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이론
1. 개요
일반적으로 '비판 이론(Critical Theory)'이라는 용어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에게서 출발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적•사회학적 현실 비판을 일컫는다. 영어 표현인 'critical theory'의 경우 문예비평(literary criticism)에 관한 이론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지만, 이쪽은 한국어로 옮길 때 주로 '비평 이론'이라고 번역한다. 가끔씩 칸트의 삼대 비판 또한 비판 이론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용법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을 모든 종류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윤리적 비판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오늘날 스스로를 비판 이론가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철학과 사회학의 간학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바깥에도 있으며, 그런 점에서 본다면 후기식민주의와 같은 오늘날의 이론들은 비판 이론의 후신이 되기도 한다.
또한 비판 이론가들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 영향을 최대한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헤겔은 인간이 유적 존재이며, 노동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 또한 대체로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특히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인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비판 이론가들은 이런 견해를 비판하는데, 그들에 따르면 근대 이후의 노동은 인간을 노동자라는 유적 존재로만 존재하게 만들고, 종으로서의 개인을 상실시킨다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서도 아도르노는 그것이 '부정의 부정에서 긍정을 도출하는'[1] 도식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역사의 발전 테제를 부정하는 부정변증법을 내세운다.
비판 이론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적인 비판이다. 이것은 비판 이론이 규범적인 비판과 기술적인(descriptive) 설명을 종합해, 사회를 실천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중요하다. 1세대 비판이론가인 아도르노는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사회학자이기도 했는데, 철학이 그에게 윤리적 규범을 제공했다면 사회학은 사회에 대한 설명력을 제공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판이론은 순수하게 철학적인 이론으로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2] , 사회학적인 설명력을 상실한 비판 이론은 더는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2.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로는 보통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이 꼽힌다. <계몽의 변증법>, <도구적 이성 비판>, <미학이론> 등의 저작들이 읽어볼 만하다.
<계몽의 변증법>은 비판 이론가들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현대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신화-형이상학과 종교-계몽'으로 나아가는 계몽의 변증법적 진행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근대의 역설[3] , 칸트와 니체의 계몽사상, 오디세우스 서사시에서의 계몽적 요소, 계몽의 신화로의 회귀 등이 주로 다루어진다.
<도구적 이성 비판>은 막스 베버식의 '목적합리성'을 이성의 도구적 사용으로 파악하는 호르크하이머의 저작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베버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베버가 목적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쇠우리'에 갇힌 세계로 본다면 호르크하이머는 그것이 '근대의 역설'을 발생시킨 원인으로 파악한다. 즉 이성이 반성과 성찰을 상실하고 오직 도구적으로만 사용되게 된 결과, 이성적인 제도와 학문이 오히려 극히 비이성적인 지배와 폭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미학이론>은 아도르노의 미학 저작으로, 현대의 대중문화 혹은 '문화산업'에 대해 비판하면서, 근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 '진정한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도르노는 근대라는 거대한 체제가 단순한 예술로의 도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비판 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미학이론>을 단순한 절망의 이야기로, 다시 말해 근대라는 거대한 체제 앞에서 윤리적-예술적 세계로 도피하는 미학으로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3.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라고 하면 사실상 위르겐 하버마스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공론장의 구조변동>과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하버마스의 초기 저작이지만 기본 골자가 되는 내용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등장과 쇠퇴이다. 그에 따르면, 본래 계몽주의 시대에는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공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런 방식을 통해 시민의 유의미한 정치 참여가 가능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후기자본주의 시대라 불리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공론장의 기능은 쇠퇴하고 정부와 통치 엘리트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공적 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어 갔다는 것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사회학의 핵심 문제인 합리성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논증이론, 사회합리화, 의사소통적 합리성 등을 다루고 있는 저작이다. 하버마스의 '언어적 전회' 이후에 쓰여진 후기 저작으로, 그런 탓에 비판 이론 쪽에서 출간된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분석철학적인 스타일에 가깝다.
4. 비판 이론의 후신들
2세대 학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떨어지지만,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로 악셀 호네트가 알려져 있으며 책 <인정투쟁>이 번역되어 있다. 그의 인정 개념은 헤겔에게서 빌려온 것이긴 하지만 현대 신좌익의 주장들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4] 이와 관련해 악셀 호네트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낸시 프레이저와의 논쟁을 참고하면 유용하다.
포스트모더니즘, 후기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은 대표적인 비판이론의 후신들로 꼽힌다.
비판 이론가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 사이에 얼마나 문헌학적으로 분명한 영향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들뢰즈나 데리다와 같은 철학자들이 마르크스, 헤겔, 니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반대로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의 저작을 얼마나 참고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적을 뿐, 그들은 비판이론가들과 유사한 의식을 공유했다.
이성중심주의 비판,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사고에 대한 저항, 기존의 전통적인 철학을 넘어서려는 시도 등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 이론 양자에서 꾸준하게 발견되는 목표의식이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좀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비판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5] , 그렇다고 해서 비판 이론-포스트모더니즘-신좌파라는 단순한 발전 과정의 도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무위키에서도 그렇고 꾸준히 이런 방식의 서술이 발견되는데, 그들 사이에 목표의식을 공유하는 지점 정도는 있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지성사는 그렇게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신좌파'라는 정치적 운동도 자유(지상)주의, 비판이론과 신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트로츠키주의 등등 수많은 이념들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실천적으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신좌익은 부정키 어려운 연관관계가 존재하는데, 신좌익 운동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다루어지는 68혁명의 전개과정이 1세대,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이 강단에 있던 시절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가 그 예이다. 이들은 이 운동에 동조하기도 비판하기도 하였으며 학생들에 의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특히 마르쿠제는 68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 운동과 관계한다.
학술적인 차원에서 비판이론과 소위 '포스트 담론'이 맺고 있는 관계는 꽤 복잡하다. 이를테면 미셸 푸코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시도된 것과 같은 방향의 비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강의록 '생명관리정치의 탄생(Naissance de la biopolitique)'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진실의 역사나 착오의 역사,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아니라 진실진술 체제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진실진술(사법진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 이것은 물론 유럽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 유럽적 합리성의 과잉과 관련된 비판 같은 기획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초반부터 이런 비판은 모두 각기 다른 형태로 부단히 행해져 왔습니다. 낭만주의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 학파에[6]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유한 권력의 무게를 가진 합리성에 대한 이의제기가 문제화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안하려는 지식에 대한 비판은 이성 아래의 변함없이 억압적인, 아니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고, 이성 아래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억압적인 것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 비이성 역시 억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중략)..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 분석이 정치적 범위를 갖기 위해서는 진실들의 생성이나 오류들의 기억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중략)..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에 창설된 진실진술의 체제가 일단 어떤 것인가를 한정하는 것입니다.'
푸코가 전형적인 형태의 '이성중심주의 비판'에 대해 취했던 입장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다시 말해 푸코의 기획은 이성 그 자체를 비판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이성의 오류나 혹은 진실의 문제를 파헤치는데 있는 것도 아니었다. 푸코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합리성이, 혹은 합리적이라고 믿어지는 어떤 담론들/실천들의 체계가, 후에 가서는 오류로 밝혀지는 것을 '진실되다'고 단언할 수 있게 하였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것이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후기 강의록에서는 분명하게 표명되고 있지만, 푸코의 방법론은 언제나 이런 접근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7] 이 비판이론의 후신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푸코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포스트 담론'은 많은 부분에서 비판이론적 접근에 대해서 역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1] 사실 현대의 헤겔 연구자들은 헤겔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지만, 원래 새로운 틀을 짜는 사람들에게 이정도의 오독은 어쩔 수 없는지라...[2] 주로 전문가들에게서라기보다는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등에서 그렇다.[3] 근대는 이성적인 제도와 규범, 학문을 통해 비이성적인 지배와 폭력을 정당화하고 실현시킨다는 개념. 이는 이후 <미학이론>에서의 '관리되는 사회' 개념으로 이어진다.[4] 신좌익 계통에서 중시하고 자주 인용하는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개념들도 헤겔에서 유래한 경우가 빈번하므로 특이한 것만은 아니다.[5] 이런 단순화는 올바른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인 감을 잡는데는 유용하다.[6] 원저에서는 이부분에, '비판이란 무엇인가?(Qu'est ce que la critique?)'를 참조하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7] 기실 이 두루뭉술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들뢰즈, 데리다, 푸코의 이론은 포스트 담론으로 통칭되는데, 그러한 통칭은 이들 사이의 중요한 차이들을 무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