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맥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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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Leslie McLaren
1. 개요
2. 행적
3. 사망


1. 개요


뉴질랜드의 포뮬러 1 드라이버이자 맥라렌 레이싱 팀의 설립자.

2. 행적


뉴질랜드에서 차량 정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직접 경주에 참여할 정도로 자동차와 경주에 대한 열정이 높았는데 그의 아들인 브루스 맥라렌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레이싱에 대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으며 자랐다. 그리하여 맥라렌이 레이싱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경주는 1956년 뉴질랜드 그랑프리였다. 당시 브루스 맥라렌의 아버지가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대신 브루스 맥라렌이 출전하게 된 것. 아쉽게도 그의 첫 레이스는 차량의 결함으로 인해 리타이어 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그가 처음으로 모터스포츠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레이스에 참여하기 위해 새로운 차량을 구입하였고, 1958년, 다시 한번 뉴질랜드 그랑프리에 도전하게 된다. 가장 후미에서 출발한 맥라렌은 많은 차량을 추월하며 우승을 거머줘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동시에 맥라렌은 유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 F1 선수로 활동하게 된다. 당시 유명한 팀이었던 쿠퍼에 들어간 맥라렌은 역시나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고 1959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22살에 최연소 F1 우승자로 각광 받게 된다. 그리고 59년과 이듬해 60년에 팀이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연속으로 달성하였다.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던 맥라렌에게도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의 팀의 성적은 점차 저조해졌고 맥라렌은 뉴질랜드 그랑프리에 참여하고자 했지만 쿠퍼 팀이 이를 거절하게 되면서 마찰이 생겼다. 결국 브루스 맥라렌은 본인이 직접 F1 팀을 만들기로 다짐하고 쿠퍼 팀을 떠나게 된다.
1963년, 맥라렌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루스 맥라렌 모터 레이싱 팀'을 창립하고 F1 그랑프리에 참여하게 된다. 초창기 참가할 시절에는 성적이 좋지 못하였지만 맥라렌의 탁월한 리더 역할 때문인지 팀은 67년도에 챔피언이 된다. 이후 66년부터 9년간 'Can-Am'시리즈에서 맥라렌의 독주가 이어지는 등 승승장구 하였다.

3. 사망


1970년 새로 개발 중이었던 M8D 차량을 자신이 직접 테스트 하던 중 차량이 다운포스를 잃고 스핀하여 신호를 알리는 컨트롤 부스를 들이받고 사고로 사망하였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맥라렌은 리더를 잃게 되었으나, 시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참가하긴 하였다.
브루스 맥라렌이 떠난 후 맥라렌은 다른 사업가에게 인수 되었고, 페라리와 로터스도 그랬듯, 맥라렌도 F1에 참가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양산차 생산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맥라렌의 시작이 늦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슈퍼카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사실 맥라렌이 양산차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전부터 였는데, 브루스 맥라렌은 경주에 열중하면서도 그 나름만의 양산차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브루스 맥라렌이 함께 고안한 M6GT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참여를 위해 만들어졌다. 맥라렌이 F1 차량을 다뤄온 것이 도움이 되어 공기 역학적인 부분에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들어가 있고, 대표적으로 M6GT를 봐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M6GT는 양산차량으로도 생산을 시작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브루스 맥라렌의 갑작스러운 타계와 함께 계획이 폴딩 되어 없던 일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