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레디스
빌헬름 레디스 (Wilhelm Rediess)
(1900년 10월 10일 출생 - 1945년 5월 8일 사망)
독일제국 프로이센 서부의 하인스베르크 출신인 레디스는 학교졸업 후 전기 기술자로 일하다가 1918년에 독일제국 육군에 입대해 보병으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18년 11월에 제대 후 전기 기사로 일하다가 1925년에 나치당과 돌격대에 가입했지만 1929년의 대공황으로 실직하였다. 1930년에 친위대로 이적한 후 빠르게 진급하여 1935년 4월 20일엔 친위대 중장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프로이센에서 인종법의 집행에 관여하여 동프로이센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데 관여하고 1,558명의 정신병 진단을 받은 유대인을 가스 트럭으로 70일간에 살해했다. 이후 노르웨이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임명된 레디스는 독일의 패전까지 자리를 유지했는데, 금발벽안이 많았던 북구인종의 노르웨이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권장하여 8천명의 아이들이 레디스의 계획하에 태어나기도 했다. 독일의 항복 후인 1945년 5월 8일에 노르웨이에서 자결한 레디스의 시체는 노르웨이 점령판무관이던 요제프 테어보덴에 의해 벙커로 옮겨진 후 테어보덴 자신도 폭탄을 터트려 운명을 같이했다.