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

 


1. 개요
2. 하버마스의 이론 기획
2.1. 공론장의 구조변동
2.2. 의사소통행위이론
2.3. 사실성과 타당성
2.4. 독일 과거사 논쟁
2.5. 마르크스주의와의 관계
3. 송두율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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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저 특이한 입모양이 특징이다. 선천적 구순열 때문에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입모양 때문에 발음이 부정확하며 알아듣기가 매우 힘들다. 일종의 언어장애에서 비롯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후기에 그가 의사소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1. 개요


Jürgen Habermas
1929년 6월 18일 ~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비판 이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 주자로,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하버마스의 이론적 활동영역은 실로 다양하고 따라서 영향받은 지적 조류도 거대하다. 우선 선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의 문제의식을 상당 부분 계승했으며, 그 과정에서 프로이트정신분석학, 마르크스베버의 이론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후기 저서에 이르러서는 영미권의 학설을 폭넓게 차용했으며, 그 내용을 보면 조지 허버트 미드탤컷 파슨스의 사회학,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오스틴과 설의 언어철학, 칼 포퍼인식론, 피아제와 로런스 콜버그의 인지발달심리학 등 부지기수다.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법철학과 정치철학을 전개할 때는 롤스의 정의론과 H. L. A. 하트와 로널드 드워킨 등의 영미 법철학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하고,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출간되고 나서는 미국 학술지에서 논쟁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활동 영역 또한 넓다.
관심 분야와 활동 영역이 넓다 보니 서구 지성사의 획을 그은 논쟁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60년대 실증주의 논쟁, 1970년대 전후 철학적 해석학 논쟁,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근대성(modernity) 논쟁, 1990년대 초반 존 롤스와의 정치적 자유주의 논쟁 등 강산이 바뀔 때마다 굵직한 논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명료히 하고 상대편의 비판을 생산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고 평가된다. 덧붙여 니클라스 루만과의 체계이론 논쟁, 독일 역사가 논쟁 등에도 참가했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는 철학에서 전통적인 이성 개념이 자연과 타자에 대해 폭력과 착취를 가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극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성이 단순히 그러한 도구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성이 가진 긍정적인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주제로 하여 비판적 사회이론, 담론윤리학, 법철학, 민주주의 이론과 정치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해나갔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대한 상호이해는 해석학과도 연관되는데 스승인 가다머와의 논쟁에서 많은 부분을 수용한 것이다.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출신이었고 그 대학에서 일하길 원했지만 스승격인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하버마스를 학교에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버마스가 워낙 뛰어났기에 그를 데려와 교수로 임용하여 보살펴 준 사람이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이다. 그런데 이후 하버마스는 가다머와 학문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통렬하게 비판한다. 다만 이는 학문적 대립에 의한 건설적인 논쟁일 뿐으로 하버마스는 늘 가다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이후 하버마스의 70세 기념논문집에 힘든 시기에 도움을 준 가다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현대 철학과 사회학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의 '''최고 거장'''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저서는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대부분의 저작들이 워낙 다양한 이론과 학설들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문체 또한 대학 보고서 쓰듯이 딱딱하고 건조하다 보니 정독하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실제로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역자 서문에 보면, "하버마스는 마치 성실한 대학원생처럼 글을 쓴다."고 나와 있는데, 칭찬인지 욕인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주요 저서로는 『공론장의 구조변동』, 『의사소통행위이론』, 『사실성과 타당성』 등이 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이곳을 참고바람. 하버마스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네이버캐스트 참고.

2. 하버마스의 이론 기획


현대 철학은 근대 철학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현대 철학의 문을 열어준 프리드리히 니체,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1]등의 기획을 통해 현대 철학은 '합리적 이성'이라는 근대 철학의 중심 기획을 의심하고 그를 넘어선 지점을 개척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발터 베냐민, 루카치 죄르지 등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등의 철학을 결합시켜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하이데거 등 해석학의 선구자들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근대 철학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에만 동의하되, 세계에 대해 이성이 가질 수 있는 순기능들만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2] 즉, 하버마스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흐름에 따라가되, 그 방향을 굉장히 온건하게 해석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2.1. 공론장의 구조변동


1961년에 하버마스가 교수취임논문(하빌리타치온)으로 저술한 책. 독일은 박사학위를 따도 바로 교수가 되는 게 아니라 교수취임논문이라는 박사논문 급 논문을 또 써야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때의 논문이다. 공론장(public sphere)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책으로 현대의 고전 취급을 받는다. 이 책의 요지를 간단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7~18세기 경 서유럽(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이 발달했는데, 이 공론장은 어느 정도 자본을 갖춰 여유가 있고 문화와 예술을 논하면서 정치 시사문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던 부르주아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당시 이나 의회의 시책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고, 이것은 당시 신문의 발달에 힘입어 여론(public opinion)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서구 근대가 가진 비판적 합리성의 잠재력을 도출하고자 하며, 이것이 근대 민주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19세기 후반 이후 공론장은 '구조변동'하는데,하버마스는 그 원인으로 국가의 사적 영역으로의 개입 확대,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확산, 의회정당 정치의 변질을 들고 있다. 일련의 변동과정을 겪으면서 공론장, 특히 정치적 공론장은 그 본연의 비판적 합리성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는 게 하버마스의 진단이다.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를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과 달리 양면적으로 본다. 즉 서구 근대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을 동시에 보고자 하며, 부정적인 점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래서『공론장의 구조변동』의 핵심 문제의식도 "그래서 공론장은 망했어요"가 아니라 '''"그래서 공론장의 비판적 합리성의 잠재력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초기 저작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그러한 비전이 체계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는 않는다. 공론장 등 서구 근대의 합리성에 대한 체계적인 비전은 『의사소통행위이론』과 『사실성과 타당성』 등 후기 저서에서 만나볼 수 있다.

2.2. 의사소통행위이론


『의사소통행위이론』은 분량도 방대할 뿐더러 하버마스가 참고하고 있는 이론과 학자의 개수도 크고 아름다워서 이론을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핵심적인 얼개만 잡아본다면, 이 책은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를 통한 비판이론의 쇄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래 막스 베버와 그에 영향을 받은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들은 근대화 과정을 '목적합리성의 확대' 또는 '도구적 합리성의 확대'로 파악했다. 목적합리성이나 도구적 합리성은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주관과 대상을 설정하고 주관이 대상에 대해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합리성의 내용으로 본다. 베버가 근대 사회의 특징으로 관료제의 확대를 든 것도 이러한 합리성 개념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버마스가 보기에 이러한 합리성 개념 및 근대화 이론은 근대성을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는 이론적 귀결을 가져온다. 하버마스가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 주관과 대상의 구도에서 주관의 행위는 단 두 가지, 인식과 조작에만 제한된다. 주관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모두 대상으로 취급해 버리므로 다른 인간을 대할 때조차도 그 사람을 '인식'하고 '조작 및 통제'하는 구도만이 그려진다. 하버마스는 이런 합리성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비판하면서, 단순히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보고 인식 및 조작하는 것과는 달리 주관과 주관이 상호 대등하게 의사소통하는 합리성 개념이 있음을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다. 사회가 근대화된다는 것은 단지 목적합리성이나 도구적 합리성이 확대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그와 동시에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확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회의 근대화=효율성 ↑+합리적 의사소통 ↑인데 베버 등은 효율성만 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근대화를 온전히 파악하려면 합리적 의사소통의 확대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범주로 간주해야 한다는 '언어적 전회'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2단계 사회이론(2중사회론)으로 이어진다. 하버마스에게 사회의 근대화는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체계(system)의 차원에서 목적합리성이 확대된다. 생활세계(lifeworld)의 차원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확대된다. 체계의 영역은 국가의 행정체계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계로 나누어지며, 각각 권력과 화폐라는 매체로 운행된다. 생활세계의 영역은 문화, 사회, 인격의 세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며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가질 수 있는 의사소통행위로 재생산된다. 특히 생활세계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확대되는 것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합리화'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종교형이상학에 의존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야 했던 규범과 지식들에 대해 점점 의사소통행위에 의한 합리적 정당화를 요구하는 정도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진전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체계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체계가 처음 등장할 때는 합리화된 생활세계의 제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계는 복잡해지고 생활세계에서 자립화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체계가 복잡해지고 생활세계가 합리화되는 투 트랙의 근대화가 균형 있게 이루어졌다면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선진국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는가? 하버마스는 근대화의 투 트랙 중에서 생활세계가 합리화되는 정도와 체계가 복잡해지는 정도가 서로 불균형하여 체계의 효율성에 근거한 명령이 생활세계의 고유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생활세계의 식민지화'가 발생한다고 결론내린다. 체계의 논리가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세계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체계의 논리가 자기 영역 안에만 머물도록 체계를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것을 통제해야 하는지는 후속작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자세히 다뤄지게 된다.
요약하자면, 근대화는 단지 효율성의 증가로만 이해될 게 아니라 동시에 합리적 의사소통의 확대로도 이해되어야 하며, 사회 영역 중에서 전자는 체계로 후자는 생활세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효율성만을 목표로 하는 체계의 논리가 합리적 의사소통이 주를 이루어야 할 생활세계에 침범하면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2.3. 사실성과 타당성


1992년에 나온 『사실성과 타당성』은 주로 법철학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분석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문제를 해결할 비전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비전이란 바로 에서 출발한다. 원래 체계는 합리화된 생활세계의 제도들에 의존한다. 그런데 법치주의 국가에서 제도는 법제화되어 시행된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는 민법이나 상법, 공정거래법 등에 따라 운행되고, 행정영역 역시 행정법 등의 법률에 의거해 행정업무가 처리된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의 여론을 모은 의회에서 의결의 형태를 거쳐 제정된다. 하버마스는 이 대목에서 자꾸 생활세계로 침투하려는 체계를 통제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은 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계영역이 법에 의해 운행되고 규제되고 있으며, 그 법은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로 공론장과 시민사회를 강조한다. 비판적 합리성을 갖고 있는 공론장과 활기찬 시민사회가 다양한 여론을 표출시키고 결집시키면 제도화된 정치기구인 의회 등에서 이를 실정법으로 제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민주적 절차'라고 할 수 있으며, 하버마스가 말하는 절차주의적 법 패러다임도 이와 관련있는 것이다. 공론장과 시민사회를 강조한다고 해서 의회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데, 결국 실효성 있는 실정법으로 제정하는 역할은 의회가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제한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표출시키는 장소는 의회보다는 공론장과 시민사회일 것이다. 따라서 공론장과 시민사회 대 의회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공론장과 시민사회에서 여론을 표출시키는 과정이나 의회에서 실정법을 제정하는 과정은 모두 비판에 열려 있고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하버마스의 민주주의 이론은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로 이어진다.

2.4. 독일 과거사 논쟁


1980년대 독일 역사학계에 파장을 일으킨 논쟁으로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놀테와의 논쟁이 있다. 1986년 놀테는 ‘사라지지 않을 과거’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는 이 글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폭력성을 ‘아시아적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아우슈비츠가 상징하는 유대인 학살 또한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그는 이전까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러 범죄들과 유대인 학살 문제를 동일시 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표방했다. 더 나아가 놀테는 나치즘이 대두한 배경이 볼셰비즘에서 기인하며, 나치는 볼세비키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놀테와 같은 해석을 '독일 현대사 서술에서의 자기변호적 경향‘이라고 주장했고, 나치의 부정적인 면들을 '아시아적' 형태로 치부하는 서구 중심주의라고 비판했다.

2.5. 마르크스주의와의 관계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 등에서 복지국가가 심화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운동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으며, 생태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반핵운동 등 신(新)사회운동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하버마스는 이러한 신 사회운동들의 폭력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좌파 파시즘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경계했으므로, 어느 한 쪽에 편향되었다기 보다는 자기만의 객관적인 기준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쨋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노동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과연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방적 사상가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적 해방 사상가인가"] 링크 참조) 사실상 계급투쟁은 의미를 잃었고, 프롤레타리아의 절대적 궁핍화 가설은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어느 때 보다 풍족하다는 비판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전통 마르크스주의와는 결별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하버마스에 국한되지 않고 상당수의 비평가들의 견해이고 맑스주의 내부에서도 절대적 궁핍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하버마스의 경우는 워낙 다양한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 사실 가깝기는 베버와 다렌도로프로 이어지는 해석과 갈등론부분과 훨씬 가까운 면이 있다.
이러한 의문에 하버마스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고유의 효율성 논리로 돌아가는 체계영역으로, 국가사회주의가 이를 함부로 대체하려고 해서는 혹독한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음을 소련 붕괴 등 현실사회주의의 패배가 입증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하버마스는 "일단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나면 민주화를 더욱 진전하는 것뿐,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일축한다. 이처럼 사실상 구미에서만큼은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일단 인정하고 보기 때문에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버마스의 이론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3. 송두율 논쟁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한때 김철수라는 간첩 혐의를 받은 송두율[3]의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국내의 보수단체에서는 송두율과 함께 묶어서 별로 좋게 보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한편 대학가에서도 그런 관점에서 총학생회등에서 관련 여름 커리큘럼을 밀어주기도 했다. 하버마스는 송두율이 프랑크푸르트에서 헤겔, 마르크스, 베버의 아시아관은 제국주의적이라는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를 맡았던 사람이다. 하버마스는 송두율 사태 당시 한국정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당시 굳이 귀국하겠다는 제자에게 '국가보안법'을 거론하며 '그런 야만적인 나라에 왜 돌아가냐 그냥 여기서 나랑 연구하자'고 했다고 한다. 송두율의 간첩혐의에 대해서는 200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당시 중앙일보에서는 하버마스가 서구중심주의에 경도되어 한국의 실정을 모르고 송두율 구속을 규탄한다고 비난을 한 바 있다. 이것을 가지고 일각에서는 하버마스 = 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하거나, 매체들이 그렇게 규정해 비난했다고 말하지만, "하버마스는 한국의 실정을 모르는 서구 학자"라고 비판했다면 그것은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약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한국의 실정"이란 말은 하버마스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가의 보도'다. 다른 나라를 예로 들면 "중국/터키/이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서구 학자, 매체의 비판에 대답해 해당국 주요 매체의 사설에서 "서구중심주의에 경도되어 중국/터키/이란의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깝게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던 박노자교수도 종종 "당신은 한국의 실정을 모른다"는 반응을 얻은 적 있다.
일단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긴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환원론과 교조주의를 비판하며 소련을 좋지 않게 보는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세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교조주의 중에서도 지독한 교조주의에 구시대 스탈린주의의 북한판 변종인 주체사상과 그 사상을 숭배하는 북한 같은 정신나간 나라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 애초에 프랑크푸르트 학파 자체가 인간을 억압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하버마스는 그러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계열의 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온건하고 우익적, 보수적인 스탠스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버마스는 유럽의 지식인치고는 미국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며, 미국에서도 하버마스의 이론은 꽤나 인기가 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인도적 개입'을 옹호함으로써 좌파에게 비난을 받은 전적도 있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송 교수 자신를 도우려는 말이었다고 보면 되고, 그에 대해 우리 정부와 보수매체들은 세계적인 학자가 한국 정부의 행위를 비판한 것이 되어서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구글 학술검색에서 하버마스의 논문 인용횟수만 검색해 봐도 인용횟수 네자리수는 기본이고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무려 만 단위를 넘어버렸다. 철학계와 사회학계에서도 하버마스의 위상은 이미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석학 중 하나로 공인되고 있으며, 심지어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것을 멈춘 것도 아니다.
[1] 철학사에서 '의심의 세 대가'라고 부르기도 한다[2] 이처럼 여전히 근대철학의 합리적 기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완의 계몽, 미완의 근대라는 개념을 내놓기도 한다.[3] 독일(당시 서독) 유학 중이었던 1970년대에 유신 체제 반대 운동을 하다가 한국 입국이 거부당했고, 그대로 독일에 남아 법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 자진해서 한국에 귀국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황장엽에 의해 북한 노동당에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9년 경 법원은 이에 대해 황장엽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현재 독일과 포르투갈을 오가면서 거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