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그림)

 

1. 개요
2. 특징
3. 성격


1. 개요


17~19세기에 걸쳐 민간에서 널리 퍼졌던 대중미술이다.
민화 자체는 16세기 부터 그 존재가 드러나나 당시엔 말 그대로 "민간인이 그린 잘 그린 그림"이지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 17세기 후반, 경제성장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생겨난 서민문화가 성장하면서 민화도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초기엔 비싼 궁중미술을 싼값에 즐기기 위한 방편으로써 생긴 표절작에 가까웠지만 점차 독자적인 양상을 구축해나가며 기존회화와는 다른 성격을 띄게 되었다.

2. 특징


전문적인 화원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해진거라 회화와 민화는 거의 고구려벽화정도의 세대차이가 난다. 거기다 같은 시대임에도 사람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정형화된 그림체가 없어 그리는 방식, 구도, 효과가 제각각인 모습이 나타난다.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에선 이 점을 두고 민화의 가치를 높게보았다.
민화의 태생이 모방이다보니, 독창적이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게 아닌 기존의 것을 따라하는 식으로 그려졌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형도 시켜보고 새로운 재료를 써보는 등, 서로다른 그림들을 완성시켜나갔다. 즉 《장르의 틀은 지키되 그 안에 화가의 독창성과 상상을 부여한다.》는 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문자도, 책가도라는 장르를 창조해냈고[1] 조선의 추상화라는 별명이 생길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 주술적인 것보다 장식적인 성격이 극대화 되면서, 장르들을 혼합하거나 여러 부가적인 요소들을 추가해가더니 서민들의 사치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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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민화, 모두 忠으로서 재료는 같지만 사람마다 표현방식이 다르다.
조선후기, 장식성이 강해지고 장르의 틀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부여한 작품
허나 시간이 흐르며 민화도 어느정도 틀을 가지게 된다.
자유로운 민화의 특성상 무엇을 표현해도 자유였는데 장식성이 강해지자 여러 만화적 표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짐승에게 , 담배, 안경과 같은 사람의 물건 뿐 아니라 눈물표현, 웃는 눈, 아래턱 생략 등, 현재의 2d문화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던 문자도와 책가도는 말할것도 없다.

3. 성격


그림과 도자기는 해외에서 사치품으로 인식되지만 특이하게도 조선에선 생활용품으로써 대중적인 물건이었다.[2] 민화는 크게 병풍이나 도자기•족자로 만든 사치용과 부적처럼 벽이나 문에 붙이는 생활용으로 나뉘었는데, 생활용 민화는 주로 나쁜것들을 막는 호작도, 제사때 상차림 대신 붙이는 제사도 등이 있으며 보통 색이 바래면 뜯어내기에 수명이 매우 짧았다. 허나 이를 버리지 않고 벽지나 이면지로 재활용하거나, 아예 모아서 병풍처럼 만드는 경우도 있기에 오랜시간 살아남기도 했다.
민화는 주로 유랑 화가들이 그린 데다 단순한 장식용이라 작가들이 거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또한 예술성을 따지기보다 단순한 과장과 생략이 곁들여졌다. 또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저항을 드러낸 소재가 거의 없으며, 생활의 여유를 주는 소박한 정서가 담겨 있어 인간 중심의 예술형태라 평하기도 한다.
기존회화와의 그림체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궁중미술은 선을 이용한 사실화'''인데 반해, 대중미술 즉 '''민화는 원을 이용한 추상화'''라는 것이다.

[1] 사실 문자도와 책가도는 기존에도 있던 장르였다. 허나 중국의 문자도의 경우 말 그대로 문자를 적었고, 책가도의 경우 책이 아닌 사람이 책을 읽는 모습의 그림에 가까운 반면, 조선에선 독자적인 양상을 구축하며 기존의 것과 차별성을 두었다.[2] 물론 비싼건 아니겠으나, 보석의 경우엔 장식으로 쓰다가 급할때 가루내어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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