및 제국의 정세나 오스만의 동향을 비롯한 발칸 각지의 소식 등을 교환하는 주인공과 소피야였지만, 연애 면에선 영 좋지 않은 결과만이 나오면서 둘의 첫 만남은 실패로 돌아간다. 회담장에 홀로 남은 주인공은 마음을 다잡고 사랑 따위 없는 결혼을 계속 추진하기로 하지만, 반면 소피야는 무드 따윈 엿 바꿔먹은 수준인 주인공의 태도에 계속해서 속으로 불평한다. 주인공의 강력한 의지 하에 미스트라의 교회에서 니키포로스 주교의 주례 하에 마침내 주인공과 소피야는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고, 주인공은 원대한 목표를 위해 우선 소피야를 통해 세르비아의 병력 지원을 얻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었다. 그는 세르비아의 지원군과 소피야 개인의 정보력 공유를 원했고, 반면 소피야는 이후 주인공이 제위에 올랐을 때의 황후의 자리와 자유연애의 권리를 원해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하에 각자의 실리를 확보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처음으로 유대인 정보원들과 마주한다.

3. 주전파의 대두와 주인공의 출정


주인공이 모레아에서 실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마누일 2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국 내외에서 벌어지는 우환을 막아달라고 기도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마누일은 내전을 최대한 피해 없이 끝내기 위해서라도 주인공과 모레아에게 힘을 조금이라도 더 실어주려 했지만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고, 1420년 11월 17일, 앙카라 전투에서 전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던 바예지트 1세의 막내아들 대 무스타파(또는 무스타파 첼레비)가 갑툭튀해선 베네치아 및 세르비아와 손을 잡아 세르비아만 해도 7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이 거병해 오스만령 발칸 각지를 들쑤셔놓기 시작한다. 결국 이로 인해 주인공이 이전에 말했던 '오스만을 공격할 제대로 된 시점'이라는 조건이 갖춰진 것으로 보였고, 주전파와 보수파 양측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완전히 무너져 주전파 쪽으로 여론이 완전히 기운다.
오스만의 내전 위기로 인한 흥분은 모레아 또한 마찬가지여서, 혈기왕성한 아드리아노스는 주인공에게 그동안 키워놓은 군사를 일으켜 세르비아의 군세에 가세함이 옳다고 종용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세르비아가 정말로 서방 십자군의 지원 없이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고, 오히려 세르비아와 오스만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면서 판세를 뒤엎을 제3의 선택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을 한 끝에 주인공은 베네치아를 움직여 북진 준비를 한다. 마침내, 1420년 12월 9일 주인공은 코린토스로 2천 명 정도의 상비군을 집결시켰고, 세르비아의 동맹으로서가 아니라 오스만의 동맹으로서 전쟁에 참가해 오스만의 적들을 칠 것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는 오스만의 봉신에 해당하는 중부 및 서부 그리스의 기독교 소국들을 정벌해 모레아의 국력을 크게 늘리고 반대로 오스만의 그리스쪽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킨다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4. 중부/서부 그리스 정복


베네치아의 해상에서의 협력 하에 보병 1,600명과 기병 400명으로 구성된 원정군의 출정 준비를 마친 주인공은 1420년 12월 23일 친정에 나섰고, 전쟁세나 징발 없이 오로지 모레아가 쌓아둔 자금만으로만 전비를 충당해 혹시 모를 전쟁 피로도의 상승이나 불만도의 증가를 원천차단한다. 그가 최우선 타깃으로 삼은 나라는 다름이아니라 중부 그리스의 왕초 노릇을 하고 있던 아테네 공국이었다.
베네치아의 도제인 모체니고[4]는 타이밍을 딱 맞춰서 주인공에게서 온 서신을 받게 되었고, 한낱 유망한 소년에 불과했을 주인공이 발칸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곤 그리스 지역의 오스만의 패권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음에 내심 감탄한다. 주인공에게 힘이 더 실리면 에게 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베네치아의 모레아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그는 '모레아가 고용할 용병의 계약금/유지비의 절반을 부담해준다면 대신 모레아가 장악할 중부 그리스에서의 무역 독점과 거류지, 주재상인 보호 등을 약속한다'라는 대형 미끼를 던져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주인공이 오스만의 동맹이라는 명분 하에 주재상인을 공격하고 거류지들을 빼앗는 등 강경하게 나올 수 있었기에 모체니고는 다른 선택지 없이 미끼를 덥썩 물었고, 원로원을 움직여 베네치아가 주인공을 돕게 만든다. 서신이 도착하고 대략 한 달이 지난 뒤, 베네치아는 30여 척의 갤리선으로 구성된 함대를 펠로폰네소스의 남부에 집결시켰고 베네치아 함대의 제독 포스카리는 주인공이 아테네로 진격을 개시했다는 보고가 들어옴과 동시에 오스만 해군을 견제하고 기동을 원천차단하러 출항한다.
과거 베네치아가 제공했던 군사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완전히 재편된 정예 상비병들은 주인공의 지휘 하에 아테네로 진격했고, 이윽고 모레아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의 아테네 공국의 병력과 마주친다. 주인공은 창병 600, 중보병 400, 경보병 200으로 구성된 보병 전력을 적절히 편성해 창병을 중심으로 중보병을 양끝에 두고 경보병을 예비대로 사용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과거 아카이아를 정벌할 때 본 적 있는 라틴 기사대를 다시 한 번 목격한다. 긴 창대와 높은 숙련도로 창병 전력에서 우위를 점한 모레아 원정군은 기사대를 제압하는 데에 성공하고, 선두에서 수십 명의 기사들을 낙마시킨 주인공이 라틴인들에 대한 해묵은 증오심까지 이끌어내면서 전투를 독려하자 전세가 모레아측의 압도적인 우세로 흐르면서 아테네 전투는 모레아의 대승으로 끝을 맺었다.
주인공이 이끄는 모레아 원정군이 아테네를 침공하러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테네인은 그저 '제국이 미쳤다' 정도로 일소하는 데에 그쳤지만, 주인공이 정말로 아테네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 무방비 상태의 공국을 접수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완전히 패닉에 빠진다. 어떻게든 도시를 지키기 위해 허접한 병력이나마 소집한 아테네 공국이었지만, 포스카리 제독이 이끄는 베네치아의 함대가 출몰해 도시를 점거하면서 그 운명이 결정된다. 병력을 재정비한 주인공이 아테네에 그대로 도착하고, 그대로 포스카리 제독에게서 도시를 인수인계받은 뒤 베네치아의 깃발을 내리고 모레아의 깃발을 내걸자 도시는 제국의 아테네 해방에 환호한다.
아테네의 공작인 안토니오 1세 아차이올리와 만난 주인공은 이윽고 평화조약의 조건으로 아테네 공국의 폐지 및 제국 법률의 시행, 베네치아인 거류지 설치, 10년간의 관세 특권 등을 차례차례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안토니오 1세에 대한 귀족 예우로 미스트라로 이주할 시의 연금과 공직 피선출 권한 등을 제시한 주인공에게 안토니오는 생색을 낸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생색이 아니라 관용이라면서 옛 강역 수복과 질서 회복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에 그의 명예로움과 고결함에 대해 깨닫곤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주인공에게 신의 축복이 있음을 빌어주며 평화조약에 도장을 찍는다.

5. 전후처리와 세르비아의 패전


중부 그리스의 여러 소국들의 구심점이 되던 아테네 공국이 무너지자 다른 소국들 또한 패닉에 빠졌고, 이에 주인공은 소국들을 차례차례 위협하면서 동시에 소국들의 자치 인정과 이를 위한 정통성 부여, 민회의 설립을 통한 권익 손실 최소화 등의 당근 또한 내밀었다. 결국 중부 그리스의 대부분의 소국들은 모레아 측에 충성하는 길을 택했고, 테베를 포함해 모레아의 지배를 받아들이길 거부한 소수의 자존심 높은 도시들은 즉시 군을 동원해 철저히 밟아버리면서 저항이 일소되었다. 그렇게 중부 그리스 평정이 일단락되자 주인공은 말머리를 그리스 서부, 이피로스로 돌렸고 당시 케팔로니아 백작 카를로 1세 토코가 명목상으로 지배하고 있던 도시국가들의 연합인 이피로스 공국을 공격한다. 험준한 핀도스 산맥으로 보호받던 이피로스의 도시들은 독립을 지키기 위해 3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회전에 나섰지만, 수 년간 정비한 모레아의 상비군에 중과부적으로 밀려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고 이피로스를 온전히 정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지리적으로 격리된 이피로스를 당장에 흡수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보았고, 오스만의 통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피로스를모레아의 자치 속국에 가까운 전제국으로 재편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주인공은 새로 생긴 전제국을 통치할 친왕으로 자신에게 협조적인 인물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마누일은 자신의 막내아들인 토마스를 주인공의 지지자로 삼기 위해 이피로스 친왕으로 파견한다.
그리스에서의 주인공의 선전과는 반대로 세르비아의 군세는 오스만군에 패배했고, 에게 해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오스만과 베네치아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가던 전쟁은 끝내 베네치아가 해전에서 오스만의 함대를 철저하게 격파함과 동시에 소피야의 물밑 작업 하에 새롭게 개입한 헝가리가 남하하던 오스만군의 발을 묶어버리면서 끝난다. 이피로스는 주인공의 구상대로 토마스를 친왕으로 하는 반독립 상태에 놓였고, 아테네와 테베를 제외한 도시국가들 또한 원래의 통치자나 그 친척이 다스리는 자치령들로 모레아 밑에 남았으며, 주요 항구의 조계지가 베네치아에 할양되는 등 사실상 공물의 증가 정도 외엔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게 이뤄졌다. 뿐만아니라 주인공은 자치령들에 대한 통제력 확대를 위해 통치권의 이양법을 새로이 설립된 민회에 기반하도록 바꾸었고, 제국에서 파견된 '법률 자문관'이 민회 선출권한을 갖고 법률의 제정과 수정에도 그들의 동의를 받게 만들었다. 거기에 도시국가들이 개별적으로 상납하던 공물을 모레아가 대신 한꺼번에 지불하는 댓가로 도시국가들의 조세권이 모레아에게 주어졌고, 치안 담당이라는 명분 하에 군대 주둔권이 허가되는 등 이전에 아카이아에서 실험적으로 적용해봤던 개혁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면서 남부 및 중부 그리스에 대한 완전한 장악에 성공한다.
모레아인들의 큰 지지와는 별개로 주인공의 통수에 치욕을 느낀 소피야는 알현실로 향했고, 세르비아를 왜 돕지 않았는지에 대해 캐묻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동맹의 주도권이 완전히 모레아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을 내세우고, 그녀가 떠나가기 전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모욕 한 방[5]을 박아주면서 이를 악물고 소피야를 울게 만든다.
주인공의 중부 및 서부 그리스 탈환 소식에 수도 또한 축제 분위기에 빠졌지만, 이는 금세 가라앉고 더 많은 욕심을 불러왔다. 급기야 주전파 귀족들은 '주인공이 너무 신중하게 행동해 마케도니아쪽을 수복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먹었다!'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요안니스가 모레아의 단독 행동에 대해 큰 불신을 갖게 만들면서 훗날의 재앙의 씨앗이 된다.
한편, 수도 또한 주인공의 활약에 축제 분위기에 빠졌지만 주전파 귀족들은 주인공이 너무 신중해서 마케도니아 수복을 하지 못했다는 얼토당토않는 논리로 그를 까기 시작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한 주인공에 대해 요안니스는 그를 탄핵할 방법을 찾으면서 베네치아가 제공한 대 무스타파의 신변을 이용해 오스만의 분열을 다시 한 번 획책하려 한다. 주인공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심으로 인해 요안니스의 성정은 뒤틀려버렸고, 그와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한다.

[1] 케팔라티케온테스.[2] 이때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인 자신에게 계속 집적대는 이바니아를 보며 만약 얘가 히로인이면 거세정진할 자신까지 있다며 밀어내려 했을 정도로 변태끼가 심했었다. 특히 상경 직전에 이 변태끼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바람에 주인공이 니키포로스 주교에게 SOS를 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을 정도다.[3] 주인공의 추측상, 이는 데미클레오테스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니키포로스 주교와 작당해서 상황을 꾸민 것으로 추측된다.[4] 톰마소 모체니고, 1343~1423.[5] "이번은 운좋게 제국에게 유리한 상황을 전개시켰기에 방관하겠지만, '''본래 의도대로 방해한다면 아무리 아내라 해도 처형할 수 있음을 기억해라. 길거리의 창녀가 되도록 만들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