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교

 

范喬
(221 ~ 298)
삼국시대, 서진 시기의 인물. 자는 백손(伯孫). 범찬의 아들.
2살 때 조부 범형이 죽게 되자 범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성인이 되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했는데, 5세에는 조모가 그 상황을 알려주자 슬퍼했다. 9세에는 배움을 청하고 동년배들과 잡담하지 않았고 약관에는 낙안의 장국명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제음의 유창은 범교에 대해 큰 그릇으로 반드시 중시될 것이라 했다. 친구인 유언추는 범교가 세상에서 이름과 명예를 얻을 것이라 했다.
광록대부 이전은 한나라 때 양웅이 유향보다 우수하다고 했는데, 범교는 유향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유양우열론을 저술했으며, 학문을 좋아했지만 조방이 폐위된 일로 아버지 범찬이 미친 척 하면서 말하지 않자 두 명의 동생과 함께 학문을 그만두면서 아버지를 돌보고 집을 나가지 않았다.
사례교위 유의가 천거하기도 했고 원강 연간에는 상서령 왕곤, 사도 장화, 이부랑 치륭 등이 천거하기도 했다.
읍 사람들이 납일이 되면 범교가 가진 산에서 나무를 도둑질하고 베어 갔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알려줬지만 범교는 모른 척 했다. 이 사실을 안 읍 사람들은 부끄러워 돌아갔는데, 범교는 시골에서 납일에 나무를 훔치는 것은 단지 부모와 화목하게 놀고자 해서 그런 것 뿐이라고 말했다.
외황령 고군이 범교에 대해 감탄했고 298년에 78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