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봉(1910)
박수봉은 1910년 6월 10일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흥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2월 8일 영양청년동맹(英陽靑年同盟) 석보지부회관(石保支部會館)에서 신간회 회원인 이돌몽(李乭夢)·이태을(李太乙)과 같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탄압정치를 규탄하고,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전국적 파급에 따른 석보면 사람들의 동조시위 방안을 협의했다.
이후 1930년 2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조선총독부의 탄압정치에 항거하고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피검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문 800여 매를 인쇄하여 2월 11일 석보면 원리동의 장날에 운집한 주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30년 4월 2일 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1년 4월 10일 출옥하였다. 그 후 영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박수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