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관
封觀
(? ~ 184)
후한 말의 인물. 자는 효기(孝起).
남돈 사람으로 뜻과 절개가 있었고 효렴이 되었지만 형의 이름과 지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 먼저 받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으며, 마침 중풍에 걸려 말을 할 수 없었다. 봉관의 집에 불이 났지만 천천히 나와 이를 피하면서 참았고 이를 알리지 않았다.
몇 년 후에 형이 추천받자 봉관은 군에 들어가 벼슬을 종사했으며, 184년에 장각을 중심으로 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그 세력이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양주 등의 무리들이 미칠 정도로 컸다.
봉관은 여남에서 조겸 휘하에서 공조를 지내다가 소릉현에서 황건적과 싸웠는데, 조겸을 보호하기 위해 문생 원비, 주부 진단, 문하독 범중례, 적조 유위덕, 주기사 정자사, 기실사 장중연과 함께 몸으로 칼날을 막아 진에서 전사했다.
이로 인해 조겸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조서를 통해 봉관을 포함한 문려를 칠현(七賢)이라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